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남자

2. 오숙진편(11)~(20)

오늘의 쉼터 2014. 7. 20. 11:02

 2. 오숙진 편 (2)

 

 

오숙진편(11)~(20)

 

 

오숙진편(11)

 

사내가 정색하고 조철봉과 봉선을 쳐다보았다.

“자, 앉으실까? 내가 보여드릴 물건이 있어서 그래.”

“뭘 보여줘?”

봉선이 소리쳤지만 조철봉은 조용히 침대 끝에 앉았다.

“그래, 보여줘봐라.”

그러자 사내의 눈짓을 받은 옆쪽 사내가 주머니에서 비디오 테이프를 꺼내더니

TV앞으로 다가갔다.

TV는 비디오 플레이어가 내장된 제품이어서 사내는 익숙한 솜씨로

테이프를 넣고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화면이 뜨면서 방안 가득히 신음소리가 울려나왔다.

봉선의 신음소리였다.

화면에서는 몸부림을 치는 봉선의 몸과 일그러진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리고 조철봉의 땀에 젖은 얼굴도 겹쳐졌다.

“자아.”

리모컨으로 화면을 중지시킨 사내가 정색하고 조철봉과 봉선을 보았다.

“이만하면 내가 뭘 하는지 아시겠지?”

“이런 개자식.”

조철봉은 중얼거리며 어깨를 늘어뜨렸다.

봉선은 얼굴이 돌처럼 굳어진채 벽에 기대서서 숨도 쉬는 것 같지 않았다.

“우리는 이짓이 전문이야.”

담배를 꺼내문 사내가 의자에 등을 붙이더니 가늘게 뜬 눈으로 둘을 보았다.

“앞뒤를 다 재고 있단 말이야, 그래서 단도직업적으로 말하지.”

사내가 조철봉을 향해 담배 연기를 길게 뿜었다.

“각각 5000만원씩, 기간은 사흘,

만일 금액이나 기간을 어길 때는 즉각 이 테이프를 보낼테다.”

그리고는 사내가 손가락으로 조철봉과 봉선을 차례로 가리켰다.

“김봉선씨 남편 사무실로 직접 배달이 될거야, 그럼 어떻게 될까?”

자리에서 일어선 사내가 TV에서 테이프를 뽑아내 둘 앞에서 흔들었다.

“우선 10개 복사해 놨어. 하지만 난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야.

돈을 약속한 날에 가져오면 원본까지 돌려주지.”

사내들이 바람처럼 방을 빠져나가고 조철봉은 길게 숨을 뱉었다.

그러나 봉선은 아직 벽에 붙은 채 이제는 몸까지 떨고 있다.

“이봐, 내가 알아서 해결할게.”

조철봉이 말했지만 봉선은 듣지 못한 듯이 대답하지 않았다.

“글쎄, 걱정할 것 없다니까.”

목소리를 높인 조철봉이 이를 악물었다가 풀었다.

“인천에서 찍혔군, 어쩐지 꺼림칙 하더라니, 허어, 참.”

조철봉은 허탈하게 웃었다.

“신문에서나 보던 협박범한테 내가 당하게 되다니.”

그로부터 한시간 쯤 지난 자정 무렵에 조철봉은

신사동 사거리 뒤쪽의 음식점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주위에는 세 사내가 둘러앉았다.

“형님, 연기 괜찮았지요?”

한번에 소주를 삼킨 사내가 물었다.

최갑중이다.

 

그가 협박범의 두목 행세를 한 것이다.

 

조철봉의 시선을 받은 갑중이 히죽 웃었다.

“그 비디오를 팔아도 꽤 받을 수 있을겁니다. 아주 찐했거든요.”

“단도직입이다. 단도직업이 아냐.”

갑중의 잔에 술을 채운 조철봉이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그때 분위기로는 그말이 어울렸다.”

“어떻게 하실랍니까?”

궁금한 듯 갑중이 물었을 때 조철봉은 주머니에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이건 너희들 수당이야, 이거나 받아.”

 

 

오숙진편(12)

 

경쟁사회에서 동료는 존재하지만 우정을 나눌 친구는 없다.

이건 조철봉의 생활신조였다.

입사동기가 대성자동차에 현재 29명이 남아 있지만 9년전 입사 할 때에는 72명이었다.

반 이상이 중도에서 탈락한 것이다.

남아있는 29명중 차장이 2명, 과장이 4명, 대리가 17명, 계장이 4명,

그리고 대기 발령자가 2명이었으니

곧 그 2명의 대기 발령자가 제외되면 27명이 남는다.

그리고 내년이면 진급에서 뒤처진 계장급 4명중에서 탈락자가 생길 것이고 대리급도 위험해진다.

후배가 밀고 올라오면 위치가 불안정해지는 것이다.

따라서 쉴새없이 밀고 올라가야만 살아남는다.

