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1. 오숙진편(1)~(10)

오늘의 쉼터 2014. 7. 20. 11:00

 

 

 

 

<연재소설 : 강안남자> 

 

 

 

8년 동안 2400회에 걸쳐 연재된 이 소설은 통큰 사기꾼의 성공을 다뤘다.

야생을 살아가는 남자들에게 대리만족을 주었던 2000년대의 신드롬.

2010년 대에 들어서야 보게 되었다.

 

오숙진편.31
정상을 향하여.29
국제개혁연맹.22
신데렐라.32
꿈을 위하여.28
생존자.31
변신.29
대망.30
인연.31
애모.33

원정.30
대야망.30
반전.29
도약.31
순정.32
전화위복.30
세계는 넓다.31
방랑.30
역술가.26
도망자.30

전주식당.27
첫사랑.28
애정의 시간.13
사업확장.29
개성공단유흥구.22
사랑.31
인생.29
색녀.30
차가운 여자.26
운명.31

사랑을 위하여.29
실업자.24
애인만들기.30
여자만들기.30
인간의 조건.25
인연만들기.31
욕망.31
은인.25
그 여자의 인생.26
미치코.26

첫사랑.30
열망.30
야망.30
꿈을 깨다.30
신천지.30
개척자.30
남자의 여자.23
이런 인생.24
저런 인생.28
불꽃.23

솔롱고스.22
황혼의 무도.26
이래도 한세상.17
도망자.23
새 인연.29
언제나 꿈을 꾼다.24
열정.30
주면 받는다.27
협력.25
동반자.25

유혹.24
인연.25
내일도 해가 뜬다.24
시장조사.25
협력.24
인간의 진심.25
새인생.25
남북동거.26
숙정.24
전향.26

조의원.24
떴다,조철봉.24
중개인.23
존경을 받다.23
거인탄생.23
외도.22
외유.25
결단.23
새출발.25
조특보.25

중개자.24
대타협.25
공존.26
갈등.22
버려야 얻는다.25
남북암행.23
새 세상.20
남자의 꿈.25
강안남자.25
“‘강안남자’와의 7년10개월이 내 인생의 절정”
 


 

 

오숙진편(1)~(10)

 

 

 

오숙진편(1)  

 

게재 일자 : 2002년 01월 02일(水)  출발 ▷▶▷▷▶▶▷

 

“빼.”

감았던 다리를 풀면서 김봉선이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움직임을 멈췄다.
탁자위에 놓인 시계는 2시47분이다.
넣은 지 14분이 지났다.

“왜 그래?”

“나 했지않아? 두번이나.”

“난 아직 안했어.”

“그건 네 오형제 불러서 해.”

그리고는 봉선이 몸을 트는 바람에 물건이 미끄덩 빠져나왔다.

“젠장.”

했지만 이미 물건너 간 님이었다.
상체를 일으킨 봉선의 거대한 유방이 덜렁거렸다.

“오래 한다고 장땡이 아냐, 알아둬.”

봉선이 헝클어진 머리를 다듬었지만 유방은 덜렁거리게 놔두었다.
화장이 지워진 얼굴은 39세의 나이보다 다섯살은 더 들어보였다.
시트를 걸치고 일어날 때 음부의 짙은 숲이 드러났는데 숲속의 속살도 검다.
분비액이 많은 여자들은 대개 그렇다.

“한 번을 하더라도 늘어지게 해야 돼.”

“언제는 세 번 이상은 해야 된다면서.”

“그땐 그때고.”

“젠장.”

풍만한 엉덩이를 흔들며 봉선이 화장실로 갔을 때
조철봉은 탁자위에 놓인 담배를 집어 입에 물었다.
맞는 말이다.
이제까지의 경험으로 봐도 횟수는 중요하지 않았다.
처음에 봉선은 한번으로 늘어졌고 그 다음부터 차츰 욕심을 내었다가
지금은 식어가는 중인 것이다.
그리고 나도 마찬가지다.
길게 연기를 내뿜은 조철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간통은 처음 몇번의 신비감 내지는 스릴이 사라지면 매력이 급격하게 떨어진다.
봉선은 그 전형적인 과정을 밟고있는 것이다.
간단히 뒷물을 하고 금방 화장실을 나온 봉선이 선 채로 팬티를 찾아 꿰었다.

“자긴 안가?”

“난 한숨 자고 가려고.”

“그 회사는 참.”

힐끗 조철봉에게 시선을 주었던 봉선이 엷게 웃었다.

“하긴 실적이 좋을테니까.”

“그런데 어떻게 되었어? 소개 시켜준다던 후배 말이야.”

“왜? 어떻게 해보려고?”

“내가 ×만 앞세우고 다니는 놈이야?”

“나한테 그랬잖아?”

그리고는 봉선이 브래지어를 들고와 내밀더니 돌아섰다.

“후크 채워줘, ×철봉씨.”

조철봉은 먼저 봉선의 유방을 두손으로 가득 움켜쥔 다음에
브래지어를 끼워주고 뒤의 훅을 채웠다.
봉선을 처음 만났을 때 그랬었다.

“철봉입니다. ×이요.”

조씨를 조에다 악센트를 넣으면 그렇게 발음된다.

“네에?”

