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전쟁 (1)
성남시장 뒤쪽 골목에 위치한 그린빌 카페로 조재일이 들어섰을 때는 밤 10시반이었다.
카페 안에는 손님이 둘뿐이었는데 조재일은 곧장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누구야?"
다가선 조재일이 턱으로 여자를 가리키며 강한에게 물었다.
"야, 여자하고 노닥거릴 시간없어. 얘 보내."
하고 조재일이 내쳐 말했을 때 강한보다 먼저 여자가 입을 열었다.
"동업자야. 그러니까 신경쓰지마."
"뭐?"
와락 눈을 치켜뜬 조재일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짓더니 강한을 보았다.
그때서야 강한이 입을 열었다.
"맞아, 동업자야."
"이런 니미럴."
털썩 앞자리에 앉은 조재일이 손등으로 이마의 땀을 닦는 시늉을 했다.
"동업자 좋아하네. 어디서 이상한 년 하나 주워다가."
"말 조심해."
장미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잘랐다.
강한은 장미와 함께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때 강한이 말을 이었다.
"얘가 장미야. 저기, 원더우먼. 조회장 사건 용의자, 그리고…."
"지금은 강한의 동업자지."
장미가 말을 받았을 때 조재일이 입을 반쯤 벌린 얼굴로 둘을 번갈아 보았다.
"도대체 어떻게 둘이."
"다 그런 사연이 있지."
강한의 대답을 들은 조재일의 입술 끝이 비틀려졌다.
"엉킨 거냐?"
그렇게 묻고난 조재일이 장미의 위아래를 훑어보는 시늉을 했다.
"넌 여자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는 놈인줄 알았는데 얘 맛이 좋았나 보지?"
"꼭 생긴대로 논다니까."
하고 장미가 말을 받았고,
"니 말이 맞다. 난 니 생긴걸 보고 말하는 거다."
조재일이 으르렁거렸을 때 강한이 정색하고 나섰다.
"본론을 말해. 정신 딴데다 팔지말고."
오늘 만남은 조재일의 다급한 연락을 받고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자 제 정신이 돌아온 듯 조재일이 상체를 세우더니 침부터 삼켰다.
"사장이 날 불러서 정보가 어디서 샜는지 조사시켰다."
조재일의 목소리가 긴장으로 굳어졌다.
"발각되면 죽을거야. 병신되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너한테 일을 시켰으니 발각될 염려는 놓아도 되겠다."
느긋한 표정으로 강한이 말했을 때 조재일은 머리를 저었다.
"아냐, 사장은 그 일을 홍대식이 한테도 시켰어. 그것도 나 모르게 말야."
이제는 강한이 긴장했고 조재일의 말이 이어졌다.
"백무웅이 한테도 시켰다. 사장은 아무도 못 믿는거야."
"그걸 알 정도면 됐다."
강한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다른 놈들은 모르고 있을거 아냐?"
"어쨌든 오래 못간다."
어깨를 늘어뜨린 조재일이 길게 숨을 뱉었다.
"내가 여기 오는데 두 놈이나 미행을 붙었어.
그걸 떼느라고 집에 들어갔다가 베란다 쪽 홈통을 타고 빠져 나왔다."
"그쯤 고생이야 해야지. 너한테 들어간 돈이 얼마인데."
"이 시불놈이."
눈을 부릅떴던 조재일이 이제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있을수는 없어."
"어쨌든 전쟁이야."
담담하게 말한 강한이 정색하고 조재일을 보았다.
"네 말대로 이대로 있을수는 없겠다."
조재일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힐끗 옆에 앉은 장미를 보았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우리가 선수를 치기로 하지."
"어떻게 할건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장미가 물었지만 강한은 한동안 앞쪽을 본채 대답하지 않았다.
밤 11시반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성남 교외의 단독주택에 입주해 있었는데 국도에서 2km나 떨어진 외딴집이었다.
강한이 백미러를 보았다. 지금 국도를 달리는 중이었지만 차량 통행이 뜸했다.