동기라 하더라도 같은 조직에 있게되면 경쟁자가 된다.

오히려 더 격렬한 싸움을 치러야하는 입장이 된다.

같은 조건에서 동료나 동기에게 진급을 양보하는 인물이 있다면

기네스북에 기록될 지도 모른다.

게다가 경쟁심을 부추기는 화사측 관점에서 보면 양보는 비정상이다.

약점이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기가 쉬운 것이다.

조철봉은 과장이 되었으니 동기중 상위권에 들기는 했다.

서초영업소에 동기가 없는 것이 또한 다행이었다.

동기가 같은 영업소에서 대리로 있다면 그놈은 틀림없이 이를 악물게 될거다.

가장 위험한 적이다.

그리고 동료 과장으로 있다면 경쟁자로 끊임없이 견제를 받을것이며

소장이 동기라면 치고 올라올까봐 깔아뭉개게 된다.

따라서 본사의 인사담당은 동기들을 같은 조직에 잘 넣지 않는다.

김정필같은 1년후배와 경쟁시키는것이 휠씬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서로 여유가 있고 부담도 적다.

그래야 거침없이 승부를 낼수가 있을테니까.

김정필이 조철봉의 옆으로 다가왔을 때는 오전 11시반경이었다.

둥근 얼굴에 체격도 둥글둥글한 경필은 언제나 웃는 표정이다.

“조과장님, 크로나급으로 뛰신다면서요?”

정필은 같은 과장이었지만 1년 선배인 조철봉에게 언제나 깍듯한 존댓말을 썼다.

모니터에서 시선을 뗀 조철봉이 쓴 웃음을 지었다.

“소장이 또 시작했군. 나한테는 당신한테 실적 차질이 있으니까

내가 1등할 기회라고 수군대고 갔어.”

“어디 그런 일 한두번 당합니까? 그저 자극을 주려는 것이지요.”

“당신 욕도 했지만 그건 말못해.”

“나아, 참.”

쓴웃음을 지은 정필이 의자를 당겨 옆에 앉았다.

“본사에서 크로나를 각 영업소마다 할당을 한답니다.

그래서 우리한테는 200대가 배정된 모양인데.”

“뭐라고?”

조철봉이 눈을 치켜떴다.

크로나는 이제까지 대성에서 생산한 60여종의 승용차중에서 최고가품이다.

그러나 시대를 잘못 만났다.

시대를 잘 만나야 영웅이 탄생되듯이 아무리 멋지고 완벽한 제품이 생산되어도

시대에 맞지 않으면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불행하게도 지금이 그렇다.

갑작스럽게 닥친 아르헨티나의 경제위기와 대기업 동일그룹의 파산,

거기에다 은행권의 위축으로 구매력이 급격히 감소되고 있는 상황이다.

“우리한테 200대나? 강남영업소는 몇대야?”

“그쪽도 200대랍니다.”

정필이 은근한 시선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본사 기조실에 입사 동기가 있는 그는 정보가 빠르다.

입사 동기라도 전혀 다른 부서에 있게되면 도움이 되는 것이다.

“경쟁이 치열해 질것 같아요.

실적에 따라서 영업소를 통폐합시킨다는 정보가 있단 말입니다.”
 

 

 

 

 

오숙진편(13)

 

 

김정필의 정보는 정확했다.

그날 오후에 본사에서 내려온 공문에는 서초영업소의 할당량이 통보 되었고

정필의 말대로 크로나급 200대였던 것이다.

같은 크로나급 승용차도 3000cc 기준형 가격이 4500만원부터 4500cc 슈퍼형은 8500만원까지

7종류로 나뉘어져 있다.

본사는 친절하게 기준을 잡아주었다.

즉 3500cc 로열급 6000만원 대를 기준하여 200대를 배정해준 것이다.

“기간은 2개월이다. 2개월 내에 200대를 팔아야 한다.”

영업소장 장정수가 비장한 표정으로 말하자 조철봉이 코웃음을 쳤다.

“2자(字)를 되게 좋아하는군,

2개월내에 200대를 팔지 못하면 월급 20퍼센트를 2개월간 감봉 한답니까?”

“야, 농담 할 때가 아냐”

직원 몇명이 큭큭 웃다가 정수가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는 바람에 그쳤다.

눈을 부릅뜬 정수의 시선이 조철봉과 직원들을 차례로 훑고 지나갔다.

“2개월 후에 구조조정이 있을 예정이야.

그건 직원 인사 따위가 아니라 영업소 통폐합 차원이야.”

김정필의 정보가 그대로 다 맞았다.

조철봉은 입술 끝을 비틀며 웃었다.

그렇지 않아도 영업소는 치열한 실적경쟁 중이다.

정필을 찾는 전화를 받으면 눈 앞에 있다면 모를까

가능한한 연결시켜주지 않았던 조철봉이다.

이제는 영업소간의 경쟁까지 하게되었다.