하면서 눈을 둥그렇게 뜬 봉선을 향해 조철봉은 빙긋 웃었었다.

“그래서 ×철봉이라고 불리지요.”

봉선이 서둘러 스타킹을 신고 스커트를 입더니 이젠 선 채로 거울을 보며 화장을 했다.

“걔한테 ×철봉하면서 나댔다간 그것 짤릴거야. 조심해.”

“어쨌든 연락처나 줘.”

“걔한테 내 이야기는 말고.”

“누굴 어린애로 보나?”

“걘 능력있으니까 3천㏄급을 살 수도 있을 거야.”

“그리고는 봉선이 핸드백을 열더니 명함 한 장을 뒤쪽 조철봉에게로 던졌다.

“걔 이름은 오숙진이야, 이뻐.”

 

 

오숙진편(2)

 

“조과장, 전화왔었어.”

 

하면서 소장 장정수가 다가와 메모지를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두명 모두 여잔데, 어때? 나한테 하나 인계 해줄래?”

 

“농담 그만 하십쇼.”

 

정색한 조철봉이 메모지를 집었다.

 

하영옥과 박선미였다.

 

핸드폰을 꺼놨기 때문이다.

 

“이봐, 이번 달에 몇대나 더 나갈 것 같으냐?”

 

책상위에 두팔을 짚은 정수의 시선이 은근해졌다.

대성자동차의 서초영업소 실적은 전국의 87개 영업소중 올해에는 항상 10위권 안에 들었다.

그리고 서초영업소의 13명 영업사원 중에서 조철봉의 실적은 언제나 3위권 안이다.

이만한 실적이면 소장도 함부로 못한다.

 

“글쎄요, 앞으로 열흘 남았으니까 두어대는 더 해야 할텐데.”

 

“두대만 더하면 넌 이번 달에 1등이야.”

 

정수가 목소리를 낮췄다.

 

“김정필이는 대한통상 네대가 펑크났어. 그래서 현재 너보다 한대 더 많다.”

 

정수는 입이 헤픈데다 치밀하지 못했지만 감탄할 만큼 성실했다.

언제나 제일 먼저 출근했고 맨나중에 퇴근했는데 와이프하고는

오래전부터 별거중이라는 소문이었다.

겨우 정수가 떨어져 나갔을 때 벽시계를 올려다본 조철봉은 전화기를 들었다.

오후 4시반이다.

 

“여보세요.”

 

맑고 높은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을 때 조철봉은 심호흡을 했다.

이 순간은 언제나 가슴까지 뛰는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전 조철봉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조를 희미하게 발음했다.

 

“김봉선씨 소개를 받고 전화를 드리는 겁니다. 말씀 들으셨지요?”

 

“아아.”

 

오숙진이 시큰둥한 발성을 했다.

 

“네, 들었어요.”

 

“언제든 시간을 내주시면 제가 찾아 뵙겠습니다만.”

 

“아뇨. 제가 연락 드릴게요”

 

“예. 알겠습니다. 그럼.”

 

“죄송합니다.”

 

하고 전화가 끊겼을 때 조철봉은 희미하게 웃었다.

시작은 언제나 이렇게 시큰둥한 것이다.

그로부터 한시간쯤이 지난 오후 5시 반경에 조철봉은 영업소 옆 건물에 있는

커피숍에서 20대 후반쯤되는 사내와 마주보며 앉아 있었다.

사내는 머리칼을 고슴도치처럼 세운데다 한쪽 귀에만 5백원짜리 동전만한

귀고리를 걸었는데 눈동자가 한순간도 가만있지 않았다.

 

“이번에는 누굽니까? 형님.”

 

사내가 묻자 조철봉이 쪽지를 내밀었다.

 

“여기 직장과 전화번호가 있어.”

 

“오숙진이라.”

 

쪽지를 받아쥔 사내가 읽어 내려갔다.

 

“에덴 크리닉 대표이사 사장이군요.”

 

“사흘이면 조사할 수 있겠지?”

 

“해보지요.”

 

“지난번 사진은 엉망이었어. 사진 잘 찍으라구.”

 

“알겠습니다.”

 

시원스럽게 대답한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조철봉의 대학 후배 최갑중이다.

취직이 안되어서 택배 회사의 배달원 생활을 2년 한 뒤에 사설 정보회사에서

다시 2년을 근무한터라 이런 일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갑중과 헤어진 조철봉은 휘적이며 커피숍을 나왔다.

3월 중순이어서 날씨는 포근했고 거리를 메운 행인들의 차림새도 밝아져 있었다.

봄이다.

서른다섯번째 맞이하는 봄인 것이다.

그때 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이 울려 조철봉은 멈춰섰다.

핸드폰을 귀에 붙였을 때 수화구에서 맑고 높은 목소리가 울렸다.

 

“자기야? 뭐해?”

 

섹스 테크닉의 사부 하영옥이다.

 

 

 

오숙진편(3)

 

저녁으로 생갈비를 먹고 났을 때 영옥이 시계를 보는 시늉을 했다.

“두 시간밖에 시간이 없어. 10시에는 들어가야 돼.”

“그럼 일어나지.”

식당을 나온 그들은 바로 옆 골목에 있는 모텔에 들어섰다.

