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4. 정상을 향하여 (1)~(10)

오늘의 쉼터 2014. 7. 20. 11:21

 

 

4. 정상을 향하여 (1)~(10)

 

 

정상을 향하여 (1)

 

“일주일만에 넌 두대나 팔았지만 여의도 영업소에서 다섯대 판 놈이 있어.”

장정수가 은근한 시선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오후 2시여서 영업소 안에는 여직원 두명 뿐이었고 모두 외출에서 돌아오지 않았다.

“어때? 너, 정상이 한번 돼보지 않을래?
전국에서 일등을 하면 아마 네가 내 자리를 차지하게 될거다.”

“그렇면 소장님은 본부 부장으로 옮겨 가시겠지요.”

조철봉이 입술을 비틀고 말했다.

“실적에 목 매달지 않고 느긋하게 똥배 두드리는 자리로 말입니다.”

“아니, 이 자식이.”

눈을 부릅떴던 정수의 목소리가 다시 사근사근해졌다.

“서른대만 팔아라. 그러면 정상이다.
김정필이도 눈에 불을 켜고 있던데 곧 또 한대를 계약할 모양이더라.”

서초영업소는 지금까지 크로나 여섯대를 팔았는데 김정필을 포함하여
네명이 한대씩이었고 조철봉만 두대였다.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김정필에게는 내 이야기를 어떻게 할랍니까?
내가 또 한대를 계약할 모양이라고 하실거요?"

“내가 걔한테 네 이야기를 왜 하겠어?”

“에이, 그만둡시다.”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이 재킷을 집어들었다.
일년에 한두번씩 회사에서는 판매실적 평가를 하는데
이번에는 시상내용을 구체적으로 발표했다.
 판매실적 일등인 사원은 일계급 승진과 함께 포상금 1억원을 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으니 모두 욕심을 낼 만했다.

조철봉이 남양호텔 커피숍에 들어섰다.
김마담이 먼저 와 기다리고 있었다.

“어, 기다렸어?”

털석 앞자리에 앉은 조철봉이 건성으로 말하자 김마담은 살포시 웃었다.
화장기 없는 피부는 윤기가 났고 생머리를 뒤로 묶어서 긴 목이 드러났다.
갸름한 얼굴에 눈이 맑은 미인이다.

“갑자기 왜 불러낸거야?”

“부탁할 일이 있어서.”

다가온 종업원에게 커피를 시킨 조철봉이 정색하고 김마담을 보았다.
김마담은 청담동의 일급 룸살롱 아진의 마담으로,
휘하에 30명 가까운 아가씨들을 거느리고 있다.
조철봉은 눈만 깜박이는 김마담을 똑바로 보았다.
이 여자는 손님 접대차 대여섯번 찾아가 단골이 되었지만 아직 나이가 몇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급 룸살롱에서 30명 정도의 아가씨들을 거느리고 있을 정도라면
자금력이나 파워가 대단하다고 봐야 한다.

“우리가 동업을 했으면 좋겠는데.”

조철봉이 은근하게 말했을 때 김마담이 다시 생긋 웃었다.

“같이 차 팔자구?”

“차 뿐만이 아니라 사업을 같이 하자는 말이야.”

“어떤 사업?”

“소득재분배 사업.”

“얼씨구.”

하지만 김마담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들거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말이야?”

“세금 안내고 흥청망청 돈 쓰는 놈들한테서 정부를 대신하여 돈을 걷자는 말인데.”

“사기 치자는 말이군.”

정색한 김마담이 의자에 등을 붙였다.

“오랜만에 재미있는 이야기 듣게 되었는데 어디 말해봐.”

“그런데 김마담 본명이 뭐야? 김세미가 맞아? 우선 본명부터 알자구.”

조철봉이 묻자 김마당이 뱉듯이 대답했다.

“김부용이야. 촌스럽지?”
 
 
 
 

(33)정상을 향하여 (2)

 

 방문을 연 황수남의 이맛살을 찌푸렸다.
 
“왜 이렇게 늦어?”
 
“급한 일이 있어서요.”
 
부용은 눈웃음을 치며 수남의 사타구니를 슬쩍 쥐었다 놓고는 방안으로 들어섰다.
논현동의 킹덤 호텔은 룸이 70개밖에 안 되었지만 요지에 자리잡고 있는데다
시설이 아늑해서 장사가 잘되었다.
킹덤의 주인인 수남은 일주일에 두번씩 룸살롱 아진의 출근부에 도장을 찍는 단골이다.
 
“어머, 벌써 5시네.”
 
팔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한 부용이 재킷을 벗어 의자위에 걸치고는 수남에게 등을 내밀었다.
 
“훅 좀 풀어줘요.”
 
그때까지 찌푸린 표정을 풀지 않던 수남이 마지못한듯 손을 뻗어 브래지어의 훅을 풀었다.
 
