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15. 악연 (2)

오늘의 쉼터 2014. 7. 21. 09:59

15. 악연 (2)

 

 

 

"까불지 말어."

그놈이 잇사이로 딱 한마디 한 후부터 차 안에는 정적이 덮였다.

귀싸대기를 잇달아 얻어맞은 장미는 기가 질려서 두번 다시 입을 떼지 못했고

사내도 입을 다문 채 창밖만 보았다.

차는 미사리를 지나 청평 쪽으로 달리더니

이윽고 국도에서 벗어나 차량 통행도 없는 1차선 도로를 질주하기 시작했다.

창밖은 이제 먹물이 덮인 것 같은 어둠속이었고 민가의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장미는 이를 악물고 창밖만 보았다.

밖이 어두워서 유리창에 사내의 옆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순간 장미의 머릿속에 사내의 이름이 떠올랐다.

두 자, 강한이다.

이어서 장미는 김동수와의 약속을 기억해냈다.

김동수는 지금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때 손가방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렸다.

온몸을 굳힌 장미가 무의식중에 강한의 눈치를 보았다.

벨 소리가 이렇게 큰 줄 처음 느꼈다. 계속해서 벨이 울리고 있다.

"가방 이리내."

강한이 말하더니 가방을 낚아챘으므로 장미는 이만 악물었다.

가방속에서 핸드폰을 꺼낸 강한이 장미에게 내밀었다.

화면에 뜬 전화번호가 장미의 눈 앞에 선명하게 보였다.

김동수의 핸드폰 전화번호를 확인시킨 것이다.

"누구야?"

강한이 묻자 장미가 이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김동수를 연루시킬 수는 없다.

장선의 애인이라고 한다면 김동수까지 해꼬지를 당할 수가 있는 것이다.

"내가 꼬시려고 했던 놈이야."

장미가 불쑥 말했을 때 강한이 풀썩 웃었다.

벨은 아직도 울리고 있다.

"또 약 먹이려고?"

외면한 장미를 향해 강한이 말을 이었다.

"뭐하는 놈인데? 이놈한테는 뭐라고 사기를 쳤는데? 이놈이 누구인지 내가 알아맞혀 볼까?"

그때 벨이 멈췄으므로 굳어있던 장미는 어깨를 늘어뜨리면서 길게 숨을 뱉었다.

이놈이 말은 그렇게 했지만 장선의 애인 김동수를 알 리가 만무한 것이다.

그때 강한이 핸드폰에서 배터리를 분리시키더니

제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는 창밖을 보더니 혼잣소리를 했다.

"쓰레기같은 년."

장미가 퍼뜩 머리를 들었지만 말대꾸는 하지 못했다.

어둠속을 달리던 차가 멈춰선 곳은 골짜기에 불도 켜있지 않는 창고같은 건물이었다.

마당에 차가 멈춰 섰을 때 장미의 온몸에 소름이 돋아났다.

짙게 어둠이 덮여 있는데다 정적이 저절로 한기를 느끼게 만든 것이다.

"따라와."

차 밖으로 나온 강한이 던지듯이 말하더니 발을 떼었다.

발자국 소리가 크게 울린다.

운전사는 차의 라이트도 끄더니 밖으로 나와 섰지만 강한을 따라가지는 않았다.

장미는 강한의 뒤로 5m쯤의 거리를 두고 따랐다.

시멘트 건물의 문은 닫혀 있었는데 강한이 밀자 곧 열렸다.

강한이 열린 문 옆에 비껴서서 장미를 기다렸다.

"여기가 어디죠?"

다가선 장미가 마침내 그렇게 물었다.

심장이 무섭게 뛰었으므로 아무 말이나 뱉은 것이다.

여기가 어딘 줄 알아도 어떤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다.

"들어와."

강한이 그렇게 말하더니 장미의 어깨를 잡아 건물 안으로 밀었다.

장미가 비틀거리면서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차가운 냉기가 피부를 덮었고 퀴퀴한 냄새가 났다.

건물 안쪽은 밖보다 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하라는 대로 할 테니까."

마침내 장미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심하게 대하지는 마요."

"심하게?"

뒤에서 강한이 비웃듯이 물었다.

"네가 나한테 주문하는 거야?"

그러자 장미가 울먹였다.

"하라는 대로 다 할게요. 얼마든지 날 가져요.

