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3. 오숙진편(21)~(31)

오늘의 쉼터 2014. 7. 20. 11:06

3. 오숙진편(21)~(31)

 

 

오숙진편(21)

 

 

 

 대성회계법인 사무실은 소공동에 있다.

빌딩 2개층을 사용하고 있을 정도로 대형 기업이다.

하태호는 공동대표를 맡고 있어서 조철봉이 안내된 곳은 사장실 옆의 회의실이었다.

“곧 오실겁니다.”

안내한 여직원의 얼굴이 상냥한 걸로 봐서는 영문을 모르는 눈치였다.

장방형의 마호가니 테이블이 놓인 회의실은 20평 규모로 컸다.

정면의 벽에 걸린 액자에 사훈으로 ‘근면과 성실’이라는 한자가 큼지막하게 박혀있었다.

“아,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뒤쪽 문이 소리없이 열리고 태호가 바로 뒤에 올 때까지 몰랐던 조철봉은 조금 놀랐다.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에게 태호는 손을 내밀지도 않고 앞쪽에 앉았다.

“앉으시지요.”

다시 앉은 조철봉은 태호의 표정없는 얼굴을 보았다.

대머리는 그날밤보다 더 번들거렸고 눈매가 날카롭다.

“오숙진씨 사촌오빠가 되신다구요.”

태호가 묻자 조철봉은 정색했다.

“그렇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그건 오히려 제가 물어봐야할 말씀 같은데요.”

조철봉의 목소리가 굵어졌다.

“사모님이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되신겁니까? 숙진이도 황당해하고 있어요.”

“글쎄, 나도.”

어금니를 물었다 푼 태호가 담배를 꺼내 물더니 곧 길게 연기를 뱉었다.

“나하고 숙진이가 모텔로 들어가는 장면이 사진으로 찍혔어요.

그것을 어느 놈이 와이프한테 보내준거요.”

“공갈단이군요.”

조철봉이 바로 단정했다.

“그런데 왜 사모님한테 보냈을까요? 돈을 뜯어내려면 사장님한테 보냈어야 했을텐데요.”

“지금 그것 따질 상황이 아니요.”

이맛살을 찌푸린 태호가 다시 연기를 품었다.

“나는 아침부터 와이프한테 시달려서 미칠 지경이요.”

“숙진이도 아침에 사모님 전화를 받고 지금 거의 정신이 나간 상탭니다.”

“그놈이 나하고 숙진이를 매장 시키려고 작정을 한 것이 아닐까?

돈 내라는 요구도 없는걸 보면 말이요.”

“글쎄, 저도 오면서 원한 관계가 있는 사람의 소행이 아닌가 생각을 했습니다만.”

눈을 든 조철봉이 태호를 보았다.

“혹시 전화 받으신 적 없습니까?”

“아, 받았다면 속이라도 시원하겠어.”

“그렇다면.”

조철봉이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

“이 방법밖에 없습니다. 사모님한테 끝까지 오리발을, 아니 시치미를 떼십시오.

사모님이 오숙진이 이름을 거론하시면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셔야 합니다.”

“아침에 전화까지 했다면서?”

“마침 제가 옆에 있다가 받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장난 전화 취급을 했습니다.

아주 딱 잡아 떼었지요.”

“그래요?”

“모텔에 들어간 사진 가지고는 간통증거가 안됩니다.

문제는 사장님이 사모님을 설득시키는 일입니다.”

“숙진이한테 미안하군.”

그때서야 안정을 찾은듯 태호가 재떨이에 담배를 비벼 끄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시선이 부드러워져 있었다.

“내가 와이프한테 전화를 하지 말라고 말릴 수는 없어요. 그러니까.”

“앞으로 절대 전화도 하시면 안됩니다. 증거가 잡힐 테니까요.”

그러자 태호는 커다랗게 머리를 끄덕였다.

순진한 표정이다.

 

 

 

오숙진편(22)

 

 

“출장을 가겠다구?”

이맛살을 찌푸리며 장정수가 들고 있던 팸플릿을 내려놓았다.

크로나 홍보 팸플릿이었는데 그는 요즘 기업체를 돌아다니면서 팸플릿 나눠주는 것이 일이었다.

“속초에 가서 뭘 하려고?”

“구매자가 그쪽으로 출장을 가서요.”

조철봉이 은근한 시선으로 정수를 보았다.

 

“잘하면 크로나 4500㏄급 한대를 팔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어, 그래?”

대번에 얼굴이 풀린 정수가 머리까지 끄덕였다.

조철봉은 이미 김봉선의 사촌오빠한테 4500㏄를 한대 팔았으니

이번에 한대 팔면 당장 영업실적이 일등이 된다.

“다녀와, 그럼.”

“자주 연락 드리지요.”

“이틀은 넘기지 마라.”

“알았습니다.”

영업소를 나온 조철봉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후의 하늘은 맑고 푸르렀다.

날씨도 적당히 선선해서 드라이브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조철봉이 설악산 입구에 위치한 대용콘도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5시반이었다.

미리 연락을 한 터라 오숙진은 딸 수지와 함께 콘도 앞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조철봉을 본 순간 반은 웃고 반은 울상인 묘한 표정이 되었다.

“어, 네가 수지구나.”

숙진에게 눈 인사만 한 조철봉이 들고 있던 커다란 인형을 내밀었다.

요즘 유행하는 말하는 공주인형이다.

