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13. 함정 (5)

오늘의 쉼터 2014. 7. 20. 10:54

13. 함정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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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문을 열어놓고 있으면 어떡해?"

아파트 안으로 들어선 강한이 나무라듯 말했을 때 안방에서 사내 하나가 나왔다.

"어?"

놀란 강한이 손에 든 비닐봉지를 내려놓았다.

강민과 같이 먹으려고 돼지고기에 상추, 소주까지 사들고 온 것이다.

"당신 누구야?"

눈을 치켜뜬 강한이 물었을 때였다.

건넌방에서 사내 두 명이 나왔고 갑자기 뒤쪽 문이 열리더니

누가 강한의 등을 와락 밀었다.

신발을 벗지도 못하고 집안으로 밀려 들어간 강한이 겨우 몸을 세웠다.

그러자 아파트 안으로 사내 두 명이 더 들어오더니 문이 잠겼다.

모두 다섯. 건장한 체격에다 눈빛이 심상치 않다.

그러나 강한은 강민부터 찾았다.

"민아! 어디 있어!"

"방 안에 있다."

안방에서 나온 사내가 대신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사내들은 모두 집 안에서 신발을 신고 있다.

"거기 앉아."

안방에서 나온 사내가 턱으로 옆쪽 소파를 가리켜 보이더니

자신은 먼저 앞자리에 앉았다.

일행 중의 우두머리였다.

30대 중반쯤의 나이에다 주먹뼈에 단단한 굳은살이 박혔다.

정권을 단련한 흔적이다. 합기도나 공수도. 저 정도면 벽돌 대여섯장은 간단하게 깨뜨린다.

이를 악문 강한이 앞쪽에 앉았다. 강한도 밀린 바람에 신발을 신은 채였다.

사내 넷이 각각 옆과 뒤에 둘씩 배치되었는데 훈련이 잘 된 동작이었다.

"당신들 누구야?"

어깨를 편 강한이 그렇게 물었지만 첫 사내를 본 순간부터 짚이는 점이 있었다.

KK단이다.

그리고 윤리지. 윤리지의 매니저를 눕히고 채무를 받아냈지만 KK단이 걸리긴 했다.

윤리지의 보호는 KK단이 맡고 있었기 때문이다.

"알면서 왜 그러니?"

사내가 웃음띤 얼굴로 말했으므로 강한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KK단의 조직원은 당장에 움직일 수 있는 기동대만 50여명이다.

만일 사건이 일어나 전력을 갖춘다면 행동대가 300명은 된다.

그것도 12시간 안에 모이는 것이다.

강한이 KK단 행동대원 조재일한테서 들은 정보였다.

그때 사내가 입을 열었다.

"나, 요즘에 너처럼 간뎅이가 부은 놈은 처음 본다."

사내가 그러면서 머리까지 저었다.

"아주 대놓고 우리한테 선전포고를 한 셈인데. 네 놈 혼자서 말야."

맞다. KK단이다. 강한은 소리죽여 숨을 뱉었다.

윤리지한테서 돈 받아갔다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받기는 했다.

당연히 같은 돈이었으니까 억울하게 생각할 것이 없다고 설득도 했던 것이다.

그런데 결국 윤리지가 KK단에게 말린 것이다.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그래서 내가 네놈 얼굴이나 보려고 직접 온거다."

그러더니 뒤에 서 있는 사내들에게 말했다.

"이놈 묶어."

"잠깐만요."

강한이 앞에 앉은 사내를 불렀다.

"지금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허, 이 새끼."

사내가 기가 막히다는 표정을 지었다.

"니가 그걸 알아서 뭐 할건데?"

"묶어서 고문하시려고 그럽니까?"

"이 시발놈이."

그때 뒤에 서 있던 사내 두 명이 일제히 강한을 덮쳤다.

강한의 팔과 목을 제각기 거칠게 잡은 것이다.

"이런 쌍."

강한의 입에서 악을 쓰는 것 같은 욕설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는 몸을 오히려 뒤쪽으로 젖히면서 발로 방바닥을 차고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러자 사내들이 움켜쥔 손이 비틀려지면서 느슨해졌다.

그 순간 강한의 팔 하나가 풀렸고 몸이 비틀려졌다.