다치게만 하지 말고 그러면 내가 갖고 있는 CD 다 줄게요."

 

 

 

그때 불이 켜졌으므로 눈이 부신 장미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강한은 팔짱을 끼고 앞쪽에 서 있었는데 표정없는 얼굴이 마치 가면 같았다.

건물 안은 꽤 컸다.

50평쯤 되는 빈 공간 중앙에 싸구려 비닐 소파가 한 조 놓여 있을 뿐이어서 더 추운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깨끗했다. 휴지 한장 떨어져 있지 않았고 시멘트 바닥은 반들반들했다.

강한이 옆쪽의 소파를 턱으로 가리켰다.

"앉아."

장미는 다시 주위를 둘러보고나서 소파로 다가가 앉았다.

문은 두 곳. 들어온 문과 왼쪽 모퉁이에 나 있는 쪽문인데 유리창도 없었다.

건물에도 창이 나 있지 않았다. 강한이 앞쪽에 앉더니 역시 표정없는 얼굴로 말했다.

"자, 조건을 내놔봐."

눈만 깜박이는 장미를 향해 강한이 말을 이었다.

"거래한다는 생각은 버리도록. 오직 네 조건을 내가 받아들이느냐 아니냐 둘 중 하나다."

강한이 턱으로 밖을 가리켰다.

"조건이 안맞으면 간단해. 널 뒤쪽 산에다 파묻고 끝나는거야. 그럼 넌 도망다닐 필요도 없는거지."

"……."

"다시 한번 경고한다.

머리 굴리지마. 흥정하지 말란 말이다.

참고로 말하는데 난 네 상황을 거의 알고 있어.

네가 조 회장 금고에서 얼마를 훔쳤는지.

네 집이 어디고 네 동생 장선이가 어떤 놈을 만나고 다니는지도 다 알고 있단 말이다."

놀란 장미가 머리를 들었을 때 강한이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김동수라는 얼빠진 놈이더군."

그 순간 장미는 다시 어깨를 늘어뜨렸다.

강한이 오늘 난데없이 출현한 이유를 안 것이다.

이놈은 김동수를 미행해 왔다가 나를 잡았다.

그때 강한이 장미를 보았다. 흔들리지 않는 눈동자가 꼭 먹이를 노리는 뱀 같았다.

"자, 말해."

"아까 말한대로."

그리고는 장미가 입안에 고인 침을 삼키고나서 말을 이었다.

"날 가져요."

"다음."

"그, 그리고."

장미가 아랫입술을 물었다가 풀고는 강한을 보았다.

"고시원에 CD 8억이 있어요. 5억짜리 한 장, 1억짜리 세 장."

"……."

"그게 전부예요. 나주댁 그 여자가 조 회장을 밀어뜨려 죽이고

나한테 다 뒤집어 씌운 것이라구요.

내가 심부름 보낸게 아녜요.

며칠 전부터 나하고 같이 범행하자고 했다가 내가 거절하니까."

"……."

"그날 아침에 자는 나를 깨워서 조 회장이 죽었으니까

금고를 열자고 하더니 나한테 CD 10억을 주고 도망가라고 했어요.

자기가 다 수습하겠다고, 그래 놓고는 나한테 뒤집어 씌운 것이라구요."

"……."

"그 여자가 조 회장을 계단 아래로 밀어뜨려 죽인 것이라구요."

"……."

"사고로 죽은 것으로 하겠다고, 내가 거기 있으면 조 회장 체면에 문제가 있으니까

보이지 않는게 좋다고 해서 그리고 내 입장이…."

장미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그때도 내가 수배중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요."

"CD가 어디 있다구?"

불쑥 강한이 물었으므로 장미의 눈에 생기가 돌아왔다.

"사당동 고시원에. 방 열쇠는 내 가방에 있어요."

"그 쪽방에 8억 CD가 있단말야?"

"모두 가난한 학생들이라 그런게 있는 줄은 몰라요."

"좋아."

심호흡을 한 강한이 지긋이 장미를 보면서 말했다.

"일단 CD부터 찾고 계산을 다시 하기로 하지. 오늘밤은 여기서 자고."

 

 

 

 

 

 

창고 뒤쪽은 경사가 급한 산줄기가 담장 역할을 했는데 숲은 무성했지만

마치 인조 장치처럼 느껴졌다.

