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전운(戰雲) 11
이럴 즈음 수나라 양광은 국내를 평정하고 외지로 시선을 돌려 그가 오래전부터 꿈꾸어왔던
주변국에 대한 정복의 야욕을 하나둘 행동으로 옮겨놓기 시작했다.
그는 먼저 선대 양견이 공역을 일으킨 황하에서 유주, 장강에 이르는 삼천리 대운하를 완공하여
지방의 세공을 수월히 거둬들일 수 있게 되자 이를 바탕으로 국력을 비축하여 남의 남녕만과
서의 부국 땅을 아우르고 북으로 서돌궐의 일부를 병탄하였다.
서돌궐의 남역을 뺏은 양광은 다시 동돌궐을 향해 군사를 내었다.
이때 고구려는 귀유의 스승 주괴와 동돌궐의 족장 계민의 친분에 힘입어 선린의 관계를
맺어오고 있던 터였다.
계민은 의리가 있고 성품이 솔직, 활달하며 북방 유목민 특유의 화통한 기질을 지닌
출중한 무인이었다.
처음 주괴가 귀유의 청으로 계민을 방문해 대원왕의 뜻을 전했을 때 계민은
수나라의 강성함을 두려워하여 선뜻 방수동맹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는데,
그의 성품을 아는 주괴가 술판을 벌이고 앉아 수의 30만 대병이 고구려에 패하여
돌아간 무오년의 일을 강조하며,
“수나라가 제아무리 중원을 토평했다고는 하나 어찌 뜻과 힘을 합친 동북의 두 영웅을
당할 수 있겠소.
더욱이 양광은 그 아비에 비해 식견과 지략이 크게 미치지 못하고 오직 욕심만 많을 뿐이요,
이제 살부 살형까지 하여 천심과 민심을 모두 잃고 말았으니 무엇을 더 두려워한단 말씀이오?
자고로 천륜을 거스른 패덕한 자가 망하지 않았다는 말을 나는 들어본 바가 없거니와,
당대의 영웅이신 가한(可汗:족장)께서 양광 따위를 두려워한다면 천하의 비웃음거리가 될 뿐이오. 이는 호구산의 범이 여우나 족제비를 두려워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내가 우리나라를 떠나올 적에 고구려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기를 대원대왕과 더불어
양광의 버릇을 가르칠 사람은 오직 북방의 현자밖에 없다고 하더이다.”
하고 부추기자 얼큰하게 취기가 오른 계민이 크게 흡족해하며,
“내 어찌 양광 따위를 두려워하겠소!
다만 전쟁이 일어나면 백성들이 수고롭고 고단하게 될 것을 걱정하였을 뿐인데
대원왕께서 이미 마음을 굳혔다면 나로서도 이를 마다할 이유가 없소이다!”
하고 당석에서 붓을 들어 대원왕의 뜻에 동조하는 맹약문을 써주었다.
이튿날 술이 깨자 계민은 맹약문 쓴 것을 은근히 후회하였으나 그렇다고 뜻을 바꾸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인물이었고, 또한 수의 대병을 물리친 고구려에 대해서도
수에 못지 않은 경외심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터였다.
주괴가 동돌궐을 다녀온 후에 계민이 장안성으로 사신을 파견해 방물을 바친 일이 있었고,
이에 대원왕도 다시 귀유에게 말하여 주괴로 하여금 답례하여 양국이 이삼년간
각별한 사이를 유지하게 되었다.
이런 차에 수의 공격을 받은 계민이 사신을 고구려로 파견하여 구원을 요청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돌궐의 사신이 오자 귀유는 마땅히 방수동맹의 의미를 강조하며 군사를 내어
계민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귀유의 주장은 그간 양국의 관계로 비춰볼 때 조금도 잘못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수의 침략을 받은 동돌궐로 원군을 낸다는 것은 수와 완전히 척을 지는 것이었고,
해마다 조공을 바치며 양광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았던 당시의 고구려로서는 일종의 도박이자
국운을 건 일대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귀유를 눈엣가시처럼 여겨왔던 장안성의 남진파들이 이를 보고만 있을 리 만무했다. 어전에서 귀유와 남진파 간에 치열한 설전이 벌어졌다.
“귀유가 나라를 망치려고 합니다.
지금 돌궐로 원군을 보내자는 귀유의 말은 토끼를 쫓는 범을 가로막고 스스로 범의 밥이
되겠다는 것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는 넋 빠진 소리이올시다.
수나라가 우리를 향하여 군사를 낸 것도 아닌 마당에 공연히 싸움에 끼어들 까닭이 어디 있나이까? 만일 그랬다가 양제가 돌궐을 치려던 군사를 돌려 요하를 건너온다면 수습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입니다.
부디 귀유의 망발에 현혹되지 마소서.”
남진파의 모사인 사본(司本)이란 자였다.
그 역시 인재를 배양하는 태학 출신으로 귀유보다는 10여 년이 선배인데,
특히 좌장군 건무가 사본을 총애하여 싸움이 있을 때마다 데려가서 책사로 쓰고는 하였다.
사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소형 맹진(孟陳)이 입을 열었다.
“사본의 말이 지극히 옳습니다.
양제가 즉위한 후로 3년이 흘렀으나 조정에서 우려하던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도리어 문제가 보위에 있을 때보다 양국의 사이가 더욱 친밀하고 돈독해진 면이 없지 않습니다.
지금 수나라는 운하의 대공역을 완수하여 경향의 오고감이 반나절이요,
북으로는 만리 대장성을 쌓았으며, 징병을 명하매 각지에서 장정들이 구름처럼 모여들고,
남역과 서역을 하나로 아울러 공전절후의 위용을 떨치므로 천하가 가히 수나라의 강역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와 전과 같이 서로 예우하며 지내는 것이 마치 다정한 형제와 같으니
이 어찌 포의를 입고 사귄 옛 벗의 아름다움에 비유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정이 이러한데 돌궐로 원군을 보내어 우리가 대관절 무엇을 얻겠나이까.
귀유의 말을 듣지 마소서.
우리가 섬겨야 할 곳은 오로지 수나라가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맹진은 이렇게 덧붙였다.
“차제에 계민의 사신을 참수하여 그 목을 양제에게 바친다면 양국의 우애가 더욱 깊어져서
나라의 근심도 절로 사라지지 않을까 합니다.”
왕은 신하들의 간하는 말을 듣자 괴로운 얼굴로 귀유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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