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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가잠성(椵岑城) 10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0. 23:35

 

제12장 가잠성(椵岑城) 10

 

 

한편 탁군의 임삭궁에 머물며 나라 전역에서 군사를 징발한 수나라 양광은

 

신년인 임신년(612년) 정월에 마침내 다음과 같은 고구려 정벌의 조서를 내렸다.

고구려의 미물들은 어리석고 불손하여 발해와 갈석(碣石)의 사이에서 무리를 모아

 

요동과 예맥의 땅을 잠식해왔다. 비록 한나라와 위나라의 거듭된 토벌로

 

그 소굴이 잠깐 허물어졌으나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르니 그 족속들이 환집하여

 

다시금 하천의 물처럼 불어나고 들판의 새떼처럼 번성하였다.

 

요동과 현도와 낙랑 등지의 아름답던 강토를 돌아보니 이제 모두 오랑캐의 땅이 되었고,

 

세월이 오래되니 죄악이 여물어 천지에 가득하였다.

 

천도는 음탕하고 사악한 자에게 재앙을 내리는 법이니,

 

저들의 패망할 징조가 어찌 없으랴. 도덕과 미풍을 훼손하는 일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흉악한 행동과 속에 품은 간사한 생각은 날로 더해가도다.

 

조칙으로 내리는 엄명을 한 번도 직접 받아간 일이 없으며,

 

입조하는 의식에도 직접 오기를 꺼려하여 예를 다하지 아니하였다.

 

우리에게 반역하는 무리들을 수없이 유혹하였고, 변방에 척후를 놓아 걸핏하면

 

우리의 봉후(烽候)를 괴롭혔다. 이로 말미암아 치안은 안정되지 못하고,

 

백성들은 생업을 버리게 되었다. 전날에 정벌하려 할 때 이미 저들은 천라지망에서 빠져나갔으며,

 

그 전에도 사로잡은 자를 놓아주고 항복한 자를 용서하여 죽이지 않았지만

 

은혜를 모르고 도리어 악을 쌓았다.

 

또 거란의 무리와 합세하여 해수(海戍:해역을 방비하는 자)를 죽였고,

 

말갈의 행동을 본받아 요서(遼西)를 침략하였다.

 

어디 그뿐이랴. 동방의 온 나라가 모두 조공하고 벽해의 오지에서조차

 

정삭(正朔:달력. 여기서는 제도의 뜻)을 받아가거늘 유독 고구려만이 조공하는 물품을 탈취하고

 

다른 나라의 사신이 왕래하는 길을 막았다.

 

저들은 죄 없는 자를 학대하고 성실한 사람을 해칠 뿐 아니라

 

심지어 천자의 사신이 탄 수레가 해동(海東)에 갔을 때

 

칙사의 행차가 속국의 경계를 지나가게 되었는데,

 

이때에도 도로를 끊고 사신을 모멸하니 이는 천자를 섬길 마음이 없는 것이다.

 

사군(事君)의 마음이 없으니 어찌 신하된 예를 갖출 것이며,

 

이를 참는다면 무엇을 엄벌할 것인가!

고구려는 법령이 가혹하고, 부역이 잦고 무거우며, 강신과 호족이 국정을 농락하고,

 

당파끼리 결탁하는 고약한 습속을 가진 나라다.

 

그리하여 뇌물이 아니면 백성들은 억울한 사정을 호소할 길이 없고,

 

해마다 재변과 흉년이 들어 집집마다 굶주리며, 싸움은 계속되고 부역은 기한이 없으니

 

가엾게도 군량을 옮기는 일에 기운을 다 쓰고 지친 몸은 구렁 속으로 자꾸만 쓰러져만 간다.

 

이같은 백성들의 근심과 고통을 누가 없애줄 것인가!

 

고구려 땅 전역이 깊은 슬픔과 두려움에 잠겨 있으니

 

그 폐단은 이루 말할 수가 없구나. 백성들의 마음을 살펴보자니

 

그들은 모두 어떻게든 살아남기만을 도모할 뿐 늙은이와 어린애까지도

 

세상을 원망하며 한탄하고 있다.

짐은 풍속을 살피러 북방에 왔거니와 백성들을 위로하고 죄 있는 자에게는

 

죄를 물어 이후 두 번 다시 오지 않아도 되도록 할 것이다.

 

이에 친히 육사6)를 거느리고 구벌7)을 행함으로써 위급한 자를 구하고,

 

도망친 무리를 섬멸하는 동시에 하늘의 뜻에 순종하여 선조의 밝은 도리를 이어갈 것이다.

이제 마땅히 군령을 내려 길을 떠나되 대오를 나누어 목적지로 향할 것이며,

 

발해(渤海)를 벼락같이 습격하고 부여(扶餘)를 번개처럼 지나 누구든 대적하는

 

무리는 하나도 남김없이 소탕할 것이다.

 

병기를 나란히 세우고 말을 당겨 부대를 경계한 후에 행군할 것이며,

 

자주 명령하고 알려서 반드시 이길 것을 알고 난 후에 싸우도록 하라.

좌12군은 누방, 장잠, 명해, 개마, 건안, 남소, 요동, 현도, 부여, 조선, 옥저, 낙랑 등으로 진군할 것이요,

 

우12군은 점선, 함자, 혼미, 임둔, 후성, 제해, 답돈, 숙신, 갈석, 동시, 대방, 양평 등의 길로 진군하되,

 

진군로를 서로 연락하여 모조리 평양으로 집합토록 하라!

이때 탁군을 출발한 군사는 물경 1백 13만 3천 8백명이었는데 2백만이라 불렀고,

 

실제로 군량을 수송하는 사람은 그 배나 되었으니 3백만 이상이 전쟁에 동원된 셈이었다.

 

양광은 출병에 앞서 토지신에게 지신제(地神祭)를 지내고, 임삭궁 남쪽에서 천신제(天神祭)를 지내고,

 

계성(?城)의 북쪽에서 다시 마조제(馬祖祭)를 지낸 뒤에 직접 절도를 주어 장수를 임명했다.

 

각 군에는 상장(上將)과 아장(亞將) 1명씩과 40대의 기병을 두었는데,

 

1대가 1백 명이요,

 

10대를 1단으로 하였다.

 

또한 보졸은 80대를 두었고,

 

이를 4단으로 나누고 단마다 편장 1명씩을 두었으며,

 

단의 갑옷과 투구와 끈과 깃발의 빛깔 등을 달리하여 서로 구분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의 대군은 매일 1군씩 파병하되 선군이 40리를 가면 후군이 출발하여

 

전군(全軍)이 출발하는 데만도 모두 40일이 걸렸다.

 

한 대열의 후미와 다음 대열의 선두가 서로 닿았고,

 

진군의 북과 나팔 소리가 잇따랐으며, 깃발만도 장장 9백 60리에 뻗쳤다.

 

또 양광의 진영 안에는 ‘12위, 3대, 5성, 9시’가 있었는데,

 

내외, 전후, 좌우의 6군을 나누어 배속시켜 후미가 모두 떠나자 뒤따라 출발하게 하니

 

이 대열 또한 무려 80리에나 뻗쳤다.

 

이와 같이 성대한 군사가 동원된 예는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보거나 듣지 못한 전대미문의 것이었다.

고구려와 수나라의 사활을 건 운명적인 여수대전(麗隋大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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