미행차는 보이지 않는다. 장미가 다시 물었다.
"전쟁한다고 했지만 그럴 필요 있어? 아까 그 작자만 피신시키면 되는거 아냐?"
그러자 강한이 머리를 돌려 장미를 보았다.
처음 만난 사람을 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으므로 장미는 숨을 멈췄다.
"역시 등쳐 먹고만 살아온 인생이라 생각하는 것도 그 정도군."
강한이 낮게 말했지만 장미는 또렷하게 다 들었다.
눈을 치켜뜬 장미가 강한을 노려보았다.
"그래, 난 그렇게 살았다. 그러는 넌? 착실하게 법 지키고 살았니? 그렇게 살아온 결과가 이래?"
장미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차 안은 어두웠지만 장미의 상기된 표정은 다 드러났다.
"빙신아, 약육강식의 시대야. 의리 찾다가 신세 조질테면 너 혼자서 해봐.
나하고 갈라서고 나서 맘대로 하란말야."
"……."
"뭐? 전쟁을 한다고? 내가 잘은 모르지만 저쪽이 너희들 몇 명으로 당할 수 있는 조직이냐?
니가 무슨 람보야? 권총 한 자루 갖고 있으면 다냐?"
그때 차는 국도를 벗어나 논길로 들어섰다.
짙은 밤이어서 라이트 빛에 앞쪽만 비쳤고 앞뒤는 어둠에 덮여 있다.
차량 통행도 없는 것이다. 주위를 살핀 장미가 입을 다물었을 때 강한이 차를 세웠다.
그리고는 차의 라이트를 끄고나서 시동까지 껐으므로 주위는 순식간에 어둠에 묻혔다.
그다음에 무거운 정적이 느껴졌다.
차 안에서 둘의 숨소리만 들린다. 장미는 저도 모르게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그때 강한이 머리를 돌려 장미를 보았다.
어둠속이었지만 강한의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KK단의 행동대장 전영철만 없애면 돼. 전면전을 하자는게 아냐."
강한의 억양없는 목소리가 차 안을 울렸다.
장미는 눈만 크게 떴고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될 수 있는 한 빨리 손을 써야겠지. KK단 보스 최광규가 이 사건을 눈치채기 전에 말야."
강한이 눈을 좁혀뜨고 장미를 보았다.
"네 말을 듣는 동안 생각이 났는데 이번 작전에도 네가 나서주면 좋겠다."
"……."
"조재일의 말을 들으면 전영철이가 되게 밝힌다는 거야. 여자를 말야."
"……."
"네 얼굴은 아직 팔리지 않았어. 조재일이도 모르는 정도니까."
"……."
"네가 전영철이하고 방에 들어가면 끝나는 거야.
벗고 있는 놈이면 네 말대로 람보라도 끝장 나는거지. 그짓을 하고 있을 때는…."
"야!"
하고 장미가 버럭 소리를 쳤으므로 강한이 말을 그쳤다.
장미가 강한을 노려 보았다.
"너, 지금 뭐라고 그랬어? 벗고 그짓을 한다고?
그럼 내가 그 새끼하고 그짓을 하라는 거냐?"
"그럼 어때?"
이맛살을 찌푸린 강한이 장미를 마주 노려보았다.
"그게 닳는 것도 아니잖아?"
"이 시발놈이 그냥."
"이 기집애가 욕하는 것 좀 봐."
그 순간 장미가 손을 휘둘러 강한의 뺨을 쳤지만 팔이 잡혀버렸다.
스윙이 컸기 때문이다.
"이거 안놔!"
장미가 악을 썼을때 강한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했다.
팔을 아직도 쥔 채였다.
"그게 네 1번 무기 아냐? 갑자기 왜 이렇게 열을 내는지 모르겠네."
소파에 등을 붙이고 앉은 최광규는 한동안 신문에서 시선을 들지 않았다.