“자, 받아라. 아저씨 선물이다.”

수지는 인형이 갖고 싶었지만 먼저 숙진의 눈치부터 살폈다.

“왜 이런걸 사오셨어요?”

숙진이 난처한듯 말하다가 곧 머리를 끄덕였다.

“아저씨한테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

“고맙습니다.”

건성으로 인사를 한 수지가 인형을 받았을 때 숙진이 철봉에게 한걸음 다가섰다.

“어떻게 되었어요?”

아직 자세한 내막은 말해주지 않은 것이다.

조철봉이 인형에 몰두한 수지를 힐끗 보고는 옆쪽의 나무 밑으로 숙진을 이끌었다.

“문제는 돈입니다.”

앞쪽 산에다 시선을 둔 채 조철봉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하태호씨는 그동안 사업 핑계를 대고 와이프한테서 5억원쯤 돈을 끌어다 쓴 모양입니다.

그런데 하태호씨 와이프는 그 돈이 모두 숙진씨한테 간 줄로만 알아요.”

“세상에.”

숙진이 기가 막히다는 듯이 눈을 크게 떴다.

“하태호씨는 뭐라고 해요?”

“물론 하태호씨는 그 돈이 숙진씨한테 간 것이 아니라 주식으로 날렸다고 했답니다.

그런데 와이프는 믿지 않는다는군요.”

그리고는 조철봉이 입맛을 다셨다.

“와이프가 곧 숙진씨를 사기로 고소할 것 같습니다.

간통에다 사기를 함께 묶어서 말이지요.”

“세상에, 정말….”

진이 다 빠진 숙진이 입술만 달싹이다 앞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새 두눈에 물기가 가득 번졌다.

그때 조철봉이 숙진 옆으로 조금 다가섰다.

“해결책은 있습니다. 내가 하태호씨하고 상의를 했는데요….”

길게 숨을 뱉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하태호씨는 3억원 정도는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군요.

요즘 재정상태가 말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래서….”

조철봉이 숙진의 선이 고운 옆 얼굴을 똑바로 보았다.

“숙진씨가 나머지 2억원을 준비할 수 있습니까?

돈만 갖다주면 손쓰기가 쉬워질텐데.”

 

 

 

 

오숙진편(23)

 

한동안 초점없는 시선으로 앞쪽을 바라보던 숙진이 입을 열었다.

“일만 해결된다면요.”

“문제는 돈입니다.

돈을 갚아주면 간통사건은 물증이 없으니까 그쪽도 억지를 부리지 못할겁니다.”

“확실할까요?”

“그건 내가 책임을 집니다. 내가 직접 그 여자를 만나 각서라도 받아낼테니까요.”

“정말 미안해서 어떡해요.”

그때서야 제 정신이 돌아온듯 숙진의 눈밑이 붉어졌다.

주위는 산 그늘에 덮여 어두워져 갔지만 숙진의 얼굴윤곽은 오히려 선명하게 드러났다.

몸을 반쯤 돌린 숙진이 조철봉을 정면으로 보았다.

“내일 2억 만들어서 드릴게요.”

“그럼 하태호씨를 만나서 해결하지요.

그동안 숙진씨는 여기 계십시오. 이삼일이면 끝날겁니다.”

가슴을 편 조철봉이 얼굴을 펴고 부드럽게 웃었다.

“하태호씨 와이프가 용역회사 사람들한테 일을 맡긴 것 같다고 그러더군요.

그러니까 하태호씨한테 연락을 하시거나 만나면 안됩니다.”

“제가 무엇 때문에.”

눈을 치켜뜬 숙진이 진저리를 치는 시늉을 했다.

“제가 그 인간한테 왜 연락을 해요?”

호텔 밖 한정식집에는 가족 손님들이 많았고 수지 또래의 아이들도 여러명이어서

당연히 소란스러웠다.

테이블 사이로 달리거나 소리를 지르는 아이들을 둘러보던 조철봉의 시선이

수지에게로 옮겨졌다.

수지는 얌전히 앉아 인형의 머리를 빗질해주는 중이었다.

“수지 교육을 잘 시키셨습니다.”

“애가 수줍음을 많이 타서요.”

숙진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때 수지 또래의 사내아이 하나가 맹렬하게 달려와 조철봉의 옆을 지났다.

그러나 그순간 두 다리를 하늘로 쳐들고 넘어져 옆 테이블 다리를 들이받았다.

조철봉이 슬쩍 다리를 걸어버린 것이다.

식당안은 떠나갈듯한 울음소리가 났고 아이의 어머니로 보이는 여자가 허둥지둥 달려왔다.

“저런, 다치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네.”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앉은 채로 혀를 찼다.

“바닥이 미끄러운 모양이군요.”

마침 산채정식이 나왔으므로 조철봉은 자리를 고쳐앉았다.

“아이구, 이거 찬이 많네요.”

마침 콘도에 빈방이 남아 있어 조철봉은 숙진의 아래층 방을 빌려 여장을 풀 수 있었다.

여장이래야 코트만 벗어놓고 나왔을 뿐이었으나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조철봉은 자신의 밝은 분위기가 숙진에게 전염되고 있다는 것까지 눈치챘다.

반주로 시킨 소주 두병을 다 비우고 식당을 나왔을 때는 저녁 7시 30분이었다.

콘도 입구로 셋이 나란히 들어가면서 숙진은 세번이나 조철봉을 힐끔거렸다.

