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악연 (4)
"이참에 저 웬수를 죽여라."
나주댁이 이를 갈았지만 이미 기력이 떨어져 있었다.
의지가 꺾인 것이다.
"에이고, 내가 죽어야지."
길게 숨을 뱉은 나주댁의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파주 근교의 버려진 창고 안이다.
한때는 농협 창고로 쓰였는지 이곳저곳에 표식이 많이 붙어 있었지만
지금은 부서진 농기계가 어수선하게 흩어져 있을 뿐이다.
안에는 두 사내가 나주댁 앞에 서 있었다.
바로 강한과 백용철이다. 나주댁이 입을 열었다.
"그래, 내놓을게. 저놈은 이제 그만 놔줘."
그때 창고 밖에서 그야말로 숨이 끊어지는듯한 신음이 다시 울렸다.
"어서!"
신음을 들은 나주댁이 눈물로 범벅이된 얼굴로 소리쳤다.
"내 가방에 열쇠가 있어. 역삼 지하철역 보관함 열쇠야."
강한과 백용철이 멍한 표정으로 나주댁을 보았다.
CD를 그런 곳에 넣어 두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그때 밖에서 처절하게 신음소리가 났으므로 나주댁이 악을 썼다.
"312번이야! 이놈들아!"
밖의 신음은 최진석이다.
지금 최진석은 고문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조금 전에 백용철은 최진석의 잘려진 손가락 하나를 들고와 보여주었다.
강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백용철이 창고 밖으로 나갔고 곧 신음이 그쳤다.
"에이그, 이 웬수같은 놈."
이제는 땅바닥에 엎드린 나주댁이 통곡을 했으므로 강한은 입맛을 다셨다.
지금 나주댁은 밖에서 고문을 당하고 있는 최진석을 욕하고 있는 것이다.
최진석 때문에 죽은 조홍인 일가가 보낸 해결사들한테 잡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한이 나주댁을 내려다 보면서 말했다.
"장미도 잡아서 CD 다 회수했어.
그런데 장미 그년은 당신이 회장님을 밀어 죽였다던데, 어떻게 된거야?"
그러자 나주댁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상반신을 일으켰다.
"내가 그랬다구? 그 미친년이 뒤집어 씌우기는. 여우같은 년.
난 안 그랬어. 경찰에도 다 진술했다구."
"근데 당신이 왜 CD는 많이 챙겼지?"
"그년이 서두는 바람에 남겨 놓은거야. 난 금고에 얼마나 들었는지도 몰랐다구."
"어쨌든 우리가 사장님한테서 의뢰받은 금액에서 조금이라도 차이가 난다면."
말을 그친 강한이 차가운 시선으로 나주댁을 내려다 보았다.
"당신 두 모자는 아예 이곳에다 묻어 버릴거야. 각오하라구."
"53억이야. 그게 전부라구."
나주댁이 입에 거품을 물고 소리쳤다.
"수표 6000만원 정도 있던건 내가 그동안 쓰고 CD는 모두 그대로 있어.
내가 바꿀 곳도 아직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53억이다. 가슴이 뛰었지만 강한은 내색하지 않았다.
"사장님한테 다시 확인해 보겠어, 그리고."
강한이 눈을 가늘게 떴다.
"당신, CD 훔친 것 경찰에다 말 안했지?
그렇다면 공범 아냐?
장미 그년하고 말야. 경찰도 그렇게 처리할텐데."
"야, 이놈들아. 돈만 가져가면 됐지 웬 잔소리가 그렇게 많아?"
눈을 치켜뜬 나주댁이 묶인 두 손을 뻗어 강한을 할퀴려는 시늉을 했다.
머리가 헝클어졌고 옷도 어수선해서 미친 여자 같았다.
"난 금고에 남아있던 돈만 가져 온거라구. 난 죄없어."
"어쨌든."
몸을 돌린 강한이 문쪽으로 다가가며 말했다.
"CD 찾아오고나서 다시 상의하자구."
밖으로 나온 강한은 창고 밖 그늘에 나란히 서있는 천상태와 최진석을 보았다.
강한과 시선이 마주치자 최진석이 히죽 웃고나서 물었다.
"잘 되었다면서요?"