영업소 전체 실적이 떨어지면 폐쇄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실적이 좋은 몇은 살아남겠지만 타 영업소로 배치되어 찬밥신세가 된다.

전입고참이랍시고 상병때 전입해온 병장한테 텃세를 부렸던 기억이 갑자기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날 저녁 7시 정각에 조철봉은 오숙진의 하이나를 정비소에서 찾아 세차까지 해

에덴클리닉으로 갔다.

하이나의 엔진정비는 물론 브레이크도 갈았고 찌그러졌던 번호판까지 말짱하게 펴서 붙여놓았다.

“어머, 새차가 되었네.”

주차장으로 나온 숙진이 감탄했다.

얼굴이 환하게 펴진데다 두손을 모아 가슴 앞에서 쥐고 허리를 반쯤 비튼 자세는

온몸으로 감탄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고마워서 어떡해요? 얼마 드려야죠?”

눈을 둥그렇게 뜬 숙진이 한걸음 다가서며 물었을 때 옅은 향내가 났다.

샤넬? 숨을 죽이고 그 향을 음미하며 조철봉은 행복을 느꼈다.

살냄새를 맡고싶은 충동으로 가슴이 뛰었지만 부드럽게 웃었다.

“그냥 저녁이나 사 주십시오.”

“아니, 그래도.”

“돈으로 계산 하신다면 갈랍니다.”

“그래요, 저녁 살게요.”

조남태 교수가 출연하는 음악회는 닷새후로 다가와 있었다.

조철봉은 자신의 머리 뒤로 조남태의 후광이 성인들의 그것처럼 빛난다고 믿었다.

숙진이 조철봉을 데려간 곳은 강남의 유명한 일식집 아도였다.

미리 예약을 해놓은 터라 둘은 방으로 안내되었다.

 다다미 방에 상 밑이 패어져 다리를 편하게 내려 뻗을 수 있도록 해놓았고

등받이가 붙여진 의자에 상반신을 기대면 안락해진다.

회를 시킨 숙진이 반짝이는 눈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철봉씨는 참 이상해요.”

숙진이 두번째로 이상하다는 표현을 썼다.

“저도 장사하지만 이런 서비스는 처음이거든요.”

“솔직히 길게 보는거죠.”

조철봉이 정색하고 대답했다. 그러나 거짓말이다.  

특히 여자관계에 있어서는.

 

 

 

오숙진편(14)

 

회가 싱싱하다고 오숙진이 말했지만 조철봉은 솔직히 맛을 느끼지도 못하고 주워 먹었다.

그래도 얼굴에는 감탄한 표정을 띠었다. 백세주를 시켜 각각 두잔씩 마신 후였다.

 머리를 든 숙진이 웃음띤 얼굴로 조철봉을 보았다.

“이혼하셨다면서요?”

“예? 아아, 예.”

당황한듯 머리를 건성으로 끄덕인 조철봉이 술잔을 들었다.

숙진은 김봉선에게 물었을 것이었다.

그제부터 봉선은 비디오 사건으로 정신이 하나도 없었을 테니

그전에 물었든지 연락이 왔든지 했을 것이다.

숙진의 시선을 받으며 조철봉이 술을 한모금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제가 불성실했기 때문이지요. 다 제 탓입니다.”

“아니, 그것도….”

정색한 숙진이 말을 이으려다가 조철봉의 표정을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제가 바람을 피웠습니다. 와이프한테 상처를 주었지요.”

그리고 조철봉은 씁쓸하게 웃었다.

“후회했지만 이미 늦었습니다. 그래서.”

“부인을 사랑하셨어요?”

“글쎄요….”

술잔으로 시선을 내린 조철봉이 한동안 눈만 껌벅이다가 머리를 들었다.

“잘 모르겠습니다.”

“한잔 드세요.”

숙진이 술병을 들어 조철봉의 잔에 술을 채웠다.

경계심이 풀린 숙진의 얼굴은 술기운이 번져 더 환해져 있다.

아름답다. 술잔을 든 조철봉은 소리내어 긴 숨을 뱉었다.

음향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혼사유를 와이프 탓으로 돌리는 놈처럼 무식한 놈은 없다.

이럴 때 여자는 여자편이 된다.

두번째 질문으로는 십중팔구가 전처를 사랑했느냐는 것인데

사랑이라는 표현은 아끼는 것이 유리하다.

그래서 아련한 표정으로 대처하는 것이다.

“저도 이혼했어요.”

불쑥 숙진이 말했을 때 조철봉은 ‘옳지’했다.

숙진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는 징조인 것이다.

반가웠지만 시선을 옆으로 돌려 숙진의 긴장감을 풀어 주었다.

“우린 그저 성격 차이였어요. 서로를 더 알고나서 결혼했어야 되는데.”

숙진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숙진의 전남편 양동식은 바람둥이였다.