최광규 뒤쪽 벽에 걸린 시계가 오전 9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곳은 삼성동의 노스탈랴 호텔 최상층에 만들어진 회장실이다.
노스탈랴 호텔은 1급 호텔이었지만 시설이 화려했고 종업원 서비스가 좋아서
언제나 손님이 많았다.
그 노스탈랴 호텔의 실제 소유주가 KK단이라고 불리는 조직의 보스라는 사실은
수사기관에서만 알 것이다.
이윽고 최광규가 머리를 들자 전영철은 긴장했다.
최광규의 부하가 된지 10년이 넘었지만 전영철은 지금도 그의 시선을 받으면 가슴이 뛰었다.
공포심 때문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바로 미친 놈이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는 것만큼 사람을 겁나게 만드는 건 없는 것이다.
바로 최광규가 그런 인간이었다.
웃다가 금방 살인을 하고 울다가 바로 웃는 인간이 최광규인 것이다.
"너."
신문을 탁자 위에 내려놓은 최광규가 입을 열었다.
최광규는 앉으라는 말도 안했으므로 전영철은 더 긴장했다.
"요즘 작전 벌였다면서?"
하고 최광규가 물었을 때 전영철은 심장이 철렁 밑으로 떨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다음순간 머리 속에서 맹렬하게 생각이 떠올랐다가 지워졌다.
결심을 한 것이다.
"예, 회장님."
전영철이 정색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두 눈은 똑바로 최광규를 바라보았는데 시선을 내린다면 거짓말을 하는 것으로
믿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몇 년 전에 이런 상황에서 시선을 받지 못하고 머리를 숙였던 부하 하나는
손가락 세 개가 잘려나가고 눈 한쪽이 실명 상태로 된 후에 조직에서 사라졌다.
나중에 그 부하가 거짓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 밝혀졌어도 최광규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뭔가 다른 거짓말을 했다고 믿는 것이다.
"제 부하가 당했기 때문입니다. 회장님."
하면서 전영철이 강한과 얽힌 사연을 낱낱이 보고하는 동안 최광규는
눈도 깜박이지 않고 바라만 보았다.
물론 입도 열지 않았다.
이윽고 보고를 끝낸 전영철이 손등으로 이마에서 떨어지는 땀을 닦았을 때 최광규가 말했다.
"이 시발놈이 대쪽을 팔리고 다니는 중이구만."
낮고 억양없는 목소리였지만 섬뜩한 느낌을 받은 전영철이 침을 삼켰다.
두 눈동자만 굴리는 전영철을 향해 최광규의 말이 이어졌다.
"너, 내가 묻지 않았다면 나한테 보고 안하고 끝까지 갈 작정이었지?"
"예, 회장님."
얼굴에서 비 맞은듯 땀을 쏟아내면서 전영철이 대답했다.
"추궁 당할까봐 겁이 났습니다. 회장님."
"너, 죽어야겠다."
"예, 죽여주십시오. 회장님."
"이 병신같은 놈."
전영철이 다른 말로 받았다면 지금쯤 사단이 났을 것이다.
죽여달라는데 더이상 무슨 말을 끌겠는가?
죽이든 살리든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런데 막 죽이기에는 김이 새버렸다.
이것이 전영철의 작전이었다.
"이 시벌놈이."
다시 최광규가 으르렁거렸을 때 전영철이 그 자리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
"회장님 얼굴에 먹칠을 했습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회장님."
전영철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목소리는 떨리도록 만들었지만 마음먹은 대로 눈물이 쏟아지지는 않았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우는 시늉을 했다가는 작살이 난다.
최광규는 보이는 것만 믿는 족속이다.
그때 최광규가 말했다.
"먼저 강한이 그 놈을 잡고 네 죄를 묻기로 하지."
그러더니 최광규가 인터폰의 버튼을 누르며 말을 이었다.
"네 놈이 당했다는 소문이 서울 바닥에 좍 깔린 상태라 내가 간부회의를 소집해 놓았다.
지금 아래층에서 애들이 기다리고 있단 말이다.