40대 후반의 수남은 지독한 짠돌이였으나 계산은 철저했다.
 
매달 아진의 외상값을 현금으로 계산했는데 그날이 바로 부용이 몸을 주는 날이었다.
 
오늘이 바로 그날인 것이다.
 
“나, 씻고 올게요.”
 
젖가슴과 음부까지 다 드러낸 부용이 수남을 정면으로 보며 말했다.
곧게 뻗은 다리에다 배는 밋밋했고 군살없는 허리는 아직도 27인치여서
20대의 몸매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부용은 수남의 시선에 열기가 도는 것을 보고는 슬쩍 웃었다.
 
“뭐해요? 벗고 기다리시지 않고?”
 
수남은 오래 끄는 스타일이어서 이차를 따라간 아가씨들은 두번 다시
파트너가 되려고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상대 나름이다.
부용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수남은 이미 침대에 들어가 있었다.
 
“오늘은 내가 할까?”
 
시트를 들치고 들어간 부용이 수남의 발기된 물건을 쥐고서 물었다.
 
“당신은 가만 있어요.”
 
수남이 잠자코 있었으므로 부용은 알몸을 바짝 붙였다.
부용의 경험으로 판단한다면 수남은 조루형이다.
그래서 엄청난 인내력으로 전희에 집중하는 것이다.
부용의 혀가 물건에 닿았을 때부터 수남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이봐, 살살 해.”
 
신음하듯 수남이 말했다.
 
이대로 간다면 수남은 이분도 안 되어서 발사할 것이다.
 
오늘 받을 1540만원을 머릿속에 떠올린 부용은 입안에 넣었던 수남의 물건을 빼내었다.
 
이분만에 끝내주기에는 미안했기 때문이다.
 
“자기는 정력이 세다고 소문이 났대요.”
 
수남의 손을 끌어 자신의 샘에 넣으면서 부용이 말했다.
 
“만날 정력제 먹어서 그렇죠?”
 
“내가 언제.”
 
“나는 물건이 들어와서 곧장 쏘는것이 좋더라.”
 
부용이 다시 수남의 물건을 입안에 넣었다.
 
“난 30초면 뻗을 수가 있거든요.”
 
“그렇게 빨리?”
 
“그럼, 해봐요. 어디.”
 
상체를 세운 부용이 수남의 몸위에 올라앉더니 물건을 샘에 넣었다.
 
“아아아.”
 
턱을 젖힌 부용이 커다랗게 신음을 뱉었을때 수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물건이 팽창되었는데 부용이 허리를 서너번 출썩이자 곧 폭발해버렸다.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아아, 좋아.”
 
수남의 몸위에 엎드린 부용이 꺼져가는 듯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온몸을 떨었다.
 
그리고 곁눈으로 침대옆 탁자에 놓인 시계를 보았다.
 
5시18분이다.
 
이제 한번 더 몸을 뻗은 다음에 일어나는 것이 수남에게 부담을 덜 줄 것이다.
 
 
 
 
 

(34)정상을 향하여 (3)

 
 
조철봉이 커피숍에 들어서자 안쪽에 앉아있던 김부용이 손을 까닥였다.
 
오후 2시였지만 부용에게는 지금이 아침일 것이다.
 
털썩 앞쪽에 앉은 조철봉이 부용의 얼굴을 빤히 보았다.
 
“껀수 생긴 거야?”
 
“사기꾼이 하나 있어.”
 
부용이 차가운 표정으로 말했다.
 
“손님의 비밀을 지켜줘야 도리지만 그까짓 놈한테 도리 지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서.”
 
“옳지.”
 
정색한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만하면 양심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 줄테니까 어서 본론을 말해.”
 
“킹덤 호텔의 주인이야.”
 
“그래서?”
 
“그자가 보물 사업으로 떼돈을 벌고 있어.”
 
“보물사업이라니?”
 
“신문도 안봐?”
 
부용이 눈을 치켜떴다.
 
“여주에 일본군이 묻고 갔다는 금괴가 수백톤이 있다고 신문에 났잖아?”
 
“들은 것 같은데.”
 
“그걸로 성화라는 회사 주식이 스무배가 넘게 뛰었어.”
 
그리고 부용이 목소리를 낮췄다.
 
“황수남이는 주식을 내다 팔아서 300억 넘게 벌었고.”
 
“황수남이가 킹덤호텔의 주인인가?”
 
“성화의 대주주이기도 했지.”
 
“그럼 금괴가 있다는 건 주가를 올리려는 사기인가?”
 
긴장한 조철봉이 묻자 부용이 머리를 끄덕였다.
 
“사기야,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사기야.
 
지금 금괴를 파내려고 작업을 하지만 몇달 후에는
 
흐지부지 될 것이고 주가는 곤두박질 칠거라구.”
 
“확실해?”
 
