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장 전운(戰雲) 6
왕도 처음에는 이 말을 듣고 실망하여 다시 사람을 보내지 않았다.
하지만 귀유가 전조의 지신 단향의 아들이라는 점과 좀처럼 남을 높여 말하지 않던
이명신이 자신있게 권하던 바를 생각하니 미련을 버릴 수가 없었다.
귀유의 이름을 잊지 않고 있던 왕이 하루는 당대의 석학 태학박사 이문진(李文眞)이 입궐했을 때,
“경은 단귀유라는 자를 아시오?”
하고 물으니 이문진이 당장 대답하기를,
“태학의 사람치고 귀유를 모르는 이가 있겠습니까.”
하므로,
“그가 어떤 사람이오?”
하고 거듭 물었다.
이에 박사 이문진이 밝은 낯으로 아뢰었다.
“귀유의 그릇을 신이 어찌 입으로 다 말씀을 드리오리까.
한마디로 기재(奇才)이올습니다.
태학이 서고 지난 2백여 성상에 귀유만한 인재가 없었으리라는 것이
박사들의 한결같은 말인데 신의 생각 또한 그러하옵니다.
전날 단향이 태학의 박사로 있을 적에 종종 주위에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자신의 열 살짜리 아들이 식견이며 화술이 아비보다 윗길이라고 하였는데,
알고 보니 그가 곧 귀유였습니다.
제세지재니 웅재대략이니 하는 것은 바로 귀유와 같은 선비를 두고 한 말일 것입니다.”
이문진마저 귀유를 극찬하자 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토록 출중한 인재가 어찌하여 미친 자의 광언망설을 좇으며,
항차 세상을 등지고 입산하여 스스로 그자의 제자가 되었더란 말인가?”
“미친 자라 하시면 누구를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이문진이 깜짝 놀라 반문하자
왕이 귀유를 찾으러 절나부로 사람을 보낸 일을 소상히 말하고서,
“난리를 피하여 낙양에서 도망쳐 온 자라고 하는데 그 이상은 아는 바가 없소.”
하였다.
이문진이 왕의 설명을 듣고 희미하게 웃음을 머금었다.
“그자는 아마도 주괴라는 자가 아닌가 합니다.”
“경이 보지 않고도 아는 수가 있소?”
“주괴는 낙양 사람이 아니라 본래 우리나라 백석성 사람으로 젊어서는 머리가 영특하고
학문의 깊이가 도저하였으나 뜻이 중국과 죽림칠현(竹林七賢)에 있어 일찍부터
노장의 유유함을 좇아 중원을 유람하였습니다.
그는 중국 남방의 옛 오나라 땅인 호구산에서 황노학(黃老學:도학)을 배워
진나라가 망할 것을 미리 예언하였다가 화를 입고 낙양으로 피신하였는데,
다시 난리를 피하여 요서의 갈석산으로 들었다는 소문은 신도 들은 바가 있습니다.
주괴가 낙양에 있을 때만 하더라도 단향과는 인편에 서신을 교환하여 철마다
안부를 물을 만치 가까운 사이였고, 단향이 수나라 사정에 달통했던 것도
바로 주괴의 서신에 힘입은 바 컸거니와, 근년에 이르러 알 만한 자들 사이에 나도는
풍설로는 그가 압록수 부근에도 나타났다 하고, 얼마 전에는 국내성에서 보았다는
이도 없지 아니한데, 이제 전하께서 의주를 말씀하시고 귀유가 스스로 찾아가
제자가 되었다고 하니 그럴 만한 이로는 오직 주괴가 있을 뿐입니다.”
박사 이문진의 말을 듣고 난 왕은 귀유에 대해 접어두었던 관심과 호기심을 다시 일으켰다.
그리하여 곧 사람을 의주로 보내며 어떻게든 귀유를 찾아 대궐로 데려오라 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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