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5. 정상을 향하여 (11)~(20)

오늘의 쉼터 2014. 7. 20. 11:26

 

 

5. 정상을 향하여 (11)~(20)

 

 

정상을 향하여 (11)

 

 

 

밴의 뒷좌석에 기대앉은 부용은 핸드백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차고 안은 조용해서 자신의 숨소리까지 들렸지만 바로 머리 위에서는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었다.

담배연기를 내뿜은 부용은 팔목시계를 보았다.

7시 10분전이다.

논현동 황수남의 저택 차고에 들어왔을 때가 6시50분이었으니 20분이 지났다.

오석규는 역시 용의주도한 사내였다.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지금쯤 여럿과 함께 있으면서 알리바이를 확보해 놓는 한편으로

부하들과 자신을 서로 감시하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부용이 다시 팔목시계를 보았을 때 안채로 통하는 문이 열리면서 어깨에 자루를 멘 사내가

차고로 들어섰다.

금고를 연 것이다.

사내 하나가 또 들어서자 부용은 밴의 문을 열었다.

“연 모양이네.”

자루를 내려놓는 사내에게 부용이 환한 얼굴로 물었다.

“많이 들어 있어?”

“현금과 수표, 달러까지 합하면 자루 스무개도 모자랄 것 같습니다.”

두번째 자루를 내려놓던 사내가 대답했다.

“은행 금고 같아요. 엄청납니다.”

준비해간 자루는 스무개다.

사내들이 차고를 나갔을 때 부용은 심호흡을 했다.

황수남은 소문대로라면 성화 주식으로 300억원이 넘는 차익을 챙겼다.

집안 금고에 반만 넣어 놓았다고 해도 150억원이 되는 것이다.

사내들은 바쁘게 움직였다.

네명의 사내중에서 두목인 스포츠 머리가 감시를 하고 붕어눈이 금고의 돈을 쓸어 담으며

서열이 낮은 둘이 돈자루를 나르게 되어 있다.

그리고 부용은 차를 지킨다.

밴도 출발하기 수월하도록 입구쪽으로 돌려 놓았으니 차고 문만 열면 떠날 수 있다.

사내들은 처음에는 같이 왔지만 차츰 간격이 벌어지면서 불규칙해졌다.

밴에 자루가 16개 놓여졌을 때 부용이 사내에게 물었다.

“몇개나 남은 것 같아?”

“네개쯤. 방 하나를 아예 금고로 만들어서요.

벽으로 위장되어 있어서 밖에서는 표시도 나지 않습니다.”

지쳤지만 눈에 생기를 띤 사내가 보여주고 싶다는 얼굴로 말했다.

그때 다른 사내가 자루를 들고 차고로 들어섰다.

“앞으로 대여섯개 남았다.”

자루를 내려놓은 사내가 이제는 긴장이 풀린 듯 묻지도 않았는데 말했다.

“두번씩만 더 오면 돼.”

사내들이 다시 차고를 나갔을 때 부용은 밴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문으로 다가가 안에서 열쇠를 채운 다음 옆쪽 벽에 부착된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차고의 바깥문이 천천히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바깥 골목이 드러났다.

가로등이 비치는 골목길은 한산했다.

문이 다 올라갔을 때였다.

문 오른쪽에서 사내 하나가 미끄러지듯이 안으로 들어섰다.

불빛에 비친 사내는 조철봉이었다.

“어서.”

운전석 옆쪽 문을 열면서 부용이 서두르듯 말했다.

조철봉이 재빨리 운전석에 오르더니 꽂힌 키로 시동을 걸고 나서 핸드브레이크를 풀었다.

“차가 괜찮은데.”

차고를 나와 오른쪽으로 핸들을 꺾으면서 조철봉이 말했으나 긴장을 풀려는 허세여서

목소리가 딱딱하게 굳어져 있었다.

 30m쯤 골목을 서행하고나서 다시 우회전했을 때 길은 2차로로 넓어졌다.

가속기를 밟은 조철봉은 백미러를 보았다.

“강도의 물건을 훔쳐도 죄가 되는 건가?”

이제 조철봉의 목소리는 조금 풀렸고 부용은 대답 대신 크게 숨을 뱉었다.

 

 

 

(43)정상을 향하여 (12)

 

 

“우회전 해.”

수원 인터체인지를 지나 시내쪽으로 2㎞ 넘게 달렸을 때 부용이 네거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는 데만 한 시간이 걸리는 바람에 9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네거리에서 우회전을 한 조철봉은 이차로 도로 양쪽에 늘어선 신축 건물들을 보았다.

“10분쯤만 더 가면 돼.”

조철봉의 분위기를 알아챈 듯 부용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하더니 힐끗 시선을 주었다.

“우린 손발이 잘 맞았어. 그지?”

“지금까지는.”

황수남의 저택 차고의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30분 동안은 입안의 침이 다 말랐고

간이 졸아드는 느낌이었다.

거기에다 6시부터 골목 건너편에서 대기하고 있었던터라

기다린 시간은 한 시간 반이나 된다.