최진석은 수당 1000만원을 받기로 하고 제 어머니 납치에 동의한 것이다.
이놈은 자세한 내막은 모르고 있다.
계단의 나무 받침이 삐걱대더니 곧 강한의 상반신이 드러났으므로 장미는 외면했다.
오전 10시반. 오늘은 감시하는 놈이 해장국을 날라왔지만 수저도 들지않고
계단 위에다 내려놓았다.
식욕이 달아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제는 오늘 먹고 싶은 식단을 써주지도 않았다.
이층으로 올라온 강한이 잠자코 소파의 앞자리에 앉았으나 장미는 모른 척했다.
이놈은 어젯밤 들어오지 않았다.
그때 강한이 말했다.
"어제 나주댁 작업을 끝냈다."
놀란 장미가 시선을 들었을때 강한이 말을 이었다.
"CD로 53억을 찾았어."
장미가 눈만 크게 떴고 이번에는 강한이 외면했다.
"나주댁은 돌려보냈어. 지금쯤 집구석으로 돌아가 두 다리 쭉 뻗고 잘거야."
"……."
"그래서 말인데." 강한이 들고온 봉투를 탁자위에 놓았다.
"여기 CD로 25억이 들어있어. 네 몫이니까 받아."
시선만 그쪽으로 돌린 장미에게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경비 제하고 각각 반씩 나눈거야.
내가 너한테 지난번에 받은 8억에다 이번에 찾은 53억이면 61억인데
경비로 11억을 떼고 50억에서 반씩 나눈 거지"
"……."
"일은 내가 다 하니까 80퍼센트쯤 먹고싶은 생각도 들었지만 동업 관계를 생각해서
내가 엄청 양보를 한거다."
동업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장미가 퍼뜩 시선을 주었다가 도로 내렸지만
지난번처럼 매섭지는 않았다.
"나주댁 일은 끝냈으니까 당분간 쉬면서 2차 목표를 잡아야겠는데."
그리고는 강한이 장미를 정색하고 보았다.
"2차 목표는 김희선이 되어야겠지?"
네가 하다가 어설프게 끝낸 일 말야.
"……."
" 네 노트를 보니까 계획이 아주 엉성했어. 우스워 죽을 뻔했다니까."
그때 머리를 든 장미가 강한을 보았다.
"계산 똑바로 해."
"뭐? 어떻게?"
조금 당황한 강한이 눈을 크게 떴다.
"뭘 말야?"
"경비가 왜 11억이나 나가?
그리고 이용구한테서 뺏은 돈은 왜 계산에 안넣는 거야?"
"응?"
시선을 준 채로 강한이 가만 있는 것은 머릿속으로 분주하게 계산을 하기 때문이다.
이윽고 강한이 입맛을 다시고 나서 말했다.
"이용구한테서 1억3000만원을 빼냈지만 그게 너하고는 상관없는 돈 아냐?"
"왜 없어? 이용구는 누구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그리고 이용구 돈이 다 어디서 나왔는데?"
"네가 이용구한테 지출한 돈은 알고 보니까 7000만원 정도더구만 그래."
"그럼 그 7000만원이라도 나한테 줘야 하는것 아냐?"
"아니지."
머리를 저은 강한이 정색했다.
"그렇게 말하면 안되지. 넌 그 7000만원에서 절반인 3500만원.
거기에다 경비 제하고 가져가야지. 계산대로 하면 말야."
"그럼 더 빼앗아간 6000만원에서도 3000만원을 내놔. 동업자라면 말야."
"그것참."
말이 막힌 강한이 이맛살을 찌푸렸다가 결심한듯 말했다.
"1억3000만원에서 경비 3000만원 제하고 1억을 반으로 나누기로 하지. 5000만원이다."
"그리고."
장미가 쨍쨍한 목소리로 말했다.
"11억을 경비로 썼다니 그 내역을 알아야겠어."
"그걸 다 썼다는게 아냐. 앞으로 들어갈 경비까지 예상하고 보관한 거야."
급급하게 변명했던 강한이 얼굴을 찌푸리더니 장미를 노려보았다.
"너, 계속 반말 할거야?"
그러자 장미가 뱉듯이 말했다.
"동업자라며? 앞으로 반말 할테니까 알아서 해."
"이거, 1500만원이야."
