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강안여자

11. 함정 (3)

오늘의 쉼터 2014. 7. 20. 10:49

 

11. 함정 (3)

 

 

김양희는 침대에 오르자 수줍고 차분하던 평소의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적극적이며 활기띤 자세로 오히려 강한을 리드했다.

절정에 올랐을 때는 거침없는 탄성을 뱉어내어서 강한이 당황할 정도였다.

새벽 1시 반. 김양희가 원하는대로 강한은 동해안의 모텔방에 누워 있었다.

 "오빠. 좋았어."

 강한의 가슴에 볼을 붙인 김양희가 아직도 거친 숨을 뱉으면서 말했다.

 "너무 너무 좋았어. 오빠."

 "그런 것 같더라."

 김양희의 허리를 당겨안은 강한이 웃음띤 목소리로 말했다.

김양희가 알몸을 강한에게 밀착시켰다.

 "지현이 그 기집애 말이 맞았어."

 "무슨 말야?"

 그러자 김양희가 강한의 가슴에 입술을 붙였다가 떼었다.

 "오빠가 세다고 했어."

 "……."

 "대물이라고도 했고."

 "너희들도. 참."

 입맛을 다신 강한이 김양희의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가볍게 쳤다.

 "아야야."

 김양희가 과장되게 비명을 뱉더니 하반신을 밀착시켜 문질렀다.

그러더니 강한의 남성을 감싸 쥐었다.

 "어머. 또."

 강한이 김양희의 엉덩이를 당겨 안았다.

 "너희들 그런 이야기도 다 하는거야?"

 "응. 다 해."

 방안의 불을 환하게 켜놓아서 김양희의 상기된 얼굴이 다 드러났다.

김양희가 말을 이었다.

 "그 기집애는 오빠가 체위를 몇번 바꾸었고 지가 몇번 홍콩에 갔다 왔는지도 다 말했어."

 "이것들이 변태네. 너도 걔한테 오늘밤 이야기 할 참이야?"

 "왜? 어때서?"

 김양희가 남성을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난 자랑하고 싶은데. 오빠하고 처음 할 때 45분 걸렸다고."

 "왜? 그게 기록이냐?"

 "난 이렇게 길게 첨 해봤어."

 그러더니 강한의 시선을 받고는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러나 말은 이었다.

 "정말야. 그동안 두 번, 아니. 세 번 했어."

 "난 두 번 한 줄 알았는데."

 "아냐 세 번이야. 그런데."

 다시 머리를 든 김양희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강한을 보았다.

 "오빠. 이건 아직도 왜 이렇게."

 지금 김양희는 강한의 남성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강한은 쓴웃음을 지었다.

아직 대포를 발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거야 내가."

 말을 멈춘 강한이 김양희의 허리를 당겨 안았다.

마침내 장미하고 엮어지게 되었다는 흥분이 김양희와 동해안으로 달려오게 만든 것이다.

김양희가 바란다고 해서 동해안까지 올 생각은 없었던 강한이다.

장미의 동생 장선에게 공을 들인 것이 성공했다.

장미는 경찰의 감시를 받고 있는 터라 믿을만한 조력자가 아쉬운 상태였고 이제 동생의

남자친구인 김동수를 이용하려는 것이다.

 "오빠."

 김양희가 부르는 소리에 강한은 생각에서 깨어났다.

다시 달아오른 김양희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응? 그래?"

 강한이 김양희의 몸을 눕히면서 문득 쓴웃음을 지었다.

이 와중에도 김양희는 시간을 잰 것이다. 45분.

지금까지 섹스를 한 최장 기록이라고도 했다.

 "오빠. 괜찮아?"

 벌써 몸은 받아들일 준비를 하면서도 김양희가 그렇게 물었으므로 강한은 다시 혼자 웃었다.

그러나 마음은 가볍다.

몸이 합쳐지자 김양희가 신음하면서 두 팔로 허리를 감아 안았다.

 "아아. 좋아."

 그때 강한의 머릿속에서 장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금까지는 흐릿하게 윤곽만 기억났는데 처음 선명하게 나타난 것이다.

 

 

 

 

 

 

   "윤복주씨라고 지난번 조 회장 살인사건 때 별장에 가정부로 있던 여자의 신고를 받고

    수사본부가 들썩거렸다."