“내가 제일 걱정했던 건 그놈들이 차 키를 뽑아가는 것이었다.

그때는 꼼짝할 수가 없었을테니까.”

부용의 목소리가 밝아졌다.

차가 밀려서 톨게이트를 빠져나오는 한 시간여 동안 부용은 긴장해서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그리고 두번째는 차에 한 놈이 남아있지나 않을까 하는 것이었는데

돈자루가 스무개가 넘는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놓았지.”

“그래도 난 긴가민가 했어.”

앞쪽을 바라본 채 조철봉이 말했다.

“차를 지키는 일을 맡았다고는 했지만 감시를 벗어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야.”

“기회를 노리는 사람한테는 얼마든지 그 기회가 오는 법이야.”

“대단해. 당신은.”

“날 우습게 보았어. 오석규가.”

정색한 부용이 혼잣말처럼 말했지만 조철봉은 알아들었다.

그러나 못들은 체 뒤쪽의 백미러를 보았다.

“어쨌든 엄청난 돈이다, 저것이 쌀가마라고 해도 든든할텐데 다 돈이라니.”

“황수남은 신고도 못해. 그리고 오석규도.”

이번에는 발음도 또렷했으므로 조철봉이 부용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오석규가 누구야?”

“아진 회장. 이번 작전의 지휘자.”

자르듯 말한 부용이 손을 들어 우측의 샛길을 가리켰다.

“다 왔어. 샛길로 들어가.”

밴이 샛길로 우회전하자 앞쪽 일차선 도로 양쪽에 신축중인 건물들이

을씨년스럽게 나타났다.

어두웠다.

가로등도 없었다.

“저기 왼쪽 흰 건물로 들어가.”

라이트에 비친 흰색 3층 건물은 외벽에 흰 타일을 붙였으나 아직 창도 달지 않았고

건축자재가 앞쪽에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건물의 마당에 들어섰을 때 조철봉은 안쪽에 주차되어있는 트럭을 보았다.

뒤에 탑이 씌워진 1.5t짜리였고 옆에는 냉동회사 상표가 붙여져 있다.

“저 차에다 옮겨 실어야 돼.”

밴을 바짝 붙여 세웠을 때 부용이 억양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마 지금쯤 오석규가 사람을 사방에다 풀어놓았을 거야.”

“제법 용의주도하군.”

밴의 라이트와 엔진을 끈 조철봉이 어둠속에서 이만 드러내며 웃었다.

“해산물 냉동 트럭이라니.”

“여기 키 있어.”

부용이 키를 내밀었다.

“이거 옮겨 싣는데 힘깨나 들겠구만.”

차에서 내린 조철봉은 트럭으로 다가가 키를 꽂았다.

그때였다.

옆쪽 건물의 그늘에서 인기척이 들리더니 다가오는 사내의 윤곽이 드러났다.

그리고 그 옆에도 또 있다. 모두 세명이다.

 

 

(44)정상을 향하여 (13)

 

 

다가선 사내들은 조철봉을 둘러쌌다.

“당신들 누구야?”

트럭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물었으나 대답 대신 사내들은 바짝 다가섰다.

그 긴박한 순간에 조철봉은 앞쪽에서 울리는 엔진소리를 들었다.

다음 순간 라이트가 켜졌으므로 미간을 좁혔다.

부용이 차를 움직이는 것이다.

“야, 이것 봐.”

조철봉이 버럭 소리친 순간이었다.

옆쪽에서 날아온 주먹이 조철봉의 뺨을 스치고 트럭의 철판을 쳤다.

“아이고.”

사내가 앓는 소리를 질렀을 때 조철봉의 발끝이 옆쪽 사내의 사타구니를 차 올렸다.

묵직한 촉감과 함께 목구멍으로 헛바람 소리를 뱉으며 사내가 온몸을 오그렸다.

그러나 그 순간 반대편 사내가 내려친 쇠뭉치가 조철봉의 어깨를 쳤다.

“으윽.”

저도 모르게 신음을 뱉은 조철봉은 온몸을 던지듯이 사내에게로 덮쳐갔다.

마악 다시 쇠뭉치를 치켜들었던 사내는 눈을 부릅떴지만 늦었다.

조철봉의 이마에 콧잔등을 정통으로 박힌 사내가 뒤로 벌떡 넘어졌다.

“이 새끼.”

그 순간 조철봉은 뒤쪽에서 울리는 비명같은 고함소리를 들었다.

아직 중심을 잡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조철봉은 비틀려던 몸을 아예 땅바닥으로 굴렸다.

그 순간 등에서 얼음을 댄 것같은 느낌이 왔다.

칼에 베인 것이다.

몸을 굴린 조철봉은 손바닥으로 땅을 훑어 벽돌 한 장을 쥐었다.

그러고는 바짝 다가와 칼끝을 겨눈 사내의 면상을 향해 내던졌다.

“아이고”

일미터도 안되는 거리여서 벽돌에 얼굴을 맞은 사내가 떠나갈듯한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았을 때였다.