하고 천상태가 헝겁 가방을 탁자 위에 올려놓자 천오주가 질색을 했다.
"1500만원?"
눈을 치켜든 천오주가 가방을 노려보더니 주위를 살폈다.
커피숍 안에는 손님이 그들 둘뿐이었고 종업원은 카운터 뒤에 숨듯이 앉아 TV를 보는 중이다.
"이, 이게 무슨 돈이야?"
천오주가 더듬거렸다.
올해 서른 둘인 천오주는 천상태의 하나뿐인 누나다.
"내 월급 가불한 돈이니까 생활비로 써. 난 그래도 먹고 살만 하니까."
"상태야."
눈물이 글썽해진 천오주가 말을 잇지 못했다.
어머니 말마따나 천오주는 팔자가 드셌다.
3년 전에 출판사에 다니던 남편 하인수가 뺑소니 차에 치어 죽고나서
천오주는 두 살짜리 딸 연정이와 함께 어머니한테 왔다.
몸이 약해서 만날 잔병치레를 하는 체질이었는데 먹고 살려고
천오주는 작년부터 우유 배달을 한다.
손등으로 눈을 닦은 천오주가 천상태를 보았다.
"근데 왜 집에 안들어오고 날 여기로 불러낸거니?"
천오주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예민한 성품이어서 천상태는 어렸을때 천오주한테 번번이 거짓말한 것을 들키고는 했다.
"응, 엄마가 이 돈 보면 괜히 이것저것 물을 것 같아서."
그렇게 대답해놓고 천상태는 팔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6살 차이가 나는 누나 천오주는 엄마보다 더 잔소리가 많았다.
어렸을 적에는 식당에서 일하는 어머니 대신 천오주가 천상태를 업어 키웠다.
"왜? 엄마가 알면 안돼?"
천오주가 캐물었으므로 천상태는 엉덩이를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강한한테 생활비조로 받은 돈인 것이다.
천상태의 가정 상황을 아는 강한이 집에 갖다 주라고 떼준 돈이다.
"이 돈, 절대로 나쁜 돈 아냐."
정색하고 말한 천상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다짐하듯 말을 이었다.
"절대로, 그러니까 안심하고 써. 누나."
"상태야."
"나, 먼저 갈테니까 누나는 나중에 나와."
그랬다가 천상태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었다.
아마 그 말을 듣고 천오주는 천상태보다 두 배는 더 세게 가슴이 내려앉았을 것이다.
서둘러 계산을 하고 커피숍을 나선 천상태는 골목을 빠져 나왔다.
집 근처의 커피숍에서 천오주를 만난 것이다.
큰길로 나온 천상태는 뒤를 돌아보았다. 천오주는 이곳까지 따라오지 않았다.
팔목시계를 내려다본 천상태는 심호흡을 했다.
오후 7시반이다. 밤 12시까지는 들어간다고 했으므로 시간 여유는 있다.
천오주 앞에서 얼른 빠져 나가려고 바쁜 시늉을 한 것이다.
천상태가 머리를 든 순간이었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양쪽 팔을 잡았다.
좌우에서 덮쳐온 두 사내가 움켜쥔 것이다.
그때 승합차가 옆쪽에 급정거를 하더니 또 두 사내가 쏟아지듯 내렸다.
"타."
천상태를 끌며 사내 하나가 말했고 차에서 내린 하나는 아예 멱살을 움켜 쥐었다.
천상태는 몸부림을 쳤지만 역부족이다.
길을 가던 사람들이 이쪽을 힐끗거렸지만 사내들은 아랑곳하지 않았고 천상태도
이를 악문 채 소리를 내지 않았다.
승합차 안으로 끌려 들어간 천상태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KK단이다.
강한이 KK단의 보호를 받고있던 윤리지한테서 채무를 받아냈을 때부터 전쟁이 시작되었다.
그래서 강한과 함께 대성금융을 빠져 나왔지만 드디어 잡힌 것이다.
차가 출발했을 때 앞에 앉은 사내가 내뱉듯이 말했다.
"이 새꺄, 너 잡으려고 여섯 명이 하루 삼교대로 네 어미 집을 지키고 있었단 말이다."
그리고는 주먹으로 천상태의 머리를 가볍게 쳤다.