    박용수가 찌푸린 얼굴로 말을 이었다.

 "장미 그년이 협박을 했다는 거야. 불리한 증언을 했다면서 죽이겠다고 말야."

 커피잔을 든 강한이 커피숍 안을 둘러보았다. 오전 10시였는데 손님은 그들 둘뿐이다.

 "그래서요?"

 한 모금 커피를 삼킨 강한이 묻자 박용수는 쓴웃음을 지었다.

 "윤복주씨가 경찰에 신변경호 요청을 했어. 24시간 보호를 해달라고 했다는구만.

    하지만 대전 경찰서가 어디 그렇게 한가한가?

    그 여자도 지가 무슨 중요 인물인 줄 착각을 하고 있는 모양이다."

 "불리한 증언을 했다고 죽인다구요?"

 "그렇다니까?"

 "대전까지 내려가서 그런 걸 보면 억울해서 그런 것 아닙니까?"

 "글쎄, 확실하지도 않아. 추적을 해보니까 대포폰으로 통화를 했어.

    당황해서 윤복주씨는 녹음도 못했다는 거야."

 강한은 잠자코 벽에다 시선을 준 채 머리를 끄덕였다.

오늘은 박용수에게 장미에 대한 수사상황을 알아보려고 찾아온 것이다.

그러나 수사는 답보 상태에 빠져 있었다. 장미는 잠적해버린 것이다.

그러다 바로 이틀 전에 장미가 나주댁으로 불리던 윤복주씨를 대전까지 찾아가

협박했다는 소동이 일어났다.

 "그 도난당했다는 CD 말인데."

 박용수가 정색하고 강한을 보았다.

 "조 회장 측에서 확인해줬어. 총 도난액은 65억이야. 그런데 비자금이라

    어떤 근거도 없고 금액만 확인했어. 그러니까 바로 현금이 될 수 있는거야."

 강한의 시선을 받은 박용수가 희미하게 웃었다.

 "조 회장 측에선 자료도 없는터라 그냥 묻어버리려고 하는 걸 겨우 금액만 알아낸 모양이더라.

    그러니까 장미 그년은 65억을 한 입에 삼킨 것이지."

 "……."

 "묻어 두었다가 하나씩 꺼내 쓰면 찾기 힘들어. 외국에서도 바꿀 수 있거든."

 "고맙습니다. 형님 바쁘신데."

 입맛을 다시 강한이 인사를 하자 박용수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얀마, 경력 수십 년짜리 고참 형사들도 지금 헤매고 있는 판인데 네가 어쩌겠다고

    그년 꽁무니 쫓아다니는겨? 이제 그만 치워라."

 "750만원은 받아 내겠어요. 이자까지."

 "자식이 악착같기는."

 자리에서 일어섰던 박용수가 생각났다는 얼굴로 말했다.

 "장미가 여동생한테 자주 연락을 하는 모양이야.

    그래서 그쪽에다 수사력을 집중시켰다고 하더라.

    그 동생되는 기집애도 여우라지 남친하고 영등포에서 미행을 따돌리고 도망간 적도 있다더군."

 "……."

 "여동생 친구 핸드폰으로도 연락을 해와서 이젠 그쪽까지 감시한다는 거다."

 "그 남친은요?"

 따라 일어선 강한이 불쑥 물었다.

눈만 크게 든 박용수를 향해 강한이 다시 물었다.

 "동생 남자친구 말입니다. 누군지 파악은 했답니까?"

 "인마. 파악했다면 벌써 수사선상에 올려 놓았겠지."

 강한은 외면한 채 앞장 서서 카운터로 다가가 계산을 했다.

박용수는 강한이 장선과 접촉하고 있는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박용수와 헤어진 강한이 주차장에 세워둔 차에 올랐을 때 핸드폰이 진동을 했다.

발신자 번호를 본 강한이 서둘러 핸드폰을 귀에 붙였다.

 "음. 나야."

 "사장님 전데요."

 신우트레이딩의 전화당번 미스 황이다.

 

 "조금 전에 미스 장이란 분한테서 전화가 왔는데요. 장미씨라고."

 

 강한이 숨을 죽였다.