그것은 식당을 고를 때 모텔 옆에 위치한 곳을 골랐기 때문이다.

영옥은 조철봉이 방문을 다 잠그기도 전에 옷을 벗기 시작했는데 금방 늘씬한 알몸이 드러났다.

38세 나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군살이 없고 탄력있는 몸이었다.

“어때? 몸 불지 않았지?”

조철봉의 앞에 똑바로 선 영옥이 두 다리까지 조금 벌리는 바람에 숲의 안쪽 샘도 다 드러났다.

“응, 괜찮아.”

“괜찮다니? 그것도 칭찬이야?”

하면서도 영옥은 만족한 듯 웃었다.

“나 먼저 씻고 올게.”

영옥이 옆을 스치고 화장실로 가면서 조철봉의 남성을 슬쩍 잡았다가 놓았다.

가는 눈이 웃음으로 더욱 가늘어졌지만 귀여운 인상이다.

옷을 벗어 의자위에 걸쳐놓은 조철봉은 알몸이 되어 시트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

영옥이 먼저 꼬리를 쳐온 드문 경우라고 볼수 있었다.

그것도 나이트에서 만난 터라 아직 판매 실적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지만

조철봉의 인생에 자신감을 불어 넣어준 인물중 하나였다.

영옥이 화장만 지우고 금방 나왔으므로 조철봉은 옆쪽의 시트를 들쳐 들어 오라는 몸짓을 했다.

“오늘은 내가 할게.”

옆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온 영옥에게서 장미향이 풍겼다.

여자마다 각각 향이 다른 것이다.

다른 향수나 화장품을 썼기 때문이 아니라

독특한 체취가 섞였기 때문이다.

내가 한다는 것은 자신이 리드한다는 말이다.

이미 발기된 조철봉의 물건을 두손으로 움켜쥔 영옥이 입술과 혀로 부드럽게 애무하기 시작했다.

쪼그리고 엎드린 자세여서 치솟은 엉덩이와 늘어져 출렁대는 젖가슴을 보는 동안 조철봉은

달아 올랐다.

조철봉은 영옥의 남편 얼굴을 떠올렸다.

영옥이 남편에게 조철봉을 친구 동생이라고 소개시켜 줬던 것이다.

그러나 은행 차장인 남편은 차 가격만 물어보고는 차를 사지 않았다.

째째한 놈이었다.

섹스도 한 달에 한번꼴이며 그것도 전희도 없이 2분이면 끝난다고 했다.

“됐어, 이젠 내가.”

하고 조철봉이 몸을 비틀었을 때 영옥이 머리를 들었다.

“아냐, 내가 할거야.”

그리고는 영옥이 상반신을 세우더니 조철봉의 몸위에 앉았다.

반듯이 세운 상반신에 알맞게 솟아난 젖가슴이 탐스럽게 드러났다.

영옥은 그 자세로 조철봉의 물건을 조심스럽게 받아 넣더니 천천히 상체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샘은 젖어있는데다 뜨거워서 조철봉은 신음했다.

여자와의 섹스는 모두 다른 것이다.

샘의 상태나 수축작용 따위로 다르다는 것이 아니다.

여자와의 섹스를 즐기려면 그 여자와의 분위기에 적응해야 된다.

상체의 움직임이 빨라지기 시작했으므로 조철봉은 손을 뻗어 영옥의 허리를 양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움직임에 맞춰 들었다가 내려놓았다.

영옥이 절정으로 솟아오르기 시작하면서 신음소리가 더 높아졌다.

“나, 두 번만 할게.”

허덕이며 영옥이 소리치듯 말했으므로 조철봉은 아랫배에 힘을 주었다.

영옥의 질이 강하게 수축작용을 시작하고 있었는데 곧 절정이 된다는 신호였다.

조철봉은 어금니를 물었다.

해낼 수 있다.

 

 

 오숙진편(4)

 

“안녕하십니까?”

오숙진은 꾸벅 머리를 숙이는 사내를 올려다 보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서는 그 짧은 순간에 사내를 한눈으로 읽었다.

사내의 신장은 183이나 185센티미터정도, 큰 키에 육중한 체격이다.

그러나 뱃살은 없고 근육질인 것을 보면 운동으로 단련된 몸매였다.

거기에다 짙은 숱의 머리와 눈썹, 굵은 콧날에다 두툼한 입술이 남성적이었고

곧장 이쪽으로 쏟아지는 시선은 자신감에 차있었다.

“어서오세요. 여기 앉으시죠.”

사내에게 자리를 권하면서 숙진은 이제 옷차림을 보았다.

넓은 체크무늬가 있는 재킷이 어울렸고 구두는 반질거렸다.

이만하면 상급 손님축에 들것이다.

“여기 제 명함입니다.”

자리에 앉은 사내가 내민 명함을 숙진은 힐끗 보았다.

대성자동차 서초영업소의 과장 조철봉이다.

앞쪽에 앉은 숙진이 정색했다.

김봉선은 이 남자가 친구 동생이라고 했지만 그대로 믿을 숙진이 아니다.

 

“제가 바빠서요. 이렇게 갑자기 연락도 안하고 오시면 곤란한데.”

 

“압니다. 그래서 5분만 앉았다가 가겠습니다.”