천상태는 지금 마치 잡힌 짐승처럼 승합차 바닥에 팽개쳐진 상태였다.
사내들이 테이프로 손발을 감았다.
이를 악문 천상태는 눈을 감았다.
계단을 내려가던 장미가 머리를 돌려 이층을 보았다.
2주일쯤 머문 곳이었지만 정이 들었다.
2층 면적은 40평이 넘었는데 넓은 침실에 욕실과 화장실도 컸고
응접실에다 베란다까지 갖춰져 있어서 모처럼 호강했다.
근처에 맛집이 여러 곳 있어서 중국식에서 한식까지
음식을 골라 먹었고 무엇보다 공기가 맑았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에서 가장 안락한 분위기에서 호강하고 지낸 것 같다.
"뭐해?"
아래층 응접실에 선 강한이 불렀으므로 장미는 다시 계단을 내려갔다.
그렇지만 오늘은 이곳을 떠나는 것이다.
그것도 밤 12시에. 강한을 따라 현관을 나왔을 때
마당에 신형 SUV 차 한대가 시동을 켠 채로 출발 준비를 하고 있었다.
"타."
강한이 차 문을 열면서 말했을 때 마침내 장미의 화가 폭발했다.
"도대체 떠나는 이유 정도는 말해줘야 하는것 아냐? 밤 12시에 말야."
"내 팀원 하나가 잡혔어."
차분하게 말한 강한이 외면했지만 놀란 장미는 얼른 차에 올랐다.
차에는 이미 짐이 다 실렸고 앞좌석에는 두 사내가 앉아있다.
그러고보니 맨날 시중을 들던 사내가 보이지 않았다.
미스터 천이라고만 자신을 소개한 자였다.
대문을 빠져나온 차는 문도 열어놓은 채 곧장 주택가 골목길을 달려 국도로 들어섰다.
차가 속력을 냈을 때 조수석에 앉아있던 사내가 몸을 돌려 강한을 보았다.
"형, 상태 누나는 아무일 없어. 그놈들이 식구들은 건드리지 않았어."
사내가 말했을 때 장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두 눈은 사내의 얼굴을 향한 상태다.
그때 사내가 장미의 시선을 무시한 채 말을 이었다.
"누나는 상태한테서 돈을 받았다고 했어.
그 돈이 무슨 돈이냐고 묻길래 가불해간 것이라고 말해줬어. 상태하고 말을 맞췄거든."
"아아."
그때 장미가 바락 소리쳤다. 사내를 알아본 것이다.
김동수를 만나기 직전에 골목에서 자신을 잡았던 형사다.
"아니, 당신."
하고 장미가 손가락으로 형사를 가리키며 소리쳤다.
그리고는 머리를 돌려 강한을 보았다.
"그럼."
그러자 강한이 운전사를 향해 말했다.
"야, 백 형사. 인사해라."
"예."
하고 머리를 돌린 운전사를 보자 장미는 이를 악물었다.
이놈도 그때의 형사였던 것이다.
그러나 두 형사는 모두 정색한 표정이었고 강한도 마찬가지였다.
장미 혼자서 놀라 펄펄 뛰고 있는 꼴이었으므로 씨근대던 장미가 마침내 이를 악물었다.
이제야 수수께끼가 풀린 것이다.
강한, 이놈은 정의의 기사가 아니었다.
다 짜고 친 고스톱이다.
그때 강한이 황택수에게 말했다.
"상태를 죽이지는 못할거다. 내일까지 살아 있기만 하면 구해 낼거야."
"그래도 형."
길게 숨을 뱉은 황택수가 말을 이었다.
"상태가 다시 일을 할수 있을까?"
그 말에는 강한도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차 안에는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덮였다.
차츰 흥분이 가라앉은 장미도 어둠에 덮인 창밖을 보았다.
앞에 앉아있는 강한의 옆모습이 선명하게 유리창에 비쳤다.
앞쪽을 응시한 채 강한은 생각에 잠긴듯 꼼짝하지 않았다.
그때 핸드폰의 벨이 울렸으므로 차 안의 넷은 일제히 긴장했다.
"내거야."
하면서 황택수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더니 발신자 번호를 보았다.
그리고는 머리를 돌려 강한에게 말했다.