“형님!”

뒤쪽에서 외치는 소리가 울렸다.

그러나 몸을 일으킨 조철봉은 다시 땅바닥에서 벽돌 하나를 집어들고는

아직 꿈틀대는 사내 하나에게로 다가가 어깨를 내리찍었다.

“아이고오!”

이번의 비명은 겁에 질려 있었다.

“아이고!”

다시 두번째 사내의 무릎에 벽돌을 내리쳤을 때는 자지러지는 소리가 났다.

“형님!”

헐떡이며 다가선 사내는 최갑중이다.

그는 손에 길이가 일미터쯤 되는 쇠파이프를 치켜들고 있었는데

쓰러진 세 사내를 두번이나 훑어 보다가 늘어뜨렸다.

세명 모두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저 년은 아직 차에 있습니다.”

갑중이 소리쳤다. 조철봉은 시선을 입구쪽으로 옮겼다.

그곳에 밴이 세워져 있었다.

아직 라이트를 켜고 있어서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5톤 이삿짐 트럭이 환하게 드러났다.

밴은 트럭에 가로막혀 나가지 못한 것이다.

“어, 형님. 다치셨는데.”

다가선 갑중이 놀라 말했을 때 조철봉은 갑중의 손에서 쇠파이프를 빼앗아 쥐었다.

조철봉이 밴으로 다가갔을때 선팅이 된 운전석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 엔진은 켜져 있었고 밴의 라이트는 이삿짐 트럭의 차체에 바짝 붙어서

밀고 나갈 태세였다.

조철봉은 쇠파이프로 운전석 옆쪽의 유리창을 내리쳤다.

세번째 내리쳤을 때 유리창이 하얗게 부숴지면서 떨어져 버렸고 마악 옆쪽으로

몸을 비키는 부용의 모습이 드러났다.

조철봉은 문의 고리를 풀고는 안으로 들어가 후진 기어를 넣었다.

“야, 차를 안으로 끌고 와.”

다가온 갑중에게 소리쳐 말한 조철봉은 밴을 맹렬히 후진시켰다.

밴이 건물 바로 앞에서 멈췄을 때 조철봉이 부용을 보았다.

“넌 기회를 놓치고 똥 잡았어.”

 

 

(45)정상을 향하여 (14)

 

 

국도를 달리던 이삿짐트럭이 다시 용인 근처에서 샛길로 들어섰을 때는

밤 12시가 되어갈 무렵이었다.

“형님, 괜찮으시겠어요?”

운전석에 앉은 갑중이 몇번째인가 다시 물었을 때 조철봉은 머리만 끄덕였다.

그러나 어깨는 부어올랐고 칼에 베인 등에서는 피가 번져나와 끈적였다.

포장도 되어있지 않은 산길을 3킬로쯤 달린 트럭은 작은 야산 기슭의 민가 앞에서 멈춰섰다.

주위에는 풀숲만 무성한데다 골짜기 쪽에 박혀 있는 외딴집이다.

그리고 불도 켜지 않아서 마치 흉가같았다.

차에서 내린 갑중이 대문을 열어 젖혔다.

조철봉은 마당 안으로 주차시켰다.

“자, 내려.”

조철봉이 꼼짝하지 않고 앉아 있는 부용에게 말했다.

그는 이곳까지 부용을 끌고 오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부용이 차에서 내렸을 때 조철봉은 입술끝을 비틀고 말했다.

“역시 대단하군, 한마디도 변명을 하지 않는구나.”

민가는 단층 시멘트 건물로 집안이 어수선했지만 전기는 들어왔다.

응접실이 넓었고 방이 다섯개나 되어서 꽤 공을 들여 지은 집이었다.

“어이구, 형님. 많이 다치셨네.”

밝은 불빛에 비친 조철봉의 등을 본 갑중이 질겁을 하면서 다가왔다.

그러고는 너덜거리는 셔츠를 찢어내었다.

“우선 소독을 해야.”

갑중이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부용이 서둘러 주방쪽으로 다가갔다.

조철봉의 등은 어깨 밑에서 허리까지 비스듬히 베어졌고

아직도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 꿰매야겠는데.”

“깊게 벤 것 같지는 않아, 우선 닦고 상처를 묶어야겠다.”

“피를 많이 흘렸어요.”

“안죽어.”

그때 부용이 물에 적신 수건을 가져오더니 말없이 조철봉의 상처 주위를 닦았다.

조철봉이 머리를 들고 갑중을 보았다.

“이 여자가 다시 날 죽이지는 못하니까 넌 자루나 날라.”

“어, 독한년.”

다시 화가 치밀어 오르는듯 부용에게 눈을 치켜떠보인 갑중이 몸을 돌렸다.

“그 놈들 셋은 물론 밴에 돈자루가 가득 실려 있다는 건 모르고 있었겠지?”

앞쪽을 바라본 채 조철봉이 묻자 부용의 손길이 조금 늦춰졌다.