 

조철봉도 정색하며 주머니에서 봉투 두개를 꺼내 탁자위에 놓았다.

 

“음악회 입장권입니다. 특석인데 전 도통 그런 곳엔 가보지를 않아서요.”

 

숙진이 그 표정 그대로 입장권에서 시선만 올렸을 때 조철봉은 풀썩 웃었다.

 

“차 안팔아도 되니까 그냥 받으시지요.

거기 바이올린 연주자인 조남태 교수가 제 사촌형이어서 표를 거저 얻은 것이니까요.”

 

조철봉은 숙진의 시선이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조남태는 열흘 후에 열리는 음악 콩쿠르의 심사위원장인 것이다.

그리고 숙진의 일곱살난 딸 정수지는 조남태 앞에서 바이올린 연주 심사를 받아야 한다.

권위가 있는 콩쿠르이었고 입상자는 외국유학 경비까지 보조받는 터라

숙진은 딸을 맹훈련시켜왔다.

 

“이걸 하필 저한테.”

 

겨우 숙진이 그렇게 입을 열었을 때 조철봉이 다시 풀썩 웃었다.

 

“솔직히 형님한테서 특석 표를 스무장이나 얻었습니다.

그래서 제 고객들한테 나눠주는 중이지요.”

 

그리고는 조철봉이 자리에서 일어서는 시늉을 했다.

 

“바쁘실것 같으니 이만.”

 

“아니 차는 한잔 하고 가셔야죠.”

 

당황한 숙진이 손을 뻗어 말리는 시늉을 하며 일어섰다.

 

“뭘 드시겠어요?”

 

“커피 주십시오. 프림은 빼고.”

 

“그럼 잠깐만.”

 

숙진이 서둘러 방을 나가자 조철봉은 의자에 등을 붙였다.

숙진은 34세의 나이인데도 20대 후반으로 보였다.

하긴 피부 클리닉의 원장이라 온갖 처방을 다 할테니 그럴만도 했다.

그리고 맑고 큰 눈과 곧은 콧날, 야무진 입술을 가진 미인이다.

거기에다 늘씬한 몸매까지 갖췄으니 이제까지 만난 여자중에서는 최상급에 들것이었다.

방문이 열리더니 숙진이 쟁반에다 커피잔을 받쳐들고 들어섰다.

 

“이거 번거롭게 해드리는데요.”

 

“아녜요.”

 

커피잔을 내려놓은 숙진이 처음으로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아깐 너무 황당해서요. 실례했어요.”

 

“아닙니다.”

 

조철봉은 헛기침을 했다.

 

조남태 교수는 성씨만 같을 뿐 어디 사는 놈인지도 모른다.

 

특석표 두장은 돈내고 샀다.

 

 

오숙진편(5)

 

숙진과 헤어진 조철봉이 사당동의 한성유치원 앞에 도착했을 때는 오전 11시 45분이었다.

차를 길가에 겨우 세운 조철봉은 서둘러 유치원 정문으로 다가갔다.

정문 앞에는 이미 노란색 바탕에 울긋불긋한 장식을 붙인 유치원 승합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곧 아이들이 몰려나올 것이었다.

조철봉은 정문의 기둥에 등을 붙이고 섰다.

이 자세면 유치원 현관에서 승합차까지 20여미터의 거리가 다 시야에 들어온다.

그가 다시 시계를 보았을 때 유치원 현관문이 열리더니 아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모두 노란색 재킷 일색이었지만 눈을 치켜뜬 조철봉은 금방 이영일을 찾아내었다.

잘생겼다.

커갈수록 아비를 닮아 콧날이 반듯하고 입술도 야무졌으나 눈은 지 어미를 닮아 컸다.

전체적으로 엄청난 미남이지만 어딘지 여성적이다.

영일이가 씩씩거리며 뛰어오더니

앞장섰던 아이를 제치다가 조철봉의 앞에서 하마터면 넘어질뻔 했다.

비틀거리던 영일이는 힐끔 조철봉을 보았다.

그리고는 화난 표정으로 금방 머리를 돌려 승합차로 다가갔다.

조철봉은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그동안에 영일이는 승합차 안으로 들어가 바깥쪽 좌석에 앉았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영일이가 조철봉을 알아볼리가 없는 것이다.

한살때 헤어지고 나서 공식적으로 만난 적이 한번도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승합차가 출발했기 때문에 조철봉은 휘적이며 차로 다가갔다.

영일이의 혈액형은 O형이었다.

물론 조철봉도 O형이다.

외모는 물론이고 혈액형도 같다.

차로 돌아온 조철봉은 의자에 등을 붙이고 가만 있었다.

영일이의 엄마 서경윤과의 결혼생활은 만 2년3개월12일간이었다.

그리고 영일이가 태어난 지 1년하고도 28일째에 이혼을 한 것이다.

영일이는 조철봉의 아들이다.

3년전에 재혼한 경윤의 남편 이종학이 자신의 자식으로 입적시켰기 때문에 이씨가 된 것이다.

조철봉은 입을 크게 벌리고 하품을 했다.

그리고는 앞으로 석달에 한번씩만 찾아오기로 마음먹었다.

 작년에 영일이가 유아원에 다닐때부터 한달에 한번씩은 꼭 찾아왔는데

두번이나 경윤에게 들킬뻔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놈은 볼수록 점점 정이 떨어진다.