그래서 숙진과 이혼하고 반년만에 내연의 관계였던 여자와 결혼했다.

재산은 많아서 숙진에게 위자료를 듬뿍 떼주었다.

결혼생활은 3년간 지속됐다.

“그런데 참.”

숙진이 머리를 들고 조철봉을 보았다.

“그, 사촌 형님은 자주 만나세요?”

“누구 말입니까?”

모른 척 시치미를 떼던 조철봉이 곧 머리를 끄덕였다.

“그 양반, 바쁘셔서 전화 연락만 자주 합니다.”

“유명한 분이세요.”

“글쎄요, 전 음악 계통은 잘 몰라서요.”

“음악회에 같이 가시지 않겠어요?”

“아이구, 저는.”

조철봉이 손을 저으며 웃었다.

“숙진씨가 가자는 곳에는 어디라도 가겠습니다만 그것만은.”

조철봉이 처음으로 숙진의 이름을 부른 것이다.

숙진의 시선을 잡은 조철봉이 말을 이었다.

“제가 음악에는 무식합니다.”

“저도 그래요. 하지만.”

말을 그친 오숙진이 젓가락으로 회를 집었다.

하지만 조남태와 줄이 닿고 싶다는 말일 것이다.

그것이 오늘 이 비싼 횟집으로 초대한 이유중 하나이다.

 

 

 

오숙진편(15)

 

회사에서 멀리 떨어진 성남, 그것도 외진 커피숍까지 찾아가는데 조철봉은 애를 먹었다.

 최갑중에게 질색을 한 김봉선이 겁을 먹고 마치 간첩 접선 장소처럼 알려주었기 때문이다.

봉선은 미리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아마 미행을 피하려고 영화에서 본 것처럼 택시를 서너번 바꿔타고 왔을지도 모른다.

“내일이야.”

조철봉이 자리에 앉자마자 봉선이 말했다.

“어떻게 해?”

“어떻게 하긴? 내가 만나야지.”

“돈 준비했어?”

“무슨 돈?”

눈을 크게 뜬 조철봉이 정색했다.

“내가 1억원이 어디있어?”

봉선은 이틀동안 야위었다.

다이어트에 목을 매다시피 하고 살던 봉선이었지만

지금은 몇 킬로그램이 빠졌는지 근수를 잴 정신도 없을 것이다.

봉선이 루즈도 바르지 않은 입술을 혀로 축이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무슨 계획이 있어?”

“없어.”

자를듯 말한 조철봉이 손짓으로 종업원을 부르더니 커피를 시켰다.

“그새끼한테 배 째라고 할거야. 심사 뒤틀리면 경찰을 부를거고.”

조철봉이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지금 심정 같아서는 그놈들을 공갈협박범으로 집어넣고 싶은 생각밖에 없어.”

“그러다가 어쩌려고.”

“글쎄 난 당신 때문에 이러고 있는거야.

최악의 경우 난 회사에서 잘리고 간통죄로 일년쯤 살다 나오면 되지만.”

“합의를 봐.”

봉선이 핸드백을 열더니 봉투 하나를 꺼내 탁자위에 놓았다.

“3천이야. 난 이것밖에 안돼.”

그리고는 봉선이 눈물을 쏟았다.

“미치겠어,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죽어버리고 싶지만 애들 때문에.”

종업원이 다가왔다가 놀라서 서둘러 커피잔을 내려놓고 돌아갔다.

이제 봉선은 두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었다.

“나 어떻게 해, 나만 이혼 당하면 끝나는게 아냐,

애들은 어떻게 살고 애들 아빠는 무슨 죄를 지었다고.”

그리고는 끅끅대며 울었다.

조철봉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이봐, 그쳐, 사람들 본다.”

하지만 손님은 없고 카운터에서 종업원 둘만 이쪽을 흘끔거릴 뿐이다.

“그치라니까.”

조철봉도 담배에 불을 붙였다가 거꾸로 물어서 필터 태운 연기를 빨아마셨다.

서둘러 수건을 꺼내 입안의 침을 닦은 조철봉이 봉선을 보았다.

“내가 처리할게.”

봉선이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손등으로 닦으며 조철봉을 보았다.

“어떻게?”

“내 아파트를 은행에다 담보로 넣고 돈 만들겠어.”

“나, 나머지를?”

“아니, 1억원을 다.”

그리고는 조철봉이 앞에 놓인 봉투를 집어 봉선에게 내밀었다.

“이것, 도로 가져가.”

“아냐. 아냐.”

봉선이 두손을 펴고 막는 시늉을 하면서 몸까지 뒤로 붙였다.

“그것 가져가, 가서 보태.”

“글쎄, 내가 다 해결 한다니까?”

눈을 치켜뜬 조철봉이 목소리를 높였다.

“다 내 책임이야, 내가 죽더라도 해결할테니까 당신을 오늘부터 다리 뻗고 자.”