“황수남이는 작전을 아진에서 짰고 회의도 아진에서 했어.
 
아가씨들 다 내보내고 쑤군댔지만 난 자주 들어갈 수 있었지.
 
그래서 알 수 있었던거야.”
 
“으으음.”
 
조철봉이 눈만 껌벅이자 부용은 눈을 치켜떴다.
 
“자, 어떻게 할 거야?”
 
“뭘?”
 
“계획을 세워야 할 것아냐?”
 
“그거야…”
 
“그리고 분명히 해둘 것이 있어.”
 
부용이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반씩 나누는거야. 동의하지?”
 
“좋아.”
 
머리를 끄덕인 후 조철봉은 차를 시키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부용이 대번에 대어가 있는 곳을 알려준 것이다.
 
하지만 잡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그날 오후 5시 조철봉은 강남구청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최갑중을 차에 태웠다.
 
“어이구, 요즘 정신없구만.”
 
들뜬 표정으로 말하던 갑중이 힐끗 조철봉의 눈치를 살피더니 속 주머니에서 서류를 꺼냈다.
 
“김부용은 지금 혼자 삽니다.
 
하지만 호적을 보니까 두번 이혼했고 아들 하나가 있는데 남편이 데리고 있더만요.”
 
갑중이 손에 쥔 서류로 손바닥을 가볍게 두드렸다.
 
“청담동 아파트는 전세이고 드러난 재산은 1억도 안됩니다.
 
그런 계통에 있다보면 타인 명의로 해놓는 경우가 많으니까 더 조사해보면 나올지도 모르지요.”
 
“남자 관계는?”
 
“그게 흥미진진합니다.”
 
눈을 가늘게 뜬 갑중이 조철봉을 보았다.
 
“김부용은 아진의 소유주 오석규의 세컨드라는 것을 알아냈습니다.
 
이건 아진에서도 아는 사람이 없더만요.”
 
갑중이 정색했다.
 
“오석규 모르세요? 동양파 부두목 말입니다.”
 
 
 
 

(35)정상을 향하여 (4)

 
 
“난 욕심없어.”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김정필을 보았다.
 
영업소 안은 활기 찼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분위기가 붕 떠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전화로 떠들어대서는 차를 팔 수 없는 것이다.
 
인맥을 이용하고 꾸준하게 공을 들여야만 한다.
성실한 자세에도 한계가 있는 법이므로 기발한 착상도 필요하다.
영업장은 공사현장이나 마찬가지다. 몸으로 뛰고 겪어야 한다.
제아무리 계획이 치밀해도 몸이 따라주지 않으면 효과는 반감된다.
조철봉이 다시 말을 이었다.

“자네가 일등해. 내가 밀어줄테니까.”

“나아, 참.”

정필이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갑자기 또 왜 이러십니까? 그러다가 뒤통수 맞으라구요?”

“글쎄, 나는 회사 장단에 맞춰서 춤을 추는 것에 질렸다니까.”

“어디 아프쇼?”

“피곤해졌어. 모든 것이.”

“오후에 감사반이 온답니다.”

정색한 정필이 목소리를 낮췄다.

“소장이 서류 맞추느라고 정신없어요.”

정필은 요즘 자주 조철봉에게 접근해 왔는데 그것은 경쟁자로서
탐색하려는 심보였지 결코 도와주려는 의도가 아니었다.
실적에 따라 냉혹하게 평가받는 조직사회에서 정보는 곧 재산인 것이다.
정필은 어제 고급형 크로나를 한 대 더 계약해 조철봉과 같이 두 대의 실적을 기록했다.
계약자는 하이나를 팔았던 고객이었는데 지방에서 사고가 났을 때 새벽에 달려 내려간
정필에게서 감동을 받은 사람이었다.

오후에 영업소로 찾아온 감사반은 세명이었다.
감사반장은 이은영이라는 여자였고 인사를 나눌 때 받은 명함에는
본사 기조실의 과장으로 적혀있었다.

“부담 느끼시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뒤에 선 이은영 과장이 영업소를 둘러보며 낭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번 특판 기간이 끝날 때까지 같은 영업소 직원으로 생각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니, 그러면.”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로 쏠렸다.
 
영업소장 장정수는 낮게 혀를 찼다.

“끝날 때까지 여기에 있는다는 말입니까?”

“네, 그래요.”

은영이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지만 두 볼이 조금 굳어졌다.

“감사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특판 활동을 도와주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그것은….”

그때 정수가 눈을 부릅뜨고 한 걸음 나섰다.

“야, 주둥이 닥치고 앉아.”

“애로사항이 있으면 언제든지 말씀해 주세요.”

은영이 바로 말을 받았으므로 분위기가 조금 풀어졌다.

“영업소 안에 화장실이나 만들어 주십쇼.
 
싸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있수다.”