숙진도 소주를 반병쯤이나 마셨다.

“들어가 쉬세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조철봉이 부드러운 시선으로 숙진을 보며 말했다.

“저는 방에서 한잔 더 할려고요.”

숙진이 머리만 숙여 인사를 했는데 술기운 때문인지 두 볼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숙진과 수지가 엘리베이터에 올랐을 때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그러고는 로비의 빈 소파로 다가가 앉아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들었다.

오늘 섹스 파트너인 하영옥과 만날 약속이 있었다.

하영옥이 전화를 받자 조철봉은 가늘게 말했다.

“아, 나, 여기 병원인데, 몸이 아파서.”


 

오숙진편(24)

 

 

벨소리가 울린 것은 그날밤 10시 30분이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은 탁자위에 벌여놓은 술병과 안주를 확인했다.

소주 네병이 놓여 있었지만 세병은 주방 개수대에다 쏟아 버렸고

나머지 한병도 반만 남겨 놓았다.

술은 한방울도 안마신 것이다.

조철봉이 문을 열자 오숙진은 얼른 시선을 내렸는데 아까 차림 그대로였다.

“혼자 술 드신다고 해서요, 제가.”

“들어오시지요. 몸은 피곤한데 잠이오지 않네요.”

비껴선 조철봉이 부드럽게 웃었다. 탁자로 다가간 숙진이 눈을 둥그렇게 떴다.

“어머, 벌써 이렇게.”

“그런데 취하지가 않아서요.”

숙진에게 자리를 권한 조철봉이 잔에 소주를 따라 권했다.

“한잔 드시지요.”

“제 주량은 맥주 한병인데.”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숙진은 잔을 들었다.

그러나 아직 긴장은 덜 풀린 것처럼 보였다.

스커트 밑으로 드러난 두 무릎은 꼭 붙어있었고 상반신은 반듯했다.

술잔을 든 조철봉의 시선은 숙진의 어깨 부분에서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았다.

이미 일은 성사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 느긋해져서 다음 단계가 명료하게 떠올랐다.

한모금 소주를 삼킨 조철봉이 머리를 흔들고 숙진을 보았다.

“술을 마실수록 오늘은 머리가 맑아지니 이상하네요.”

“너무 많이 드셨어요.”

“그래서 생각난김에 말씀 드리는데.”

정색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내가 이렇게 나서는 것을 오해하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혹시 무슨 속셈이 있는가 하구요.”

“아니, 저는 전혀.”

당황한 숙진이 술잔을 내려놓다가 과자봉지에 걸려 술이 엎질러졌다.

숙진은 휴지를 찾느라 두리번 거리고 조철봉은 재빨리 손수건으로 술을 닦았다.

몸을 굽힌 조철봉은 바로 눈앞에 떠있는 숙진의 가슴을 보았다.

재킷 틈사이로 드러난 뽀얀 피부와 젖가슴 윗부분의 계곡까지가 선명했다.

숨을 들여마신 조철봉은 향수 냄새에 섞인 체취를 맡고 냄새를 오래 간직하기 위해서

숨을 멈췄다.

“그런 말씀 마세요. 철봉씨.”

숙진이 겨우 말하자 철봉은 의자에 등을 붙이고 막혔던 숨을 뱉았다.

씁쓸하게 웃었다.

“뭐, 일이 잘 끝나면 차나 한대 팔아주십시오. 솔직히 저는 자동차 영업사원이니까요.”

“내일 당장에 계약 할게요.”

“부끄럽습니다.”

길게 한숨을 뱉은 조철봉이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저는 숙진씨를 순수한 마음으로 도와드리는줄로 스스로도 착각했었습니다. 그런데.”

어금니를 물었다 푼 조철봉의 목소리가 더 낮아졌다.

“그런데 얼핏 얼핏 숙진씨와 자동차 계약이 연결되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부끄럽고 화가 납니다.”

“아녜요. 철봉씨.”

“숙진씨를 아무런 이해관계가 없는 상태에서 만났더라면.”

조철봉이 머리를 떨구고 내린 시야 안으로 숙진의 분홍빛 스커트가 펄럭이는 것이 잡혔다.

숙진의 손이 어깨위에 부드럽게 느껴졌다.

“왜 그렇게 자책만 하세요? 왜?”

숙진의 목소리는 조금 갈라져 있었다.

“자신감을 가지세요. 철봉씨.”

“미안합니다.”

조철봉은 손을 뻗어 숙진의 허리를 힘없이 안았다.

침이 저절로 넘어갔다. 

 

 

 

오숙진편(25)

 

자리에서 일어선 조철봉은 숙진의 허리를 두팔로 안았다.

숙진은 조철봉의 목을 감아안았고 아마가 바로 입술에 닿았다.

조철봉의 입술이 다가온 순간 숙진은 눈을 감았다.

숙진의 입술에서 옅은 신맛이 났다.

입술을 헤집으며 들어서자 곧 숙진의 말랑한 혀끝이 잡혔다.

조철봉은 입술을 붙인 채 숙진의 재킷 단추를 차근차근 풀었다.

재킷이 벗겨져 바닥에 떨어졌고 브래지어의 훅을 풀어 내리는 동안

숙진의 손이 조철봉의 바지 혁대를 잡았다.

조철봉은 숙진의 스커트 지퍼를 끌어내렸고 숙진은 조철봉의 바지를 벗겼다.

둘은 부둥켜 안은 채로 침대로 다가갔다.

