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전운(戰雲) 7
사신이 의주 야산을 여러 날에 걸쳐 헤매고 다닌 끝에 깊은 계곡의 동굴 근처에서
걸인 행색을 한 두 사람을 만났다.
귀유를 물어보니 하나는 동을 가리키고 하나는 서를 가리켰다.
사신이 두 사람의 방향이 같지 않음을 수상하게 여겨 묻자 둘 가운데 먼저 늙은 사람이,
“동에도 있고 서에도 있지.”
하고, 뒤이어 젊은이가 이르기를,
“동으로 가면 서가 나오고 서로 가면 동이 나오니 결국은 한가지요.”
하므로 사신이 혹 찾는 자가 그들이 아닐까 의심하였다.
다행히 그 사신이 노자가 남긴 글줄 정도는 읽은 사람이라,
“동서가 한가지인데 행지(行止) 또한 다를 리가 있겠소.
가나 머무르나 땅 위에 있기는 매양 한가지이니
내 찾는 사람을 가지 않고 여기서도 능히 만나리이다.”
하고 응수하자 늙은 사람은 웃고 젊은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신이 두 사람 옆에 걸터앉아 스스로 정체를 밝히며,
“보아하니 귀유라는 젊은이가 틀림없구려.
왕명을 받아 왔으니 당장 대궐로 가십시다.”
하자 젊은 사람이 팔을 휘휘 내두르며,
“나는 귀유도 아닐 뿐더러 설사 귀유라고 해도
이 좋은 곳을 버리고 도성으로 갈 턱이 없소.”
일거에 말을 잘랐다.
사신이 그가 귀유라는 말인지 아니라는 말인지 도통 갈피를 잡지 못하여,
“귀유요, 아니오?”
하고 반문하자 젊은 사람이 싱겁게 껄껄 웃으며,
“피아가 한가지인데 귀유면 어떻고 아니면 어떻소.”
하고 좀 전에 사신의 말하던 바를 흉내내었다.
더 있어봐야 별재미가 없다고 느낀 사신은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금 산길을 올라갔다.
산정에 이르니 젊은 사람 네댓 명이 평지에 둘러앉아 밥을 지어 먹고 있는지라,
“혹시 귀유라는 분이 예 있소?”
하고 물었다.
젊은 사람들이 사신의 행색을 찬찬히 훑어보고 나서,
“귀유는 어째 찾소?”
하여 사정을 대략 설명하였더니 그 중의 하나가,
“올라오는 길에 만나지 못하였습디까?
아까 아침나절에 왕명을 받은 사신이 올 거라며
우리 스승님과 같이 마중을 간다고 내려갔습니다.”
하였다.
사신이 그제야 동굴 근처에서 만났던 두 사람이 귀유와 주괴임을 알았다.
“마중까지 간 사람이 어찌하여 시치미를 떼고 내게 헛고생을 시키는지 모를 일이구먼!”
사신이 울컥 야속한 마음이 들어 얼굴을 찌푸리며 혀를 찼다.
밥을 먹던 청년들이 사신에게 자리 한쪽을 내어주며,
“기왕 예까지 오셨으니 찬은 없지만 요기나 하고 내려갑시오.”
하고 권하므로 마침 허기에 다리가 꼬이던 사신이,
“내 먹을 것이 있소?”
하고는 먹자판에 끼여들어 밥을 맛있게 먹었다.
솥단지 밑에 붙은 눌은 것까지 긁어 먹고 배를 불린 사신이 청년들과 헤어져
다시 중턱의 동굴 부근에 이르니 낮에 본 걸인 두 사람은 온데간데 없고
옥골선풍의 한 청년이 말쑥하게 새 옷을 차려 입은 채로 단정히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사신이 그 청년을 향하여,
“여기서 거지 행색을 한 사람들을 보지 못했소?”
하고 묻자 그 청년이 고개를 돌려 사신을 바라보며,
“요기는 하셨소?”
하고 묻는데, 어딘가 낯이 설지 않았다.
사신이 찬찬히 뜯어보니 그는 다름이 아니라 좀 전에 본 두 사람 가운데 젊은 걸인이었다.
그리고는 사신이 미처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깊은 한숨을 토하며,
“허행을 시켰다고 나를 탓하지 마시오. 정작 허행을 하는 것은 나요.”
하고서,
“나로 봐서는 참으로 내키지 않는 걸음이오.
보시구려. 이 안돈하고 걱정 없는 생활을 버리고 천 가지 괴로움과 만 가지 족속들이
아귀처럼 날뛰는 대궐로 갈 까닭이 우정 무어요?
벼슬이란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오라요,
고단하고 끝없는 종살이일 뿐이외다.
게다가 자칫 잘못하면 모함을 받아 제 명에 죽지도 못하는 것이 벼슬살이가 아니오?
아무리 생각해도 해만 있지 득은 없는 길이요,
고기를 지고 범의 아가리로 들어가는 격이지만 누대로 대궐과 맺은 인연이며
예까지 온 공의 노고를 생각해 마음을 내는 것이니 그리 아오.”
정색을 하고 말하였다.
사신이,
“무엇을 그처럼 어렵게 생각하시오?
장부가 뜻을 세워 벼슬길에 나서는 것은 만인이 소원하는 바요,
도리어 그렇게 되지 못할까 온통 근심이 거기에들 있지 않소?
이제 도성에 가면 관운이 열리는 것은 따놓은 당상이니 그냥 편하게 받아들이시오.”
하며 위로까지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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