장미는 핸드폰 번호를 아는데도 회사에다 연락을 해서 사무실 확인부터 했다.

용의주도하다. 미스 황의 말이 이어졌다.

 

 "핸드폰으로 다시 연락하신답니다."

 

 

 

 

 

 

 

 

 

다가온 이용구가 앞쪽에 앉더니 웃음띤 얼굴로 물었다.

 "한 잔 하신 겁니까?"

 탁자 위에는 반쯤 비워진 위스키병이 놓여 있는 데다 장미의 얼굴은 술기운으로

붉어져 있는 것이다.

 "드실래요?"

 대답 대신 술병을 든 장미가 묻자 이용구는 머리를 끄덕였다.

 "마시죠."

 오후 9시반 신촌 사거리 근처의 카페 안이다.

테이블은 젊은 남녀로 꽉 찼고 떠들썩한 분위기였는데 주위를 들러본 이용주가 혼잣소리를 했다.

 "과연 금방 표시가 나겠군요"

 "뭐가 말예요"

 이용구의 잔에 술을 따르면서 장미가 물었다.

오늘 이곳으로 약속 장소를 정한 것은 장미였다.

이용구가 장미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경찰이 들어오면 금방 표시가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사복으로 위장을 했더라도 말이죠."

 한 모금에 위스키를 삼킨 이용구가 턱으로 주위를 가리켰다.

 "나이를 감출 수는 없을 테니까요 모두 20대 초반 아닙니까?"

 "그것 생각하고 여기로 장소를 정한 것 아녜요."

 "어쨌든 용의주도하십시다."

 이용구가 웃음띤 얼굴로 장미를 보았다.

 "저를 파트너로 정하시기 전에 저에 대해서도 철저하게 조사 하셨겠지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그러셨을 것 같아서요."

 "당연한 일이죠 제가 수배자 신분이라서요."

 한 모금 술을 삼킨 장미가 의자에 등을 붙였다.

그렇다. 이용구에게 일을 의뢰하기 전에 뒷조사를 할만큼 했다.

이용구는 32세에 미혼이며 용역회사 운영 경력이 2년, 명문대인 제일대 영문과 출신으로

대양상사라는 중견기업 비서실에서 3년 근무하고나서 용역회사를 차린 사내였다.

시골에서 축산업을 하는 농부의 차남으로 고향에서는 수재로 소문이 났으며

지금도 부모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처지여서 성공에 대한 열망이 남보다 크다.

비서실에서 주로 회장 개인사를 처리하다가 용역회사를 차려 버린 것도 조급증이 원인일

것이었다.

물론 장미는 전에 이용구에게 여러 번 일을 맡긴 적이 있어서 알고 있는 처지였다.

이용구는 장미가 자신의 상황을 털어놓고나서 파트너 제의를 했을 때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승락했다.

장미에게 이 작전이 끝나면 책임지고 원하는 외국으로 보내 주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경찰이 오전이나 오후에 한번씩 들렀다가 갑니다. 하지만 건성이더군요."

 이용구가 말했으므로 장미는 생각에서 깨어났다. 나주댁 상황을 말한 것이다.

이용구가 말을 이었다.

 "그 여자는 사흘 동안 딱 두 번밖에 나갔습니다. 한번은 수퍼에 갔고 또 한번은 동네 미용실에."

 "……."

 "그 여자 월세방에 들어간 사람은 둘. 하나는 부동산이고, 또 하나는 우유 배달 아줌마였죠."

 "……."

 "절대로 놓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요"

 심호흡을 한 장미가 술잔을 내려놓더니 옆에 놓인 노란색 대형봉투를 집어 이용구에게 건넸다.

 "여기 있어요."

 봉투를 받은 이용구에게 장미가 차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1억짜리 CD예요"

 "염려하지 마십시요. 1할 떼고 9천을 내일 오후까지 가져오겠습니다."

 "조심하셔야돼요."

 "잘못하면 저도 신세를 망치게 되니까요."

 쓴웃음을 지은 이용구가 장미를 보았다.

 "이미 공범이 되었지만 잡혀서 교도소에는 가지 말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나주댁한테서 경황 중에 받은 10억 CD 중 한 장이다.