“날 뭘로봐? 그놈들은 당신이 냉동차 운전사인줄로만 알아.”

“냉동차 운전사를 죽이라고 청부한거냐?”

“죽이라고는 안했어. 사기꾼이니까 데려가 혼좀 내라고 했지.”

“그 사이에 너 혼자서 자루를 냉동차에 옮겨싣고 튈 작정이었어?”

“20분이면 돼.”

“그 사이에 내가 놈들을 설득해서 돌아온다면?”

“그럴리가.”

“무조건 패 죽이라고 했겠군. 어떤 말도 듣지말고 말이야.”

그때 상처를 다 닦은 부용이 마른 헝겊으로 상처를 덮으며 물었다.

“당신도 배신할 작정이었어. 트럭을 그곳으로 끌고온걸 보면 말이야.”

“물론이지.”

상처가 아픈지 허리를 움찔거린 조철봉이 잇사이로 말했다.

“네가 오후 2시에 냉동트럭을 그곳에 갖다 놓은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지.”

몸을 돌린 조철봉이 부용을 정색하고 보았다.

“하지만 그놈들을 그동안 두번이나 만나 수군댄 것이 수상쩍더란 말이야.”


 

(46)정상을 향하여 (15)

 

 

자루를 다 옮긴 최갑중이 응접실로 들어서면서 싱글벙글 웃었다.

“현금뭉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형님. 소액권 수표가 다발로 묶어져 있어서 수백억입니다.”

갑중의 시선이 소파의 구석에 앉은 부용에게로 옮겨졌다.

“자, 이년만 처리하면 되겠습니다.”

그때 부용이 조철봉을 보았다.

“오석규도 알고 있었지?”

조철봉이 눈을 크게 뜨자 부용은 희미하게 웃었다.

“날 조사했으면 오석규가 배후라는 것을 모를 리가 없지.”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

“오석규가 가만 있을 것 같아?”

“널 찾겠지, 나는 아냐.”

“날 찾으면 어떻게 되겠어?”

그순간 조철봉과 갑중의 시선이 마주쳤다. 그러나 대답은 갑중이 했다.

“널 찾지는 못해, 왜냐 하면 죽어서 땅에 묻혀 있을 테니까”

조철봉은 부용의 옆얼굴만 똑바로 보았다. 그때 부용이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당신들은 살인까지 할만큼 막돼먹지는 않았어.”

“얼씨구.”

열이 뻗친 갑중이 눈을 부릅떴다.

“이년아, 돈 몇백 가지고도 살인이 나는 세상이여, 이건 몇백억이란 말이다.”

“내가 오석규를 배신할 때 대책도 세우지 않았을 것 같아?”

그리고는 부용이 옆에 놓았던 핸드백을 잡더니 안에서 소형 녹음기를 꺼냈다.

녹음기를 탁자위에 내려놓은 부용이 버튼을 눌렀다.

“황수남에게 배후가 있지만 아직 누군지는 알 수 없어, 하지만 막강한 놈일 거야.”

갑자기 녹음기에서 굵은 사내의 목소리가 울리자 조철봉과 갑중은 긴장했다.

다시 사내의 말이 이어졌다.

“어떤 놈인지는 알 필요가 없지. 큰 몫은 황수남이 쥐고 있으니까.”

그러자 곧 부용의 목소리가 울렸다.

“현금으로 갖고 있을까?”

부용이 녹음기의 빨리가기 버튼을 누르고 난 뒤, 다시 시작버튼을 눌렀다.

“애들 시켜서 그놈을 납치하는 거지. 그 방법이 제일 간단해.”

사내가 거친 목소리로 말했을 때 부용이 멈춤 버튼을 눌렀다.

“이게 내 보험이야.”

정색한 부용이 조철봉을 보았다.

“이 테이프 사본을 오석규한테 보내면 돼.

가만 있지 않으면 이걸 사방에다 뿌리겠다고 할 거야.”

“으음.”

갑중이 먼저 감탄 같은 신음을 뱉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형님, 아주 지독한 여우구만요.”

“넌 어떻게 할 계획이었어?”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이 표정없는 얼굴로 물었을 때 부용은 다시 희미하게 웃었다.

“돈을 달러로 바꾼 다음에 애 데리고 프랑스로 갈 작정이었지.

물론 사건이 잠잠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하겠지만.”

“너 혼자서?”

“난 아무도 믿지 않아.”

정색한 부용이 머리를 저었다.

“당신과 마찬가지로.”

“얼마 필요하냐?”

조철봉이 묻자 부용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그러더니 곧 시선을 내렸다.

“실패했으니 20억만 줘. 내가 테이프까지 줄 테니까.

그 돈이면 애 데리고 외국 나가서 충분히 살 수 있어.”

“30억을 주지.”

손가락 셋을 펴보인 조철봉이 웃었다.

“난 저 돈으로 치부할 생각은 없다.”

 

 

 

 

(47)정상을 향하여 (16)

 

 

 

어디 아프세요?”