아까 힐끔 올려다 보는 눈빛이 꼭 제 엄마를 닮았다.

회사에 도착한 조철봉은 차만 주차시켜놓고 커피숍으로 들어섰다.

 

최갑중은 커피잔을 앞에 놓고 이미 기다리고 있었다.

“오숙진이 재산상태가 꽤 좋습니다.”

조철봉이 털썩 앞에 앉자마자 갑중이 말했다.

“이혼할 때 꽤 뜯어낸 모양입니다.”

“재산상태가 뭐야, 이 자식아.”

입술을 비튼 조철봉이 갑중을 노려보았다.

“재산이라면 되는걸 가지고 문자쓰지 마.”

“형님, 기분 안좋은 일 있으쇼?”

“없어, 읊어봐.”

그러자 입맛을 다신 갑중이 조철봉의 앞에 종이 몇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볼펜으로 쓴 조사자료가 있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양재동에 5층 건물이 하나 있고 50평 아파트도

오숙진이 앞으로 되어 있어요. 그리고.”

갑중이 눈으로 조철봉이 들고만 있는 종이를 가리켰다.

“에덴 크리닉의 장사가 잘됩니다. 충분히 3000cc급 차로 바꿀 수 있는 조건이더만요.”

“그, 조 머시냐.”

눈을 치켜떴던 조철봉이 바이올린 연주자 이름을 기억해 내었다.

“조남태에 대해서도 알아봐. 그 연주회 티켓 작전이 제대로 먹혀 들었으니까 말이다.”

조철봉의 목소리에 생기가 실리기 시작했다.

 

 

 

 

오숙진편(6)


“어때? 좋아?”

허리를 세차게 움직이면서 하태호가 묻자 오숙진은 신음소리를 높였다.

“좋아. 나, 죽겠어.”

하태호는 곧 사정할 것이었다.

두 팔로 하태호의 목을 안은 숙진은 함께 오름 준비를 했지만

오늘도 맞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윽고 몸안에 들어왔던 태호의 물건이 팽창되는 느낌과 함께 귓가에서 굵은 신음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에 맞춰 숙진도 길고 높은 탄성을 뱉으며 온몸을 굳혔지만 절정에 오른 것은 아니다.

“아, 좋다.”

땀으로 범벅이 된 몸을 늘어뜨리면서 태호가 헐떡이며 말했다.

몸을 누르고 있는 하태호의 체중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으므로 숙진은 어깨를 틀었다.

“나, 좀.”

몸을 떼라는 표시였지만 하태호는 잘못 알아들었다.

그래서 오히려 숙진의 몸을 더 세게 안더니 찌그러진 물건을 넣은 채 그냥 달라붙었다.

“좋았어?”

“응. 그런데 나, 일어날게.”

“그래.”

하면서 태호가 시원스럽게 몸을 굴려 옆으로 떨어졌다.

침대에서 일어선 숙진은 갑자기 구역질을 느끼고는 어금니를 물었다.

그리고는 서둘러 화장실로 들어가 입을 벌렸지만 구역질은 나오지 않았다.

화장실의 대형 거울에 전라의 몸이 드러나 있었다.

피부와 몸 관리를 잘해 온 덕분으로 20대의 몸매를 그대로 유지시켜

거울을 보는 동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그러나 태호와의 섹스는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정도로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쓸데없는 전희가 너무 긴데다 그 짓을 하면서 꼭 좋으냐고 확인하는 통에

달아올랐던 몸이 식어버리는 것이었다.

기업 회계감사도 그렇게 하는 건지 섹스를 할 적마다 도중에 확인을 안할 때가 없다.

샤워기의 머리를 숲속에 댄 숙진은 한동안 더운물을 그곳에다 내쏘면서 가만이 서 있었다.

하태호는 VIP고객이었다.

그는 200만원짜리 피부 클리닉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남자 고객 셋을 끌어와 주었고

곧 두 명을 더 소개시켜 준다고 했다.

물론 손님들의 비용도 태호가 다 내는 접대 형식이다.

그러니 앞으로 두 달은 더 이 관계를 유지시켜야만 한다.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워물고 있던 태호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일어섰다.

번들거리는 대머리 위에 엉켜있는 몇 가닥의 머리카락이 보기 흉했다.

숙진은 외면했다.

그러나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자기 왜 점점 그렇게 세져요? 나 죽을 뻔했어.”

“그래? 오늘은 네 반응이 그저 그렇던데.”

“지쳐서 그랬지.”

“자아식.”

숙진의 벗은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친 태호의 얼굴이 밝아졌다.

태호가 화장실로 들어갔을 때 숙진은 길게 숨을 뱉었다.

주색잡기에 이골이 난 태호가 결코 녹록지가 않은 것이다.

자신이 오늘 절정에 오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태호가 화장실에서 나왔을 때 숙진은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친 채 의자에 앉아있었다.

옷을 다 입지도 벗지도 않고 이 상태로 있는 것이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어, 벌써 11시네.”

태호가 탁자에 붙은 전광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더니 말했다.

“오늘은 일찍 들어가야 돼.”

그건 숙진도 기다리고 있던 말이었다.

