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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장 단귀유(段貴留) 2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4:20

제11장 단귀유(段貴留) 2

 

 

주괴의 처는 본래 요서의 대방군에 살던 여자로, 전날 외백제가 망하기 전에

대대로 그곳에서 관청의 일을 맡아보던 동두민(洞頭民) 강씨(姜氏) 집안의 딸이었다.
 
주괴가 낙양의 난리를 피하여 한동안 요서의 갈석산 부근에서 지낼 때 유난히 인물이 곱던

한 처녀에게 반하여 몰래 뒤를 밟았다가 그 부모를 만나 청혼을 하였다.

처녀의 어미는 주괴가 나이 많은 것과 사는 곳이 일정치 아니한 것을 들어 반대하였으나

처녀의 아비가 주괴의 범상치 아니한 기품에 끌려 며칠을 식객으로 데리고 있으며

여러 모로 됨됨이를 시험한 끝에,

“이는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하고는 선뜻 딸을 내어주었다.

이에 스물을 갓 넘긴 처녀가 쉰줄의 주괴와 혼인하여 살게 되었다.

그러나 주괴의 처 강씨는 마을에 정분 났던 청년이 따로 있어

주괴와 혼인한 것을 탐탁찮게 여겼다.

고향에 있을 때는 남의 부인이 되고 난 후에도 주괴의 눈을 피해

살짝살짝 청년과 통정하며 지냈는데, 하루는 주괴가 집을 비우며 강씨를 보고,

“임자가 밖에 나가서는 무슨 짓을 해도 좋지만 내 없는 집에 외간남자를

끌어들이는 일은 없도록 하시오.

만일 그랬다가는 동네 우세와 망신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람 목숨도 잃기가 쉬울 게요.”

단단히 타이르니 강씨가 내심 가슴이 철렁하였으나 시치미를 뚝 떼며,

“외간남자를 끌어들이다니, 당신은 저를 뭘루 보고 그러세요?”

험악한 기세로 따지고 나왔다.

주괴가 그런 강씨를 빤히 보다가,

“글쎄 그럴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싶어 한 말이오.”

말을 얼버무리고 집을 떠났다.

주괴야 본래 한 해를 두고도 절반 이상을 바깥으로 나도는 사람이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청년을 집으로 끌어들인 일은 없었던 강씨로선

주괴의 당부하는 말을 듣고 나자 은근히 반발심이 생겼다.

하지 말라는 일은 더욱 하고 싶은 것이 사람의 묘한 마음이던가.

더군다나 강씨의 나이 아직 어린 터라 장난기마저 없지 않았다.

곧 청년을 만나 소곤소곤 밀담을 나누기를,

“외간남자 운운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영감이 우리 두 사람 사이를 알고 있나봐.”

“그럼 큰일이 아니야?”

“큰일은 무슨 큰일. 알고서도 묵인을 하는 것이니 앞으론 내놓고 만날 수도 있는 거지.”

“세상에 그런 서방이 어디 있어? 방구들을 지고 누웠어도 서방은 서방인데.

아무래도 앞으로는 조심해야 되겠다.”

“그건 그 편이 우리 내외의 속사정을 몰라서 하는 소리야.”

“속사정을 모르다니?”

“내외란 게 낮정분만 가지고 사나? 서로 기운을 내어가며 밤정분도 쌓아야지.

그런데도 남진이란 것이 한번 나가면 몇 달씩을 종무소식이요,

그나마 집에 있는 날에도 허구한 날 그놈의 글이나 읽고 주문이나 욀 줄 알었지

겨집 몸뚱이는 열흘에 하룻밤도 품기가 어려우니 어떤 여자가 그런 남진만 믿고 살까.

설령 영감이 우리 사이를 안다고 해도 그만이기가 쉬울 게야.”

“그런가?”

“그렇고말고.”

한동안 주거니받거니 수작을 놀았다.