이 시발놈아."
"둘 아니면 셋이 지키고 있어."
김양희가 소근소근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김양희는 강한한테 반말을 했는데 행동도 적극적으로 변했다.
오늘도 그렇다.
한강 둔치에서 기다리고 있던 차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강한의 손을 쥐고 놓지 않는다.
밤 10시가 되어가면서 강남 쪽 둔치는 데이트 남녀로 활기를 띄었다.
무리로 뭉쳐 다니는 고등학교 또래쯤의 학생들도 보였다.
김양희가 강한의 손을 조물락거리면서 말을 이었다.
"매출도 절반 정도로 떨어졌어. 오빠 팀이 나간데다가 그놈들 때문에 영업에 지장이 많아서."
그놈들이란 KK단을 말하는 것이다.
강한을 잡는다는 명목으로 회사에서 하루종일 노닥거리는 판이니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놈들은 아예 사무실 안으로 들어와 빈둥거리는 것이다.
업무 방해였고 사장 고동표에 대한 위협이다.
"참."
그때서야 생각이 난듯 김양희가 가방에서 서류뭉치를 꺼내 강한에게 내밀었다.
"여기 있어. 이것 복사하느라고 점심도 못먹었어. 오빠."
"저런, 내가 이따 맛있는 것 사줄게."
서류뭉치를 받은 강한이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수고했다."
KK단의 자금이 대성금융에서 유통되고 있는 것이다.
서류에는 KK단의 자금유통 상황이 기록되어 있다.
실내등을 켠 강한이 서류를 훑어보다가 탄성을 뱉었다.
"이렇게 많을줄 몰랐는데. 100억 가까이 되다니."
"일본 자금이 많대."
김양희가 이제는 강한의 허벅지를 손바닥으로 쓸면서 말했다.
"사장이 전화할 때 들었어.
일본 자금을 더 쓸거냐고 전 상무가 물었는데 사장은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했어."
강한의 시선을 받은 김양희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다.
"전 상무 쪽 자금은 이자가 연35%나 되거든. 그래서 우리 몫이 얼마 안남아."
"그렇겠다."
"지금 우리 회사에서 유통되는 자금의 절반 가량이 일본 자금이야."
"그래?"
심호흡을 한 강한이 실내등을 끄자 차안은 어두워졌다.
강한은 창밖의 둔치를 바라보았다.
활기는 더 강해져서 잔디밭 위에서는 몇몇이 불꽃을 쏘아 올리고 있다.
KK단과 일본 야쿠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섞여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자금 관리책은 KK단이다.
그때 김양희의 손이 허벅지 위쪽으로 올라왔다.
머리를 돌린 강한은 김양희의 두 눈이 어둠 속에서 더 번들거리는 것을 보았다.
"오빠."
김양희가 갈라진 목소리로 불렀을 때 강한이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하고 싶어?"
"응."
"여기서?"
"응."
머리를 끄덕인 김양희의 손이 바지 지퍼로 올라왔다.
그러자 강한이 다시 웃었다.
"내건 내가 할테니까 너부터."
"응." 손을 뗀 김양희가 멈칫하더니 강한을 보았다.
"오빠, 팬티만 벗어?"
"다 벗고 싶니?"
"오빠가 하라는대로 할게."
"너 많이 변했다."
"내가 봐도 그래."
"팬티만 벗어. 여기서는."
"그럴게."
엉덩이를 든 김양희가 금방 팬티를 벗어 던지더니 강한을 보았다.
강한도 막 바지와 팬티를 끌어내리는 중이다.
"오빠, 어떻게 해?"
"네가 위로 올라올래?"
"내가?"
하더니 김양희가 조수석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강한이 만류했다.
"뒷좌석으로 옮겨가자. 그게 낫겠다."
응접실에 모두 모였을 때는 새벽 1시반이 되어갈 무렵이었다.
시내에 나갔던 백용철이 돌아왔고 강한이 맨 나중에 도착한 것이다.
