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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단귀유(段貴留) 4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6:47

제11장 단귀유(段貴留) 4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강씨가 바짝 무릎을 당겨 앉았다.

“저는 비록 주괴의 처이긴 하나 주괴와는 처음부터 아무 감흥도 없이 살았던 사람이요,

오직 저의 친정 아비를 원망하는 마음뿐이올시다.

나리가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일생의 은인으로 삼겠습니다.”

환덕이라고 가만 있을 턱이 없었다.

“데릴사위 3년도 지긋지긋한 마당에 일생을 노비로 사느니 차라리 죽는 길을 택하겠습니다요.

죽기를 각오한 놈이 무슨 짓인들 하지 못하겠소?”

사본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미 눈이 뒤집힌 두 남녀를 상대로 비로소 마음속에 품고 있던 간계를 털어놓았다.

이때 사본이 한 말의 요지는 주괴가 백제에서 보낸 첩자라는 것과 귀유가 이에 동조하여

백제와 고구려의 화친을 꾀했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일이 성사되면 나라 안의 군사를 모두 북쪽으로 돌리고 그 틈을 타서 백제로 하여금

장안성을 공격하도록 만든다는 내용이었다.

“아무것도 어려운 것이 없다.

내가 내일 대궐에 들어가서 고변을 하고 나면 대궐에서 너희들을 부를 것인데,

그때 너희가 눈빛을 똑바로 하여 귀유와 주괴가 그런 말을 나누더라는 얘기만 고하면

그걸로 끝이다.

나머지는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어떠냐, 그리하겠느냐?”

사본이 묻는 말에 두 남녀는 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튿날 건무와 사본이 남진파들을 이끌고 어전으로 몰려가서 얼굴을 붉히며

주괴와 귀유의 흉악함을 낱낱이 일러바치니 왕이 처음에는,

“그럴 리가 있느냐!”

하며 믿지 않으려 하였는데 나중에 사본이,

“주괴의 처가 백제인이요,

그가 지금 제 발로 도성까지 찾아와 밀고한 바를 어찌 믿지 않을 수가 있겠나이까.

본래 비밀히 행하는 도적들의 일은 예측할 수가 없는 법이올시다.

부디 통촉합시오.

신의 말이 정 의심스러우면 지금 당장 주괴의 처와 제자라는 청년을 대령하겠나이다.”

하는 말을 듣고서는 그만 굳은 마음이 흔들려서,

“어디 불러보라.”

하였다.

대원왕은 모함을 예측했던 귀유의 우려를 벌써 까맣게 잊고 있었다.

이에 주괴의 처 강씨와 환덕이 급히 대궐로 불려오니 먼저 강씨가 말하기를,

“주괴와 귀유가 오래전부터 백제의 밀정 노릇을 하기로 맹세하는 것을 쇤네가

여러 차례 들었나이다.

이번에도 길을 떠나기 전에 그런 소리를 하였는데,

고구려가 망하는 것은 다만 시일이 문제라 하고 일이 잘되어간다며

마치 어린애처럼 좋아하였나이다.”

하자 환덕도 가만있지 아니하고,

“아뢰옵기 민망하오나 주괴가 야산에서 주문을 욀 적에 항시 고구려가 망할 것과

대왕 전하께서 일찍 붕어하실 것을 천신께 간절히 염원하였나이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던 소리까지 덧붙였다.

왕이 강씨의 말투와 억양을 들은즉 영락없는 백제인의 것인 데다

자신이 일찍 죽을 것을 염원하였다는 환덕의 말까지 듣고 나자

드디어 노여움으로 머리털이 다 곤두섰다.

“그 말이 어김없는 사실이렷다?”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거짓을 고하오리까. 틀림없는 사실이옵니다.”

“그런데 너희는 무슨 연유로 그와 같은 일을 고변하는 것이냐?”

왕이 궁금히 여기며 묻자 사본이 나서서 두 사람이 주괴 몰래 좋아지내는 것을

간략히 말하여 의심을 풀었다.

“이것이 비록 사사롭게는 믿음을 저버리고 풍속을 해친 추한 일이오나

양자가 도망하지 않고 도리어 나라에 알려 국변을 막는 데 크게 기여하였으므로

신의 소료에는 그 유공함이 사사로운 허물을 덮고도 남음이 있을 듯싶습니다.

청하옵건대 저들의 허물을 묻지 마시고 오히려 후한 상을 내려 이같은 일을

장려하고 권장하심이 장차를 위해서도 옳은 줄로 아옵니다.”

왕은 사본의 주청하는 바를 쾌히 허락하였다.

이미 귀유와 주괴의 일로 노여움이 극에 달했던 왕에게 그런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당장 돌궐로 사람을 보내어 귀유와 주괴를 잡아오도록 하라!

그리고 귀유의 식솔들을 모조리 데려다 옥에 가두라!”

귀유에 대한 대원왕의 신뢰와 애정이 컸던 만큼 배신감도 깊었고 분노도 대단했다.

그러자 신하들이 일제히 입을 모아,

“고정하옵소서.

아직 귀유와 주괴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므로 그대로 두는 것이 옳습니다.”

“만일 일이 잘못되어 도망이라도 친다면 영영 붙잡지 못할 공산이 큽니다.

그러나 그냥 둔다면 제 발로 돌아올 것이므로 그때 붙잡아 문초해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다투어 진언하니 왕도 그제야 분한 마음을 가까스로 참으며,

“경들은 귀유와 주괴가 돌아올 때까지 이같은 일을 절대로 발설하거나 파설하지 말라.

이들이 돌아와서 또 무슨 수작을 벌이고 간교한 말로 과인을 우롱하는지

내 유심히 지켜볼 것이니라.”

하고 대신들의 입을 단속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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