털썩 앉으면서 조철봉이 말하자
 
직원 몇명은 큭큭 웃었고 정수는 잡아먹을 듯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은영이 정수를 따라 소장실로 들어갔을 때 여직원이 다가와
 
시키지도 않은 커피를 조철봉 앞에다 내려놓았다.

“조과장님 파이팅.”

속삭이듯 말한 여직원이 서둘러 몸을 돌리더니 자리로 돌아갔다.
 
작년에 여상을 졸업한 경리사원이다.

“아예 목에다 개줄을 묶으라는 것이 낫겠구만.”

혼잣소리처럼 중얼거린 조철봉은 손을 뻗어 전화기를 들었다.
 
이번 작전은 크로나 고급형 수백대분과 맞먹는다.
 
감사반 따위는 무시할만하다.
 
 
 

(36)정상을 향하여 (5)

 
 
담배를 비벼끈 오석규가 머리를 돌려 부용을 보았다.
 
“황수남에겐 배후가 있지만 아직 누군지는 알수 없어, 하지만 막강한 놈일거야.”
 
아침겸 점심으로 식사를 마친 후여서 부용은 설거지를 하는 중이었다.
 
석규가 말을 이었다.
 
“어떤 놈인지는 알 필요가 없지. 큰몫은 황수남이 쥐고 있으니까 말이야.”
 
“현금으로 갖고 있을까?”
 
“아마 여러곳으로 분산시켜 놓았을거야, 외국으로 빼돌리기도 했을 것이고.”
 
소파에 등을 댄 석규가 두툼한 입술을 찌그러뜨리며 웃었다.
 
“더러운 자식. 성화 주식이 그렇게 뛸때 시치미를 딱 떼고 나한테
죽는 소리만 해댔단 말이지. 어디, 두고보자.”
 
“언제 일을 시작할건데?”
 
몸을 돌린 부용이 석규를 정색을 하고 보았다.
 
“정말 괜찮을까?”
 
“그놈은 신고도 못한다니까그러네”
 
석규가 눈을 부릅뜨자 흰자위가 많은 두눈에 살기가 느껴졌다.
 
40대 초반이었지만 석규는 지금도 현역 때처럼 몸으로 뛴다.
 
손짓으로 부용을 불러 앞쪽 소파에 앉힌 석규가 목소리를 낮췄다.
 
“아마 이달안으로 성화 주가조작 사건이 터질거야.
지금 주가가 계속 곤두박질 치고 있어서 투자자들이 아우성을 치고 있거든.”
 
“그럼 곧 황수남이 걸려들겠네.”
 
“그놈은 배경을 믿는 모양이지만 여차하면 외국으로 튈지도 몰라, 그러니까”
 
석규가 정색하고 부용을 보았다.
 
“내일 오후에 황수남을 불러내. 식사나 같이 하자면서 말이야.”
 
“그래서?”
 
“애들 시켜서 그놈을 납치 하는거지. 그 방법이 제일 간단해.”
 
“그럼 내가 주모자가 되겠네?”
 
“너한테도 한몫 떼어준다고 했잖아?
 내 말대로 일본에 잠깐 나가있어, 애데리고 말이야.”
 
“얼마 줄건데?”
 
“10억”
 
손가락 하나를 세워보인 석규가 덧붙였다.
 
“네가 일본에 있는 동안 생활비도 넉넉히 보내줄게.”
 
한참 눈만 깜박이던 부용이 이윽고 머리를 끄덕였다.
 
“알았어. 약속이나 지켜.”
 
부용은 조철봉에게 황수남에 대해서 술좌석에서 가다오다 들었다고 했지만
 
사실은 석규로부터 받은 정보였다.
 
오석규와 황수남은 골프를 함께 치고 포커판을 같이 돌아다니면서
 
서로 형님 동생하는 사이였다.
 
문득 시계를 본 부용이 서둘러 일어섰다.
 
“어머, 세시네, 네시에 외상값 받기로 했는데.”
 
부용이 아파트를 나간 후 석규는 휴대전화를 집어들었다.
동양파는 사정당국의 사찰에 걸려 풍비박산이 났지만 석규는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그것은 자잘한 일에는 손을 대지 않는 배포가 큰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치밀한 계획을 세우지 않고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그의 철칙 덕이었다.
그러나 일단 계획이 정해지면 벼락처럼 집행하고 꼬리를 감춘다.
전화기를 귀에 댄 석규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물론 이번에도 대타를 내세울 것이다.
수화기에서 말소리가 들리자 석규는 불쑥 말했다.
 
“내일이다.”
 
“예 형님”
 
“너까지 포함해서 넷이다 알았나?”
 
“예 형님.”
 
“절대로 새나가면 안된다.”
 
석규는 만족한 표정으로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37)정상을 향하여 (6)

 
 
“저좀 보세요.”

뒤에서 부르는 소리에 조철봉은 몸을 돌렸다.
 