“미, 미안해.”

봉선이 다시 울먹였을 때 조철봉이 정색했다.

“경비로 쓰게 이백만원만 줘.”

최갑중에게 나간 돈이다.

오숙진편(16)

 

 

“오늘은 애 때문에 일찍 들어가야 돼요.”

 

오숙진이 부드러운 표정으로 하태호를 보았다.

방금 피부 마사지를 끝낸 태호의 얼굴은 반들거리며 윤기가 났다.

 

 “어떡하죠? 8시까지 집에 가야 되는데.”

“할수없지 뭐.”

머리를 끄덕이며 말했지만 태호의 얼굴에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럼 내일은 어때?”

“다음주 초가 어떨까요? 그땐 애 과외가 없는 날이어서.”

“다음주 초?”

태호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 다시 연락하지.”

“미안해요.”

문밖까지 태호를 배웅하고 돌아온 숙진은 긴 숨을 뱉었다.

오늘 저녁에 일찍 들어가야 한다는건 거짓말이다.

다음주 초에 시간낼수 있다는 것도 태호를 떼어내려는 수작이었다.

하지만 그럴 형편이 안되었다.

태호의 예정된 피부관리 횟수가 아직 한달이나 남은데다 앞으로 데려올 손님도 있다.

소파에 상체를 기대고 앉은 숙진은 어두워져가는 창밖의 거리를 바라보았다.

다른때 같으면 태호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을 것이다.

뻔한 순서로 호텔 식당에서 술을 곁들여 양식이건 일식이건 먹고 방으로 들어가

섹스를 한 다음에 집으로 돌아간다.

대개 1시간쯤이면 끝난다.

태호는 섹스를 밝혔지만 만족시켜주는 경우는 드물었다.

숙진은 문득 조철봉의 얼굴을 떠올리고 눈이 가늘어졌다.

집중할때의 버릇이다.

그가 장삿속으로 접근해 오는 것은 분명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을 보면 욕망도 읽을 수 있다.

그는 드물게도 그런 눈빛을 감추지 않는 남자중 하나다.

그때 전화벨이 울려 숙진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숙진이니?”

귀에 붙인 전화기의 수화구에서 김봉선의 목소리가 울렸다.

“어머 언니.”

“너, 바빠?”

“아니 별로 그런데 웬일이야?”

“갑자기 생각나서 한거야.”

그럴 봉선이 아니고 믿을 숙진도 아니다.

봉선은 고등학교 5년 선배지만 클리닉의 손님으로 알게된 사이다.

그러나 근래들어 친해지기는 했다.

“너, 나하고 저녁 먹을래? 내가 살게.”

봉선의 제의에 숙진은 망설이지 않고 승낙했다.

봉선은 아쉬운 소리할 형편도 아니었고 그보다도 조철봉을 소개시켜준 장본인이다.

클리닉 근처의 스테이크 전문점에 마주 앉았을때 놀란 숙진이 탄성부터 뱉었다.

그동안 봉선이 눈에 띄게 말랐기 때문이다.

“어머, 어머, 언니, 지방제거 수술했어?”

“내가 미쳤니? 그런 수술을 하게?”

눈을 흘기면서도 봉선은 기쁜듯 웃었다.

“왜? 많이 빠진거 같니?”

“그럼, 얼굴에서도 금방 티가 나는데.”

“그래?”

봉선이 만족한듯 손바닥으로 볼을 쓸더니 정색했다.

“너, 조철봉이 어떻게 생각하니?”

“어떻게 생각하다니?”

“아직 차 안샀지?”

“그사람이 사지말고 더 타라고 했어.”

“걔가 진국이다.”

물잔을 내려놓은 종업원에게 건성으로 음식을 시킨 봉선이 열에 들뜬 눈으로 숙진을 보았다.

“요즘같은 세상에 그만한 남자가 없어, 내가 그말 해주려고 온거야.”

“언니도 참, 뜬금없이.”

“걘 내 사회친구 사촌동생이지만.”

봉선이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지 자세를 고쳐 앉았다.

 

오숙진편(17)

 

 

“여자를 빼앗긴 놈이 병신이지.”

술잔을 든 조철봉이 술기운에 붉어진 눈으로 최갑중을 보았다.

포장마차 안은 손님이 가득한데다 소란해서 조철봉은 목소리를 높였다.

“잘 새겨들어, 인마. 여자를 차지하려면 강해져야돼.

그것은 곧 강한 자를 여자가 따른다는 말씀이야.”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는데.”

갑중의 주량은 소주 한병이다. 이미 정량이 초과되었다.

초점없는 시선을 든 갑중이 웅얼거리듯 말했다. 


“형님은 지치지도 않으슈? 그렇게 끊임없이 여자를 거쳐 가는것 말이요.”

“지치기는, 내 생의 활력소인데.”

조철봉이 가슴을 펴고는 한모금에 소주를 삼켰다.

