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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장 가잠성(椵岑城) 4 회

오늘의 쉼터 2014. 7. 20. 17:40

제12장 가잠성(椵岑城) 4

 

 

 

그런데 이때 조정의 명령을 받은 3주의 군주들은 하나같이 모두 시원찮은 자들이었다.

 

상주(上州 또는 사벌주) 군주 용석과 하주(下州:창녕) 군주 덕치는 병부령 남승의 사람들로

 

이재에 밝고 성품이 비굴하였다.

 

용석은 10여 년째 남승과 백반의 집으로 명절마다 토산품을 진상하였지만

 

벼슬이 기껏 급벌찬에 머문 것을 늘 불평하였는데 가잠성을 도우라고 하자

 

영내의 향졸 5백여 기를 징발하여 관산성으로 갔다가 멀리서 요란하게 울리는

 

북소리, 징소리를 듣자 혼비백산하여 싸우지도 않고 그대로 돌아갔다.

 

하주의 군주로 있던 덕치는 처음부터 길이 먼 것을 두고 불만이 심했다.

“가잠성 따위를 구원하는데 어찌하여 하주의 향군까지 동원한단 말인가!”

그는 명령을 받고도 이틀간이나 움직이지 않다가 마지못해 1천여 기를 징발하여

 

험곡을 몇 개씩이나 넘어 운장산 남면의 접경에 이르렀다.

 

이때 잠잠하던 계곡의 틈새에서 백기와 굴안의 3천 군사가 쏟아져 나오며

 

칼과 창을 마구 휘두르니 제대로 대적하지도 못하고 적천현 쪽으로 달아나 군막을 쳤는데,

 

미처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이번에는 망지와 사걸의 1천 기병이 나타나자

 

뒤도 돌아보지 아니하고 줄행랑을 놓았다.

 

하주의 1천 향군 가운데 투항한 자가 반수를 넘었고, 죽은 자가 3백이라,

 

덕치는 군사를 낸 지 달포 만에 겨우 1백 기 남짓을 이끌고 돌아왔을 뿐이었다.

이들에 비해 북한산주(北漢山州:경기도 광주) 군주 월종의 3천 군사는 금산에서

 

해수의 1만 기병을 맞아 제법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각간 임종의 아우 월종은 그 형과 백반의 천거로 과거의 신주인 북한산주의 군주가 되었다.

 

그는 주의 여러 군에서 날쌘 병사들을 차출하여 금산 동녘의 들판에 진지를 구축하고

 

달반이나 밀고 당기는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적군의 숫자가 어림잡기에도 두세 배는 족하고 또 싸우는 것도 힘을 다하지 아니하는 듯하자

 

월종은 날이 갈수록 의구심이 일었다.

 

하루는 2천 군사를 내어 위험을 무릅쓰고 적군을 쫓도록 하였더니

 

갑절에 달하는 적군이 미처 싸우지도 아니하고 말머리를 돌려 달아났다.

 

월종은 급히 징을 울려 군사를 부르고 말했다.

“전날 병부령 남승이 모산성에서 어려움에 빠진 것도 해수가

 

거짓으로 도망하는 간계에 걸려든 탓이라고 들었다.

 

이제 또다시 그의 군대가 싸우지도 않고 달아나니

 

이는 필시 뒤로 흉계를 감추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런데 적천현 방향에서 봉화가 오르고 가잠성에서도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자

 

월종은 더욱 두려움을 느꼈다.

“아무래도 가잠성은 함락된 듯하구나.

 

더한 봉변을 당하기 전에 군사를 물리는 것이 좋겠다.”

그는 혼자 결론을 내린 뒤 쳐놓았던 군막을 걷고 돌아가버렸다.

 

3주의 원군이 모두 돌아가자 가잠성 성주 찬덕은 분통을 터뜨렸다.

“3주의 군사들이 적의 강한 것을 보고 진격하지 아니하고 성의 위급함을 보고도

 

 구원하지 않으니 이는 의리가 아니다! 의리를 저버리는 자들과 같이 사느니

 

차라리 의롭게 죽는 편이 한결 낫겠다! 모두 죽기를 각오하고 성을 사수하라!”

그는 지친 군사들을 격려하며 성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버텼다.

 

그러나 날이 흐를수록 적군에 포위된 성안의 사정은 더욱 어려워졌다.

 

양곡이 떨어지고 먹을 물도 마르니 사람들은 죽은 동료의 시체를 뜯어먹고

 

오줌을 받아 마시며 연명하였다.

이렇게 해를 넘겨 임신년 정월이 되었다.

 

가잠성의 군사들은 모두 지치고 기력이 다해 싸울 형편이 되지 못했다.

 

게다가 적군들은 사방에서 불화살을 쏘아대며 성을 파괴하여 마침내 형세를 회복하지 못하게 되자

 

찬덕은 마지막 방법으로 그나마 방비가 허술한 성의 북문으로 군사를 내어 길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북문 부근은 길지와 문진의 5백 군사가 구덩이를 파놓고 기다린 지 오래였다.

 

앞서 나갔던 선발대 2백여 명이 모조리 구덩이에 빠져 죽거나 생포되니

 

찬덕은 하늘을 우러러 크게 울부짖었다.

“도탄에 빠진 힘없는 백성을 거두지 않는 나라가 무슨 나라일 것이며,

 

제 나라 백성을 구원하지 않는 장수가 무슨 장수인가?

 

나는 나라에서 맡긴 성을 지키지도 못하고 적에게 패하게 되었지만

 

아무도 와서 도와주지 않으니 살아날 방법이 없다.

 

원컨대 죽어서도 무서운 귀신이 되어 백제인들을 모조리 잡아먹고 반드시 이 성을 회복하리라!”

조정에서 가잠성 구원을 방관한 뒤로 찬덕의 울분은 극에 달해 있었다.

 

그는 말을 마치자 팔을 걷어붙이고 눈을 부릅뜬 채 달려가서 머리로 괴목을 들이받고 그대로 죽었다.

 

찬덕이 죽자 성은 대번에 함락되었고, 나머지 잔병들은 모두 백제군에게 투항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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