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장 가잠성(椵岑城) 2
“과연 개보가 옳게 보았다.
과인의 생각 또한 개보의 말과 한 치도 다른 것이 없으니 어찌 그 말대로 하지 않겠는가.”
장왕은 개보의 계책을 칭찬한 뒤에,
“신라의 어느 성을 치는 것이 가장 유익하겠는가?”
하고 물었다.
이번에는 부남에서 온 부여청이 말했다.
“신이 내지에 온 후로 국경을 여러 차례 돌아보았거니와 금산의 관문인
가잠성(대둔산 동편)을 친다면 금산 전체를 수중에 넣기란
길에 떨어진 알밤을 줍기보다 더 손쉬운 노릇입니다.
금산은 도성과 인접하여 늘 우리에게 위협일 뿐만 아니라
신라에서 보면 별로 쓸모없는 곳으로 그 방비가 국원처럼 삼엄하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주변이 험한 산으로 둘러싸여 금성에서 원군을 내기도 수월하지 않을 것이니
이참에 가잠성을 쳐서 금산을 수중에 넣는 것이 어떻겠나이까.”
“청이 어느새 내지의 지세를 손금 보듯이 두루 꿰뚫고 있었구나!”
장왕은 흡족함을 감추지 못했다.
곧 부여청의 말을 가납하여 출사를 선언하고 장수들에게 군령을 내렸다.
“가잠성은 험곡으로 둘러싸인 요새다.
부여청은 흑치사차와 함께 군사 1천을 내어 서문으로 진격하고 성문 앞에 이르거든
진지를 구축하여 때를 기다리라.
길지와 문진은 마군 5백을 거느리고 관산성 쪽으로 돌아 가잠성의 북문을 공략하되
낮에는 힘써 싸우기를 피하고 밤에는 군데군데 구덩이를 만들라.
구덩이의 깊이는 사람과 말이 모두 빠질 수 있도록 하고
그 위를 나무와 흙으로 덮어 모르는 사람이 보면 분간하지 못하도록 하라.
백기와 굴안은 기병 3천을 거느리고 운장산 남면의 물거현(勿居縣)으로 가서
땅을 파고 매복하였다가 신라의 원군이 당도하거든 이를 쫓아 적천현(赤川縣) 쪽으로 몰아가라.
망지와 사걸은 1천의 군사로 적천현에서 기다렸다가 물거현에서 쫓겨오는 적군을 섬멸하고
봉화를 올려라.
부여청과 흑치사차는 성의 뒤편에서 봉화가 오르거든
불화살을 쏘아 성안을 혼란에 빠뜨리고 도망하는 자들은 길지와 문진이 기다리는 북문으로 내몰아라.
급할 것이 하나도 없다.
수나라는 내년 정월에야 군사를 움직일 것이니 되도록 시일을 끌었다가
해를 넘겨 가잠성을 수중에 넣도록 하라.”
명을 받은 장수들이 힘껏 대답하고 물러나려 할 때 돌연 한 장수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전하께 아룁니다! 어찌하여 신에게는 군사를 내어주지 않습니까?”
모든 사람이 소리나는 곳을 쳐다보니
그는 백제 최고의 장수인 병관좌평 해수였다.
해수는 불쾌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채 고리눈을 하고 왕을 올려다보았다.
장왕이 웃으며 말했다.
“내 어찌 해수에게 군사를 주지 않겠는가!
다만 경은 성격이 너무 급하여 단숨에 가잠성을 함락시켜
너무 쉽게 싸움을 끝내지 않을까 그것이 걱정스러울 뿐이다.
그리 되면 두 마리 새를 다 잡기가 어려우니 경은 이번만큼은
나와 함께 도성에서 편히 쉬면서 한가한 때를 보아 사냥이나 나갔으면 좋겠구나.”
왕의 말에 해수가 울컥했다.
“거두절미하고 청하옵니다!
차라리 신에게서 벼슬과 관작을 빼앗고 전죄를 거론하여 죽여주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해수의 안색은 이미 벌겋게 달아올라 잘 익은 대춧빛과 같았다.
장왕은 잠자코 해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그렇다면 과연 시일을 끌어 금년을 넘길 수 있겠는가?”
“물론입니다!
만약 이를 어기면 군령에 따라 신의 목을 바치겠습니다!”
해수의 음성은 궁전을 쩌렁쩌렁 울렸다.
왕은 그제야 빙긋 웃음을 지었다.
“좋다! 해수는 보기병 1만을 거느리고 가잠성의 북방에 가서 징을 치고 북을 울리며
기다렸다가 관산성 쪽에서 원군이 당도하거든 길을 끊고 물리친 뒤에 금산으로 진격하라.
금산의 길은 세 갈래이므로 신라의 원군도 반드시 세 갈래로 나올 것이다.
해수는 금산에서 적천현의 봉화가 오르기를 기다려 가잠성으로 진격하고
나머지 잔병들을 모두 소탕하여 다른 군사들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힘껏 도우라.
가잠성을 뺏고 금산을 얻는 일이 해수의 손에 달렸다.”
그러자 해수도 비로소 표정이 환히 밝아졌다.
그는 편전에 부복하여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아무 근심도 하지 마옵소서.
신이 신명을 바쳐 반드시 성과 금산을 얻어오겠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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