1억을 9천으로 바꾸면 이용구는 수당 5천을 선금으로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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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구가 카페를 나갔을 때 장미는 길게 숨을 뱉었다.

나주댁과의 작업이 끝나기 전까지는 이용구가 배신할 가능성이 적다.

나주댁이 60억 가까운 CD를 갖고 있다는 것을 아는터라 그것을 빼앗아 올 때까지

열심히 도와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욕심이 어떤 것인지 장미는 잘 안다.

나주댁이 한때 살을 붙이고 살았던 조 회장을 살해한 것도 돈 욕심 때문이다.

신의, 약속, 인연 따위가 돈 앞에서 얼마나 가볍게 무시되는지 장미는 수없이 겪어본 것이다.

미가 숙소로 사용하는 신림동의 원룸 오피스텔로 돌아왔을 때는 밤 1시 반이었다.

오피스텔 입주자 대부분은 대학생이었으므로 장미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렸다.

점퍼에 바지를 입고 운동화를 신은 차림이어서 장미는 꼭 학생 같았다.

옷을 벗어 던지고 반바지에 소매없는 셔츠 차림으로 의자에 앉았을 때 탁자 위에 포장해 놓은

뭉치에 시선이 닿았다.

방수지로 단단히 포장해 놓은 뭉치는 꽤 컸다.

사과상자 반 만했다.

앞면의 수취인 이름은 김동수. 장선의 남자 친구였다.

두 다리를 길게 뻗고 의자에 등을 붙인 장미가 물끄러미 뭉치를 보았다.

뭉치 안에는 현금 3000만원이 들어 있는 것이다.

김동수의 목소리는 친근감이 느껴졌다.

아직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인상도 좋을 것이다.

장선도 김동수가 키가 크고 사내다운 용모라고 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장미는 눈을 감았다.

지금까지 사내를 여러 명 겪어왔지만 모두 손님같은 존재들이었다.

가장 최근에 만났던 이석훈도 그렇다.

모두 거래 관계였고 이석훈한테서는 에너지를 충전받았다.

이석훈과 만나고 나면 때밀이 마사지를 한 기분이 들었고 그 분위기가 며칠 갔으니까.

다른 놈들한테서는 몸의 대가를 받거나 사기를 쳤다.

장미의 감은 눈 앞에 문득 KTX에서 만난 사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강한이라고 했던가? 아주 가볍게 현금을 빼돌렸기 때문인지

그놈을 떠올리면 산뜻한 느낌이 든다.

다음날 오전 10시 정각이 되었을 때 장미는 사당동 사거리의 커피숍에 앉아서 전화를 했다.

방금 커피숍으로 퀵서비스를 불러 뭉치를 김동수에게 보낸 것이다.

김동수는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 장민데요."

 장미가 커피숍 안에서도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말했다.

 "아아, 예, 안녕하십니까?"

 김동수의 목소리에서 반갑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꾸민 것 같지는 않다.

 "저, 방금 퀵서비스로 물건을 보냈거든요? 그 사무실루요."

 "아, 그렇습니까?"

 "한 시간 후에 도착한다고 하던데요."

 "그럼 여기서 기다리죠."

 김동수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마침 선이하고 오늘밤에 만나기로 했거든요. 그때 전해 주겠습니다."

 이미 그런줄 알고 물건을 보내는 것이었지만 장미가 놀란듯 목소리를 높였다.

 "어어, 잘 됐네요. 그런데."

 "압니다. 미행이 따라 붙겠지요. 물건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하고 선이를 추궁할지도 모릅니다."

 "죄송해요."

 "천만에요."

 그리고는 김동수가 짧게 웃었다.

 "그래서 오늘은 제가 사전에 준비를 단단히 해놓았습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고맙습니다. 그리고 부끄러워요."

 "천만에요."

 그때 장미가 눈을 치켜뜨고 앞쪽의 벽을 보았다.

 "저기, 언제 한번 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식사라도 대접할게요."

 "아닙니다. 아닙니다."

 김동수가 펄쩍 뛰듯이 정색한 목소리로 사양했다.

 "그러실 필요없습니다. 너무 그러시면 제가 부담이 됩니다."

 "제가 정말."

 그순간 장미는 김동수가 동생 장선의 남자 친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남자가 아닌 것이다.

