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악연 (3)
"어머, 선이니?"
놀란 장미가 목소리를 높였다.
장선한테서 전화가 온 것이다.
핸드폰을 고쳐쥔 장미가 소파에서 상반신을 일으켰다.
"이 전화번호 네거야?"
하고 장미가 물었을때 장선이 대답했다.
"응, 내거야. 언니, 내 번호 적어놔. 이것 말고 또 두 개나 있으니까."
"기다려."
서둘러 펜을 쥐면서 장미가 물었다.
"대포폰을 세 개나 구했니?"
"응, 동수오빠가."
"김동수씨?"
문득 정색한 장미가 앞쪽의 벽을 보았다.
김동수는 나타나지도 않고 연락도 안 되자 황당했을 것이다.
그 후로도 김동수는 여러번 연락을 했겠지만 통화는 불가능했다.
장미가 갖고 있던 핸드폰 두 개 모두 강한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아침에 대포폰 중 김동수가 알고 있는 핸드폰을 강한이 쥐고
다른 것을 쓰라고 내놓았을 때 장미는 문득 운명을 떠올렸었다.
김동수와는 인연이 닿지 않는 것 같다는 운명이다.
"그래, 김동수씨는 잘 있어?"
장미가 겨우 그렇게 물었을 때 장선이 대답했다.
"응, 그런데 동수 오빠가 언니 잘 있느냐고 물었어."
"그래?"
"통화되면 꼭 안부 전하라고 했어."
"응, 그래?"
"그런데 동수오빤 오늘 저녁에 중국으로 떠난대. 일 때문에."
"중국으로?"
"응, 거기 몇 달 있을거라구."
"……."
"언니, 별일 없지? 지금 어디야?"
새 대포폰을 받았기 때문인지 장선은 오늘따라 통화 시간이 길었다.
예전에는 묻지도 않았던 위치도 묻는다.
"서울에 있어?"
"여기 파주야."
장미도 장선의 분위기에 젖어 긴장이 풀렸다.
"난 모처럼 편하게 쉰다."
창밖의 주택가를 바라보며 장미가 말했다.
파주 변두리의 조용한 주택가에 위치한 2층 양옥집이다.
건평은 위아래층 합해 80평쯤 되었고 장미는 베란다까지 딸린
2층을 혼자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아래층에는 강한과 사내 서너 명이 들락거리는 눈치였는데
장미는 그제 밤에 운전사 노릇을 한 놈 얼굴밖에 못보았다.
그놈은 장미의 감시 역으로 배정이 된 모양으로 지금도 아래층에 있다.
"언니."
장선이 불렀으므로 장미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김동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굴만 비워놓고 몸매와 옷차림도 머리 속에서 다 만들어 놓는다.
"응? 왜?"
"나, 동수 오빠 진짜 좋아하나봐."
장선이 소근대듯 말한 순간 장미의 가슴이 이유없이 뛰었다.
"응? 그래?"
건성으로 대답했을 때 장선의 말이 이어졌다.
"나, 이런 감정 첨이야."
"사랑하는가 보지?"
"아니, 그 이상이야."
"너도 참."
쓴웃음을 지은 장미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자신은 그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는 것이다.
장선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얘, 사랑도 해보지 않고 그 이상이라니? 욕심도 많구나. 너는."
"그런가?"
장선의 목소리에서 웃음기가 묻어났다.
"오빠 따라서 중국에 가고 싶었어."
"다 버리고?"
"엄마하고 언니 때문에 못갔지."
이제는 장선이 송화구에 대고 길게 숨을 뱉었다.
"나, 오빠하고 같이 있고 싶었어."
그때 장미가 눈을 치켜 뜨고 물었다.
그러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너, 그 사람하고 잤어?"
그러자 장선이 거침없이 대답했다.
"그럼, 그건 당연한 일 아냐?"
차에서 내린 이용구는 문을 닫고나서 다시 한번 문을 열어 보았다.
버릇이다.
문을 닫으면 자동으로 잠기는 데도 확인을 하는 것이다.
역시 문은 잠겨 있었다.
