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단귀유(段貴留) 10
그런데 귀유가 아직 안시성에 머물고 있을 때 건무를 주축으로 한 도성의 남진파들은
군사를 내어 백제를 칠 것을 왕에게 강력히 주청하였다.
백제의 장왕은 그해 3월, 보위에 오른 후 처음으로 수나라 양광에게 한솔 연문진을
사신으로 보내어 조공하고, 또 좌평 왕효린을 거듭 파견하여 조공하면서 표문을 올려
수나라가 고구려를 토벌해줄 것을 간곡히 청한 일이 있었는데,
이 소문이 왕래하는 사람들을 통하여 고구려 조정에 전해진 결과였다.
좌장군 건무와 소형 맹진, 대로 사본 등은 차제에 백제를 쳐서
단단히 버릇을 고쳐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수나라의 강성함은 그들이 주변국을 토평하여 중원을 하나로 아우른 데서 생긴 것입니다.
우리 고구려도 마땅히 간악한 백제와 동방의 오랑캐 신라를 쳐서 하나로 아우른다면
호태대왕(광개토왕) 시절의 막강함을 다시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며,
그런 연후에야 비로소 수나라의 위협에서도 벗어날 수가 있습니다.
전하께서는 부디 국사의 선후를 명확히 살피시고 백제와 신라를 아우르는 데에
나라의 모든 힘을 모으도록 해주십시오.”
“백제는 걸핏하면 수나라에 조공사를 보내 향도를 자청하거나 우리 고구려를 치자며
온갖 감언이설로 교태와 아양을 부리니
백제를 치지 않고는 어찌 나라의 태평함을 말할 수 있겠나이까.
귀유는 부여장을 부여창과 다른 인물이라고 주장하였지만 보소서,
어느 한 군데라도 다른 구석이 있습니까?
괘씸한 것으로 치자면 천하에 백제보다 더한 나라가 없습니다.
신에게 군사를 주시면 기필코 사비의 애송이 부여장을 사로잡아 무릎을 꿇리고
눈에서 피눈물을 쏟게 만들겠습니다. 윤허합시오!”
대원왕도 수나라에 출병을 부추긴 백제에 대해 노여움을 갖기로는 이들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이럴 무렵 귀유와 더불어 돌궐로 갔던 주괴가 양광의 교지를 지니고 입조하였다.
왕은 교지를 받자 당장 주괴를 오라에 묶어 왕정에 무릎을 꿇게 하고,
“너의 처가 백제인이요, 네가 백제에서 보낸 밀정인 것이 사실이냐?”
하며 노한 음성으로 물었다. 영문을 알지 못한 주괴가,
“소인의 처가 백제인인 것은 사실이오나
소인이 백제의 밀정이란 것은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올습니다.”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대답하였다.
그러나 이미 백제에 대한 노여움과 귀유에게 속았다는 배신감 때문에
평소의 냉정함을 잃고 있던 왕은 몇 마디를 아니 묻고 성급히 명하기를,
“저 늙은 것을 데려가서 당장에 참수하고
그 목을 저자에 걸어 만인으로 하여금 침을 뱉게 하라!”
어조를 추상과 같이 하니 노구를 이끌고 힘들게 북방을 다녀온
도학의 대가 주괴는 포상은커녕 까닭조차 모른 채 형장으로 끌려갔다.
주괴는 망나니의 칼에 목이 떨어지기 직전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며,
“나는 살 만치 산 사람이라 죽는 것은 별로 아깝지 않으나
누명을 쓰고 이승을 하직하니 그것이 한이로다.
내 어찌 고구려에서 태어나 이같은 말로를 걷는가?
난리를 피하여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끝내 참화를 피하지 못하니
사람의 일생이 자못 허무하도다!”
하고 유언하였는데, 목이 떨어지고도 이틀이나 눈을 감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므로 사람들이 감히 그 근처를 범접하지 못하였다.
주괴를 참수한 대원왕은 양광의 교지를 읽고 심한 두려움을 느꼈다.
따라서 그동안 주변국과 화친하여 수나라에 대적하려는 생각을 통연히 고치고
수나라에 조공사를 보내는 한편, 곧 건무를 불러 백제를 토벌하라고 명하니
이는 평소에 남진파들이 한결같이 주장하고 바라던 바였다.
왕명을 받은 고건무는 노장 고승과 맹진, 동부 욕살 명화(高明華) 등을 장수로 삼아
평양 서남해안에서 배를 타고 백제의 송산성(松山城)과 석두성(石頭城)을 차례로 공격하였다.
고구려군은 송산성에서 백제 장수 흑치사차와 교전하였으나 이기지 못하자
다시 석두성을 습격하였는데, 이 싸움에서 대승을 거두어 남녀 3천여 명을 사로잡아 돌아왔다.
이때가 정묘년(607년) 5월, 초여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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