다가선 이은영이 물었을 때 조철봉은 반걸음쯤 물러섰다.

영업소의 복도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벽쪽으로 붙어섰다. 오전 9시반, 영업소장 주재의 회의를 마악 마친 참이다.

“아니, 별로.”

“안색이 창백해요.”

“피곤해서 그런가 본데.”

손바닥으로 뺨을 쓸어본 조철봉이 은영을 보았다.

이틀동안을 출장으로 보고하고 오늘 출근한 것이다.

“그동안 별일 없었지?”

“여자 몇명한테서 전화가 왔었어요. 책상 위에 메모해 놓았는데.”

“그건 보았고.”

조철봉이 은영의 검은 눈동자를 똑바로 보았다.

여자의 눈빛만으로 자신에 대한 호불호(好不好)를 읽어낼 수 있다고 자신해온 조철봉이다.

그러나 은영의 반짝이는 눈동자를 보면 먼저 정신부터 산만해졌다.

드문 경우이다.

 감시자라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인가?

등을 온통 붕대로 감고 있는터라 조철봉은 벽에서 비스듬히 섰다.

“나, 외출을 해야겠는데. 구매자를 만나려고 말이야.”

“같이 가요.”

은영이 정색했다.

“오늘은 같이 가야겠어요.”

은영의 시선을 받은 조철봉이 풀썩 웃었다.

“내가 몸 팔아서 계약하는 꼴을 보고 싶다면.”

“막말하지 말아요.”

“이과장이 따라가면 구매자가 싫어할텐데.”

조철봉이 목소리를 낮췄다.

“영업사원이 왜 혼자 돌아다니는 줄 알아?

그것은 자존심이고 뭐고 다 버린 꼴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이야.”

“그러나 일에 자부심을 갖고 있다면.”

얼굴을 굳힌 은영이 억양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굳이 숨길 이유도 없지요. 그것은 결국 회사를 위한 일일테니까.”

“좋아.”

어깨를 늘어뜨린 조철봉이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같이 가자구.”

한시간쯤 후 10시반에 그들이 들어선 곳은 논현동의 스타호텔이다.

로비를 가로질러 곧장 프런트로 다가간 조철봉이 키를 받아들더니

뒤에 서있는 은영을 보았다.

“내가 룸에서 전화를 하면 구매자가 방으로 오기로 되어 있어.

어때? 방까지 같이 갈 거야?”

“좋아요, 여기서 기다릴테니까.”

은영이 힐끗 조철봉의 손에 든 키를 보았다.

“일 마칠 때까지 커피숍에 있겠어요.”

“두 시간쯤 걸릴 거야.”

팔목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면서 조철봉이 말했다.

“길면 길수록 배기량이 높아지거든.”

방으로 들어선 조철봉은 옷을 벗고 셔츠와 팬티 차림이 되어서 쓰러지듯 침대에 엎드렸다.

등의 상처는 꿰매고 나서 붕대를 감았지만 따끔거렸고 부은 어깨도 아직 가라앉지 않았다.

엎드린 채 곧장 깊게 잠 들었던 그가 벨소리에 깨어났을 때는 그로부터 한 시간쯤 후였다.

탁자 위에 놓인 휴대전화를 집어 귀에 붙이자 곧 김부용의 목소리가 울렸다.

“나야.”

“그래, 지금 어디야?”

“애하고 중국에 왔어.”

“잘 빠져나갔구나.”

“며칠 있다가 다시 연락할게.”

그리고는 전화가 끊겼을 때 조철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부용은 대부분의 돈을 맡기고 떠난 것이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예외는 꼭 있는 법이다.

 

 

 

 

(48)정상을 향하여 (17)


성화의 주가조작 사건이 터진 것은 그로부터 사흘후였다.

언론은 일제히 성화의 대주주인 황수남이 1000억 가까운 시세차익을 남겼으며

정치권이 개입한 희대의 사기 사건이라고 보도했다.

그러나 행차뒤의 나팔소리였으며 버스 떠난 후에 손 흔든 꼴이었다.

영장을 발급받은 검찰이 들이닥쳤을 때 황수남은 바로 전날 미국으로 출국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모자 없는 사건은 흐지부지되어 버렸고 구설수에 올랐던 정치인들은

오히려 명예를 훼손당했다면서 언론사를 고소했다.

심증은 갔지만 물증을 쥐고 있는 황수남이 도주한 터라 검찰로서도 속수무책이었다.

“거창하군.”

여주의 야산을 반이나 깎아놓은 보물발굴 현장이 TV화면에 비쳤을때

영업소장 장정수가 말했다.

점심을 마친 그들은 전시장 한쪽에 모여 뉴스를 보는 중이다.

“무지막지한 놈들 같으니, 산을 반이나 깎았잖아.”

“저런 공사를 벌였으니 속아넘어갈 수 밖에요.”

 

눈을 치켜뜬 김정필이 말을 이었다.

“내 동서가 성화주식을 샀다가 깡통을 찼단 말입니다.”