몸을 돌린 이용구는 숨을 들이켰다.
바로 코 앞에 한 사내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사내는 컸다.
그리고 건장한 체격이다.
이용구보다 한 뼘 정도는 컸고 체중은 20kg쯤 더 나갈 것 같았다.
"누구야?"
상체를 뒤로 조금 젖힌 이용구가 소리치듯 물은 순간이었다.
배에 격심한 타격을 받은 이용구가 몸을 굽히면서 점심때 먹은 잡채밥을 한 웅큼 토해내었다.
"어이구."
저도 모르게 입에서 신음이 뱉어진 순간 다시 뒤통수에 충격이 왔고 눈 앞에 수백 개의 흰 별이
튀어 나오는 느낌을 받으면서 이용구는 의식을 잃었다.
이용구가 정신을 차린 것은 얼굴에 찬물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어억!"
이번에는 몸서리를 치면서 눈을 뜬 이용구는 눈 앞에 서있는 사내를 보았다.
그놈이다.
지하 주차장에서 때린 놈.
그리고 두 놈이 또 있다.
숨을 몰아쉰 이용구는 자신이 오피스텔 방의 의자에 묶여 있는 것을 알았다.
테이프로 팔 다리가 단단히 묶여 있다.
방 안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는데 벽시계가 밤 9시반을 가리키고 있었다.
"이용구, 요즘 돈 좀 만지더니 차도 신형으로 바꾸고 가구도 고급이구만."
사내가 한 마디씩 또박또박 말했다.
"용의주도하게 통장에는 돈을 안넣고 집안에다 현금과 수표를 모아 놓으셨고 말야."
"당신들 누구요?"
그때 이용구가 겨우 물었다.
사내들은 집안을 다 뒤진 모양이었다.
냉장고 안에 숨겨둔 현금과 수표 3000만원은 이미 다 들통이 났을 것이다.
그때 사내가 이용구 앞에 손에 쥔 노트를 흔들었다.
그 순간 이용구는 다시 숨을 멈췄다.
이른바 작전 노트다. 장미와 함께 벌이고 있는 나주댁 작전.
그리고 2차로 진행 예정인 김희선 작전.
현재 나주댁 작전은 매일의 진행 상황과 나주댁의 동향이 상세히 적혀 있다.
전에 기업체에서 근무할 때 기록은 꼭 필요했다.
그 기록하던 습관이 지금 유용하게 활용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내가 쥐고 있는 노트를 본 순간 이용구는 제 머리를 빼앗긴 느낌이 들었다.
저 노트 안에 다 들어 있는 것이다.
"널 잡아서 족치려고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겠구나."
사내가 노트를 흔들면서 말했다.
"이 노트가 시간 절약도 해주었고 네 몸도 지켜준 셈이다.
이게 없었다면 넌 눈알 하나가 빠졌거나 손가락 몇 개가 잘렸을지도 몰라."
이용구는 이제 누구냐고 또 묻지 못했다.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분주하게 머리를 굴려 사내들의 정체가 누구인지를 생각해 보았다.
놈들이 경찰은 아니다.
김희선이 고용한 조직 놈들일까?
아니면 이번에 CD를 바꿀적에 정보가 새어나갔을지도 모른다.
다섯 단계나 거쳐 사채시장에 닿았지만 그놈들이 캐고 들어왔을까?
그때 사내가 물었다.
"너, 장미하고 어떤 관계야?"
"어, 어떤 관계라니요?"
"동업자는 맞는데, 남녀관계 말이다."
사내가 표정없는 얼굴로 이용구를 똑바로 보았다.
"같이 자는 관계냐? 물론 그년은 제가 먼저 주고 이용해 먹으려고 했겠지만 말야."
"그, 그것은."
그러자 사내가 노트로 이용구의 머리를 툭 쳤다.
"머, 괜찮다. 대답 안해도 된다."
그리고는 뒤쪽의 사내들에게 물었다.
"어때? 다 됐어?"
"다 됐어."
사내 하나가 말하더니 벽걸이 TV를 흘겨 보았다.