영업소 사무실 밖의 복도에서 이은영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가선 은영이 눈꼬리를 내리며 웃었다.

“조과장님, 저한테 개인적인 유감은 없으시죠?”

오후 네시, 업무 효율성이 가장 떨어지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면 영업소 직원 대부분은 출장을 나가는데 
그중 반은 사우나에 가 있을 것이었다.
조철봉이 은영을 보며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웃었다.

“그럴리가, 한번 튀려고 그런거죠. 뭘.”

“하지만 듣던대로 역시 괴짜세요.”

“어떤 면이 말이오?”

“고객 대부분이 여자분이라면서요?”

“내가 카바레에서 고객 만난다고 합디까?”

“우리 저쪽에서 이야기해요.”

은영은 복도 안쪽의 창가를 턱으로 가리켰다.
그들은 오후의 햇살이 비스듬히 들어오는 창가에 나란히 섰다.
은영은 30세로 아직 미혼이다. 대학은 제일대 영문과 출신이니
최고 학벌이었고 입사후 바로 기조실에 배치되어 작년에 과장이 되었다.
그러나 입사 기수로 따지면 조철봉의 3년 후배였고 진급은 2년 빠른 셈이다.
창밖으로 시선을 둔 은영이 팔짱을 끼고 섰다.
방어적인 동작이다.
대개 사람들은 둘이 있을때 무의식중에 몸으로 말을 한다.
이런 태도를 통해 조철봉은 상대의 상태를 짐작할수 있었다.
이 여자는 지금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

“제가 조과장님하고 한팀이 돼서 일을 할 수는 없을까요?”

가라앉은 목소리로 은영이 말했을때 조철봉은 퍼뜩 시선을 주었다.
은영의 귀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담했고 귓볼이 탐스러웠다.
그리고 짧은 머리칼 뒤쪽의 목에 솜털이 보송보송 돋아나 있다.
시선을 느낀 은영이 조철봉을 보았다.

둘의 눈동자에는 상대방의 얼굴이 박혔다.
은영은 맑은 눈에 콧날이 조금 치켜졌지만 전체적으로 밝고 또랑한 인상이다.

“안되겠는데.”

시선을 그대로 둔채 조철봉이 말했다.

“나한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것 같아서 말이오.”

“물론 실적은 조과장님 혼자서 올리시는 걸로 됩니다.”

“글쎄, 방해가 된다니까요.”

조철봉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왜 하필 납니까? 김과장도 있지 않습니까? 대리급도 있고.”

“본사에서부터 체크하고 왔어요. 소장님 허락도 받았고.”

“소장 지가 뭔데? 내 실적을 책임져준다고 합디까?”

“부탁합니다.”

팔짱을 푼 은영이 조철봉에게 머리를 숙였다.

“본사 방침이고 이미 컨펌이 되어있는 상황입니다.”

“제길.”

조철봉이 눈을 부릅떴다.

“혹시 내가 따먹은 여자가 본사에다 진정서를 낸거 아뇨?”

“그런 거 없어요.”

“내가 문제가 많아서 그런거요?”

“오히려 A급으로 평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배우려는 거예요.”

꾹 다문 입사이로 신음소리를 뱉어낸 조철봉이 은영을 노려보았다.

“또 다시 여난이 닥쳐왔군.”

“조수로 생각하시고 일을 시켜주세요.”

“빌어먹을.”

손목시계를 내려다본 조철봉이 몸을 비스듬히 돌렸다.

“난 지금 어머니를 만나고 올테니까 그동안 내 전화나 받아줘요.”

“네.”

은영이 환하게 웃었으나 조철봉은 정색했다.

“여자 전화는 친절하게 받고 남자 전화는 메모하지도 말아요.”

 

 

 

(38)정상을 향하여 (7)



서둘러 다가온 조철봉이 앞에 앉자 김부용이 눈을 흘겼다.
 
“시간 좀 지켜.”
 
“누가 잡는 바람에.”
 
메트로 호텔의 커피숍은 항상 한산한데다 4시 반이어서 어중간한 시간이다.
 
손님이 세 테이블에만 있었지만 부용은 구석자리에 앉아 있었다.
 
곧 다가온 종업원에게 커피를 시키고 난 부용이 조철봉을 보았다.
 
“내일 황수남이 납치될거야.”
 
“누구한테?”
 
긴장한 조철봉이 묻자 주위를 둘러 본 부용이 목소리를 낮췄다.
 
“아진 회장의 부하들한테.”
 
“아진 회장이 누군데?”
 
“당신은 몰라도 돼. 주먹깨나 쓰는 사람이야.”
 
“그럼 그놈이 선수를 친건가?”
 
“결국 돈 갖게되는 사람이 이기는거지.”
 
부용이 반들거리는 눈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내가 황수남을 어디로 데려갈지도 다 알고 있어.”
 