조철봉은 소파에 깊게 앉은 채 끼어들지 않았다.

도망친 황수남의 금고에서 꺼내온 현금은 230억이 된다.

그중 김부용의 몫과 최갑중의 수당을 떼고 나서도 200억이 남는 것이다.

돈은 돈다.

돌지 않는다면 돈이 아니다.

그 시간에 오석규는 해운대의 모텔방에 앉아 있었다.

다급하게 내려온 참이어서 갈아입을 옷도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서 사흘째 입은 셔츠의 목깃에 때가 심했다.

“그 놈이 악에 받쳐서 무슨 짓을 할지도 몰라,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

석규가 이런 식으로 말을 한 건 처음이었다.

앞에 앉은 박대성이 눈만 끔벅였다.

이를 악문 석규가 말을 이었다.

“그년이 나한테만 테이프를 보냈을 것 같으냐?

천만에, 황수남이한테도 틀림없이 보냈을 것이다. 내가 그년을 알아.”

“아직 저쪽은 잠잠합니다.”

대성은 검찰의 동향을 말하는 것이다

흘끔 석규의 눈치를 살핀 대성이 탁자위에 티켓을 내려놓았다.

“오후 네시반 출발이니까 공항에 세시까지는 나가셔야.”

“빌어먹을.”

꽉 물었던 이를 풀면서 석규가 어깨를 늘어뜨렸다.

부용으로부터 택배로 보내진 테이프 내용을 들어보고 나서도 석규는 단념하지 않았다.

부용을 잡기만 하면 그까짓 테이프는 회수할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수남의 사건이 예상보다 훨씬 일찍 터지는 바람에 일이 급박하게 되어버렸다.

역시 악에 받친 황수남이 검찰에게까지 쫓기게 되었으니

가만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부용은 제 꼬리를 감추려고 황수남에게도 테이프를 줄 여우이다.

“일주일 후에 조사장이 너한테 갈 것이다.”

머리를 든 석규가 다짐하듯 말했을때 대성은 머리를 끄덕였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회장님,”

“내가 일단 100만불은 빌릴테니까 한화로 준비해 놓고,”

“예, 회장님,”

“내가 수시로 연락할 테니까.”

그리고는 석규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후 네시반 비행기로 홍콩으로 도피하려는 것이다.

그곳에서 카지노를 경영하는 중국인 위사장을 만나 백만불을 빌리고

한국에서 대리인에게 원화로 갚으면 된다.

저고리를 걸치면서 석규가 잇사이로 말했다.

 

“이년을 내가 잡기만 하면….”

 

그러나 목소리에는 힘이 빠져 있었다.

 

 

 

(49)정상을 향하여 (18)

 

 

“너, 요즘 이상해졌어.”

책상 앞으로 다가선 장정수가 눈을 가늘게 뜨고 조철봉을 보았다.

오전 10시반, 사무실안에는 서너명의 영업사원만 남아 있어서 조용했다.

 

“임마, 김정필이는 벌써 넉대를 했어. 그런데 넌 두대하고 끝이냐?”

 

“요즘 여자들이 약아빠져서 말이죠.”

 

조철봉이 컴퓨터를 끄고는 의자에 등을 붙였다.

이은영이 오늘 본사에 다니러간 바람에 등에 진 짐을 내려놓은 기분이었다.

 

“서비스 몇번으로 계약을 하려들지를 않는단 말입니다.”

 

“농담할 때가 아녀.”

 

이제는 정수가 눈을 부릅떴다.

 

“책상에 붙어있으면 구매자가 굴러 들어오냐? 발로 뛰란 말이다. 이자식아.”

 

“뛴다고 되는 일이요?”

 

했지만 조철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닌게 아니라

요즘 잦은 외출에 비하여 실적이 안좋았으니 정수가 이상한 낌새를 느낄 만도 했다.

영업소를 나온 조철봉은 휴대전화를 꺼내들고는 다이얼을 눌렀다.

이시간이면 고현주가 골프연습장에 있거나 불가마로 가는 중일 것이다.

그로부터 한시간 반쯤이 지난 12시경 조철봉은 프린스 호텔의 커피숍에 앉아 있었다.

앞자리의 현주는 불가마로 가다가 이곳으로 왔다.

 

“갑자기 웬 바람이 불어서 전화를 했지?”

 

동그랗게 눈을 뜬 현주는 42세였지만 피부가 팽팽해서 30대 중반쯤으로 보였다.

그러나 작년에 대성의 최고급형 승용차인 매리트를 구매한 터라 몇년은 더 타야 할 것이다.

 

“봄이 되니까 온몸이 근질거려서.”

 

커피를 시킨 조철봉이 눈의 초점을 현주의 가슴께에다 맞췄다.

현주는 가슴이 남달리 예민해서 섹스를 할 적에도 계속해서 애무해주는 것을 좋아했다.

 

“어때? 올라가서 몇시간 쉴까?”

 

조철봉이 눈으로 천장을 가리켰다.

 

“당신 젖꼭지를 지근지근 씹고싶어.”