"저 놈을 뜯어가고 싶지만 관두지 뭐. 3000만원 가져간 것으로 끝내기로 해. 형."
눈을 뜬 장미는 기지개를 켜다가 말고 온몸을 오그렸다.
강한이 침대 끝쪽에서 내려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트를 당겨 몸을 감은 장미가 소리쳤다.
"무슨 짓이야!"
그러자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몸을 돌려 창가로 다가가며 말했다.
"같은 집에 살면서 전화하고 올라오라는 거냐?"
"노크라도 해야 되잖아!"
"인질한테 노크하고 들어오는 인질범이 있나? 인터넷 뒤져봐라."
창가의 의자에 앉은 강한이 담배를 꺼내 물더니 다리를 창틀에 걸쳤다.
"대충 걸치고 이리 와 앉아."
장미가 씩씩거렸지만 곧 진정했다.
저 미친 놈은 눈도 깜박 않고 총질을 해대는 놈이다.
저러다가 갑자기 귀싸대기라도 갈기면 이쪽이 손해인 것이다.
잠시후에 브래지어와 팬티위에 가운만 걸친 장미가 강한의 앞쪽 의자에 앉았다.
처음 이곳에온지 이틀밤은 긴장해서 바지와 셔츠까지 껴입고 잤다가 잠을 설쳤다.
그래서 나흘째가 되는 어젯밤부터 평소 습관대로 브래지어와 팬티만 달랑 차고 잤던 것이다.
긴장이 풀린 탓이다.
"요즘 밥 잘먹고 똥 잘 싼다면서?"
하고 불쑥 강한이 물었으므로 장미는 외면한채 입술만 부풀렸다.
맞다. 식사는 어떻게 하는고 하면 탁자 위에 놓인 광고 책자에서 요리를 골라
아래층 경비원한테 넘겨주면 정확히 배달이 되는 것이다.
장미는 아침 식사를 안했기 때문에 12시와 저녁 6시에 두 끼만 먹었는데
어제는 점심때 한정식 백반을 먹었고 저녁은 초밥과 우동이었다.
모두 배달이 되는 것이다.
물론 경비원 놈이 그 음식을 아래층에서 2층까지 운반해야 한다.
그릇은 계단 위에다 놓으면 그놈이 알아서 가져간다.
강한이 말을 이었다.
"어제 이용구를 정리했다."
그순간 퍼뜩 머리를 든 장미가 강한을 보았다.
시선이 마주쳤을 때 장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이용구를 정리하다니,
어떻게 했는지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불안한 것은 없다.
그때 강한이 장미를 쏘아보며 말했다.
이맛살이 조금 찌푸려져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조금 뜸을 들인 강한이 말을 이었다.
"눈에 눈꼽을 붙이고 남자를 똑바로 보다니, 실례 아니냐?"
놀란 장미가 엉겁결에 외면하고는 손을 들었다가 내렸다.
눈꼽을 떼려다가 만 것이다.
그 짧은 순간에도 눈꼽을 떼는 제 모습이 너무 지저분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대신 눈을 깜박여 보았지만 눈꼽의 존재는 확인 못했다.
기분이 더러웠지만 다시 눈을 치켜뜨고 강한을 노려볼 용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 강한이 말했다.
"손으로 눈꼽 뜯어내려니까 기분 더러울 것이다. 이해는 해."
장미는 이만 악물었고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일어나려니 그것도 자존심이 상하고."
"……."
"날 쏘아보고 해대려니 그놈의 눈꼽 때문에 그러지도 못하고."
"……."
"그게 네 약점이야. 다 버리지도 못하고 철저하게 철판을 깔지도 못하는 처신.
그래서 KTX에서 어벙한 놈이나 털고 큰 일은 실패했지. 누명이나 쓰고."
장미가 어깨를 부풀리면서 심호흡을 했을때 강한이 던지듯이 말했다.
"눈꼽 없어. 날 봐."
그렇다고 장미가 금방 그렇게 하겠는가?
정말 그렇다면 우롱당한 기분으로 더 열이 뻗칠 것이었다.
강한이 입맛을 다셨다.