“나는 그년이 떠난후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아니, 대오각성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야.”

“거창하시군.”

“마음이 떠난 여자 앞에서는 거침없이 돌아서.

그래야만 여자가 조금이라도 미련을 품게되고 네 손해가 적은거야.”

“명심하겠습니다.”

“여자한테 자극을 줘라.

여자 생일이나 네 결혼기념일 따위에 꼴값떨고 꽃다발이나 안겨주는 그런 자극말고,

네가 도망 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언제나 품게끔 해줘야한단 말이다.”



“어렵쇼.”

갑중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는 초점을 잡았다.

“그것 살벌하네. 그렇게 살아서야 어디.”

갑중은 입을 다물었다.

조철봉이 자신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갑중이 조철봉으로부터 처음 의뢰 받은 일이 서경윤의 뒷조사였다.

그렇게해서 이종학과의 밀회를 알게 되었다.

조철봉이 가라앉은 표정의 갑중을 보더니 히죽 웃었다.

소주를 세병째 비우고 있었지만 그는 멀쩡했다.

“요즘 실패학 강의가 유행이라며? 그럴만 하다.

옛 상처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이 조철봉이는 천하무적이 될테니까.”

“그렇다면 나도 상처부터 받아야겠는데.”

“네가 내놓을 것이 없다면 애초부터 여자한테 다가서지도 마라, 명심해라.”

눈을 부릅뜬 조철봉이 빈 술잔을 내밀었다.

잔을 채우라는 것이어서 갑중은 서둘러 술을 따랐다.

“하지만 더 중요한 점은 여자를 절대로 믿으면 안된다는것, 네 어머니만 빼놓고 말이야.”

조철봉이 손끝으로 갑중이 코를 겨눴다.

“그러면 상처를 받을 일도 없다.”

“외로울텐데.”

눈을 가늘게 뜬 갑중이 말했을때 조철봉은 입술을 일그러뜨리며 웃었다.

“병신아, 그건 참아내야지.”

“형님은 조금 비뚤어져 있다는 생각이 안듭니까? 아, 화내지 마시고.”

조심스럽게 갑중이 물었을때 조철봉은 다시 웃었다.

“나는 앞으로 5년안에 100억을 모을테다, 그렇게 된 후 나를 다시 평가해봐라.”

“자동차는 그만 두실거요?”

“아니, 이 일도 계속하면서 돈을 모은다, 두고 보아라.”

조철봉이 아파트로 돌아온 시간은 밤 12시반이었다.

소파위에 옷을 팽개쳐놓고 화장실로 들어선 조철봉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물끄러미 보았다.

“그렇지. 외로움은 참아낸다고 했니?”

거울에다 대고 말한 조철봉은 세면기의 물을 틀고 세수를 했다.

집에 돌아와 이렇게 화장실의 거울 앞에서 중얼거리는 것이 버릇이 됐다.

세수를 마친 조철봉이 다시 중얼거렸다.

“참을만 하네.”

 

오숙진편(18)

 

 

김봉선한테서 전화가 온 것은 오전 10시 정각이었다.

“나야, 조과장님.”

봉선이 조금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는 자기야, 나야, 했었다.

“나, 회사옆 커피숍에 있어. 잠깐 나올 수 있지?”

“무슨 일인데?”

“글쎄, 나와보면 알아. 잠깐이면 돼.”

대답할 틈을 주지 않고 전화를 끊었으므로 조철봉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른 시간이어서 커피숍에 손님은 봉선뿐이었다.

조철봉이 앞에 앉자마자 봉선은 차를 시키지도 않고 말했다.

“대성에서 새로 나온 고급차, 크로나 말이야, 그거 한대 살 사람이 있어.”

조철봉의 시선을 잡은 봉선이 환하게 웃었다.

“우리 사촌오빠야. 내가 다 이야기 해놓았으니까 지금이라도 가봐. 여기 명함 있어.”

봉선이 조철봉의 앞에다 명함을 내려놓았다.

“진짜 사촌오빠야. 철봉씨가 내 친구 동생이라고 했으니까 그렇게 말하면 돼.”

“그동안 차 살 사람 알아본 거야?”

“응, 너무 미안해서.”

정색하고 머리를 끄덕이던 봉선이 생각난 듯 물었다.

“그놈들한테 얼마나 줬어?”

“7000으로 합의하고 다 줬어.

테이프도 다 찾고 그놈들한테 각서도 받아 놓았으니까 끝난 거야.”

“정말 미안해.”

울상까지 지은 봉선이 조철봉을 보았다.

“어떻게 해? 아파트까지 담보로 해서.”

“돈 모아서 갚아야지.”

“오빠는 틀림없이 크로나를 산다고 했으니까 가봐. 그리고,”

조금 진정이 된 듯 봉선이 종업원을 손짓으로 불러 커피를 시키더니 조철봉을 보았다.