"퍽!"

둔탁한 충격음이 울리면서 강한의 주먹에 턱을 맞은 사내 하나가 뒤로 반듯이 넘어졌다.

그 다음 순간 팔꿈치에 얼굴을 찍힌 사내 하나는 신음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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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새끼 잡아!"

앞자리의 사내가 고함을 쳤고 나머지 두 사내가 달려들었다.

그러나 20평형대 아파트는 좁은데다 가구가 걸려서 행동이 둔해졌다.

껑충 탁자 위로 뛰어오른 강한이 마악 의자를 비껴오는 사내 하나의 턱을 찼다.

구두발 끝에 정통으로 턱을 맞은 사내가 두 팔을 젖히면서 뒤로 넘어졌다.

그때 왼쪽 사내가 덮쳐와 주먹으로 강한의 얼굴을 쳤다.

그러나 강한이 비키는 바람에 주먹이 귀를 스치고 지나갔다.

강한이 사내의 커다란 허점을 향해 내지른 발끝이 사타구니에 찍혔다.

"아이고!"

집안에서 처음 터진 비명. 사타구니를 찍히면 천하장사도 엉겁결에 비명을 터뜨린다.

몸을 새우처럼 웅크린 사내가 이를 악물었을 때 강한의 다른 발끝이 얼굴을 차 올린 순간이었다.

강한은 허리에 뜨거운 충격을 받고는 몸을 비틀었다.

그순간 강한의 눈에 사내가 쥐고있는 칼이 보였다.

횟칼. 길이는 20cm쯤 되었고 흰 칼등이 섬뜩했다.

그리고 칼 끝에 약간 비치는 붉은 물기, 피다.

"이 새끼."

사내가 잇사이로 말했을 때 강한이 눈을 치켜떴다.

"너, 칼질을 했지? 너 죽여."

강한이 탁자 위에서 내려서더니 한 걸음 사내에게로 다가섰다.

눈이 번들거렸다.

"칼로 찔렀겠다. 이 새끼."

"너, 죽을래?"

하고 사내가 칼을 좌우로 휘저었지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때 강한이 벽쪽 선반에 놓인 화분을 들더니 바로 옆에서 상반신을 일으키는

사내의 머리를 내리쳤다.

둔탁한 충격음이 울리면서 화분이 산산조각이 났고 사내가 신음도 뱉지 못한 채 엎어졌다.

강한이 칼을 쥔 사내에게로 한 걸음 더 다가섰다.

"정당방위로 널 죽일거다."

강한이 입술 끝을 올려 웃어 보이면서 말했다.

옆구리에 붙인 손을 떼자 피에 젖은 손바닥에서 피가 떨어졌다.

"네 목뼈를 비틀어서 얼굴이 등쪽으로 돌아가게 만들어 주지."

그때 사내가 한 걸음 나서면서 칼로 강한의 배를 향해 찔렀다.

그러나 자신없는 동작이었다. 힘껏 찌르지도 못했고 거리도 닿지 않는다.

자신없는 복서가 거리를 두고 휘두른 헛 주먹질이나 같다.

그 순간 와락 달려든 강한이 발길로 사내의 팔을 찼고 어깨가 비틀린 사내가 손에 쥔

칼을 떨어뜨렸다.

다시 강한의 주먹이 사내의 콧등을 찍었다.

"억."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쥔 사내가 몸을 숙였을 때 강한의 발길이 날아가 가슴을 찍어 올렸다.

"어욱!"

신음과 함께 뒤로 넘어지던 사내가 뒤통수를 벽에 부딪치더니 눈을 까뒤집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강한은 몸을 비틀어 다시 꾸물대는 다른 사내 한 명의 허리를 찍어 도로 눕혀 놓았다.

그리고는 안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민아."

강민은 방구석에 손발을 테이프로 묶인 채 짐짝처럼 박혀 있었는데 입에도 테이프가 붙여졌다.

강한이 입에 붙여진 테이프부터 떼내었을 때 강민이 헐떡이며 말했다.

"형, 저놈들이."

"됐어."

묶인 테이프를 다 뜯어낸 강한이 다시 옆구리를 손으로 눌렀다.

피가 그치지 않는다.

"형, 다쳤어?"