숙진은 서둘렀고 조철봉은 오히려 한박자 늦추었다.

조철봉의 입술이 젖가슴에서 아랫배를 거쳐 밑으로 내려왔을 때

숙진은 참지 못하고 신음을 뱉었다.

조철봉의 어깨를 잡아당겨 올리려는 시늉을 하면서 보채는 듯한 탄성을 질렀다.

여자가 서두를수록 늦추어라,

이것은 섹스 테크닉의 사부 하영옥에게 강의료로 땀을 몇리터나 바치고서 터득한 교훈이다.

마침내 숙진은 더 이상 참지못하고 온몸을 미친 듯이 비틀면서 절정에 다다랐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늘어뜨리며 풀무처럼 숨을 뱉었을 때 조철봉은 다시 애무를 시작했다.

두번째의 절정은 더 강해질 것이었다.

숙진이 깨어났을 때는 새벽 두시였다.

온몸의 기운을 말끔히 소진시킨 후에 깜박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지만 숙진의 눈빛은 맑았다.

차에 비유한다면 마치 새 엔진오일을 갈아넣은 상태라고 해도 될 것이다.

 

“어머, 몇시예요?”

 

물으며 침대 끝의 탁자에 놓인 전광시계를 보고 숙진은 알몸으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부끄러운 듯 시트로 가슴을 가리더니

창가의 의자에 앉아있는 조철봉에게 눈을 흘겼다.

 

“벌써 두시나 되었네, 깨워주시지 않고.”

 

“너무 곤하게 주무시기에.”

 

팬티 차림의 조철봉이 일어서더니 방바닥에 흩어진 숙진의 옷가지를 주워 건넸다.

 

“조금 전에 숙진씨 방 앞에 다녀왔어요.

조용한 걸 보니까 수지는 자고 있는 것 같던데.”

 

“그래요? 고마워요.”

 

마음이 놓인 듯 숙진의 손놀림이 차분해졌다.

 

“돌아앉아요. 내가 훅 채워줄게.”

 

브래지어를 걸치려는 숙진에게 다가간 조철봉이 말했다.

 

“숙진씨 자는 모습을 보고 있었어요.”

 

훅을 채우면서 조철봉이 숙진의 벗은 어깨와 등에 입술을 붙였다.

 

“당신은 몸도 마음도 아름다운 여자요.”

 

“철봉씨.”

 

몸을 돌린 숙진이 조철봉의 목을 두팔로 안았다.

 

“저, 정말 행복했어요. 이렇게 행복한 것은 처음이에요.”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뻔히 알고 있었지만 조철봉은 모르는 척 눈을 끔벅이며 숙진을 보았다.

 

“그래요. 나도 숙진씨와 이렇게 같이 있는 것이 행복해요.”

 

대충 옷을 챙겨입은 숙진이 방을 나가려다 다시 몸을 돌려 조철봉을 보았다.

 

“내일 몇시에 가실 거죠?”

 

“아침 먹고 바로.”

 

“그럼 같이 아침 먹어요.”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다가가 숙진의 허리를 안았다.

 

“내일 중으로 다 끝낼테니까 걱정말고 푹 쉬어요.”

 

숙진도 조철봉의 목을 안고는 빈틈없이 안겨왔다.

 

“그리고 우리 다시 만나는 거죠?”

 

 

 

오숙진편(26)

 

 

“당신, 그여자 전화번호를 대.”

와이프는 눈을 치켜 뜨며 말했고 하태호는 입맛을 다셨다.

“누구 말이야?”

“누군 누구야? 모텔에 같이 들어간 년 말이야. 어서 대.”

바짝 다가선 와이프를 피해 태호가 한 걸음 물러섰다.

“이 여자가 정말, 그 사진 조작된 것이라니까,

어느놈이 공갈을 치려고 보낸 것이란 말이야.”

아침 8시 반이 넘어서 대학에 다니는 두딸은 이미 집을 나가고 없었다.

태호도 목소리를 높였다.

“그래서 검찰에 있는 후배한테 상의했더니

사무실 전화기에다 녹음장치를 붙이라고 해서 붙였고,

편지나 물건이 배달되어 오면 즉시 연락을 하도록 조치를 했단 말이야.”

와이프가 한풀 꺾인듯 크게 뜬 눈만 깜박거리자 태호는 순발력있게 밀고나갔다.

“내가 왜 그런지 알겠지? 내가 떳떳하기 때문이란 말이야,

내가 진짜 그런 짓을 했다면 검찰에 있는 후배한테 상의했겠어? 천만에.”

태호가 상기된 얼굴로 와이프를 노려보았다.

“당신이 기어이 사진을 내놓지 않는다니 할수없지만 후배는

그 사진이 조작된 것인지를 한 시간이면 밝혀낼수 있다고 했어.

“흥, 증거를 없애려고.”

와이프가 코웃음을 쳤지만 기세는 많이 죽었다.

재킷을 걸친 태호가 내뱉 듯이 말했다.

“쓸데없이 전화질해서 그놈들의 술수에 넘어가면 안된단 말이야.

이럴때일수록 서로 믿고 난관을 헤쳐나가야지, 이거 원.”

“내가 무슨 전화를 했다고 그래?”

뒤쪽에서 와이프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태호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망할년이 끝까지 안 믿는군.”

태호는 혼잣말로 투덜거렸지만 오늘 아침의 승부는 이쪽의 판정승이었다.