“오숙진이 어때? 걔도 자기한테 호감이 가는 눈치던데.

내가 며칠전에 만나서 자기 피알을 잔뜩 해놓았거든.”

봉선이 다시 자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걔도 혼자 살고 있지 않아? 그리고 그만한 조건을 갖춘 여자가 어디 있어?

인물 좋겠다, 재산 많겠다.”

“난 아파트까지 담보로 넣어서 거지 신세야. 존심 상해서 못해.”

“참, 내, 자기가 이렇게 순진할지 몰랐어. 그러니까 더욱.”

“그리고 그 일 있고나서 요즘은 물건이 서지도 않아. 여자에 대한 관심도 없어졌고.”

“어마나.”

둥그렇게 눈을 뜬 봉선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번졌다.

봉선이 소리죽여 가늘고 긴 한숨을 뱉었다.

“나도 요즘 가끔씩 깜짝 깜짝 놀래곤 해. 그 일 생각하면 몸서리도 나고.”

그리고는 봉선이 주위를 둘러보더니 자리를 고쳐앉았다.

“숙진이한테는 자기가 아파트 두어채에다 땅도 있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말해. 기분이 풀리면 말이야.”

“어쨌던 고마워.”

명함을 집어든 조철봉은 이제 다시는 봉선이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직감했다.

오늘 온 것은 차량 구입건과 오숙진의 동향을 말해주려고 온 것같아 보이지만

그 사건이 어떻게 해결되었나를 확인하려는 것이 주목적이다.

게다가 물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고 했으니

조금 남아 있을지 모를 미련까지 다 없어졌을 것이다.

사무실로 돌아온 조철봉은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를 돌렸다.

김봉선의 사촌오빠 김태수는 꽤 큰 회사의 대표이사 사장이었다.

이만하면 크로나 4500cc를 계약할 만했다.

 

 

 

오숙진편(19)

 

 

“네가 에덴 클리닉의 오숙진이지?”

수화구에서 앙칼진 여자 목소리가 울려퍼져 오숙진은 숨을 멈췄다.

“아니, 여보세요.”

“그렇군, 네가 오숙진이지?”

“여보세요.”

숙진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도대체 댁은 누구예요?”

아침 8시반, 유치원에 다니는 수지를 버스에 태워 보내고 화장대 앞에 앉아

출근 준비를 하던 중 전화를 받은 것이다.

“내가 누구냐구? 그럼 말해주지.”

여자의 거친 숨소리가 귀를 따갑게 해 숙진은 전화기를 귀에서 조금 떼었다.

“나는 하태호란 놈의 법적인 부인이다. 자, 이제는 내가 왜 전화했는지 알겠지?”

그순간 눈앞이 노래진 숙진은 숨을 멈췄다. 그때 여자가 쏟아붓듯 말을 이었다.

“내가 너희 년놈들을 가만두지 않을테다. 특히나 네년은 용서할 수 없어.

네년이 꼬리를 쳐서 벌써 5억이 빠져 나갔어. 이 강도같은 년.”

“아니, 여보세요.”

“어디 두고 보아라. 내가 어떻게 하나. 피눈물을 쏟게 만들테니까.”

“여보세요, 나는 무슨 영문인지.”

“하태호한테 전화해서 말을 맞출 생각일랑 꿈도 꾸지마.

전화국에 체크하면 통화 시간까지 다 나오니까 말이야.”

전화가 끊기자 숙진은 어깨를 늘어뜨렸다. 청천벽력이다.

온몸의 맥이 빠진 숙진은 한참을 앞의 거울만 바라보며 움직이지 않았다.

숙진이 에덴 클리닉에 출근했을 때는 10시 반이었다.

평소보다 한시간 가깝게 늦은 것인데 집에서 넋을 잃고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방으로 따라 들어선 미스김이 숙진에게 말했다.

“저, 하사장님은 오늘 나오시지 못한다는데요, 사장님.”

퍼뜩 시선만 든 숙진을 향해 미스김은 말을 이었다.

“제가 연락을 했더니 오늘 몸이 좋지 않으시다고….”

오늘 오후에 하태호의 피부 관리 스케줄이 있는 것이다.

이미 집안에서 대소동이 일어났을 터이니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방을 나갔던 미스김이 곧 다시 들어오더니 숙진의 안색을 살폈다.

“사장님, 어디 아프세요?”

“아니, 괜찮아.”

“대기실에 조철봉씨가 오셨는데요.”

조철봉이 오늘 들리겠다고 어제 연락이 왔었다.

“들어오시라고 해.”

시선을 내린 숙진이 미스김을 내보내고 다시 길게 숨을 뱉었다.

이런 일은 처음이다.

너무 놀랍고 황당해서 어떻게, 어디에서부터 손을 써야 할지 막막하기만 할 뿐이다.

문이 열리더니 조철봉이 들어섰다.

