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장 요하(遼河) 7 회
“역으로 이용한다는 것은 어떤 방법입니까?”
몇몇 성주들이 묻자 문덕은 그림을 그려가며 상세히 설명하였다.
“성곽의 위치와 지형으로 보아 오골성을 뺀 요동 7성에서 일제히 군사를 낸다면
전형적인 학익진의 형세를 취하게 될 것이오.
다들 잘 아실 테지만 학익진이란 마치 학이 양 날개를 폈다가 접었다가 하듯이
진퇴를 거듭하여 상대를 교란시키는 진법입니다.
만약 수군이 여러 갈래로 분산해 요동으로 나온다면 양광은 학익진을 경계하여
반드시 진의 중심인 요동성을 포위하고 총력을 기울여 이곳을 공격할 게 뻔합니다.
이 점을 역으로 이용하려면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성에서 함부로 군사를 내어서는 안 됩니다.
아울러 요동성에는 소수의 군사만 남겨두고 북의 신성과 남의 안시성으로 군사를 집중시킨 채
성문을 걸어 잠그고 때가 오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이렇게 하여 5월까지만 버텨내는 것이 나의 첫번째 계획인데 우리 성곽들의 견고함을 보건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상장군께서 말씀하시는 적당한 때라 함은 식량이 궁하여 수군이 저절로 물러날 때를 일컫는 것입니까?”
문덕의 설명이 끝나자 역시 지략가로 이름난 비사성의 을사구가 물었다.
문덕이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6월이 되어 남서풍이 일기 시작하면 나는 적의 일패를 유인하여 내지로 들어갈 것입니다.
요동의 기후는 변덕이 심하여 반드시 믿을 바가 못 되지만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여름만 되면 달포씩 내리는 장맛비가 있는데, 이는 10년에 한 번 거르는 일이 드뭅니다.
이 장맛비를 이용하면 제아무리 많은 적군이라도 쉽게 고기밥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또한 요동에서 성문을 걸어 잠근 채 지키기만 한다면 먹을 것이 떨어진 수군은
요동 정벌을 포기하고 돌아설지도 모릅니다.
그것을 막기 위해서도 나는 이들을 압록수 이남으로 유인해 시일을 끌다가 다시 틈을 보아
이곳까지 밀어붙일 심산입니다.
그 시기는 지도에서 보다시피 해마다 큰물이 져서 요하가 범람하는
6월 하순이나 7월 초순쯤이 되지 싶습니다.
앞서 말한 때라 함은 이때를 가리키는 것이외다.”
“하면 수공을 쓰시겠습니까?”
을사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반문하였다.
“그렇습니다. 나는 남서풍이 일기를 기다렸다가 비구름을 따라 움직일 것입니다.”
문덕의 계략을 제일 먼저 눈치챈 을사구는 탄복한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를 제외한 나머지 성주들은 문덕이 패하고 이기는 것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자
그 기상에 새삼 탄복하면서도 일변으론 의구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불세출의 용장이요 타고난 지장임을 인정한다손 쳐도 상대는 백만이 넘는 전대미문의
대병이었다.
문덕도 성주들의 표정에서 이 같은 의구심을 읽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길게 설명하지 않았다.
곧 위엄을 갖추고 왕의 위임에 따라 군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지금부터 성주들은 들으시오. 먼저 각 성에서 날쌘 군사 5천씩을 징발하여
요수 동편의 강가로 보내고 신성 성주 추범동의 지휘를 받도록 하시오.
추범동은 각 성에서 징발한 4만의 정병을 강변의 남북으로 길게 배치한 다음
모든 다리를 끊고 기다렸다가 적군이 맞은편에 나타나 뗏목을 내거나 부교를 놓으려 하거든
사력을 다해 이를 막으라.
4만의 정병이면 능히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더러 헤엄을 쳐서 강을 건너는 자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니
밤에는 강변에 횃불을 밝히고 초병을 세워 교대로 이를 감시하라.
2월 하순이 지나 강물이 녹기 시작하거든 군사들을 거두어 신성으로 돌아가서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기다리되 어떤 경우에도 응전하지 말라.
만일 이를 어긴다면 군령에 따라 엄히 다스릴 것이다.
너는 신성에서 6월까지 기다렸다가 남서풍이 강하게 일어나면 비로소 군사를 이끌고
요하로 나와 도망가는 적을 모조리 섬멸하라.
대전의 승패와 나라의 흥망이 일차로 요수의 교전에 달렸다.
범동은 부디 이 점을 유념하여 하시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하라!”
“상장군께서는 조금도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 어찌 요수가 중한 것을 모르겠습니까.”
군령을 받은 추범동이 큰 소리로 대답하고 물러나자 문덕은 비사성 성주 을사구를 불렀다.
“공의 임무가 실로 막중하오. 양광은 요동에서 사정이 여의치 못한 것을 알면 반드시
수군(水軍)을 내려고 할 것이요,
그 시기는 추측컨대 5월쯤 되지 싶소.”
“저 또한 그 정도는 미리 짐작하고 있습니다.”
“공은 내주와 등주에서 바다로 건너오는 수군을 막아야 하거니와 만일 비사성이 무너지면
나의 계책은 만사가 수포로 돌아갈 공산이 크오.
또한 비사성은 나머지 성들과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으므로 성이 위급함에 처해도
빨리 원군을 보낼 수 없는 불리한 점이 있소.”
그러자 을사구가 힘있고 당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이 수군의 침략에 대비하여 갯가에 책과 보루를 쌓아놓고 군사를 훈련시켜 기다린 지 오랩니다.
게다가 우리 비사성은 삼면이 온통 절벽이라 오직 서문(西門) 한 군데만을 지키고 있으면 됩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비사성으로는 수나라의 쥐새끼 한 마리도 범접하지 못할 것이니
상장군께서는 심려를 거두시오.”
을사구의 대답을 들은 문덕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하기야 공이 있는 비사성은 애초부터 걱정한 바가 없소.
다만 비사성에서 패한 수군이 그대로 뱃머리를 돌리고 해상으로 동진하여
우리 도성을 치지나 않을까 오히려 그것이 걱정될 뿐이오.”
문덕의 말에 을사구 역시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신인들 어찌 그와 같은 걱정이 없겠습니까.
상장군께서 이미 여름의 수공을 말씀하셨으니 신도 적을 함부로 궤멸하지 않고
틈을 보아 유인했다가 물리치는 것을 적절히 알아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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