 

 

 

오숙진편(7)

 

“저기 나옵니다.”

조수석에 앉아 졸다 깨다를 반복하던 최갑중이 모텔 현관을 나오는 남녀를 보고 소리쳤다.
조철봉은 이미 본터라 가만 있었다.
하태호와 오숙진이다.
둘은 1m쯤의 간격을 두고 이쪽으로 다가왔는데 그들이 탄 차와는 반대쪽에 있었지만 긴장이 되었다.
먼저 태호가 검정색 벤츠 앞에 서더니 숙진에게 몇마디 말을 하고는 몸을 돌렸다.
그러나 숙진도 자신의 흰색2000㏄급 하이나로 다가갔다.

“형님 따라갈거요?”

불쑥 갑중이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 내가 뭐하러 따라가?”

“그럼 뭐하러 여기까지 온겁니까?”

“자고가는가 확인하러.”

“참 할일도 없다.”

“그래, 집구석에 들어가야 할일도 없다.”

그때 태호의 벤츠가 먼저 주차장을 나갔고 숙진의 하이나가 뒤를 따랐는데
브레이크등 한쪽이 꺼져 있었다.

“한시간 사십분이다.”

조철봉이 주차장의 빈 출구를 보며 혼잣소리처럼 말했다.

“가서 벗고, 씻고, 하고, 씻고, 입는 시간을 30분으로 잡으면 한시간 십분을 뛴 것인데.”

이맛살을 찌푸린 조철봉이 정색하고 갑중을 보았다.

“초장부터 찔렀다면 대단한 놈이다.”

“대머리 까진걸보면 꽤 세게 보이던데요?”

“그런데 오숙진의 얼굴이 개운하게 보이지가 않았어.”

“어때서요?”

“대머리와 헤어지고 나서 얼굴 표정이 싹 달라졌다.”

“나는 못보았는데.”

“대머리가 만족 시켜주지 않은거야. 내가 헤어질 때의 여자 표정 읽는 것은 도사다.”

“오숙진의 남자를 닷새동안 저놈까지 둘을 잡아냈단 말입니다.
이 페이스로 나간다면 아마 서넛은 더 찾아냅니다.”

“아, 혼자 사는데 둘이면 어떻고 스물이면 어떠냐?”

차에 시동을 건 조철봉이 주차장을 빠져나왔다.
숙진을 미행하던 갑중의 연락을 받고 이곳으로 달려온 것이다.

“하긴 형님은 차만 팔아 넘기면 될테니까요.”

시트에 등을 붙인 갑중이 느긋하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차 판매수당의 30%를 조철봉에게서 받는 것이다.
거기에다 교통비와 일당까지 받는 터라 차영업사원이 다 되었다.

“그런데 형님.”

갑자기 갑중이 정색하고 조철봉을 보았다.
차량 통행이 많아 조철봉이 시선도 주지 않았으나 그는 말을 이었다.

“오숙진이도 차 팔고 끝내실거요?”

“그건 왜 물어?”

“물건이 좋지 않습니까? 재산도 많고.”

“….”

“형님도 이제 안정을 하셔야.”

“너, 어디서 내릴래?”

힐끗 시선을 준 조철봉의 눈빛을 읽은 갑중이 입맛을 다셨다.

“다음 사거리에서 내려주슈.”

“난 기집을 안믿어.”

웅얼거리듯 말한 조철봉이 속력을 내자 갑중은 입을 다물었다.
길가에 갑중을 내려놓은 조철봉은 차에 붙은 전광시계를 보았다.
12시 1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시 속력을 내면서 불러낼만한 여자들을 하나씩 떠올렸다가 지웠다.
당분간은 사절이다.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매진하려면 잡기가 끼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조철봉은 숙진의 벗은 몸을 그리며 싱긋 웃었다.
 
 
 
오숙진편(8)
 
냉장고 안에는 생수 한병에 소주 대여섯병,
그리고 안주감으로 사놓은 먹다만 소시지 뿐이었다.
생수병을 집어든 조철봉은 벌컥이며 물을 삼켰다.

오전 6시반, 집에서 밥을 해먹은지 오래되어서 찬도 없을 뿐만 아니라
쌀통에 쌀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형편이다.
소파에 앉은 조철봉은 집안을 둘러보았다.

30평 아파트 안은 지저분했고 을씨년스러웠다.
곳곳에 옷가지가 널려 있는데다 청소도 한지 오래되어서 TV위에 먼지가 하얗게 덮였다.
소파에 등을 붙인 조철봉은 신음하듯 숨을 뱉았다.

결혼한지 반년이 조금 지났을 때부터 아내 서경윤은 바람을 피웠고
영일이가 태어난 후에는 외출 빈도가 더 잦아졌다.
아직 젖도 떨어지지 않은 아이를 친정에 맡기고 남자를 만났던 것이다.
그 남자가 바로 지금의 남편인 이종학이다.

종학은 경윤이 첫사랑이었다고 했다.
놈도 이혼해서 혼자 살고있다가 경윤과 다시 만난 것이다.
조철봉은 문득 며칠전에 만난 영일의 눈빛을 떠올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헤어지겠다면서, 사랑없는 결혼생활은 견디지 못하겠다면서
조철봉을 바라보던 경윤의 눈빛과 똑같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 지적하지는 못했지만 경윤의 표현은 정확하지 않았다.
사랑이 식은 결혼생활은 견디지 못하겠다고 해야 맞는다.
영어학원에서 만난 경윤과 1년동안 사랑한다는 말을 서로 1000번은 주고받고 했으니까.