그 흔한 산새도 보이지 않은데다 벌레 소리도 들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장미는 오후의 햇살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뒷마당에서 반짝이는 금속 하나를 집어 들었다.

캔의 마개 부분이었다.

이곳에서 일하던 사람이 마시고 나서 버린 마개일 것이다.

장미는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캔 마개로 낙서를 했다.

주위는 조용했다.

창고 앞쪽 마당에 세워진 차 안에 사내 하나가 누워 있을 뿐이다.

강한은 어젯밤에 나가더니 지금까지 돌아오지 않았다.

낙서를 하던 장미는 개미 한 마리를 발견했다.

자세히 보자 뒤쪽에도 여러 마리가 따르고 있다.

개미는 제 몸보다 큰 흙 부스러기를 지나 바쁘게 나아가고 있었다.

장미는 문득 오랫만에 가슴이 편안해져 있는 것을 느꼈다.

매일 매 시간, 긴장을 풀지 못했다.

깊게 잠이 들지도 못했다.

그런데 어젯밤에는 꿈도 꾸지 않고 시체처럼 늘어져 잤다.

여덟 시간이나 잔 것이다.

소파 위에서 담요 한 장만 덮고 잤지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온몸이 거위털처럼 가볍게 느껴졌다.

창고 옆쪽 문은 화장실이었는데 역시 깨끗했고 온수로 씻을 수도 있었다.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사내 하나가 탁자 위에서 갓 구운 토스트에다 잼, 우유와

삶은 계란 두 개까지 차려진 아침을 놓고 갔는데 본 순간 침이 넘어갔다.

아침 식사를 맛있게 먹고나서 조금 전 점심은 쟁반에 담긴 김치찌개 백반을 먹었다.

사내가 식당에서 가져온 모양으로 찬도 싣고 오면서 흘렸는지 그릇에 찌개가 넘친 흔적이 묻었다.

 어쨌든 식당에서 가져온 것을 보면 도시가 근처에 있다.

등에 따스한 햇살을 받은 때문인지 몸이 나른해졌으므로 장미는 쪼그리고 앉은 채 하품을 했다.

그리고는 문득 자신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강한이 CD를 가져가면 공범이 되는 것이다.

CD를 다 빼앗고 증거를 없앤다면서 제말대로 뒷산에다 묻을리는 없다.

괜히 살인범이 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놈은 750만원을 털리고 8억을 먹는 대횡재를 했다.

끈질기게 추적한 대가 치고도 너무 엄청난 결과여서 그것이 좀 배가 아플뿐

 CD에 대한 미련은 없다.

어쩐지 지니고 있기 불안했고 불길한 물건이었다.

그때 앞쪽 마당에서 차 소리가 났으므로 장미는 허리를 펴고 일어섰다.

정적이 깨지면서 숲도 흔들렸다.

바람에 흔들린 나뭇가지가 나뭇잎 부딪치는 소리를 낸 것이다.

창고 뒤쪽 문으로 강한이 나타나더니 장미에게 말했다.

"들어와."

장미는 잠자코 창고 안으로 들어섰다.

어젯밤에 들어설 때는 퀴퀴하게 느껴지던 냄새가 사라지고 지금은 산뜻하고 시원했다.

장미는 소파에 앉아서 기다리는 강한의 앞자리에 앉았다.

"찾았어요?"

장미가 묻자 강한이 눈으로 탁자위에 놓인 가방을 가리켰다.

"서랍에 들어있더군. 네 말대로 8억이."

"1억은 바꿨죠. 심부름하는 놈한테 5천을 주었고."

"네 수첩에 적힌 이용구라는 놈인가?"

서랍 안에든 수첩에는 이용구의 전화번호는 물론 지불한 금액까지 다 적어놓은 것이다.

장미가 머리만 끄덕였을 때 강한이 또 물었다.

"김희선이 누구야? 그 여자 한테서도 돈을 뜯어낼 계획이었나?"

장미가 눈만 치켜떴다.

김희선은 물론 나주댁에 대한 계획, 작업 일정도 수첩에 다 적어놓은 것이다.

"그런데 실패한 것 같더군, 낙서 해놓은걸 보니까 말야."

그때 머리를 든 장미가 말했다.

"자, 8억이나 챙겼으니까 날 놓아 주시죠.

그만큼이면 당신의 구겨진 자존심 값까지 몇 십배로 보상 되었을 테니까 말예요."

