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단귀유(段貴留) 6
한편 도성에서 이 같은 일이 진행되는 줄은 까맣게 모른 채 동돌궐로 향한
귀유와 주괴는 길을 떠난 지 근 보름 만에 계민의 처소에 당도하여
극진한 말로 그를 설득하였다.
먼젓번에 방수동맹의 공약을 어긴 고구려에 대해 화가 머리 끝까지 나 있던
동돌궐의 족장 계민은 평양의 장안성에서 사신이 왔다는 말을 듣자
역정을 버럭 내며 만나주지조차 않으려 하였다.
그러나 주괴가 그간 쌓아왔던 친분으로 계민의 여러 신하들을 포섭한 뒤에
귀유가 지니고 갔던 패물로 그들을 구워삶고 두 사람이 탁월한 화술과 언변으로
예원 공주의 일을 말하자
사나흘 만에야 겨우 허락을 얻어 계민의 막사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귀유가 계민에게 대원왕의 뜻을 전하며,
“일전에 우리가 군사를 내지 못한 까닭은 내지의 어지러운 사정 때문이었지
의리와 맹세를 저버린 것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그 후에 우리 대왕 폐하께서는 늘 가한 전하의 소식을 물으시고
조석으로 안부를 염려하셨을 뿐 아니라 수나라가 유림과 오원의 땅을
빼앗았다는 말을 듣고는 본조의 일처럼 비분강개하여 곧 10만의 대병을 징발하였는데,
군사가 도성을 떠나기 직전에 가한께서 양제에게 항복하였다는 소식이 날아드니
땅을 치며 용포가 흥건히 젖도록 눈물을 쏟으셨나이다.”
하고서,
“대왕 폐하께서는 옛날부터 가한 전하를 혈육처럼 아끼시고 천하의 둘도 없는
영웅으로 흠모해오셨습니다.
그리하여 아직 혼처를 정하지 아니한 절세미인 예원 공주를 가한께 시집보내어
동북의 두 영웅간에 각별한 친분과 우애를 나누고자 하였는데,
그만 이번의 비보를 접하시고는 천하의 영웅이 어찌하여 양광 따위에게 항복을 하였는지
그 사유가 의심스럽다 하시며 특별히 신을 보내어 소상한 내막을 알아오라 하셨나이다.”
하며 은근히 계민의 자존심을 긁어놓았다. 계민이 제법 호탕한 척 껄껄 웃으며,
“내 어찌 양광에게 진정으로 항복을 하였겠소?
다만 기대했던 그대 나라의 원군이 오지 않으니 수나라와 화친하여 지내자는 자들이 많았고,
저쪽에서도 은근히 그것을 바라는 듯하여 그리하였을 따름이오.”
하고서,
“그러나 대원 대왕께서 나를 그처럼 각별히 생각하시는 줄 알았으니
이미 과인의 마음은 결정이 났소.
나 또한 언제고 기회를 보아 유림과 오원의 잃어버린 땅을 되찾을 각오외다.
그대는 대왕께 가거든 내게 두 가지 마음이 있다는 것을 전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귀유와 주괴가 아직 동돌궐에 머무르고 있을 때
수나라 양광이 별안간 계민의 장막으로 행차하였다.
기별도 없이 들이닥친 양광을 보자 계민은 크게 놀라고 당황했다.
곧 귀유와 주괴를 보고 말하기를,
“대체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소? 하필 이럴 때 양제가 올 것이 무어요.
그가 고구려의 사신들이 드나드는 줄을 알면 반드시 우리 양국을 깊이 의심할 것이며,
어쩌면 그대들의 목숨마저 위태로울지 모르겠소!”
하며 허둥거렸다. 귀유가 생각해도 큰일은 큰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황하지 않고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가한께서는 과히 염려하지 마십시오.”
하고서,
“비록 마주치지 아니한 것보다는 못한 일이나 형편을 따라야지요.
숨을 까닭도 없지만 숨었다가 뒤에 발각되면 그때는 더욱 의심을 살 것이니
우리가 여기 온 것을 솔직히 고하시는 편이 옳겠습니다.
가한께서는 양광이 묻거든 사신이 이제 막 도착하여 아직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고 하십시오.
그럼 아마도 우리를 불러오라고 할 것입니다.
그 다음의 일은 제가 다 알아서 하겠습니다.”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태연히 일렀다.
계민이 귀유의 말을 좇아 양제를 영접한 자리에서,
“황송하오나 지금 우리나라에 고구려왕이 보낸 사신이 와 있습니다.”
하고 사실대로 고하니 양제가 크게 놀라며,
“고구려의 사신이 무슨 일로 왔는가?”
의구심에 가득 찬 말투로 물었다. 계민은 귀유가 시킨 대로,
“사신이 이제 방금 도착하여 막 인사를 받은 터라 신은 아무것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며 공손히 아뢰었더니 양제가,
“그래? 그럼 어디 그 고구려 사신을 데려와보라.”
하고 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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