그러다 청년이 갑자기 눈을 흘기며,

“그래도 열흘에 하룻밤은 품기도 하는 모양일세. 그 정분이 어디 예사 정분인가?”

말꼬리를 잡고 빈정거리자 강씨가 얼른,

“품기만 하면 뭘해. 정분 생길 틈이나 있어야지.”

도리질을 하다 말고,

“옴팡지기로야 그 편만한 남자가 또 있을라구.”

은근한 눈빛으로 청년의 옆구리를 찔렀다.

그러구러 상관할 마음이 생긴 남녀가 마땅한 장소를 찾는데

강씨가 집으로 가자며 청년의 팔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마음이 께름하여 기피하던 청년도 강씨가 교태 어린 콧소리로,

“새로운 재미가 생길지 누가 알어?”

하고 자꾸 권하자 마지못해 따라가서 우정 금하는 짓을 하게 되었다.

강씨는 이때까지만 해도 주괴의 당부가 부러 겁을 주거나

자신을 떠보는 공연한 것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둘이 한이불 속에 누워 한참 대사를 치르는 도중에 청년이 별안간

기이한 소리를 지르며 사지를 부들부들 떨다가 그대로 몸을 가누지 못하고 고꾸라졌다.

밑에 깔린 강씨가 시초에는 장난으로 여기고,

“이 사람이 오늘따라 왜 이래?”

양 다리를 포개어 더욱 기운을 쓰며 청년을 흔들었으나

눈과 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고야 사태가 심상치 않음을 알았다.

곧 비명을 지르며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아무리 용을 써도 붙은 아랫도리가 떨어지지 않았다.

가슴을 만져보니 심장이 뛰지 아니하여 이미 죽은 것은 분명한데

어쩌자고 유독 아랫도리만 떨어져주지 않는지 당최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강씨가 이같이 끔찍한 곡경을 치르며 죽은 청년과 밤새 붙어 있다가

뒷날 아침 이웃 사람의 도움으로 의원을 청하여 그 의원이 시신에 침을 찌르고 나서야

가까스로 풀려났다.

우세도 그런 우세가 없고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었다.

시신과 하룻밤을 지낼 적에는 우세건 망신이건 생각할 겨를이 없었으나

막상 일이 해결되고 나자 길에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 전체로 퍼져서 하루는 개울 하나 건너에 살던 친정 어미까지 달려와,

“세상을 오래 살다 보니 참으로 해괴망측한 일도 다 있지.

이 마을에 기굴한 청년을 복상사시킨 여편네가 산다는데 혹시 너는 누군지 아느냐?”

하고 물은 일도 있었고, 심지어는 풍속을 어지럽혔다며 훼가출송을 말하는 사람까지 생겨났다.

그로부터 두어 달쯤 뒤에 주괴가 돌아와서 말하기를,

“이곳에 곧 난리가 일고 전화가 미칠 것이니

요하를 건너 고구려땅 깊숙이 들어가서 지내는 것이 어떠하오?”

하자 그러잖아도 마을의 눈총이 따가워 견디기 어렵던 강씨가,

“겨집이야 본시 남진을 따라가는 법이니 마음대로 하시구랴.”

하고는 군소리 없이 따라 나서서 의주로 넘어온 것이

수나라가 대병을 내기 직전인 무오년 정초의 일이었다.

강씨가 의주에 온 후로는 비교적 몇 해를 조용히 지냈다.

하지만 본래 강씨는 타고나기를 바탕이 음란하고 지나치게 음기가 강한 여자였다.

곧 주괴에게 도학을 배우려는 고구려 젊은이들이 소문을 듣고 모여들기 시작하자

그 가운데 마음에 들거나 뜻이 맞는 이를 골라 잠통하는 일이 잦았는데,

귀유도 시초에는 여러 차례 유혹을 받아서 강씨만 눈에 보이면 황급히 몸을 숨기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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