"형, 상태야."
황택수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다.
장미는 힐끗 차에 부착된 전광 시계를 보았다.
밤 12시25분이다.
강한이 머리를 끄덕이자 황택수는 핸드폰을 켜고 귀에 붙였다.
황택수가 통화를 하는 동안 차 안의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아 있었다.
핸드폰 수화구에서 울리는 사내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이윽고 응답만 하던 황택수가 핸드폰을 귀에서 떼더니 강한에게 말했다.
"놈들이 집에 들어갔어. 우리하고 몇 분 차이로 만나지 못한거야."
강한은 잠자코 있었지만 장미의 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황택수가 말을 이었다.
"상태를 데려가려면 형을 만나야 한대."
강한은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황택수의 목소리가 차 안에 울렸다.
"내일 밤 11시까지 파주 집으로 오래."
황택수가 강한의 시선을 받더니 잇사이로 말했다.
"우리들 집 말야."
조금 전에 떠났던 은신처를 말한 것이다. 그때 강한이 물었다.
"전화한 놈이 누구야?"
"누구라고 말하지 않았어."
이쪽에서도 묻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선 입장이 되었다.
황택수가 생각 났다는 듯이 말했다.
"안 나오면 상태를 없애겠대."
강한이 대답하지 않았으므로 차 안에는 엔진음만 울렸다.
차는 이제 자유로를 달려가는 중이다. 차량 통행이 많지 않아서
차들은 제한 속도인 90km 이상으로 질주하고 있었다.
그때 옆에 앉은 강한이 부시럭거리며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쥐었다.
그러더니 버튼을 누르고는 곧 귀에 붙였다. 장미는 저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응, 나다."
연결이 되었는지 강한이 말했다.
"너, 지금 어딨어?"
하더니 강한의 말투가 낮고 더 또렸해졌다.
"지금 파주 내 은신처에 애들이 들어와 있어. 물론 난 빠져나왔지만 말야."
강한이 말을 이었다.
"너희들이 잡아간 천상태는 지금 어디 있는 거냐?"
그러더니 상대의 대답을 듣고나서 피식 웃었다.
핸드폰을 귀에 딱 붙이고 있어서 장미에게 저쪽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웃기지 마. 인마. 네가 마음만 먹으면 10분도 안걸린다는 걸 내가 알고 있단 말이다. 그래서."
그 자세 그대로 팔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한 강한이 말을 이었다.
"15분 줄게. 15분 후에 다시 연락을 할 테니까 상태가 잡혀있는 곳,
그곳 환경, 몇 놈이 있는지까지 다 알아놔."
상대가 뭐라고 한 것 같았지만 강한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너, 내가 잡히면 너도 죽는 거 알지? 이 일 끝나면 네 구좌로 5000만원 입금시켜 준다.
난 약속 지키는 놈이다."
핸드폰을 끈 강한이 앞쪽에 대고 말했지만 장미까지 다 들으라는 것 같았다.
"시발놈들. 이 기회에 싹 쓸어 버리겠어. 지금이 어떤 세상이라고."
그때 장미가 물었다.
"어떻게 하려는 거야?"
그러자 황택수는 말할 것도 없고 운전을 하던 백용철도 장미를 보았다.
물론 백용철은 백미러로 보았다.
강한도 좀 멍한 표정이 되더니 되물었다.
"뭘 말야?"
"글쎄, 어떻게 구해낼 거냐구?"
"아니."
했다가 입맛을 다신 강한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네가 그걸 알아서 뭘 할건데?"
"저쪽에 정보원을 심어 놓은건 알겠어. 그런데 잡혀있는 곳에 쳐들어 간다는 거야 뭐야?"
강한이 머리를 돌려 황택수를 보았다.
이거 화를 내야하나 어쩌나? 하는 표정이었다.
백용철이 백미러를 힐끗거리는 바람에 차의 속력이 줄어들었다.
그때 장미의 말이 이어졌다.
"동업자라며? 그럼 나한테도 상의를 해야할것 아냐?
다 저 혼자서 결정하는 동업자가 어딨어?"
그러자 강한의 얼굴에 쓴웃음이 번졌다.
의자에 등을 붙인 강한이 말했다.
"좋아. 간단히 말씀드리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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