숙진의 얼굴이 밝아졌다.

“어서 오세요.”

자리를 권한 숙진이 생기띤 눈으로 조철봉을 보았다.

“뭘 드시겠어요?”

“커피 주십시오.”

숙진은 인터폰을 눌러 커피를 시키고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조남태의 바이올린 연주회가 내일로 다가왔다.

숙진은 내일 연주회가 끝나고나서 조남태에게 인사를 시켜달라고 부탁할 생각이었다.

미스김이 커피를 내려놓고 나가자 전화벨이 울렸다.

순간 얼굴을 굳힌 숙진이 전화기를 들고 귀에 바짝 붙였다.

“여보세요.”

“이년, 나왔구나. 이 뻔뻔한 년.”

악을 쓰듯 여자가 소리쳤으므로 숙진은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장난 전화예요”

조철봉이 무심하게 머리를 끄덕였을 때 다시 벨이 울렸다.

 

 

오숙진편(20)

 

“받지 마세요.”

얼굴이 굳어진 숙진이 조철봉을 보았다.

“장난 전화가 많이와요.”

“그렇습니까?”

벨이 열번을 울리고 나서 전화가 끊길때까지 둘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놈은 혼을 내줘야 하는데, 발신자 추적장치를 붙이지 않았습니까?”

조철봉이 손을 뻗어 전화를 들었을 때 다시 벨이 울려 숙진은 깜짝 놀랐다.

그러나 늦었다.

이미 조철봉이 전화기를 들어 귀에 붙이고 있었던 것이다.

“여보세요.”

눈을 치켜뜬 조철봉이 송화구에 대고 거칠게 목소리를 높였다.

“당신 누구야?”

조철봉의 시선이 숙진에게로 옮겨지더니 이맛살을 찌푸렸다.

“뭐라구? 하태호와 함께 고발한다구?”

“끊으세요.”

숙진은 일어서서 전화기의 코드를 잡아당겼다.

조철봉이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무슨 일입니까?”

조철봉이 정색하고 묻자 숙진은 머리를 저었다.

하얗게 얼굴이 굳어져 있다.

“제가 지금 바빠서.”

나가달라는 뜻이었지만 조철봉은 오히려 소파에 등을 댔다.

“간통으로 고발 한다는데요. 아무래도 질이 나쁜 부류인것 같습니다.”

“아무것도 아녜요.”

“저한테 말씀 하세요. 제가 이런 일 처리에는 익숙하거든요.”

“글쎄, 저는.”

“이렇게 회피만 하다가 일이 커지고나면 손을 쓸수 없습니다.

지금 서둘러야할 상황인것 같은데요.”

“정말 황당해요.”

갑자기 숙진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다.

숙진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제 손님 와이프래요. 제가 돈을 빼돌렸다면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하태호란 사람입니까?’

머리를 끄덕이고 숙진은 휴지를 뽑아 이번에는 코를 풀었다.

“간통으로 고발한다지만 현장을 잡히지 않은 이상 문제 될것이 없습니다.”

조철봉이 부드럽게 말했다.

“그, 하태호란 분한테 연락은 해보셨습니까?”

“아뇨, 안했어요.”

“하긴 요즘은 용역회사에다 의뢰를 하면 현장 사진까지 다 찍어주는 세상이라.”

입맛을 다신 조철봉이 숙진을 보았다.

“말을 맞추고 어쩌고 하기에는 늦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럼 어떻게 해요?”

체면을 벗어던진 숙진이 매달리는 듯한 얼굴로 물었다.

“저는 정말.”

“제가 하태호란 분을 만나보지요.”

조철봉이 정색하고 말했다.

“그동안 숙진씨는 아이 데리고 여행이나 다녀 오시지요.

제가 수시로 연락을 할테니까.”

“여행요?”

눈을 크게 뜬 숙진을 향해 조철봉이 웃어보였다.

“날씨도 따뜻해져서 바닷가가 좋을 겁니다.

얼른 준비하세요.

그동안 제가 새 휴대전화를 하나 개통해 드릴테니까

그걸로 저하고 연락하십시다.”

“잘 될까요?”

“글쎄, 걱정하지 마시라니까.”

조철봉이 다시 정색했다.

“당사자끼리 부딪치면 감정이 앞서는 바람에 일이 더 꼬입니다.

이런 일은 제삼자가 처리해야 됩니다.”

“고마워요. 그리고.”

머리를 숙인 숙진이 아래입술을 물었다.

“부끄러워요. 철봉씨.”

 

 

 

'소설방 > 강안남자'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정상을 향하여 (21)~(29)  (0) 2014.07.20
5. 정상을 향하여 (11)~(20)  (0) 2014.07.20
4. 정상을 향하여 (1)~(10)  (0) 2014.07.20
3. 오숙진편(21)~(31)  (0) 2014.07.20
1. 오숙진편(1)~(10)  (0) 2014.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