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가잠성(椵岑城) 8
용화라는 이름이 가야국 망국민들 사이에 널리 회자되면서 비슷한 처지와 또래의 젊은 청년들이 하나씩 둘씩 용화 주변으로 모여들기 시작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용화보다 두 살이 많은 비녕자(丕寧子)는 금관국에서 사간 벼슬을 지내던 이의 장손으로 신라에서 5두품에 봉해져 금성에 터를 잡고 살았는데, 그 조부가 죽자 벼슬길이 막히고 가솔들도 뿔뿔이 흩어져 고생이 심하였고, 모지(謀支)와 존대(尊臺), 죽죽(竹竹) 역시 금관국 대신들의 후손이었으며, 합천 대야주(大耶州:대가야) 출신의 석체(昔諦)도 신라에 병탄된 직후에는 그 가계가 5두품에 봉해졌으나 오랫동안 고향에서 땅을 부쳐먹고 살았을 뿐이었다. 또한 성산 사람 부순(芙純)은 용화보다 무려 열 살이 위였고, 호숙(昊宿)과 절숙(絶宿) 형제는 아시량국 왕손들이었다. 이들은 하나같이 기상이 우뚝하고 자질이 걸출한 젊은이들로, 윗대에선 세상의 권세와 영화를 한 몸에 누렸지만 신라에 와서 망국지한을 통감하던 집안의 자손들이었는데, 대개가 토박이 신라 범골보다도 오히려 고단한 나날을 살아오고 있던 터였다. 이것이 바로 용화향도의 시발이었다. 삼사십을 헤아리게 되었을 때 낭도들 사이에선 약간의 이견과 충돌이 생겨났다. 용화향도가 유명하게 되자 새로 낭도가 되려는 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기왕 다른 무리에 있던 자들까지 용화를 찾아와 입도를 청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뒤에 찾아온 이들은 대개가 신라의 토박이 청년들이었다. 사정이 여기에 이르자 어떤 이는 무리 전체가 어지럽고 잡박해질 것을 우려하여 망국민의 후손이 아니면 단호히 배척할 것을 말하고, 일부는 무리의 번성함을 꾀하여 차별과 구분을 두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또 입도를 원하는 자들은 가리지 말고 받아들이자는 이가 있는가 하면, 일정한 과정과 엄격한 시험을 거치게 하여 향도가 어중이떠중이 무리로 전락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이에 하루는 용화가 서현을 찾아가서, 당신께서는 한낱 씨앗이요, 나는 한 치 길이의 싹에 불과하다고 하셨다. 그리고 일생토록 두 가지를 명심하라고 당부하셨거니와, 첫째는 혼자 있을 적에 그 근본을 하시도 잊지 말라는 것이요, 둘째는 두 사람만 있어도 그 근본을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신라땅에 살면서 신라 사람을 배척한다면 이는 마치 물가에 사는 나무가 물을 빨아들이지 않겠다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느냐?” 소자 또한 그렇게 생각하였으나 혹시 아버지의 뜻은 어떤지를 알아보았을 따름입니다.” 그들에게 우리를 배척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가 만약 무리를 이끌면서 신라 사람을 따돌리고 배척한다면 그들과 우리가 다른 것이 무엇인가? 사람의 출신과 근본을 따지고 그것으로 척을 지고 당을 만드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짓이다. 만일 그렇게 친다면 금관국 왕실을 친가로 두고 신라 왕실을 외가로 하여 태어난 나는 어느 편이고 누구를 따라야 하는가? 더욱이 우리가 화랑도를 조직하여 산곡간을 떠돌며 수양하고 수련하는 것은 장부의 호연지기를 기르기 위함인데 그와 같이 치졸한 구분을 두어 무엇을 얻겠는가? 우리가 가야제국의 후손임을 잊어서는 안 되겠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고 앞으로도 자자손손 살아가야 하는 이곳이 신라라는 사실이다. 나는 그간 이 문제로 마음에 갈등이 깊었으나 앞으로는 결코 흔들리지 않겠다. 우리는 어쨌거나 모두 신라인이다!” 이를 말하는 자가 있다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사람의 자질은 보아야 한다. 그래야 우리 향도가 오방 잡처에서 모여든 어중이떠중이의 무리로 전락하는 것을 막을 수 있지 않겠는가? 새로 풍류황권에 이름을 올리려는 자들은 철마다 일정한 날을 두고 한꺼번에 모아서 우리와 함께 수련을 떠나도록 하고, 거기서 배겨나지 못하는 자나 여러 사람의 눈 밖에 나는 자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생각이다.” 만일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누구든 무리를 떠나면 그뿐이었지만 그런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 후로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청년들이 나날이 늘어나 무리의 숫자가
“아버지께서 생각하시기에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습니까?”
하고 의향을 물었다. 서현은 제법 깊이 생각하다가,
“전날 너희 할아버지 무력 장군께서 내게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근본은 장송거목이지만
하고서,
“이제 내가 싹이라면 너희 형제들은 무성한 잎을 단 싱싱하고 푸른 나무로 자라야 하는데
하고 반문하니 용화는 부친의 말뜻을 알아듣고 곧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환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의 말씀이 지당합니다.
이튿날 용화는 무리들을 모아놓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 신라 토박이들이 망국민들을 따돌리고 업신여기는 것은
용화의 결연한 말에 낭도들은 하나같이 입을 다물었다.
“금일 이후로 우리에게 출신의 구분을 두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며 다시 내 앞에서
적어도 낭도의 무리 가운데서 화랑이 내린 결정은 그대로가 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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