맞아서 걷지도 못했던 천상태는 사흘째 되는 날부터 조금씩 걷고 먹더니
일주일이 지난 지금은 뛰지만 못했고 정상이 되었다.
본인의 표현대로라면 골병이 들려다가 말았다는 것이다.
응접실에는 강한과 팀원 셋, 장미까지 다섯 명이 모였다.
먼저 강한이 입을 열었다.
"이제 잡히면 죽는다. 그래서 주위 경계부터 철저히 할 것."
말을 그친 강한이 씨익 웃었다.
"그리고 우리가 선제공격을 한다."
강한의 시선이 장미한테 옮겨졌다.
"장미 이야기를 듣자."
그러자 장미가 정색하더니 말을 이었다.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이 동참한거야"
모두 시큰둥한 표정이었으므로 장미의 목소리가 조금 더 높아졌다.
"그런데도 내가 젤 위험한 일을 맡았어. 돈 되는 일도 아닌데 말야."
"거, 서론이 기네."
하고 백용철이 낮게 투덜거렸지만 다 들렸다.
장미가 눈을 치켜드고 백용철을 보았다.
"말 비틀래?"
"내가 뭘?"
백용철이 턱을 치켜 들었을 때 강한이 마침 쥐고있던 담뱃갑을 던졌다.
담뱃갑이 백용철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더니 담배가 폭포물처럼 사방으로 흩어졌다.
"인마. 입 닥쳐."
강한이 낮게 말했지만 눈빛은 사나웠다.
그러나 백용철만 제외하고 장미까지 얼굴에서 웃음기가 배어나왔다.
강한이 말을 이었다.
"너, 장미는 동업자로 나하고 동격이라고 했다.
장미를 무시하는 건 날 무시하는 것이나 같단 말야 시발놈아."
"아니, 내가."
하고 백용철이 변명을 시작했지만 다시 강한이 라이터를 집어들자 입을 다물었다.
강한이 눈을 치켜뜨고 사내들을 둘러 보았다.
"다시 한번 경고한다. 장미는 너희들 하고 동격이 아냐. 상급자다. 알아 들어?"
사내 셋은 눈만 껌벅였고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대드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장미 생각하면서 손장난 하는 것도 금지다.
만일 그랬다간 손가락을 다 부러뜨려 버릴 테니까."
"손장난이라니?"
하고 물었던 백용철이 그 순간에 깨달았는지 입을 딱 벌렸고 나머지 둘은
이미 이를 악물거나 머리를 숙이고 웃음을 참는 중이었다.
그때 장미가 입술을 비틀면서 말했다.
"저질들이라 다 똑같은 놈들이군."
"으흐흐."
백용철이 처음으로 소리내어 웃자 둘이 따랐다.
그러나 강한은 시치미를 뗀 얼굴로 장미를 보았다.
"계속해."
"그만 뽀개. 멍청한 놈들아."
하고 장미가 말하자 셋은 다시 한 차례 웃고나서 겨우 자세를 갖췄다.
셋에게 차례로 눈을 흘겨보인 장미가 말을 이었다.
"꼬락서니 하구서는, 못난 것들. 너희들 손가락이 불쌍하다."
장미가 이번에는 강한을 쏘아보았다.
"너도 오십보 백보야."
"계속해."
여전히 차분한 표정으로 강한이 말했으므로 장미가 심호흡을 했다.
"내가 전영철이가 매일 가는 헬스에서 그놈을 꼬실거야."
이제는 모두 긴장했고 장미의 말이 이어졌다.
"작전 개시는 내일부터. 잘 하면 며칠 사이에 끝나겠지."
"일이 빠를수록 우리한테 이롭다."
강한이 말을 받았다.
"며칠 전까지는 전영철이 단독으로 우리를 쫓았는데 지금은 KK단 전체가 움직이고 있어.
얼른 손을 쓰지 않으면 우리가 위험해져."
응접실 안의 분위기는 무거워졌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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