그리고 차분하게 되씹어 보아도 그 당시의 경윤은 자신을 사랑했었다.
전화벨이 울려 조철봉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철봉이냐?”

전화기를 귀에 붙였을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대뜸 울렸다.
이 시간이면 대구에 사시는 어머니는 어김없이 확인 전화를 해온다.

“예, 어머니.”

“너, 밥 먹었니?”

“지금 마악 먹으려는 참인데.”

“국은 끓였어?”

“예, 쇠고기국.”

“내가 이번 달에 갈란다.”

“예, 하지만 출장이 있을지 모르니까 미리 연락은 해주세요”

통화를 끝낸 조철봉은 입맛을 다셨다.
어머니가 오신다는 날 출장이 있다면서 빠져 나간 것이 두번이나 된다.
이번에는 통하기가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조철봉이 회사에 출근하자 영업소장 장정수가 손짓으로 불렀다.
그는 오늘도 제일 먼저 출근해서 전시장 청소까지 손수 다 해놓았다.
그가 책상 옆으로 다가선 조철봉을 웃음띤 얼굴로 보았다.

“이봐, 김정필이가 어제 하이나 2500㏄를 하나 건졌다. 너하고는 두대 차이가 난다.”

사무실에는 둘 뿐이었지만 그가 목소리를 낮췄다.

“고객 소개로 연결 되었다는군. 그자식 대단해.”

이쪽 염장을 지르려는 뻔한 수작이었지만 신기하게도 이럴 때는 단순해진다.
가슴이 벌렁거리면서 뒤꼭지까지 땡겨오는 것이다.
김정필은 같은 과장으로 정수에 이어 두번째로 성실한 성품이었다.
그러나 정수와는 반대로 차분하고 치밀하며 인상도 좋다.
조철봉보다 1년 후배인데도 같이 과장으로 진급한 것은 정필의 실적이
서초영업소에서 언제나 1, 2위를 다퉜기 때문이다.

정수가 다시 은근하게 말했다.

“조과장이 이번에 나온 4500㏄ 크로나형 하나만 계약한다면 김정필이를 누를 수도 있어.”

4500㏄ 크로나형은 2500㏄ 하이나형보다 값이 네배가 넘는다.
이제까지 대성 자동차가 생산한 모델중의 최고급품이며 최고가품이다.

 

 

 

 

 

오숙진 편(9)

 

숙진의 전화가 온것은 오후 3시경이었다.

점심을 마치고 증권회사에 다니는 선배를 만나러 가는 중에 휴대전화로 연락해온 것이다.

“바쁘시지 않으세요?”

숙진이 그렇게 물었으므로 조철봉은 얼굴을 폈다.

 이만해도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바쁘지 않으냐고 물어보다니.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그러시다면 오후에 뵐 수 있을까요? 5시쯤 저희 가게 옆 커피숍에서.”

“가 뵙지요.”

선배 사무실이 바로 코 앞이었다.

사고가 생겨서 못가겠다는 연락을 하자 선배는 놀라는 척 했지만

안도하는 기색이 역력하게 드러났다.

선배는 2000㏄ 하이나로 바꾸겠다고 반년전부터 약속을 했고

그동안 술을 열번도 더 퍼먹였다.

시내에서 차가 막히는 바람에 조철봉이 커피숍에 들어섰을때는 5시 10분전이었다.

숙진은 이미 입구쪽을 향한 자리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오세요.”

다가선 조철봉을 향해 숙진이 웃었다.

눈이 반달형이 되면서 입 끝도 함께 올라가는 편안한 웃음이다.

“갑자기 부르셔서 놀랐습니다.”

앞쪽에 앉은 조철봉이 긴장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런 때 허물없이 굴다가는 거부감을 일으키기 십상인 것이다.

다가온 종업원에게 커피를 시키고 났을 때 숙진이 조철봉을 보았다.

“저, 제 차를 바꿔야겠는데요. 지금 타고다니는 하이나를 처분해주실 수 있죠?”

“네, 그거야. 그런데.”

여전히 정색한 조철봉이 숙진의 시선을 잡고 물었다.

“하이나 몇 년 형입니까?”

“99년 형이니까 2년 조금 넘었어요.”

“몇 킬로미터 뛰셨는데요?”

“2만5000킬로미터 쯤, 장거리는 별로 안다녀서.”

“그럼 그냥 타세요.”

조철봉이 의자에 등을 붙이고는 천천히 머리를 저었다.

“제가 차를 손봐 드릴게요. 2만5000킬로면 새 차나 같습니다. 바꾸지 마세요.”

“어마나, 참.”

눈을 크게 뜬 오숙진이 이제는 흰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차를 사겠다는데 왜 그러세요? 정말 이상하시네.”

“예, 제가 본래 그렇습니다.”

커피가 오자 조철봉은 바로 앉았다.

 

그리고는 똑바로 숙진을 보았다.

“저는 이미 영업소에서 제 실적을 다 채웠지요.