"바로 이거라니까?
또 존심 상해서 내 말을 믿지않고 꿈틀대는게 말야.
그래서 다시 기회를 놓치고 시간만 죽인다니까."
"……."
"이런게 무슨 원더우먼이야?
그저 룸살롱에서 2차나 받고 시간 죽이는 것이 나았을 텐데."
그때 장미가 눈을 치켜뜨고 강한을 보았다.
"야, 이 새끼야."
장미가 와락 소리쳤다.
"네 주제는 뭐, 대단한 것 같니? 넌 도둑놈 아니면 강도 아냐? 그래, 인질범이지. 참."
그때 강한이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는 바람에 장미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이왕 내친김이다.
장미가 이어서 소리쳤다.
"네 말대로 KTX에서 어벙하게 당하는 병신이거나."
그리고는 장미가 침을 삼켰다.
눈을 치켜뜨고 강한을 보았는데 눈꼽은 잠깐 잊었다.
장미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눈꼽 떼어."
"시끄러! 자식아!"
다시 열이 난 장미가 바락 소리쳤을때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이용구한테서 노트를 압수했는데 거기에 네 작업 내용이 다 적혀 있더구만.
앞으로의 작업 계획까지."
놀란 장미가 이제는 입만 딱 벌렸을 때 강한은 주머니에서 쪽지를 꺼내 읽었다.
"내가 메모해 놓았는데, 나주댁 감시로 하루에 300만원씩이 들어가더구만.
이놈이 아주 등을 쳐 먹으려고 작정을 했더군."
"……."
"감시 비용으로 300만원씩 8일간에 2400만원이라.
거기에다 이용구의 추진비가 하루 200만원, 성공 사례비는 30%고.
이놈이 아주 도둑놈이더구만."
"……."
"그런 도둑놈한테 매달린 물건도 물건이지.
간단하게 표현하면 병신들이 육갑을 떤 꼴이라고 볼 수 있지."
이제는 화를 낼 기력이 소진된 듯 장미는 어금니만 물었고 강한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방을 울렸다.
"그래서 이용구한테 처 먹은 것을 토해내게 했다.
현금 3000만원을 우선 받아왔고 오늘중으로 오피스텔을 담보로 1억을 낸다고 했으니까
합이 1억3000만원이야. 너한테 사기친 금액이 그 정도쯤 되겠지?"
강한이 물었으나 장미는 외면한 채 대답하지 않았다.
1억3000만원은 턱도 없이 많은 금액이다.
이용구한테 이런저런 명목으로 들어간 돈이 7000만원 정도였다.
"그만큼은 되겠지."
장미의 반응을 무시한 채 중얼거린 강한이 다시 쪽지를 보았다.
"그래서 이용구는 오늘자로 나주댁 일에서 손을 떼고 감시원인지 지랄인지를 철수시켰는데
우리가 대신 일을 맡게 된거다."
강한이 엄지를 구부려 제 얼굴을 가리켰다.
"당연히 경비는 이용구가 게워낸 돈으로 충당할테니까 걱정하지 마.
쪼잔하게 돈 내라고 안할테니까."
"……."
"우리 첫번째 사업은 나주댁이야. 그런데 말이야."
강한이 다시 똑바로 장미를 보았다.
"이용구 노트에는 적혀있지 않던데.
나주댁이 조 회장 금고에서 꺼낸 CD 얼마나 돼? 너한테 10억 준건 빼고."
그때 장미가 머리를 들고 강한을 보았다.
어느덧 정색한 표정이다.
"60억이 넘는다고 했으니까 제 말로만해도 50억이야. 그런데."
장미가 숨을 한번 내쉬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 이상이 될지도 몰라."
"내일중으로 나주댁을 데려갈거야."
불쑥 강한이 말했으므로 장미가 또 긴장했다.
장미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희미하게 웃었다.
"우린 바로 행동에 들어간다."
"……."
"경찰에 바로 신고를 하는 모양인데 그런다고 안전한건 아니지."
그리고는 강한이 쪽지를 주머니에 넣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50대50이다."
눈만 크게 뜬 장미에게 강한은 말을 이었다.