그때서야 강한의 상처를 본 강민이 소리쳤을 때 강한이 말했다.

"짐 꾸려. 나가자."

"형."

"당분간 여길 떠나야해. 서둘러."

강한은 벽장으로 다가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야구배트를 꺼내 쥐었다.

지금 밖에 쓰러진 다섯 놈을 아예 요절을 내려는 것이다.

특히 칼질을 한 놈은 가만 안둘 작정이었다.

강한은 배트를 쥐고 밖으로 나왔다.

다섯 놈 다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회사에 출근했던 대성금융 사장 고동표는 불쑥 사장실로 들어선 세 사내를 보더니

놀라 일어섰다.

"아니, 전 상무님."

앞장 선 사내는 KK단의 행동대장 전영철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웬일이십니까?"

당황한 고동표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가

전영철이 외면했으므로 얼굴이 하얗게 굳어졌다.

전영철이 소파에 털썩 앉더니 턱으로 앞쪽을 가리켰다.

 

"앉으쇼."

 

"예, 전 상무님."

 

고동표는 KK단의 보스 최광규하고 같은 골프 모임 회원이었지만

그렇다고 전영철을 아랫사람 취급할 수는 없는 것이다.

고동표가 자리에 앉았을 때 전영철이 불쑥 물었다.

 

"강한이는 지금 어디 있습니까?"

 

"강한이라면."

 

했다가 고동표가 와락 긴장했다.

 

"오늘 갑자기 며칠 쉬겠다고 연락이 왔는데, 무슨 일 있습니까?"

 

"어디 있는지 모릅니까?"

 

대답 대신 전영철이 추궁하듯 묻자 고동표는 마른 침을 삼켰다.

 

"모릅니다. 그런데 왜?"

 

"그놈이 유경금융 일을 했더군요."

 

"유, 유경금융."

 

고동표가 전영철을 똑바로 보았다.

 

"그럼 그놈이 박 사장 일을."

 

"박기준씨가 일을 맡긴 거죠."

 

이제는 눈만 껌벅이는 고동표를 향해 전영철이 말을 이었다.

 

"우리 고객을 잡아서 돈을 뜯어낸 겁니다. 강한이 그 새끼가 말이죠."

 

"……."

 

"박기준이는 오늘 아침에 데려갔는데 강한이가 저 혼자서 한 일이라고

거짓말을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란 말이요.

박기준이 그놈이 자료를 준 것이지. 우리 고객의 채무 자료를 말이오."

 

"그 고객이 누굽니까?"

 

"그건 아실 필요가 없고."

 

눈을 가늘게 뜬 전영철이 고동표를 노려보았다.

 

"강한이 그놈이 우리 애들 다섯을 병신으로 만들어 놓았어.

내 직속 부하 한 놈은 전치 3개월을 받았단 말요"

 

그러더니 전영철이 이를 악물었다.

 

"그놈 잡으면 아예 기어다니는 병신으로 만들어 놓을거요."

 

이제 사건 윤곽을 알게된 고동표가 허리를 펴고 전영철을 보았다.

 

조심스런 표정이었지만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놈이 오늘 결근을 했군요."

 

"애들 다섯 명을 집안에다 묶어놓고 짐싸서 떠났단 말요.

여기로 출근했으리라고는 생각 안했지만."

 

전영철이 눈을 부릅떴다.

 

"그놈 뒤를 봐줬다간 고 사장님도 온전하지 못할거요. 아시겠지요?"

 

"이해합니다."

 

"그놈한테 연락이 오거나 정보가 있으면 바로 알려주시도록."

 

"당연하죠."

 

"그놈의 새끼."

 

잇사이로 말한 전영철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애들을 다 풀어 놓았으니까 그놈은 곧 잡힐 거요."

 

전영철이 부하들을 이끌고 인사도 없이 방을 나갔으므로

자리에서 일어선 고동표는 멍한 얼굴로 뒷모습만 보았다.

그러다가 고동표가 눈의 초점을 잡더니 인터폰을 눌렀다.

 

"네."

 

김양희의 목소리가 울렸으므로 고동표는 심호흡을 했다.

 

"들어와 봐."

 

잠시후에 들어선 김양희가 소파에 앉아있는 고동표 앞에 와 섰다.

