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장 단귀유(段貴留) 3
의주까지 왔다가 허행하고 돌아가는 것이 개운찮았던 건무의 심복은 강씨가 대방에 살던
백제 유민의 딸임을 알자 혹시 따로 쓰일 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강씨를 건무에게 데려가려고 작정하고,
“오늘 일은 보지 못한 것으로 하는 대신 나를 따라 도성까지 가주지 않겠소?
그래야 우리 상전에게 내 면이 서겠소.”
하였더니 강씨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가는 것은 어렵잖으나 나중에 혼자 돌아올 일이 아득하니 이 사람과 같이 가면 어떻습니까?”
하고 헛간에 앉은 사내를 가리켰다.
그는 이름이 환덕으로 국내성 사람인데,
의주에서 3년 데릴사위 노릇 도중에 그만 혼약한 처자가 요절하여
그 길로 장가들 것을 단념하고 주괴의 문하생으로 들어온 자였다.
고구려는 본래 북방의 험한 지세와 거친 기후 탓으로 남다여소(男多女小)가 극심하여
남자들이 배필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성혼할 나이에 이른 남자들은 재물을 싸들고 규수의 집을 찾아가 문전에다
돗자리를 깔고 허락을 구하였고, 허락을 얻어 예비사위, 즉 예서(豫壻)가 되면
처가에 들어가 별도의 명이 있을 때까지 머슴을 살거나, 품을 팔거나,
나라에 대한 노역을 대신 치러주어야 가까스로 딸을 데리고 나올 수가 있었다.
딸을 둔 집에서는 이렇게 데리고 있는 예서를 데릴사위라고 불렀고,
데릴사위 노릇을 하러 처가에 들어가는 것을 장가 간다고 하였는데,
데릴사위 셋만 거느리면 나랏님도 부럽지 않다는 속설이 나돌 정도로 여자가 귀하고
시세 또한 높았다.
그러니 평생을 홀아비로 지내는 사람도 수두룩하고,
환덕의 경우처럼 데릴사위 노릇 도중에 변고를 당해 헛품만 팔고 말짱 도루묵이 되는
예 또한 적지 아니하였다.
건무의 심복은 강씨의 청을 받아들여 두 사람을 데리고 경사로 돌아왔다.
심복한테서 사정 얘기를 전해들은 건무는 당장 자신의 책사인 대로 사본을 불렀다.
사본의 머리는 재빠르게 돌아갔다.
“과연 귀유는 믿지 못할 자입니다.
한데 이제 그를 없애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기보다 쉬운 일이 되었으니
나리께서는 아무 염려 마시고 만사를 그저 제게 맡겨주십시오.”
사본은 건무의 허락을 얻어 강씨와 환덕이 머물고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문득 표정을 근엄히하여 꾸짖기를,
“너희들은 어찌하여 하늘 같은 남편과 스승을 배신하고 더러운 욕정의 노예가 되었더란 말이냐? 만일 이 무도막심한 일을 주괴가 알면 얼마나 비통하고 분한 마음이 일지 나는 생각만 해도
등골이 오싹하구나.
항차 나라의 법도에 간음한 자는 형벌로 엄히 다스릴 뿐 아니라
죄에 해당하는 재물을 물지 못하면 죽을 때까지 노비로 살아야 할지도 모른다.
너희가 노비인데 너희의 자손인들 어찌 노비의 신세를 면할 수 있겠느냐?
참으로 딱한 일이 아닐 수 없구나.”
하니 강씨와 환덕은 미처 사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색이 되었다.
“나리, 살려줍쇼! 저희가 그만 죽을죄를 지었나이다!”
환덕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땅에 넙죽 엎드려 용서를 빌었다.
사본은 엎드린 환덕과 잦바듬히 돌아앉은 강씨를 번갈아 둘러본 뒤에
짐짓 음성을 부드럽게 하여 일렀다.
“그러나 또한 생각하자면 남녀의 정분만큼 묘한 것도 드물 게야.
그것이 당최 염치나 도리나 체면 따위를 생각해야 말이지.
망신살이 뻗치면 별수가 없지. 나 또한 그런 것을 모르는 꽉 막힌 사람은 아닐세.”
사본이 두 사람의 아름답지 못한 일을 이해하는 듯이 말하자
환덕은 고개를 들고 강씨 또한 외로 꼬았던 시선을 사본에게로 향했다.
“해서 말인즉, 내 생각 같아서는 그대들이 따로 적당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여
정분난 사람끼리 오손도손 사는 것이 상책이요,
각자 고향으로 가서 지내는 것이 중책이며, 의주로 돌아가 주괴에게 죄를 비는 것이
하책이겠는데, 그대들의 생각이 어떠한지 알 수 없구나.”
사본의 말에 강씨와 환덕은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사본이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조그만 소리로 말하기를,
“상지상책이 하나 더 있긴 하다만……”
하며 말끝을 흐리자 강씨가 대뜸,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다그쳐 물었다.
사본이 강씨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나서,
“두 사람이 따로 거처를 마련하고 숨어 지낸다 하더라도 주괴가 살아 있는 한은
남의 이목이 두렵고 그 마음 또한 편치 못할 것은 불문가지가 아니냐.
그러니 아예 주괴를 죽여 후환을 없앤다면 그야말로 상지상책이 아니고 무엇이랴.
만일 너희에게 그럴 마음만 있다면 내가 나라에 공을 세워 후한 상금까지 받도록 해줄
묘책이 있으니 잘만 하면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지.
모르긴 해도 그 상금만 가지면 어디를 가서 살든 두 사람 입살이는 죽을 때까지 해결이 될 것이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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