그러자 강한의 얼굴에 희미하게 웃음기가 떠올랐다.

 

 

 

 

 

"이봐."

강한이 똑바로 장미를 보았다.

장미의 시선을 받은 강한이 한 마디 한 마디를 또박또박 말했다.

"나하고 동업하지 않을래?"

긴장한 장미가 그대로 움직이지 않았고 강한의 말이 이어졌다.

"팀이 되자고 묻는 거다. 지분은 절반씩 나누기로 하지. 이건 내가 엄청 양보를 한건데."

"……."

"네 수첩에 적힌 이용구를 조사해 봤더니 용역회사를 운영한다면서 네 일에만 목을 걸고 있더군.

숟가락 하나만 들고. 그놈은 틀림없이 널 배신할 거다.

넌 아마 나주댁보다 더 처참한 꼴을 당하게 될걸?"

"근데."

침을 삼킨 장미가 강한을 쏘아 보았다.

"갑자기 이렇게 호의를 보이는 이유가 뭐죠?

8억 CD를 삼키고 나서 수첩을 보니까 더 큰게 잡힐 것 같아선가?"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외면했으므로 장미는 말을 이었다.

"보호자? 행동대? 배신? 당신은 안 그렇고? 이렇게 잡아놓고 껍질까지 홀랑 벗겨먹은 주제에

웬 성인군자 같은 말씀을 눈도 깜박 않고 하시나 그래?"

강한이 태연하게 입맛만 다시자 장미의 화는 더 솟구쳤다.

"뭐? 동업자? 지분을 반반씩 나누자고? 그것도 엄청 양보한 거야? 정말 강도가 따로 없네."

그때 강한이 손을 뻗어 가방을 집더니 안에서 권총을 꺼냈으므로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장미가 입을 다물었다.

강한이 총구를 이쪽으로 겨누자 그것을 본 장미가 눈을 치켜떴다.

설마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얘가 왜 이래? 하는 짜증도 일어났다.

저건 가짜야, 하는 생각도 났다.

이건 모두 2초 정도의 순간에 일어난 생각들이다.

그 순간이었다.

"꽝!"

창고안이 들썩이는 총성이 울렸으므로 장미는 혼비백산을 했다.

놀라 몸이 흠칫거렸으며 숨이 멈춰졌다.

그 순간 아랫도리에 따뜻한 기운이 번지는 것을 느낀 장미가 이를 악물었다.

오줌을 지린 것이다.

배에다 힘을 준 채 아래쪽 근육을 힘껏 좁히자 오줌은 팬티를 조금 적신 것으로 멈췄다.

그때 창고 문이 와락 열리면서 사내가 들어섰다.

총성에 놀라 뛰어온 것이다. 안의 분위기를 살핀 사내가 잠자코 밖으로 나갔고 창고 안에는

다시 둘이 남았다.

강한이 옆쪽에다 총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그럼 넌 지금부터 내 인질이다."

장미와 시선이 마주치자 강한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것이 꼭 더러운 것을 보는 표정 같았으므로 장미는 저도 모르게 아랫입술을 물었다.

강한이 말을 이었다.

"인질로 끌고 다니면서 작업을 하는거다.

물론 네 몫은 없어. 인질이 무슨 몫이 있어?

뒈지지 않으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수밖에."

"돈 다 빼앗아가고?"

악이 오른 장미가 겨우 그렇게 되물었을 때 강한이 다시 권총을 쥐더니

이번에는 겨누지도 않고 쏴버렸다.

"꽝!"

다시 귀청이 찢어질 것 같은 총성이 울리면서 탄 냄새가 났다.

엉겁결에 머리를 튼 장미는 바로 옆의 시트에 뚫린 총구멍을 보았다.

비닐 시트에 뚫린 구멍에서 탄 냄새가 고약하게 났다.

장미한테서 20cm도 떨어지지 않은 위치였다.

이번에는 오줌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몸이 떨렸다.

장미가 다시 이를 악물었을 때 강한이 말했다.

"다음 순서가 궁금하면 한번 시도해봐."

장미는 눈도 깜박이지 않았고 강한이 말을 이었다.

"오늘은 장소를 옮긴다.

그리고 일차 작전 계획을 상의 하기로 하지.

물론 넌 듣고 시키는 대로만 하면 돼."