그래서 목소리가 낮아졌다.

 

 "다음에 꼭 뵙고 싶어요. 김동수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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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세대주택의 계단을 내려간 강한이 지하방 벨을 눌렀다.

 "누구세요?"

 안에서 금방 묻는 소리가 들리더니 문이 열리고 윤명심의 모습이 드러났다.

 "어머, 일찍 오셨네."

 "윤지 집에 있어요?"

 안으로 들어선 강한이 들고온 인형을 윤명심에게 내밀며 물었다.

 "학원에 갔어요."

 곰 인형을 받아든 윤명심의 얼굴에 웃음기가 떠올랐다.

 "예뻐요."

 강한은 거실 겸 주방 공간으로 쓰이는 벽에 등을 붙이고 앉았다.

 "저고리 벗어요."

 다가온 윤명심이 손을 내밀었으므로 강한은 저고리를 벗어 내밀었다.

윤명심은 아직도 대성금융에 빚이 남아 있었지만 강한이 뭉개버렸다.

강한 팀의 책임으로 배정된 윤명심의 채무 500만원은 아예 없던 일로 해버린 것이다.

계약서, 보증서, 각서를 다 찢어 없애 버렸으니 고동표가 나서도 돈 못받는다.

다만 회사에는 채무자 실종으로 보고한 터라 책임자 강한이 원금 잔액인 170만원만

갚으면 되는 것이다.

 "과일 먹어요."

 미리 준비를 해둔 터라 윤명심이 금방 과일 접시를 소반 위에 담아들고 왔다.

앞쪽 벽에 걸린 시계가 오후 2시4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누님, 오늘은 화장하셨네."

 과일을 집던 강한이 문득 시선을 들고 물었으므로 윤명심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손바닥으로 볼을 가린 윤명심이 눈을 흘기는 시늉을 했다.

 "난 그럼 화장하면 안돼?"

 "누가 뭐래?"

 쓴웃음을 지은 강한이 씹던 과일을 삼키고는 코를 킁킁거렸다.

 "누님, 밥 하시는 거요?"

 "응, 저녁 먹고 가요."

 강한은 지난번 그 사건이 있고나서 일주일에 한번은 찾아왔다.

처음에는 어색해 하던 윤명심은 이제 전화를 걸어 언제 오느냐고 물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나 매번 오후에 들렀다가 한두 시간 쉬었다 간다.

저녁밥 먹고 간 적도 없는 것이다.

 "나, 6시에는 나가야 해. 누님."

 강한이 말하자 윤명심이 실망한듯 표정이 어두워졌다.

 "오늘은 저녁 먹고 갈줄 알고 준비했는데."

 "중요한 약속이 있어."

 "여자하고?"

 힐끗 시선을 주었던 윤명심이 곧 외면했다. 다시 볼이 상기되어 있었다.

 "아냐, 여자는."

 그리고는 강한이 불쑥 손을 뻗어 윤명심의 팔을 쥐었다.

윤명심이 놀란듯 몸을 굳혔지만 뿌리치지 않는다.

그러나 시선도 들지 않았고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강한이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누님."

 "……."

 "그냥 누님 한번 안고 싶어서 그래."

 "……."

 "누님, 싫어?"

 그러자 윤명심이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방으로 들어섰다.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 강한에게 윤명심의 목소리만 들렸다.

 

 "5분 후에 들어와요."

 

 여러 번 만났지만 윤명심과 강한은 아직도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서 쓴다.

그것이 서로 어색했지만 강한은 놔 두었다.

강한은 벽시계가 7분이 지났을 때 일어서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안은 어둑했다.

윤명심이 창문을 닫고 커튼까지 내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윤명심은 침대에 누워 머리만 드러났다.

그것도 뒷머리만 보였다.

 

방문을 닫은 강한은 다시 입안에 고인 침을 삼켰다.

오늘 이러려고 온건 아니다.

그러나 두번째 방문 했을 때부터 윤명심은 묻는 표정을 짓더니

그 후부터는 강한이 떠날 때면 초조한 것처럼 보였다.

뭔가 보상을 해주고 싶은 표정같았고 그것을 받으면 윤명심의 부담이

덜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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