"너한테서 가져간 CD도 절반은 돌려주기로 하지.
앞으로 거둬들일 돈도 모두 절반씩 나누기로 하고. 그럼 공평한거야."
핸드폰의 발신자 번호를 확인한 나주댁이 서둘러 귀에 붙였다.
아들 최진석이다.
"그래, 웬일이냐?"
쏘아붙이듯 묻고나서 나주댁은 심호흡을 했다.
이놈한테 좋은 소식이 나올리가 없다.
애물단지,
나이 서른이 넘도록 제 에미가 가정부 노릇으로 번 돈을 가져다가 술 처먹고 계집질을 해온 놈.
제 손으로는 돈 한푼도 벌어본 적이 없는 놈.
그것뿐이랴? 작년에는 카드로 돈을 빌려서 2000만원 가까운 돈을 게워내느라고 숨겨놓았던
금반지까지 다 팔았다.
"어머니. 나, 지금 병원인데."
"뭐?"
놀란 나주댁이 눈을 치켜떴다.
역시 누구 아들인가? 속 뒤집어 놓거나 엉뚱한 사고가 일어나거나 둘 중 하나라고
이놈 전화가 올때 예상은 했다.
"왜 병원야? 또 누구 때렸어?"
소리치듯 물었을때 최진석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장 수술을 해야된대. 그래서."
"뭐? 수술? 왜?"
"갑자기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X레이를 찍어야 되겠다고 해서."
"……."
"찍었더니 대장끝이 부었다고 잘라내야 된대."
"잘라?"
침을 삼킨 나주댁이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암은 아니고?"
"그건 열어봐야 알겠대."
"열어 보다니?"
"수술을 해서 배를."
"으응, 거기 어디야?"
"일산 백병원."
"여기 아는 선배가 있어서."
"……."
"엄마. 나, 돈이 하나도 없는데. 지금 응급실에 있거든?"
"내가 갈께."
급해진 나주댁이 팔목시계를 보았다.
오후 2시반이다.
그로부터 두 시간 후인 오후 4시반이 되었을 때
나주댁은 응급실에 누워있는 최진석의 앞에 와 섰다.
"어머니."
최진석이 억지웃음을 웃었으므로 나주댁의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이놈이 어렸을 적에는 착하고 순진했다.
머리는 좋지 않았지만 말썽쟁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오토바이를 훔쳐 한번 유치장에 다녀온 후부터 버렸다.
"수술 언제 한대?"
나주댁이 대뜸 그렇게 물었을때 최진석의 시선이 뒤쪽으로 옮겨졌다.
뒤에 형사 두 명이 서 있었던 것이다.
둘 다 짜증난 표정으로 서있던 형사는 최진석의 시선을 받더니 눈까지 흘겼다.
"어머니, 누구야?"
최진석이 묻자 형사 하나가 나주댁에게 말했다.
"우린 대기실에 있을 테니까 일보고 나오시죠."
"예, 고마워요. 아저씨."
"우리가 일당 받고 일하는 보디가드요? 바빠 죽겠는데."
하나가 투덜거리자 다른 하나도 말을 이었다.
"나아. 참, 아들 아픈데까지 우리가 따라와야 되겠소? 아줌마도 참."
"그래두요, 만일에."
말을 이으려던 나주댁은 형사 둘이 몸을 돌리자 길게 숨을 뱉었다.
"어머니, 무슨 일 있어?"
하고 최진석이 묻더니 누워있던 침대에서 일어섰다.
"왜? 어디 가려고?"
"나 화장실에."
그러더니 최진석이 나주댁의 팔을 쥐었다.
"어머니, 나 좀, 부축해줘."
나주댁은 잠자코 최진석을 부축하고 발을 떼었다.
응급실을 나온 최진석이 바로 옆쪽 후문의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그때 승합차 한 대가 후진해 오더니 바로 그들 옆에서 멈췄다.
승합차 문이 열리면서 사내 셋이 서둘러 내렸다.
그리고는 나주댁과 최진석을 차 안으로 순식간에 끌어 넣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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