 

“미쳤나봐. 대낮에.”

 

하면서도 현주는 싫지않은 눈치였다.

 

“그럼 내가 키를 가져올게.”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현주는 말리지 않았다.

처음 현주와 거래를 틀 적에도 이랬던 것이다.

그 때도 환한 대낮이었는데 호텔 식당에서 밥을 먹고나서 키를 가져오겠다고 말했을 때

현주는 놀란 척하면서도 말리지 않았었다.

프린스 호텔은 무궁화 세개짜리였지만 낮손님의 편의를 위해

키를 프런트에 반납하지 않아도 되었다.

숙박부에 주소 성명을 기록할 필요도 없이 돈만 내면 말없이 키를 준다.

 키를 받아들고 먼저 방으로 올라간 조철봉은 휴대전화로 커피숍에 앉아있는

현주를 불러냈다.

같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어색함도 휴대전화 덕분에 없어졌다. 놀 만한 세상이다.

현주는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재킷을 벗어 의자 위에 놓더니 조철봉의 앞에서 돌아섰다.

 

“브래지어 풀어줘.”

 

조철봉은 브래지어의 후크를 벗기고는 두손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가슴은 컸지만 늘어지지는 않았다.

조철봉의 손가락이 젖꼭지를 가볍게 문질렀을 때 현주는 몸을 비틀었다.

 

“더 세게.”

 

현주의 목덜미에서 짙은 향수냄새가 났다.

상반신은 알몸이었지만 아직 아래쪽은 정장차림이다.

조철봉의 입술이 목과 어깨를 스치고 내려왔을 때 현주는 달아올랐다.

이미 숨결은 가팔랐고 탄성이 배어나오기 시작했다. 현주의 등을 껴앉은 채

조철봉은 뒷걸음으로 침대에 다가가 앉았다.

예전에 현주는 한차례 행사를 치르고 나면 50만원을 주곤 했었다.

 

 

 

(50)정상을 향하여 (19)

 

 

행사를 치르고 났을 때의 분위기야 거의 비슷하지만 몰입했을 때는 모두 다르다.

성감대가 다르고 자세도 제각각이며 속도까지 틀린 것이다.

신음소리도 다르며 향내도 제각각인데다 부딪치는 감촉도 틀리다.

현주는 빨리 달아오르는 스타일이었으나 한번으로는 절대 만족하지 않는다.

그러나 강약을 조절만하면 다른 대상과 비교해서 평균 시간안에

세번을 올랐다가 내려올수 있었다.

그래서 땀으로 범벅이 된 조철봉의 몸과 떨어졌을때 시간은 25분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현주는 크고 작은 산을 세번이나 올랐다가 내려왔다.

 

“자기하고는 맞아.”

 

반듯이 누운채 헐떡이며 현주가 말했는데 화장이 지워진 눈밑의 주름이 선명해서

나이가 제대로 드러났다.

 

“아직도 가득차 있는것 같애.”

 

눈을 감은 현주의 뱃살이 출렁거렸다.

호텔에서 냉장고에 서비스로 넣어둔 생수병을 들고온 조철봉이 현주를 내려다 보았다.

 

“물 줄까?”

 

“싫어, 눈 뜨기도 귀찮아.”

 

“구매자 한사람만 소개시켜주면 내가 당신 차를 이번에 새로 나온 크로나로 바꿔주지.”

 

그러자 현주가 눈을 떴다.

 

“그게 무슨말이야?”

 

“매리트 할부금만 내면 돼. 내가 매리트를 팔아 줄테니까.

 그러면 크로나 계약금과의 차이가 천만원쯤 날텐데 그걸 내가 부담한단 말이지.”

“그렇게 손해를 보면서까지 차를 팔아야 돼?”

“승진과 관계가 있어. 그리고 구매자를 소개시켜 준다면 그쪽에서 남는

리베이트도 있으니까 조금 상쇄도 될것이고.”

누운채로 현주가 눈을 깜박이며 조철봉을 보았다.

현주는 빌딩 임대업을 하는 박만식과 재혼을 했지만 경제권은 쥐지 못했다.

그러나 한달에 5백만원 정도는 용돈으로 쓸수 있는터라 제법 놀수는 있다.

“한사람 있기는 해.”

이윽고 현주가 눈썹을 모으며 말하더니 그때서야 시트로 하체를 가렸다.

“우리 골프 회원으로 일본인 현지처가 하나 있는데 돈을 잘 써.

지금 벤츠를 타고 다니는데 차가 낡았다고 바꿔야겠다는 말을 한적이 있어.”

“데리고 나와. 성사가 된다면 내가 그날로 크로나를 가져다 줄테니까.”

“고급형으로 줄거야?”

“물론이지.”

“할부금도 매리트 할부금하고 같게 해준단 말이지?”

“그러니까 부족한 계약금을 내 돈으로 막는다고 했지않어?”

“좋아.”

 

시트를 걷고 일어나 앉은 현주가 활짝 웃었다.