“아니, 어떻게?”
 
“내가 회장 부하들을 지휘해서 황수남을 족칠테니까 말이야.”
 
“으으음.”
 
조철봉이 탄성같은 신음을 뱉었을때 종업원이 다가와 커피를 내려놓았다.
 
커피잔을 든 부용이 종업원의 뒷모습을 보며 말했다.
 
“아진 회장은 황수남과 친한 사이라 나타나지 않고 내가 나서는거지.”
 
“그럼 김마담만 걸려들 것 아냐?”
 
“난 일본으로 도망치기로 되어있어.”
 
“다 뒤집어쓰고 말이지?”
 
“하지만 뒤가 구린 돈이라 황수남이 신고를 안 할지도 몰라.”
 
“어쨌든 이용만 당하는군 그래. 얼마를 받기로 했는데?”
 
오석규가 했던 것처럼 손가락 하나를 펴보인 부용이 씁쓸하게 웃었다.
 
“10억. 그리고 매달 생활비를 일본으로 보내 준다는군.”
 
“나쁜놈. 도대체 어떤 놈이야? 그놈이.”
 
했지만 조철봉은 더 추궁하지 않았다.
 
오석규에 대해서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부용이 털어놓지 않는다면 시치미를 떼고 있는 것이 낫다.
 
부용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일 아진 회장의 부하들이 황수남을 납치 할 때부터 작전이 시작될거야.
 
정신 바짝 차려야 돼.”
 
“그렇군.”
 
“미사리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극동 모텔이 있어. 한적한 곳이야.
 
나하고 황수남은 그곳에 오후 4시까지 들어갈거야.”
 
그리고는 부용이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4시 반에 남자들이 덮칠 것이고, 몇명인지는 나도 몰라.”
 
“황수남과 약속했어?”
 
“조금전에, 아진 회장하고도 말 맞췄고.”
 
“으으음.”
 
조철봉이 다시 신음했다.
작전을 지휘하는 것은 부용인 것이다.
이런 자세라면 오석규가 부하들을 붙여 능히 일을 맡길만 했다.
부용과 헤어진 조철봉이 영업소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7시 반이었다.
조철봉의 책상 옆에 빈 책상을 붙여놓고 앉아 있던 이은영이 눈웃음을 쳤다.
 
“어머니 만나셨어요?”
 
“아, 예.”
 
직원들이 모두 있는데다 뒤쪽에 있던 장정수가 눈썹까지 곤두세운 얼굴이어서
조철봉은 정색을 했다.
 
“하영옥씨란 분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휴대전화가 꺼져 있다면서.”
 
조철봉이 머리만을 끄덕이자 이은영이 그에게로 상반신을 기울였다.
 
“오늘 저녁에 한잔 하실래요? 제가 살테니까.”
 
눈만 껌벅이는 조철봉을 향해 이은영이 웃었다.
 
“같은 팀이 된 기념으로.”
 
 
 
 

(39)정상을 향하여 (8)

 
 
곱창 안주에다 소주를 시키고 나서 이은영이 머리를 기울이며 조철봉을 보았다.
 
“무슨 고민 있어요?”
 
“아니, 별로.”
 
조철봉이 술병을 들어 잔을 채웠다.
 
논현동 골목의 좁은 식당 안은 저녁 손님들로 혼잡했고 고기 굽는 연기가 가득차 있었다.
 
“조선배는 꿈이 뭐예요?”
 
어느덧 은영은 조철봉을 선배라고 부르고 있었다.
 
“꿈이라면 크로나를 이번 행사기간동안 백대쯤 파는 것이지.”
 
“우리 까놓고 말합시다.”
 
술잔을 든 은영이 피식 웃었다.
 
“조선배는 다른 꿈이 있는 것 같애.”
 
“속단하지 말어. 난 평범한 영업사원이야.”
 
“과연 그럴까요?”
 
한 모금에 막소주를 삼킨 조철봉이 정색하고 은영을 보았다.
아직 서로간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다.
은영의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는 것이다.
 
“나에 대해서 얼마나 조사했어?”
 
이제 조철봉은 거침없이 말을 놓았는데 은영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약간.”
 
은영이 엄지와 검지를 붙여 내밀었다.
 
“조선배가 굉장한 수완가라는 것. 그리고.”
 
“그리고?”
 
“대단히 위험한 성품이라는 것.”
 
“소장이 그렇게 보고했나?”
 
“기조실에서 인사고과를 볼 수는 없어요.”
 
“그럼 내통자가 있군.”
 
먹음직스럽게 익힌 곱창안주가 왔다.
 
조철봉은 다시 술을 삼키고는 안주를 씹었다.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었다.
 
본사 비서실에서는 간부사원의 사생활에 대한 기록도 보관하고 있다.
 
기조실에서만 6년을 지낸 은영은 마음만 먹는다면 비서실 자료를 볼 수 있는 위치였다.
 