 

일등을 했단 말씀입니다.

 

그래서 억지로 팔고 싶지 않습니다.”

조철봉이 눈만 껌벅이는 숙진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리고 하이나 급으로 추천해드릴만한 모델이 없습니다.

 

일년쯤 기다리시면 새 모델이 나올테니까 그때 검토를 하시는 것이.”

“그래요?”

커피잔을 든 숙진의 시선이 차분해졌다.

“하이나 급 위에는 무슨 급이죠?”

“크로나 급인데요. 아시죠?”

“네, 봤어요.”

“그런데.”

한모금 커피를 삼킨 조철봉이 말머리를 돌렸다.

“음악회에는 가실 겁니까?

 

어제도 형님한테서 연락이 왔었는데 좌석이 빌까 걱정 하시데요.

 

특히 특석이 말입니다.”

“갈 거예요.”

숙진의 얼굴이 다시 밝아졌다.

“조교수님 연주는 꼭 들어야 돼요.”

“허어, 음악 애호가이십니까?”

“예, 바이올린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아요.”

“형님이 좋아하시겠는데.”

조철봉도 얼굴을 펴고 웃었다.

“형님 팬이시라니, 이게 무슨 우연인지.” 

 

 

 


 오숙진편(10)

 

그날밤 10시20분이 되었을 때 조철봉은 신사동 번화가에 있는 작은 카페로 들어섰다.

 

카페 안은 어둑했지만 안쪽에서 기다리던 김봉선이 그를 금방 발견하고는 손을 들었다.

“왜 이렇게 늦어?”

앞에 앉는 조철봉에게 봉선이 짜증을 냈다.

“30분이나 기다렸어.”

“그럼 지금 나갈까?”

테이블 위에 놓인 계산서를 집어든 조철봉이 묻자 봉선은 잠자코 옆에 놓인 핸드백을 집었다.

카페를 나온 조철봉은 앞장서서 바로 옆 건물인 모텔로 들어섰고 봉선도 거침없이 따랐다.

이곳은 단골이다.

조철봉이 프런트로 다가갔을 때 낯익은 종업원은 키부터 내밀었다.

당연히 쉬었다 가는 줄 알고있어 묻지도 않는다.

이쪽 둘도 마찬가지여서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봉선은 옷부터 훨훨 벗고 조철봉은

시트커버를 벗겨낸다.

일사불란한 움직임이다.

이제 조철봉이 벗고 침대에서 기다리면 화장실에서 후닥닥 화장을 지운 봉선이

알몸으로 뛰어 들어온다.

조철봉이 바지를 벗는 동안 김봉선은 이미 다 벗었다.

그 순간이었다.

벨이 울려 조철봉은 이맛살을 찌푸렸다.

“어떤놈이야?”

봉선은 화장실로 들어갔고 조철봉은 바지를 치켜올리며 문으로 다가갔다

“누구야?”

“조철봉씨, 문좀 엽시다.”

거친 목소리와 함께 다시 벨을 누르는 바람에 방안이 뒤흔들린다.

“당신 누구야?”

“글쎄, 문을 열라니깐.”

이번에는 주먹으로 문을 두드리는 소란에 화장실 문이 열리더니

봉선이 얼굴을 밖으로 내밀었다.

 빳빳하게 얼굴이 굳어져 있다.

다시 문을 두드리고 김봉선이 벌거벗은 채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러더니 미친듯이 옷을 찾아 입는다.

“당신 누구야?”

시간을 끌 요량으로 조철봉이 다시 소리쳐 묻자

이번에는 문의 손잡이가 덜컹거리면서 흔들렸다.

문을 열려고 손잡이를 잡아 비트는 것이다.

다시 주먹으로 문을 친 밖의 사내가 소리쳤다.

“빨리 문 안열어?”

“이런 시발.”

이를 악문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봉선을 보았다.

봉선은 이미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코트 단추를 채우는 중이었다.

팬티스타킹이 탁자 위에 널려져 있다.

조철봉이 팬티스타킹을 집어 봉선에게 던져주고는 문으로 다가갔다.

“좋아, 문 열테니까 조금 기다려.”

그 말에 문 두드리는 소리가 멈췄다.

심호흡을 한 조철봉이 머리를 돌려 봉선을 보았다.

“뛰어내리지마, 내가 해결할테니까.”

방은 4층이어서 어중간하게 뛰어 내리다간 죽을 것이다.

조철봉이 문을 열자 세 사내가 쏟아지듯 방안으로 들어섰다.

모두 젊다.

앞장선 사내가 조철봉과 봉선을 번갈아 보더니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재미보기 직전에 우리가 왔군 그래.”

“너희들 누구야?”

조철봉은 눈을 부릅뜨고 봉선이 한걸음 다가섰다.

그녀의 얼굴이 조금전보다 나아졌다.

남편이 ?杵틸都?줄 생각했던 것이다.

“무슨일이에요?

우린 잠깐 얘기하러 들어온건데, 당신들 누굴 협박하려는거야?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이래?”

봉선이 날카롭게 쏘아붙이자 앞장선 사내가 다시 일그러진 웃음을 띠었다.

“그래, 좋은 세상이지. 아주 첨단 기계가 발달된 세상이란 말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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