계속 이런 방향으로 밀고 나가야만 할 것이다.

차의 시동을 건 태호의 얼굴이 다시 어두워졌다.

사태가 커질 가능성도 많다.

모텔 현관에서 오숙진과 사진에 찍혔다면 침실 장면으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그때는 절망이다.

조작되었다고 길길이 뛰어도 눈이 뒤집힌 와이프는 제가 나서서 확인하려고 들테니까.

쓴 웃음을 지은 태호는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그러고보면 와이프도 제법 세련되었다.

오숙진이란 이름이 내 입에서 나오길 노리며 자꾸 그년이 누구냐고 묻지 않는가?

제가 직접 전화까지 했으면서 말이다.

사무실로 들어가자 비서 미스정이 방으로 따라왔다.

“사장님, 조과장이란 분한테서 조금전에 전화왔습니다.”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듯했다. 태호가 시선을 들자 미스정이 말을 이었다.

“곧 다시 전화를 하신다고.”

“알았어.”

미스정이 방을 나가자마자 바로 전화벨이 울렸다.

태호는 숨을 깊게 마셨다.

벨이 세번 울리기를 기다린 후 전화기를 들었다.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조철봉입니다.”

“아, 그래, 웬일로.”

“별일 없으시죠?”

“예, 아직은, 하지만.”

“사모님도 진정이 되신것 같습니다. 이젠 전화를 하지 않으시더군요.”

“아, 그래요, 그래서 오늘도.”

“놈들이 장난을 치려다가 겁이 난 모양입니다. 그런 경우가 많지요.”

조철봉의 부드러운 목소리에 태호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오숙진편(27)

 

오후 3시반이 되었을 때 조철봉은 광화문 사거리 근처에 있는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대형 유리창을 통해 이미 조철봉이 사거리를 건너올 때부터 보고 있던 최갑중이 손을 들었다.

 

“형님, 여기요.”

 

갑중의 옆에 다소곳이 앉은 김지연은 눈웃음만 쳤는데 매끈한 피부의 빼어난 미인이다.

 

“으음, 그림 좋구나.”

 

앞자리에 앉은 조철봉이 둘을 번갈아 보며 웃었다. 둘은 애인 사이인 것이다.

 

“식은 언제 올리기로 했다구?”

 

“다음달 20일이니까 꼭 한달 남았어요.”

 

지연이 대답했다.

 

“그땐 꼭 와 주셔야 돼요.”

 

“그야 당근이지.”

 

조철봉이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였다.

 

“내가 너희들 둘한테 다 축의금을 내줘야 정상인데 오늘 한꺼번에 주지.”

 

그리고는 조철봉이 들고온 비닐백을 그들 앞에 내려놓았다.

 

“현금으로 이천 들어있다. 필요한 곳에 써라.”

 

“아이구, 이렇게 많이.”

 

눈을 둥그렇게 뜬 갑중이 침을 삼켰으나 지연은 침착했다. 그러나 맑은 눈이 더 반짝였다.

 

“그럼, 일은 다 끝난건가요?”

 

지연이 묻자 조철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다 끝났다.”

 

“오숙진한테서만 뜯어내신 겁니까?”

 

이번에는 갑중이 물었다.

 

“그래, 오숙진한테서만. 하태호는 위험하다.

그쪽까지 건드리면 둘이 상황을 맞춰볼 가능성이 많아.”

 

“그렇지요, 역시 형님은,”

 

감탄하듯 갑중이 머리를 끄덕였을때 지연이 비닐백을 집어 제 발밑에 내려놓더니

조철봉을 향해 허리까지 굽히고 인사를 했다.’

 

“잘 쓰겠습니다, 선생님.”

 

“잘 살아야 돼.”

 

“일 있으면 언제라도 불러주세요.”

 

숙진에게 하태호 와이프 행세를 하며 전화로 악다구니를 뱉은 것은 지연이다.

물론 갑중의 몫도 있었지만 전화 세통을 하고 거금 이천만원을 챙겼으니

지연의 얼굴은 환하게 밝아졌다.

 

“형님, 그럼 저희들은.”

 

엉거주춤 자리에서 일어선 갑중이 지연의 어깨를 슬쩍 건드렸다.

그는 조철봉이 숙진한테서 얼마를 뜯어냈는지 묻지 않는다.

그것은 불문율이라기보다 조철봉을 그만큼 신뢰하고 있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룸살롱 출신의 지연은 영리한 데다 순발력도 뛰어나서 이제까지

세번 일을 시켰는데 모두 깨끗하게 처리되었다.

둘이 커피숍을 나갔을 때 조철봉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다.

 커피숍 안에는 조용했다. 다이얼을 누르고 신호음이 세번 울렸을 때

오숙진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맑았지만 초조한 분위기가 섞인 목소리여서 조철봉은 숨을 들이마셨다.

 

“숙진씨, 일 잘 끝냈습니다.”

 

“네에, 그래요?”

 

“내가 직접 하태호씨 부인을 만나 앞으로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각서를 받았습니다.

아직 의심은 풀리지 않은 눈치였지만 하태호씨가 돈을 다 돌려준 터라 시비는 걸지 못하더군요.”

 

“잘 하셨어요.”

 

“액땜한 것으로 치시고 이젠 서울로 돌아오시지요. 그리고 얼른 잊으셔야죠.”

 

“정말 고마워요, 철봉씨.”

 

“보고 싶습니다.”