 

 

 

 

 

도서관으로 들어선 장선은 뒤를 돌아 보았다. 미행자는 보이지 않았다.

학교 안까지는 따라오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밖으로 나오면 귀신같이 따라 붙는다.

수업을 빼먹고 뒷문으로 나와도 따돌릴 수가 없다.

어떻게 알았는지 바로 뒤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장선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그들이 제 몸에 추적용 칩을 심어 놓은 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그래서 가방도 몇 번이나 털고 또 털었는지 모른다.

도서관 아래층의 정기간행물 열람실로 들어선 장선은 입구에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옆에서 누군가가 다가와 가볍게 어깨를 쳤다.

머리를 든 장선이 활짝 웃었다. 김동수인 것이다.

김동수는 오전에 동아리 후배를 통해 여기서 만나자는 연락을 해왔다.

물론 후배의 전화번호는 장선이 알려준 것이다.

"오빠."

소리죽여 강한을 부른 장선이 팔을 끌고 복도로 나왔다.

그리고는 복도 끝쪽의 빈 방으로 들어섰다.

방에 들어가기 전에 주위를 살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방에는 고장난 복사기와 비품이 쌓여 있었는데 창가에는 의자까지 세 개나 놓여 있다.

안에서 잠금 장치를 누른 장선이 대뜸 강한의 목을 두 팔로 감고 매달리듯 안겨왔다.

"오빠."

"왜 이래."

하고 강한이 놀란듯 말했지만 손에 든 가방을 떨어뜨리더니 장선의 허리를 안았다.

장선이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었으므로 강한은 입을 붙였다.

그러자 금방 장선이 입을 벌려 혀를 내주었다.

뜨거운 키스는 5분도 더 넘게 계속된 것 같았다.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도 장선은 더 몸을 밀착시켰다.

이윽고 강한이 몸을 떼며 말했다.

"이제 그만."

"오빠, 조금만 더."

"그만."

정색한 강한이 장선의 어깨를 움켜쥐고 세웠다.

강한이 똑바로 장선을 보았다.

"선아, 나 오늘 저녁 비행기로 중국에 간다. 가서 몇 달 있게 될거야."

"중국에?"

놀란 장선의 두 눈이 커졌다.

"몇 달이나?"

"응, 수입해온 품목이 여러 개여서 바빠."

"난 다음주부터 종강인데."

장선이 이번에는 강한의 허리를 부둥켜 안았다.

"오빠. 나도 데려가면 안돼? 나, 영어 좀 하잖아? 월급 안받아도 돼."

"안돼."

부드럽게 말한 강한이 장선의 머리칼을 손으로 쓸었다.

"엄마 혼자 놔두고 어쩌려고 그래?"

"오빠 회사는 전화가 안되던데."

"경비만 나와서 당분간 문 닫았어. 중국에 다녀와서 다시 열어야지."

그리고는 강한이 바닥에 내려놓은 비닐가방을 들어 장선에게 내밀었다.

"가방안에 대포폰이 세 개 들어있다.

추적당할 염려가 없는 번호니까 언니한테 전화할 때 써."

말을 멈춘 강한이 장선에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몇번 쓰고 버려."

"고마워, 오빠."

시선을 내린 장선이 가방을 받아 쥐었다.

"미안해, 오빠. 이런 부탁까지 해서."

지난번에 장선이 추적당하지 않는 핸드폰을 구해달라고 부탁했던 것이다.

물론 장미한테 연락을 하기 위해서였다.

"선아, 그럼."

강한이 다시 몸을 떼며 말했을 때 장선은 울상을 지었다.

"오빠, 여기서 헤어지는 거야?"

"우리가 영영 헤어지는 거냐?"

쓴웃음을 지어보인 강한이 문쪽으로 발을 떼었을 때 장선은 뒤에서 부둥켜 안았다.

"오빠. 10분만 있다 가. 내가 여기 잡아 놓았단 말야. 여긴 아무도 안들어와."

"인마. 도서관에서."

했다가 강한은 장선이 더 세게 감아안자 마침내 몸을 돌렸다.

장선의 얼굴은 이미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계속>

 

'소설방 > 강안여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 악연 (4)  (0) 2014.07.21
16. 악연 (3)  (0) 2014.07.21
14. 악연 (1)  (0) 2014.07.21
13. 함정 (5)  (0) 2014.07.20
12. 함정 (4)  (0) 201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