“참 신기했어요. 조선배는 실적의 90%를 여자 고객으로 채웠더군요.”
 
“모두 내 코에 혹한거지.”
 
그리고는 조철봉이 눈을 치켜떴다.
 
“차를 사준 여자 고객에게는 무료 봉사를 해주고 있어. 코피가 맨날 터진다구.”
 
“난 이번 행사기간이 끝나면 영업 전략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해야 돼요.”
 
은영이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그래서 본사에서 조사한 다음에 조선배를 협조 대상으로 정하고 서초영업소에 온 것입니다.”
 
“그럼 보고서에 이렇게 써.”
 
조철봉도 정색하고 은영을 보았다.
 
“첫째로 연장이 8기통 엔진처럼 강해야 할 것. 마력수는 높을수록 좋아.”
 
입맛을 다신 은영이 시선을 내렸으나 조철봉이 손을 휘저으며 말을 이었다.
 
“연장의 지구력도 중요해.
10시간쯤 최고속도로 달려도 꺼지지 않아야 된단 말이지.
 
“조심하셔야 돼요.”
 
술병을 든 은영이 조철봉의 잔에 술을 채웠다.
 
“조선배는 자포자기한 사람같이 보이다가 때론 무슨 음모를 꾸미는 것처럼 느껴져요.”
 
“미친놈 같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나?”
 
“매력도 있어요.”
 
눈웃음을 친 은영이 소주를 한모금 삼켰다.
 
“그래서 여자 고객이 많은건가?”
 
“나한테 같이 자자고는 하지 말아.”
 
의자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눈을 가늘게 뜨고 은영을 보았다.
 
“요즘은 엔진 오일을 너무 자주 갈아주었더니 지쳤어.”
 
가늘게 뜬 시야 안으로 들어온 은영의 두 볼은 발갛게 상기되었고 입술은 붉다.
 
불끈 성욕을 느낀 조철봉이 피식 웃었다.
내일은 거사 날이다. 몸을 정갈하게 간수해야 하는 것이다.
 
 

(40)정상을 향하여 (9)

 
 
오석규의 벗은 몸을 보면 김부용은 언제나 달아올랐다.
스스로도 이상하다고 느껴질 만큼 그의 알몸을 본 순간부터 몸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석규는 40대였지만 군살이 없는 근육질의 체격이었다.
배와 가슴, 그리고 한쪽 어깨에 긴 칼자국이 나 있었는데 그 부분은 검붉은 색이었다.
알몸의 석규는 거침없이 다가오더니 침대 시트를 들치고 부용의 옆에 누웠다.

“황수남의 스타일은 어때?”

어깨를 안으면서 석규가 묻자 부용이 퍼뜩 시선을 들었다.

“뭐가 말야?”

“섹스 말이지 뭐긴 뭐야?”

부용이 석규의 팔을 뿌리치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젖가슴이 다 드러났다.
알맞게 솟은 젖가슴에 젖꼭지는 건포도만 했다.

“날 뭘로 보고 그런 말을 해?”

쨍쨍한 목소리로 묻자 석규가 손을 뻗어 부용의 허리를 감았다.

“다 알아. 네가 황수남 만나서 모텔 간다는 걸. 어느 모텔인가도 말해주랴?”

“놔. 이거.”

했지만 부용은 석규가 허리를 당기는 바람에 비스듬히 안겨왔다.

“내가 다 이해하고 있어. 임마.”

석규의 몸이 덮치면서 입술이 곧 부용의 젖꼭지를 빨아세웠다.

“마누라 물장사 시키자면 할 수 없는 일이지.”

부용은 아직 석규의 어깨를 두 팔로 밀고 있었지만 점점 힘이 약해졌다.
그리고는 석규의 입술이 아랫배를 지나 밑으로 내려오면서부터 엷은 신음을 뱉었다.
석규와의 섹스에는 언제나 만족했던터라 부용의 가슴은 흥분과 기대감으로 뛰었다.
성의 쾌락을 알고는 있었으나 석규를 만난 후부터 부용은 다시 태어난 느낌이었다.
마음이 통하지 않아도 섹스만으로 완벽한 쾌감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석규를 통해 알게 된 것이다.
석규는 의식적으로 전희를 오래 끌지 않았다.
딱 적당한 시간에 진입하여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듯이 부용의 몸을 굴렸는데
그 모든 순간에 부용은 전율했으며 환성을 질렀다.
그런데 오늘밤의 석규는 달랐다.
강약을 조절하지 않고 자꾸 강하게만 밀어붙였으며 의도적으로 오래 끌려는 기색이 드러났다.

“그만해. 나, 했어.”

마침내 땀으로 범벅이 된 부용이 석규의 가슴을 밀었다.

“나 이러다가 죽겠어.”