 

통화를 끝낸 조철봉은 퍼뜩 고개를 들더니 다시 전화기를 켜고 다이얼을 눌렀다.

그리고 기운차게 말했다.

 

“아, 소장님, 접니다. 내일 크로나 한 대 계약합니다.”

 

 

 

 

오숙진편(28)

 

 

“저기 있네요.”

여자가 손끝으로 가리키는 곳에 영일이 있었다.

유아 영어학원의 중급반이었으니 초급을 뗀것인가,

아니면 더 어린애들도 있기 때문인지 알수 없었지만

빌딩의 2개층을 사용할만큼 영어학원은 성황이었다.

지금은 휴식시간으로 복도로 나온 아이들의 소음이 마치 닭장속 같았다.

영일은 또래의 사내아이와 마주보고 서서 손에 쥔 전자 장난감을 조작하는 중이었는데

 표정이 진지했다.

위로 쳐올린 뒷머리카락 속의 흰 피부가 앙증맞았고 긴 목은 추워 보였다.

조철봉은 복도의 벽에 기대서서 7∼8미터 앞의 영일을 우두커니 바라보았다.

주위로 아이들이 몰려 지나갔다.

 선생들이 바쁘게 오갔지만 이 쪽에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자주 오지 않겠다고 볼때마다 스스로 다짐했으나 그때 뿐이다.

그런데 저놈은 볼때마다 새롭고 질리지 않는 것은 무슨 영문인가?

“나좀 봐요.”

바로 뒤쪽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조철봉은 놀라 몸을 돌렸다.

서경윤이다.

눈을 크게 뜬 서경윤의 얼굴은 전보다 살이 약간 올라 있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

숏컷한 머리에 진주 귀고리를 했고 옅은 분홍빛 루즈도 바르고 있었다.

“이야기 좀 해요.”

경윤이 몸을 돌렸다.

조철봉은 그제야 막힌 숨을 뱉아내었다.

그들이 멈춰 선 곳은 빌딩 현관옆의 주차장이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아서 주위는 한산했다.

차량 사이의 빈 틈에 선 경윤이 조철봉을 똑바로 보았다.

“여기 왜 온거죠?”

“아, 그야.”

“영일이를 내가 맡을적에 약속했었죠? 나타나지 않겠다고.”

“그랬던가?”

머리를 기울였던 조철봉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렇게 원수 대하듯이 하지 말자구.”

“있죠.”

갑자기 한쪽 입술끝을 올린 경윤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상처는 무디어진다는 말, 들은적 있죠?”

“어느놈이 한말인데?”

“그런데 당신은 정 반대야.

시간이 지날수록 당신과의 생활을 생각하면 진저리가 나.”

“그놈이 연장에다 뭘 끼고 해주나?”

“당신은 진심이라고는 없는 인간이야. 다 가면이라구.”

경윤이 검지 끝으로 철봉을 가리키며 까닥까닥 흔들었다.

“한번도 진심을 가져보지 못한 인간, 거짓과 위선으로만 뭉쳐진 인간.”

“연구를 꽤 했구나.”

“얘를 찾아 오는것도 아마 제 가슴을 가라앉히려는 계산이 있거나

눈에 익혀두고 나중에 이용하려는 속셈일지도 모르지, 내 말이 맞지?”

“니 남편 차 바꿀때 되지 않았어?”

정색한 조철봉이 피우던 담배를 땅바닥에 던지고 경윤을 보았다.

“이번에 고급형 크로나가 나왔는데, 광고에서도 봤겠지만.”

“꺼져.”

“간통을 한것은 너였어.”

“넌 날 사랑한 것이 아냐. 날 이용하기 위해서 결혼한 것이라구.”

“지가 무슨 재벌 딸이라구. 7천짜리 전세값 하나 들고 오고서는.”

“넌 방울 두쪽만 차고왔지.”

그때 학원 안에서 벨소리가 났다.

그들은 말을 멈췄다.

학원을 올려다본 조철봉이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50킬로그램짜리 쓰레기봉지 값이 얼만가?”

 

 

오숙진편(29)

 

하영옥과 여자 하나가 라운지로 들어섰다.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서 말했다.

 

“기다렸지?”

 

짙은 남빛 투피스 정장 차림의 하영옥은 잔뜩 멋을 내었지만

옆에 선 여자는 상대적으로 옷차림은 물론이고 용모도 별로였다.

여자가 자기보다 예쁜 친구를 데려올 확률은 8개짜리 복권에 당첨될 확률보다도 낮을 것이다.

복권은 운이 좋으면 되지만 이 경우엔 아예 고의적으로 비틀기 때문에 운도 소용없다.

 

“얜, 조윤희야. 나하고 제일 친한 친구.”

 

앞쪽에 나란히 앉은 영옥이 친구를 소개했다.

 

“안녕하세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조철봉이 웃음띤 얼굴로 윤희를 보았다.

둥근 얼굴에 둥근 어깨. 허리도 퍼졌다.

화장발이 받지 않아서 얼굴만 하얗고 턱 아래부터는 황갈색이다.

아주 평범한 아줌마 분위기였고 어두운 나이트클럽 안에서도

부킹이 제대로 되지가 않을 타입이었다.

 

“오늘은 얘하고 같이 나왔으니까 12시까지만 들어가면 돼.”

 

들뜬 표정의 영옥이 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8시20분. 나이트에 들어가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조철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 그럼 가실까요?”

