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단귀유(段貴留) 9
“부형을 살해한 미친 놈의 오만방자함이 가히 하늘에 닿았습니다.
양견이 이미 하지 못한 일을 양광 따위가 하려고 거들먹거리니
어찌 가소로운 일이 아니겠소.
숫자만 믿고 함부로 날뛰다가는 천참만륙의 신세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봅니다.
더욱이 요하에 장군이 버티고 있는 한 수나라의 쥐새끼인들 어찌 허락 없이 국경을 넘겠습니까.
제가 가며오며 보수한 성곽을 살펴보니 요동 7성(七城)이
가히 학익진(鶴翼陣)의 형세를 취하여 장군의 오묘한 병법을 엿볼 수 있겠습디다.”
귀유의 말에 을지문덕이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진이란 본시 군사를 낼 적에 쓰는 군대의 배치를 말하는 것입니다.
단공께서는 어찌 성곽을 보시고 진을 말씀하십니까?”
그러자 귀유도 덩달아 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기에 장군의 쓰시고자 하는 병법이 오묘하다는 것입니다.
성곽의 형세로 진을 그리고 다시 그 각개의 성곽에서 혼란스럽게 군대를 배치한다면
뉘라서 이에 현혹되지 않겠습니까?
성곽으로 진을 만드는 것은 병서에도 나오지 않는 전인미답의 묘책이올시다.”
을지문덕은 문득 소리를 높여 껄껄 호탕하게 웃었다.
“사물을 꿰뚫는 대부의 혜안이 실로 두려움을 느낄 만치 놀랍습니다.
대부와 같은 사람이 수나라에 있다면 참으로 큰일이올시다.”
그리고 을지문덕은 지도를 펴놓은 뒤에,
“대부께서 학익진을 보셨으니
이제 내달에 공역이 끝나는 남방의 오골성을 구경하실 차례입니다.
여독이 풀리시는 대로 저와 함께 오골성을 둘러보러 가십시다.”
하며 오골성의 위치와 성의 돌아앉은 모습 따위를 상세히 설명했다.
그곳은 해안의 비사성과 안시성의 중간쯤에 있었는데,
성이 나란하지 않고 홀로 되똑하니 압록수 쪽으로 치우쳐 있었다.
귀유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어찌하여 학익진의 대오에서 오골성만이 외롭게 떨어졌습니까?”
하고 묻자 문덕이 지도를 옆으로 돌려놓으며,
“어떻습니까? 학익진이 돌연 어린진(魚鱗陣)이 되지 않습니까?”
하였다. 귀유가 보니 요동의 7성은 영락없이 학이 날개를 펴는
학익진의 형상이나 거기에 오골성이 붙으니 이번에는 꼼짝없이
안시성이 쑥 불거져나온 물고기 비늘 형상의 어린진이었다.
“저들이 성세의 늘어선 모양을 살피고 학익진을 예상하여 들어오면
각 성에서 군사를 낼 때 어린진을 만들어 혼란을 주고 요동에서 시일을 끌다가
궁극에는 내지로 유인하여 섬멸할 것이요,
어린진을 예상하여 들어오면 성마다 학익의 진법으로 군사를 내어 요동성과 요서에서
몰아 죽일 것입니다.
또한 내주나 등주에서 배를 타고 건너오는 무리는 비사성에서 막고 오골성으로
유인한 뒤에 요동의 7성으로 다시 장사진(長蛇陣)을 구축하여 고립시킬 것이므로
50만이 온다고 해도 과히 겁날 일이 없습니다.”
을지문덕의 설명에 웬만큼 병법에 달통한 귀유로서도 무릎을 치며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장군의 말씀을 듣고 보니 좀처럼 입이 다물어지지 않습니다!
만일 수나라가 객기를 부려 군사를 낸다면 50만이 아니라
1백만이 와도 살아서 돌아가는 이가 없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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