 

“한번 해보지.”

 

크로나 고급형의 계약금은 최소한 3000은 내야한다.

거기에다 매리트의 할부금과 같게 하려면 계약기간을 더 늘려야할 것이다.

기간을 다시 3년으로 잡아 늘린다고 해도 할부를 낀 매리트를 팔고나서

천만원은 더 보태야만 계산이 맞는다.

타산이 빠른 현주는 이미 속셈을 끝낸 것이다.

 

“약속 분명히 지켜야돼.”

 

알몸으로 화장실로 향하던 현주가 다짐하듯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풀썩 웃었다.

 

“그 현지처한테 피알이나 잘 해놔. 다른 걱정은 말고.”

 

“걔, 남편 야쿠자야.”

 

화장실 문의 손잡이를 잡은 현주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그러니까 허튼 수작을 했다가는 잘리는 수가 있어.”

 

“겁나는구만.”

 

조철봉이 다시 웃었다.

 

 

 

 

 

(51)정상을 향하여 (20)

 

“다 끝냈습니다.”

최갑중이 조철봉의 앞에 두툼한 봉투 하나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봉투 안에는 50여개의 주식통장이 도장과 함께 들어 있었는데 황수남의 금고에서

빼낸 돈이 모두 주식으로 환원된 것이다.

물론 모두 차명이다. 그동안 갑중은 창고에 쌓아놓은 돈자루를 매일 한두개씩

증권시장에다 쏟아 부었다.

그 때문인지 요즘 주가는 계속 오르는 중이었다.

“모두 상장회사의 우량주니까 전쟁만 일어나지 않는다면 손해보지 않는답니다.”

갑중이 자신있게 말했다.

그도 이번에 수당으로 받은 10억원을 조철봉의 지시에 따라 주식으로 바꾼 것이다.

“당분간 이건 건드리지 않는다.”

조철봉이 손끝으로 탁자 위에 놓인 봉투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도 마찬가지야. 꺼내쓰면 안된다.”

“알겠습니다, 형님.”

“곰곰이 생각했는데 돈 잘못쓰면 폐인이 되기 십상이야.”

눈만 껌벅이는 갑중을 향해 조철봉이 정색했다.

“하지만 잘 이용하면 약이 되지.

어때, 너는 10억이 통장에 있다는 생각을 하면 든든하지 않더냐?”

“밥을 안먹어도 배가 부릅디다.”

“바로 그거야.”

조철봉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 자신감이 약이란 말이다. 앞으로 너는 하는 일마다 잘 풀릴거다. 왜냐”

눈을 크게 뜬 조철봉이 갑중을 보았다.

“자신감이 있으니까.

무슨일이 잘못되어도 10억 통장을 떠올리면 금방 기운이 날 것이란 말이다.”

“그렇다면 형님은.”

“내가 너보다 스무배는 더 기운이 날 것이라고?”

조철봉의 입술이 부풀려졌다.

“물론 기운이야 나겠지만 나는 그 돈이 돈 같지가 않아.”

“황수남과 김부용이 떠난 이상 그 돈을 찾아낼 놈은 아무도 없습니다.”

“나는 그 돈은 잊고 다시 시작할테다.”

힐끗 봉투에 시선을 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고생끝에 얻어낸 성취감은 이까짓 돈에 비할바가 아니야.

남자는 그런 성취감을 쌓아가야 폐인이 안돼.”

“그렇지요.”

대답은 그렇게 했지만 갑중은 별로 감동을 받은 기색이 아니었다.

그것은 조철봉이 해온 행태를 그가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조철봉은 편법과 사기의 달인이다.

거짓말을 숨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해왔으며 등을 쳐먹고 나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 조철봉이 고생끝에 얻은 성취감 운운 하는 것을 들으니

시선을 마주치기도 멋쩍어진 것이다.

헛기침을 한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나는 우선 이번 행사에서 전국 일등을 하는 것이 목표야. 정상에 서는 것이지.”

“몇대를 팔아야 되는데요?”

“50대면 일등할 거야”

“일등하면 어떻게 됩니까?”

“상금 일억에 일계급 승진.”

조철봉이 힐끗 갑중을 보았다.

갑중은 시선을 피했지만 시큰둥한 표정이다.

“난 승진하면 본사 근무로 옮길테다. 큰 마당에서 놀아야지.”

커피숍 안에는 손님이 그들까지 세팀뿐이었고 주위 테이블은 비어 있었지만

조철봉은 목소리를 낮췄다.

“물론 영업부서로. 그쪽이 승부가 확실하게 나니까.”

대성자동차는 영업소도 본사 직영이어서 영업소 출신이 본사로 옮겨갈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7. 국제개혁연맹(1)   (0) 2014.07.20
6. 정상을 향하여 (21)~(29)  (0) 2014.07.20
4. 정상을 향하여 (1)~(10)  (0) 2014.07.20
3. 오숙진편(21)~(31)  (0) 2014.07.20
2. 오숙진편(11)~(20)  (0) 201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