 

영옥은 오늘 자신의 친구를 소개시켜 준다고 했지만 속셈이 뻔했다.

친구를 핑계삼아 외출해서 조철봉과 즐기려는 작정이니

남편과 조철봉 양쪽을 다 속인 것이다.

나이트클럽은 라운지 바로 아래층이어서 그들은 계단으로 걸어 내려갔다.

 

“어서 오십시오.”

 

문에서 기다리고 있던 낯익은 웨이터가 휴대용 무전기로 조철봉의

단골웨이터를 불러주었다.

 

“여기 처음이신가요?”

 

칸막이가 있는 뒤쪽 좌석에 앉으면서 조철봉이 윤희에게 물었다.

그는 중앙에 앉았고 좌우에 영옥과 윤희를 공평하게 앉혔다.

윤희가 머리를 끄덕였다.

 

“네, 처음이에요.”

 

금요일이어서 클럽 안은 이미 손님이 반이상 채워졌는데 남자가 많았다.

 여자의 주가가 뛰는 날이다.

 

“부킹시켜.”

조철봉이 술을 날라온 웨이터에게 턱으로 영옥과 윤희를 가리키며 말했다.

“물 좋은날 실컷 뛰라구.”

“어머나, 내가 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옥은 들뜬 표정이었다.

플로어에는 이미 찐하게 엉킨 남녀들이 흐느적거렸고 웨이터들이 분주하게 오갔다.

여자가 부족한 상황이라 다른 웨이터들도 다가와 조철봉의 눈치부터 보았다.

그럴 때마다 조철봉은 머리를 끄덕였다.

양주와 맥주를 시켜놓고 조철봉이 폭탄주를 석잔 마시는 동안

영옥은 두번 플로어에 나갔다 들어왔다.

그러나 윤희는 춤을 추지 못한다면서 맥주만 마셨다.

영옥이 세번째 남자를 만나 플로어로 나갔을 때였다.

조철봉이 정색하고 윤희를 보았다.

 

“우리, 올라갔다 오지 않을랍니까?”

 

“어딜요?”

 

“위층에.”

 

조철봉이 눈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클럽빌딩의 2층부터는 호텔이다.

 

“아마 영옥씨는 30분은 걸릴 겁니다.

돌아와서 우리가 없는 걸 보면 춤을 추러 나갔다고 생각하겠지요.”

 

술잔을 내려놓은 조철봉이 탁자 밑으로 윤희의 무릎을 움켜쥐었다.

“옆쪽 비상계단으로 올라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됩니다. 방 열쇠를 가져 올까요?”

 

윤희가 가만히 있었으므로 조철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져오지요. 같이 올라가기가 부끄러우시면 키를 갖고 먼저 올라가세요.”

 

 

 

오숙진편(30)

 

계단을 올라 호텔 프런트에서 키를 받아 내려오는데 걸린시간은 5분도 안됐다.

“607호실입니다.”

윤희의 옆에 다시 앉은 조철봉이 탁자밑으로 키를 건네주었다.

“계단 옆쪽 엘리베이터를 타면 됩니다.”

 

키를 윤희가 받아들자 조철봉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자, 어서요.”

조철봉이 정색하고 재촉하자 윤희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이트엔 이제 손님이 가득찼고 플로어에도 공간이 없어서

부둥켜안은 남녀들은 허리만 흔들고 있을 뿐이다.

영옥은 플로어에 끼어 있거나 아니면 남자테이블로 옮겨가서 히히덕거리고 있을 것이다.

윤희가 떠난지 정확히 5분이 되었을때 조철봉은 담배만 집어들고 일어섰다.

지금쯤 윤희는 호텔방안에서 앉지도 못하고 서성대고 있을 것이 틀림없었다.

벨을 누르자마자 금방 문이 열렸는데 윤희는 시선도 마주치지 못하고 비껴섰다.

방으로 들어선 조철봉은 차분하게 문의 자물쇠를 채운 후에 돌아서면서

바로 뒤쪽에 엉거주춤 서 있는 윤희의 허리를 안았다.

조철봉의 입술이 다가오자 윤희가 상체를 뒤로 젖히면서 두손으로 가슴을 밀었다.

“싫어요, 루즈 묻어요.”

“지우면 돼요.”

“루즈 가져오지 않았어요.”

다시 칠할 루즈가 없다는 말이었으며 맨 입술로 돌아가면 표시가 난다는 뜻이었다.

머리를 끄덕인 조철봉이 허리를 감은 손을 돌려 스커트의 지퍼를 풀었다.

“그럼 샤워할 필요도 없도록 간단하게 끝냅시다.”

윤희는 스커트가 벗겨지는 동안 가만 있었다.

스커트가 벗겨졌고 팬티 스타킹이 팬티와 함께 끌려내려져 윤희의 한쪽발에만 걸쳐졌다.

윤희가 발을 흔들어 뭉쳐진 스타킹을 신발과 함께 벗어던졌다.

조철봉도 바지 혁대만을 풀고 팬티를 내렸다.

“뒤에서 할테니까.”

침대쪽으로 윤희를 밀면서 조철봉이 말했다.

 

“그래야 화장품이 묻지 않지.”

침대로 밀린 윤희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침대에 두손을 짚고 엎드렸다.

방안의 불을 환하게 켜놓아서 윤희의 희고 큰엉덩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윤희의 다리를 거칠게 벌린 조철봉은 바로 삽입했다.