그때서야 석규는 신음소리를 뱉더니 몸을 굳혔다.
부용은 탄성 대신 긴 숨을 뱉었다.
몸을 굴려 옆으로 엎어진 석규가 손을 뻗어 담배를 집더니 헐떡이며 말했다.

“황수남은 은행도 믿지 않는 놈이야.
그래서 돈이나 증권을 모두 집에 있는 금고에 보관하고 있어.”

담배에 불을 붙인 석규가 연기를 거칠게 뿜어냈다.

“집에는 식구가 다섯이 있다. 마누라하고 자식 셋 거기에다 가정부까지.”

“그럼 어떻게 해?”

“황수남을 집으로 데려가야지.”

“어떻게?”

“밴에다 싣고가면 돼. 집 안으로 들어가면 애들이 다 알아서 할 거다.”

“몇 명이 가는데?”

“네 명. 너까지 다섯이다.”

그러더니 석규가 부용의 입에 담배를 물려주었다.
이것도 처음있는 일이다.
부용이 담배 피우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석규는
제 앞에서 피우는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것이다.
담배 연기를 천장에 뿜어낸 부용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자기는 그동안 어디 있을 거야?”

“난 골프 칠 거야.”

알리바이를 확보하려는 것이다.

 

 

 

 

 

(41)정상을 향하여 (10)



“시설은 좋군.”

특실로 들어선 황수남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얼굴이 조금 펴졌다.
방은 특급호텔 수준보다 좋았다.
흠이 있다면 조금 야한 느낌이 든다는 것 뿐이다.

천장은 유리로 모자이크 된 남녀의 그림이 현란했고 구석에는 러닝 머신까지 있었다.
이곳저곳을 둘러보던 수남이 냉장고 옆의 커피포트 앞에 섰을 때는 찜찜한 기분이
완전히 풀어진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웃었다.

“도대체 이런 곳을 어떻게 개발한거야?”

“애들한테 말로만 들었다니까요. 정말 웃기는 곳이네, 그죠?”

따라웃은 부용이 화장실 문을 열더니 놀란 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나, 사우나까지 있네. 봐요.”

“어, 그래?”

서둘러 다가온 수남이 부용을 밀치고 화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야, 이 자식들, 아주 완전하게 벗겨먹을 작정을 했구나.”

넓은 화장실 안의 사우나로 다가간 수남은 문을 열었다.

“어이구, 이거 사우나부터 해야겠다. 그리고나서 한숨 자면 확 풀리겠군.”

그때 몸을 돌린 부용은 잠겨있던 문고리를 풀고 TV 앞의 소파에 앉았다.
TV세트 밑에 부착된 전광시계가 오후 4시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계획보다 5분 늦었다. 수남이 붉은 얼굴로 화장실을 나왔을 때 부용은
그의 뒤쪽 문이 열리면서 사내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사내들은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어머나.”

눈을 크게 뜬 부용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순간 수남이 몸을 돌렸다가 사내들이 밀치는 바람에 앞으로 엎어졌다.

“당신들 누구야?”

하고 부용이 소리쳤을 때 사내 하나가 다가와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이년아, 가만있어.”

그러나 손바닥은 덮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그사이에 수남은 엎어진 채 두손과 다리가 묶였고 입에는 타월로 재갈이 물렸다.

“저년도 묶어.”

지휘자로 보이는 스포츠형 머리가 치켜 뜬 눈으로 부용을 가리켰다.

“저년도 데려간다.”

미사리 극동모텔은 외진 곳에 있는데다 손님의 비밀을 보장해 준답시고
5층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4개나 있다.
손님들끼리 마주치는 어색함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다 입실할 때만 프런트에서 키를 받아갈 뿐 퇴실할 때는 키를
엘리베이터 안의 바구니에 넣거나 주차장에 비치된 바구니에 던져 놓으면 된다.
먼저 사내들에게 둘러싸인 수남이 손과 입을 묶이고 막힌 채 밖으로 끌려 나갔을 때
부용은 사내 하나와 방에 남았다.

“너무 세게 묶었어, 다시 묶어.”

부용이 묶인 손을 내밀자 사내가 멋쩍게 웃었다.

“미안합니다. 쇼를 확실하게 하려고.”

사내가 손을 다시 묶는 동안 부용이 초조한 표정으로 물었다.

“회장님은 어디 계셔?”

“저희들은 모릅니다.”

“연락은 할 것 아냐?”

“예, 하지만 어디 계신지는.”

그때 사내의 주머니에서 벨소리가 났다.
둘은 말을 그쳤다.
휴대전화를 꺼내 귀에 붙인 사내가 금방 통화를 끝내더니 부용을 보았다.

“밴에 실었답니다. 자, 가시죠.”

부용은 실크 머플러로 묶인 손을 덮고 일어섰다.
입의 재갈은 지하차고로 내려갔을 때 밴의 뒤쪽에서 묶으면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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