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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가잠성(椵岑城) 5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0. 17:48

제12장 가잠성(椵岑城) 5

 

 

 

찬덕의 아들 해론(奚論)은 이때 나이가 열아홉으로,

 

그는 마침 화랑의 무리를 따라 수련을 떠나서 가잠성에 없었다.

 

이 무렵 신라에는 화랑도가 번성하여 그 무리가 대소 2백을 웃돌았다.

 

본래 화랑도는 나라에서 인재를 구할 방편으로 청년들을 모아 군유(群遊)케 하고

 

그 행(行)과 의(義)를 관찰하였다가 조정에 천거하는 제도였다.

 

진골 이상의 귀족 자제 가운데 풍모가 청수(淸秀)하고 지기가 방정(方正)한 자를

 

우두머리로 삼아 얼굴에 분을 바르고 곱게 단장시켜 화랑(풍월주)이라 불렀으며,

 

화랑 한 사람에 교사(敎師)하는 승려를 두었고 그 아래로 부제(副弟)와 낭두(郎頭)를 위시해

 

일반 평도(平徒) 수백을 따르게 했다.

 

이들은 충효신용인(忠孝信勇仁)의 다섯 가지 덕목을 좇아 도덕과 인격 수양에 매진하면서

 

틈틈이 무술을 연마하고 경전을 배워 훗날 나라의 동량이 될 교양을 쌓았고,

 

평시에는 산천을 유람하며 풍류와 가악을 즐기되 전시에는 창칼이 난무하는

 

전장(戰場)을 택하여 수련의 장소로 삼기도 했다.

 

화랑도는 그 우두머리의 기질과 성향에 따라 무리의 성격이 조금씩 달랐으나

 

들어와서 부모에 효도하고 나가서 나라에 충성함은 노(魯)나라 사구(司寇:공자)의 가르침이요,

 

자연 그대로의 사리에 대처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실행하는 것은 주(周)나라 주사(柱史:노자)의 뜻이며,

 

악한 일을 금하고 오로지 선행만을 좇는 것은 축건 태자(釋迦)의 교화인데,

 

유교, 도교, 불교의 3교가 가르치는 이 모두를 풍류(風流)라 칭하여 구분 없이 따르는 것은

 

어느 화랑의 무리나 한결같았다.

화랑이 되려면 반드시 진골 이상의 귀족 자제가 되어야 했지만 낭도로 입도하는 일은

 

천민을 제외한 범골 이상의 사람이면 누구라도 가능했다.

 

마음에 드는 화랑을 찾아가 그 기풍을 따르기로 서약하고 허락을 얻어내면

 

곧 풍류황권(風流黃卷:화랑도의 명부)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다.

 

이들의 수련 기간은 대개 3년 정도였지만 딱히 정해진 기한이 명시된 것은 아니었고,

 

또 그 화랑이 살아 있는 한 기수(期數)와 차수(次數)를 달리하여 꾸준히 낭도들이

 

배출되었으므로 훌륭한 화랑은 늙어서까지 문하를 찾아오는 낭도들을 거느렸다.

 

진흥대왕 이후 나라의 어진 재상과 충성스러운 신하는 거의가 다 화랑도 출신이었고,

 

뛰어난 장수와 용감한 병졸도 낭도 중에서 생겨났다.

 

이러니 화랑도가 날이 갈수록 번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사람의 뛰어난 화랑이 나서 그 문벌이 높아지고 나라에 대공을 세워 이름이 빛나면

 

문하 낭도들의 긍지와 자부심도 덩달아 고조되었고,

 

비록 수련이 끝나서 고향에 돌아와 농사를 짓고 살지언정 아무개 화랑의 낭도였다는

 

사실은 두고두고 그 사람 일생의 자랑거리였다.

 

개중에는 출세한 화랑의 덕으로 관직을 얻고 벼슬길에 나서는 예도 적지 아니하고,

 

더러는 용춘향도(龍春香徒)와 같이 그 우두머리의 부침에 따라 관운에 파란을 겪는 수도 있어서

 

한번 맺어진 화랑과 낭도는 운명까지 함께 하는 경우가 많았다.

 

게다가 같은 무리에 속했던 낭도들간의 우정과 유대도 일생을 두고 이어져서

 

나중에는 서로 죽음도 마다하지 않는 사우(死友) 관계로 발전하는 수도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가 만인의 입에 화랑의 상징처럼 회자되던 사다함이었다.

진흥왕조에 열여섯의 나이로 가야제국을 토평하여 후대에 길이 남을 대공을 세운 화랑 사다함은

 

이듬해 자신의 낭도 가운데 무관(武官)이라는 벗이 병으로 죽자 식음을 폐하고 슬피 통곡하다가

 

급기야는 이레 만에 벗의 뒤를 따라 요절하였다.

 

이후 사다함은 모든 신라인들의 귀감이 되었고, 특히 젊은 청년들에게는

 

최고의 우상이자 전범(典範)이 되어 누구나 사다함과 같이 되는 것을 지고지선의 목표로 삼았다.

 

확실히 신라의 화랑도는 사다함 이후 불 일듯이 일어났다.

나라에 화랑도가 번성하고 저마다 화랑을 자처하는 무리가 늘어나자

 

조정에서는 이를 권장하는 일변으로 화랑을 관리하는 직책을 따로 만들어

 

그 직명을 화주(花住)라 하고, 화주의 주관으로 해마다 화랑 가운데

 

기량이 뛰어난 이를 선발하여 화랑들을 총괄하는 최고의 화랑으로 뽑기도 했다.

 

나라에서 인정하는 이 최고의 화랑은 국선(國仙)이란 이름으로 불렸다.

 

따라서 국선 화랑이 되는 것은 모든 화랑들의 꿈이자 앞날의 출세를 보장받는 지름길이었고,

 

그를 따르는 낭도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자랑이자 영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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