그순간 윤희가 굵고 높은 신음을 뱉어 내었으므로 조철봉의 가슴은 철렁내려 앉았다.

윤희의 샘물은 이미 가득차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채 5분도 지나지 않아서 윤희는 침대 시트를 쥐어 뜯으면서 절정에 다다랐다.

온몸을 굳히고 하체를 떨면서 자꾸 침대 속으로 파고들려는 몸짓을 했는데

그렇게도 조심하던 얼굴의 화장은 시트에다 비벼버렸다.

윤희의 떨림이 그치기를 기다려 조철봉이 상반신을 굽히고 물었다.

“더 해도 돼?”

신음소리를 뱉던 윤희가 금방 머리를 끄덕였으므로 조철봉은 다시 시작했다.

그리고 조철봉이 허리를 편 것은 그로부터 10분쯤 후였다.

마치 죽을 것같이 신음을 뱉어내던 윤희는 침대에 엎어진 채 늘어져서 꼼짝하지 않았다.

화장실에 다녀온 조철봉이 서둘렀다.

“딱 30분 지났어. 일어나.”

조철봉이 윤희의 풍만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두드렸다.

“당신 괜찮군 그래. 시간만 더 있다면 좋았을텐데.”

“나 조금만 쉬었다 갈게.”

윤희가 앓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10분만, 지금은 움직이지 못하겠어.”

담배를 꺼낸 조철봉은 쓴 웃음을 지었다.

오늘 서경윤을 만나서 받은 스트레스는 이것으로 풀었다.
 

 

 
 

오숙진편(31)

 
 
다음날 오전 10시30분이 되었을때 조철봉은 에덴클리닉의 사장실로 들어섰다.

“어서오세요.”

오숙진이 환한 표정으로 맞았는데 조철봉이 두팔만 벌렸다면 품안으로 안겨올 분위기였다.

“잘 끝나서 다행입니다.”

정색한 조철봉이 바로 의자에 앉아 숙진은 조금 머쓱한 표정으로 앞에 앉았다.

“철봉씨 덕분이에요.”

“여기 각서 받으세요.”

조철봉이 탁자 위로 접혀진 종이를 내밀었다.
최갑중의 약혼녀 김지연이 정성들여 쓴 각서였다.

“이제 전화 올일도 없을겁니다. 마음 푹 놓으시고.”

“고마워요.”

종이를 펴고 각서를 읽은 숙진이 어깨를 늘어뜨렸다.
이것으로 사건은 해결된 것이다.

“그런데 참.”

숙진이 생각났다는 듯이 머리를 들었다.

“차 계약서 가져오셨죠?”

“그거야 언제나 갖고 다닙니다만.”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숙진을 보았다.

“무리 하시는 것 아닙니까? 이번에 큰 돈이 나갔는데.”

“괜찮아요.”

얼굴을 펴고 웃은 숙진이 손을 내밀었다.

“어서 주세요. 계약서. 현찰로 구입할수도 있어요.”

“나한테 사례하는 의미로 그러신다면 계약 안할겁니다.
숙진씨가 안해도 난 실적이 좋으니까요.”

“차는 바꿔야겠다고 지난번부터 이야기 했었잖아요?”

“그렇다면.”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손가방 안에서 계약서를 꺼내 탁자위에 놓았다.

“크로나 한대를 계약하면 수수료가 꽤 떨어집니다. 내가 한잔 사지요.”

“그래요, 한잔 사주세요.”

숙진이 다시 웃더니 계약서를 대충 읽고는 서명을 했다.
 7000만원이 넘는 고급형을 계약한 것이다.

“오늘 돈 입금시켜 드릴께요.”

“번호판까지 붙여서 내일 가져다 드리지요.”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섰을때 따라 일어선 숙진이 바짝 다가섰다.

“안아줘요.”

“이런.”

쓴웃음을 지은 조철봉이 숙진의 허리를 당겨 안고는 가볍게 입을 맞췄다.

“오늘 저녁에 시간 있어요?”

입술을 떼었을때 숙진이 뜨거운 숨을 조철봉의 턱끝에 뱉으며 물었다.

“우리집에 오셔도 되는데. 친정엄마가 시골 가셨거든요.
가정부는 집에 다녀오라고 하면 되고.”

“난 얼굴이 두껍지가 못해서. 그리고.”

조철봉이 숙진이 엉덩이를 움켜 쥐었다.”

“딸아이한테 나쁜 기억으로 남게 될지도 모르니까 조심하고 싶은데.”

“그래요. 그럼 밖에서 만나요.”

몸을 빈틈없이 붙인 숙진이 상기된 얼굴로 말했다.

“철봉씨 말이 맞아요.”

에덴클리닉을 나온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스모그로 덮인 하늘은 환자의 얼굴색처럼 부옇게 흐렸고 폐 안으로
 매연이 들어왔으나 기분은 상쾌했다.
이것으로 오숙진 작전은 종결이다.
물론 AS차원에서 가끔 만나 오숙진의 몸에 오일교환은 해줘야 할것이다.

“내가 진심이 없다고 하셨나?”

문득 서경윤의 말을 떠올린 조철봉이 거리를 둘러보며 히죽 웃었다.
옆을 지나던 남녀가 그를 보고 시선을 주고 받는다.
조철봉이 다시 혼잣말을 했다.

“내가 오숙진이 앞에서 얼마나 진지했는지 그 장면을 보여주고 싶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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