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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장 전운(戰雲) 5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4:01

제10장 전운(戰雲) 5  

 

그 후 대원왕은 신라를 향해 이를 갈며 결전을 준비하였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인 갑자년에 뜻밖에도 수의 양광이 등극하면서

장안성의 남진 정책도 자연히 주춤해질 수밖에 없었다.

고구려 조정에서는 해마다 조공 사절로 오갔던 사신들의 입을 통해

양광이 어떤 사람인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양광의 등극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대한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심약한 왕은 밤잠을 못 이루고 근심하다가 수나라 사정에 달통한 고추대가

이명신(李明辛)을 불렀다.

그는 북진파도 남진파도 아닌, 비교적 중도에 속한 인물이었다.

“지금 조정에서 생각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도 수나라 사정을
꿰뚫기로

경만한 사람이 없으니 경은 과인이 묻는 말에 세 번 생각하여 대답을 신중히 하라.”

“하문하시옵소서.”

“경의 생각에 금번 수나라에서 일어난 변란이 장차 우리나라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 것이라고 보는가?”

오랫동안 나라의 빈객을 접대하는 일을 맡아온 노신 이명신은 잠깐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당장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줄로 아옵니다.”

그의 대답은 왕의 짐작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왕이 의아해하며 그 까닭을 물었다.

“수주(隋主) 양제가 살부를 서슴지 않을 정도로 흉포한 것과 또한 그가 입만 열면

나라의 장수들을 모아놓고 요동 정벌을 극력 주장해온 것은 사실이오나 이는 단지

뜻만 가지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양제가 이제 막 보위에 올랐으니 우선은 내치의 어지러움을 바로잡는 데 힘을 쏟을 것이고,

군량을 비축하고 군사를 결집하는 데에도 다시 시일이 걸릴 것입니다.

게다가 양제의 관심은 비단 우리 고구려에만 있는 게 아니라 북방의 거란과 돌궐,

서방의 당항과 부국, 그리고 남방의 광토에 이르기까지 사방을 쳐서

천하를 아우르고자 하는 데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그가 비록 군사를 낸다고 해도 가까운 곳부터 먼저 칠 것이며,

그것이 성공한 연후에야 비로소 우리를 넘볼 것이므로 한두 해 안에 변란이

일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이명신의 말을 들은 대원왕은 약간 안도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렇다고 근심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경의 말대로 당장에는 별일이 없다고 해도 그가 언젠가는 대군을 내어

우리를 치려고 할 것이 필지의 일이 아닌가?”

이명신도 왕의 이 질문에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양제가 계속 보위에 있다면 아마 그렇게 되기가 쉬울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과연 언제쯤 도래할 거라고 보는가?”

“신의 소견에는 짧아도 족히 예닐곱 해는 걸릴 것이므로 지금부터 차근차근 북방의 경계와 방비를 다지고 꾸준히 침략에 대비한다면 훗날 크게 낭패를 보는 일은 막을 수 있지 싶습니다.”

왕은 한참 동안 묵묵히 앉았다가,

“답답하도다.

우리 쪽에서 제아무리 성의를 다하여 섬긴다고 해도 결국은 환란을 면하기 어렵게 됐으니

어찌하여 양광과 같이 포악하고 욕심 많은 자가 수나라에 있더란 말인가!”

하고 혀를 차며 탄식했다.

이명신은 왕의 얼굴에서 수심이 사라지지 않는 것을 보자 다음과 같이 귀띔했다.

“지난날 사신으로 왔던 수나라 사람 가운데 양해정이란 이가 있었는데

그는 문제가 북주의 장군으로 있을 때부터 집에 식객으로 데리고 있으면서

아끼고 총애하던 뛰어난 지략가였습니다.

그런데 양해정이 우리나라에 머무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고

돌아가면서 말하기를, 중원의 장안(長安:수나라 수도 대흥의 옛이름)에는

자신과 우문술이 있고 요동의 장안성에는 오직 단귀유(段貴留)가 있을 뿐이라 하였습니다.

대왕께서 이 사람을 불러 국사를 의논하신다면 아마 범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왕이 귀유의 이름을 이때 처음 들었다.

“그가 벼슬을 지내던 자인가?”

“태학(太學)의 학생이었습니다.”

“단귀유라…… 하면 전날 태학박사를 지냈던 절나부 사람 단향(段香)과는 어떤 사이인가?”

“향의 아들이 곧 귀유이올시다.”

“오호, 그래?”

단향의 명성을 익히 알고 있던 왕은 돌연 눈을 크게 뜨고 기뻐하였다.

단향은 전조에 평강왕이 금쪽과 같이 아끼던 신하였다.

그는 북주와 진나라가 망할 것을 미리 예측하였을 뿐 아니라

처음 수나라에 가서 조공하고 평강왕에게 수의 벼슬과 관작을 얻어준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몸이 늘 허약하여 춘하추동 병을 오지랖에 싸고 살다가 대원왕이 즉위하고

얼마 안 되어 죽으니 무오년에 수나라가 군사를 내었을 때 왕이 말하기를,

“단향의 수완만 있었더라도 이런 변고는 미연에 막을 수 있었을 것을!”

하며 하늘을 우러러 크게 탄식한 일도 있었다.

왕은 이명신의 말을 듣자 곧 좌우에 명하여 단귀유를 대궐로 불러들이게 하였다.

그런데 마침 귀유는 태학에서 공부를 마치고 장안성을 떠나 아무도 그가 간 곳을 알지 못하였다.

왕이 귀유의 고향인 절나부로 사람을 보내 행방을 알아보라 하니

심부름을 다녀온 자가 고하기를,

“귀유는 의주의 야산에 은거한 지 오래인데 전날 낙양에서 난리를 피해 도망온

미친 자에게 홀려 스스로 찾아가 그자의 제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귀유의 형과 식솔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았는데 미친 자의 광언망설이나 좇아다니는

그를 대궐로 부른다 하여 과연 무슨 이득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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