 

"부르셨어요?"

"강한이 한테서 연락 없지?"

 

고동표가 불쑥 묻자 김양희는 긴장한듯 얼굴이 굳어졌다.

 

"무슨 연락요?"

 

그러자 고동표가 정색하고 말했다.

 

"그놈이 혹시 너한테 돈 이야기를 할지 모른다. 하지만 내주면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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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어떻게 하려고?"

백용철은 긴장하면 어깨를 올리면서 턱을 내민다.

그러면 꼭 자라처럼 보였는데 별명도 자라였다.

백용철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사채업자 수금사원은 그만 두는거지."

"그럼 나도 그만 두는거야."

하고 백용철 옆에 앉은 천상태가 말했다.

"그놈의 회사에는 미련이 코털 하나만큼도 없으니까."

"나도 당근이지."

옆쪽의 황택수도 말했다. 소공동 뒷골목의 해장국집 안이다.

오전 10시여서 손님도 뜸한 시간이라 식당 안에는 그들 넷뿐이다.

강한의 팀이 다 모인 것이다. 황택수가 말을 이었다.

"백수들이 많으니까 고동표는 대번에 우리 빈 자리를 채울거야."

"형,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할거야?"

다시 백용철이 물었으므로 강한이 담배 연기를 길게 품었다.

"회사 차려 놓았잖아?"

"응? 무슨?"

 

했다가 백용철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 신우트레이딩?"

"그래."

"그 가짜 회사말야?"

"왜 가짜냐? 직원도 있는데."

"전화당번 미스 황?"

 

이번에는 황택수가 물었다.

셋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일단 그곳을 기반으로 시작한다."

"어떤 영업을 할건데?"

 

백용철이 묻자 강한이 정색했다.

 

"신용정보회사."

"그럼 용역회사군."

 

금방 머리를 끄덕인 황택수가 말을 이었다.

 

"쉽게 말해서 심부름센터. 안 그래?"

"자본금 안들고 몸으로 때우려면 그 방법이 젤 낫지."

 

천상태가 맞장구를 쳤을 때 강한이 머리를 저었다.

 

"좀 크게 놀거다."

 

다시 셋의 시선이 모여졌고 강한은 목소리를 낮췄다.

 

"VIP만 상대하는 신용정보회사를 차릴거야."

"룰은 있어?"

 

천상태가 물었다.

 

"우리야 지금까지 서민만 상대 해왔잖아? 불쌍한 빚쟁이들 등만 쳐온 셈이지. 젠장."

"룰은 만들면 돼."

 

앞쪽 벽에다 시선을 준 강한이 말을 이었다.

 

"차라리 잘 되었어. 이 기회에 사채업자 수금사원을 그만 둔 것이 말야."

 

그러자 셋은 다시 입을 다물었고 식탁 분위기는 갑자기 어두워졌다.

이윽고 다시 입을 연 것은 역시 백용철이다. 목도 자라목이 되어 있다.

 

"형, KK단이 추적해올 텐데. 그놈들하고 먼저 정리를 해야하지 않을까?"

"날 잡으면 병신을 만든다고 선전을 해 놓았던데."

 

다시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셋을 둘러 보았다.

 

"너희들도 조심해. 회사 그만두면 그놈들이 나하고 엮인 줄 대번에 알게 될테고

너희들을 쫓을테니까 말야."

 

"그걸 각오하고 회사 그만 두겠다고 한거야."

 

혀를 찬 백용철이 강한을 흘겨보았다.

 

"누가 그걸 모르나?"

 

"알려진 숙소는 옮기는게 나을거다."

 

강한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가족이나 여자한테도 흔적 남기지 말고.

숙소는 오늘부터 내가 잡아둔 방으로 옮기든지."

 

"그러지 뭐."

 

천상태가 간단하게 대답했고 황택수는 혼잣소리로 말했다.

 

"참, 우리 퇴직금 정산해가야 하지 않을까?"

 

황택수는 행정 담당인 것이다.

그러자 강한까지 피식 웃었고 분위기가 밝아졌다.

이것으로 팀원의 진로는 결정되었다.

모두 제 인생이 걸린 결정을 했어도 놀러가는 일정을 잡은 것처럼 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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