제13장 요하(遼河) 11 회
하지만 이때 부교는 강폭보다 1장(丈) 정도가 짧아서 동쪽 언덕에 닿지 못하고
간신히 얼음장 위에 걸려 있었다.
요동에서 이 모습을 눈여겨보던 추범동은 부교 주변의 강가에 창칼로 무장한 군사 1만을 배치했다.
“너희는 배에서 뛰어내린 놈들이 기슭에 이르거든 뭍으로 오르지 못하도록 막고 세가 밀린다 싶거든
짐짓 북편 기슭으로 달아나라.”
그는 북편 기슭의 높은 곳에도 궁수 3천을 매복시켰다.
“너희는 적군이 우리 군사를 쫓아오거든 일제히 활을 쏘며 공격하라.”
그리고 다시 각 성에서 차출한 2만 군사를 수백 명씩 나눠 강기슭의 요소요소에 잠복시킨 뒤,
“너희는 기슭을 타고 오르는 자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주살하라.”
하고 나머지 군사들에게도 적당한 기회를 보아 얼음장에 걸쳐놓은 배다리의 선두를 파괴하도록
지시했다.
추범동이 전략을 세워놓고 기다리는 사이에 부교를 건너온 수군들이 꼬리를 물고 배에서
뛰어내려 요동 땅을 밟기 시작했다.
먼저 도착한 맥철장의 군사가 강변에서 미처 전열을 가다듬기도 전이었다.
난데없이 기슭에서 창칼을 든 고구려군이 함성을 지르며 쏟아져 나오니 수군은 크게 당황하여
뒤로 물러서지 않을 수 없었다.
강가의 두꺼운 얼음장들이 군사들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여기저기서 툭툭 금이 가고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
맥철장은 만일 얼음이 깨어져서 부교가 떠내려간다면 큰일이라고 판단했다.
“뭍으로 올라서라! 얼음을 밟지 말고 모두들 뭍으로 올라서라!”
고함을 지르며 군사들을 독려하자 수군들은 안간힘을 써가며 뭍으로 기어올랐다.
뒤에서는 전사웅의 군사 1만이 잇달아 도착했다.
한동안 양쪽 군사들간에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전사웅의 군사가 도착하자 고구려군의 기세는 급격히 약해졌다.
숫자에 밀린 고구려군이 문득 창칼을 버리고 북편으로 도주하니
맥철장과 전사웅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적군은 한 놈도 남김없이 주살하여 요하의 고기밥을 만들라!”
하고 스스로 앞장서서 추격하기 시작했다.
쫓긴 고구려군은 요동 북편의 기슭으로 달아나 앞을 다투며 언덕을 기어오르고
그 뒤를 수군 2만이 개미 떼처럼 쫓았다.
고구려군이 대강 정상에 이르렀을 때였다.
돌연 언덕 위에서 활을 든 궁수들이 빽빽하게 나타나더니,
“양광의 졸개들은 어서 오라!”
크게 환영하고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마구 화살을 쏘아댔다.
수군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곧 비오듯이 쏟아지는 화살을 맞고 맨 위에 있던 자부터
굴러 떨어지니 밑엣사람들은 동료의 몸에 부딪혀 덩달아 데굴데굴 구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화살과 동료들을 피해 스스로 허겁지겁 기어내려가는 자들도 부지기수였다.
“피하지 마라! 피하는 자는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
맥철장과 전사웅이 고함을 지르며 군사들을 독려했지만 이미 명령은 먹혀들지 않았다.
항차 앞장섰던 맥철장마저 고구려 궁수가 쏜 화살에 정통으로 얼굴을 맞고 굴러 떨어지자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돌변했다.
전사웅은 하는 수 없이 퇴각 명령을 내리고 쓰러진 맥철장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맥철장은 벌써 숨을 거둔 뒤였다.
“무기를 거두고 부교로 돌아가라!”
전사웅은 나머지 군사들을 수습하여 남쪽으로 내려오려 했지만 그 역시 순탄하지만은 않았다.
기슭의 요소요소에 매복하고 기다리던 수천의 고구려군이 홀현홀몰하며 공격을 퍼붓자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었다.
전사웅은 몇몇 군사만을 데리고 강으로 도망하여 얼음장 위를 걸어가다가 부교가 저만치 보이는
곳에서 맞닥뜨린 한패의 고구려군에게 그만 목을 잃고 말았다.
한편 제일 늦게 도착한 맹차의 1만 수군은 앞선 군사들이 우왕좌왕 쫓겨오는 것을 보고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직감했다.
그는 전사웅을 따라가려던 군사를 돌려 다시 부교 위로 올라가려고 하였는데 그때 별안간
한 장수가 말을 타고 나타나 꾸짖기를,
“수나라의 쥐새끼들아, 감히 어디로 달아나려 하는가?
올 때는 너희 마음대로 왔으나 가는 것은 허락 없이 돌아가지 못한다!
정 가겠거든 요동에 너의 목을 두고 가라!”
말을 마치자 날이 시퍼렇게 곤두선 육중한 장광도를 무슨 나뭇가지 휘두르듯
가볍게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맹차가 미처 대꾸할 겨를도 없이 황급히 칼을 뽑아 대적하는 사이에 후미에선
고구려군이 잽싸게 달려나와 얼음장을 깨뜨리니
가까스로 동편 기슭에 걸려 있던 부교가 물살을 따라 조금씩 아래로 흘러가기 시작하였다.
맹차는 일변으로 싸우고 일변으로 부교를 따라 남향하였지만 한번 움직이기 시작한
부교의 속도는 차츰 빨라졌다.
그리곤 어느 순간, 요동의 강역을 떠나 아득히 멀어지자
맹차의 군대는 적진에 깊숙이 들어와 고립되는 신세를 면할 수 없게 되었다.
막상 부교가 떠내려간 후 맹차를 비롯한 수군의 사기는 급격히 떨어졌다.
싸우는 손발에 힘이 빠지고 눈앞은 캄캄했으며 안색은 하얗게 변하였다.
오직 다리를 짧게 만든 우문개와 양광이 원망스러울 뿐이었다.
하물며 맹차는 무예만 가지고 겨뤄도 추범동의 상대가 아니었다.
죽을 힘을 다해 추범동의 현란한 무술을 막아내고 있을 때 북쪽 기슭에서 한패의 고구려군이
전사웅의 목을 창 끝에 꿰어 나타나서,
“넌들 어찌 이런 신세를 면할까보냐!”
하자 그만 달리던 말에서 굴러 떨어졌는데,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추범동의 장광도가 빛을 뿜으며 목을 베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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