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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전운(戰雲) 13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4:13

제10장 전운(戰雲) 13 

 

그즈음 중원 북방의 유목민 사회는 흉노, 선비, 유연의 전성기가 차례로 지나가고

돌궐의 시대로 들어와 있었다.
 
그들은 외몽고의 오르혼강(바이칼호 남쪽) 유역을 본거지로 하여 중국 방면의 동돌궐과

천산산맥 방면의 서돌궐로 분립해 있었다.

그러나 유목 제국 돌궐국은 땅이 거칠고 인구가 적은 데다 문물이 낙후하여

군율과 병법에 따라 체계적으로 대병을 움직인 수나라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고구려가 원군을 보내지 않은 채 벌어진 이 싸움에서 양제는 이르는 곳마다 승리하여

동서 돌궐국의 비교적 광활한 영토를 차지하였고,

이에 위협을 느낀 동돌궐의 족장 계민은 양제에게 글을 올려 항복하고

스스로 번국이 될 것을 자청하니

양제도 이를 받아들여 군대를 물리고 계민에게 수나라의 벼슬과 관작을 하사하였다.

수나라 군대가 돌궐을 복종시키고 대흥으로 돌아갔다는 소식을 듣자 대원왕은 귀유를 불렀다.

정작 필요한 순간에는 원군을 내지 않은 그였지만 북방의 강력한 우방을 잃었다고 생각하자

아깝고 섭섭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게다가 만일의 경우 수나라가 군사를 낼 때 동돌궐의 군사를 동원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왕은 귀유의 지략을 빌려 동돌궐을 다시금 우방으로 되돌려보려고 꾀했다.

“경도 알다시피 이제는 세상이 다시 잠잠해졌다.

일전에 과인이 그대의 말을 따르지 않은 것은 경의 말하는 바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라

조정의 중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탓이다.

그때 중신들은 계민의 사신을 참수하여 그 목을 양제에게 보내자고 주장했지만

과인이 그 말을 좇지 아니한 것과 계민에게 글을 써서 후일을 기약한 것은

두 나라의 장래를 염두에 둔 까닭이다.

큰 비는 장시간 오지 아니하고 큰 바람은 오래 불지 않는 법이다.

항차 계민은 비록 수나라의 번국을 자청했다고는 하나 광활한 영토를

양제에게 뺏겼으므로 본심은 따로 있을 것이다.

경이 주괴를 다시 보내 이제쯤 전날의 우호를 회복함이 어떻겠는가?”

“계민은 잊어버리옵소서.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은 군자의 도리도 아닐 뿐더러

계민이 이에 응할 리도 없습니다.

신의 생각에 주괴가 찾아간다면 필시 계민은 주괴를 죽이려고 덤빌 것입니다.”

귀유가 잘라 말해도 왕은 쉽게 단념하려 들지 않았다.

“계민의 마음을 돌리는 것은 장차 있을지도 모를 양제의 침략에 돌궐의 군대가

섞이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그 방법이 경의 수중에 있는 것을 과인이 어찌 모르겠는가?

그대는 사직과 조정을 위해 지략과 책모를 다해달라.”

낯빛을 부드럽게 하여 여러 차례 같은 말로 당부하자 귀유도 끝내 마음이 움직였다.

“신은 이미 의주의 야산을 떠나 도성으로 향할 때부터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기로

맹세한 사람입니다.

어찌 사사로운 마음을 품을 것이며 힘과 꾀를 아끼오리까.

다만 대왕께 특별히 한 가지 아뢰올 말씀은 조정의 공론이 하나로 통일되지 아니하여

사람마다 말이 다르옵고, 이런 까닭으로 국론이 대립하고 분열하여 나랏일에

일관하는 바가 없사옵니다.

전하께서 신의 머리를 쓰자면 사본과 맹진의 말은 듣지 마시고,

사본과 맹진을 쓰자면 신을 그만 의주로 보내주십시오.

어떤 것은 신의 말을 좇으시고 어떤 것은 지난번처럼 물리치시니

이런 일이 반복되면 결국은 나라 전체가 큰 혼란에 빠지고야 말 것입니다.

계민의 나라와 우호를 회복하는 계책을 말씀드리기 전에 먼저 전하께서

이 점을 명백히 해주옵소서.”

귀유의 말에 왕이 문득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대가 일전의 일로 마음이 몹시 상하였던 게로구나.”

그리고 왕은 정색을 하며 근엄하게 일렀다.

“과인은 경이 합종과 연횡을 말하여 이를 받아들이고 국정에 반영하였고,

계해년 이후로는 3년이 지나도록 백제와 신라에 군사를 낸 일이 없으며,

경이 천거한 을지문덕으로 하여금 요하의 각 성을 보수토록 하였다.

어찌 일관하는 바가 없다고 할 것인가? 원군을 내자는 그 일을 빼고는

그대의 지략과 계책을 좇지 아니한 예가 또 있었던가?”

이에 귀유도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공손히 국궁하고 부드러운 낯으로 입을 열어 말하기를,

“계민은 일전의 일로 크게 낙담하여 어떤 말로도 그의 마음을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대개 이런 경우에 흔히 쓸 수 있는 것이 혼인계이올시다.”

“혼인계?”

“그러하옵니다.”

“하면 짐의 딸을 계민에게 주라는 말인가?”

왕은 약간 불쾌한 표정으로 귀유를 바라보았다.

귀유가 웃음을 머금고 태연히 대답했다.

“그럴 수도 있으나 선대왕께서 남기신 예원 공주도 있지 않습니까?”

귀유가 말한 예원 공주는 평강왕이 후비의 몸에서 본 딸이자

좌장군 건무의 막냇누이로 이때 나이가 스물셋이었는데,

남자를 고르는 눈이 까다로워서 아직 혼처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지! 예원이 있지!”

왕의 안색이 홀연 환하게 밝아졌다.

“혼인계말고는 계민을 달랠 방법이 없나이다.”

“그가 과연 혼인계를 받아들이려 하겠는가?”

“북방의 유목 제국 사람들은 기질이 자못 분방하여 남에게 속박 받는 것을

싫어하므로 예로부터 다스리기 어려운 땅으로 조명이 난 곳입니다.

겉으로는 양제에게 복종하는 척하지만 필경 두 마음을 지녔을 것이니

혼인계를 쓴다면 그 본심은 반드시 우리가 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귀유는 자신있게 대답하고 나서,

“그런데 신이 걱정하는 것은 사신으로 누구를 보내느냐는 것입니다.”

하니 왕이,

“주괴가 있지 않은가?”

하고 반문하였다.

귀유가 난감한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계민과 맺은 친분으로 보나 유창한 언변으로 보나 그보다 나은 사람이 없는 것은 사실이오나

일전에 원군을 보내지 않은 일로 마음이 상하여 다시 가려고 할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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