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장왕(璋王) 13
비록 성은 지켰지만 병부령 남승으로서는 기병 5백을 송두리째 잃은 것이
생각하면 할수록 뼈에 사무쳤다.
그도 그럴 것이 병부령을 맡아 처음으로 치른 전쟁에서 이렇다 할 공적을 세우기는커녕
아까운 군사들만 축을 냈으니 금성에 돌아가면 왕과 중신들을 대할 면목이 없었다.
“군사를 잃었으니 땅이라도 넓혀야 체면치레를 할 것이 아닌가.”
그는 며칠을 곰곰 생각하다가 장수들을 불러 말하였다.
“우리가 만일 이대로 철군하면 백제가 다시 군사를 내어 쳐들어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이는 모산성 주변에 다른 성곽이 없고 방비가 느슨한 까닭인즉,
이곳이 함락되면 소경이 위태로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자칫하면 당성항까지 잃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내가 여기에 와서 지세를 보아하니 모산성 서남으로 성곽을 지을 만한 곳이 네 군데가 있다.
남면에 백제군이 매복했던 소타 지역으로 성을 쌓고, 서면의 숲 너머에는 외석성(畏石城)을 쌓고,
다시 한참을 더 들어가 천산(泉山) 부근과 또한 동편 소경 쪽으로 옹잠성(甕岑城)을 쌓는다면
이중, 삼중의 방어벽이 구축되어 여간한 침략에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곳은 엄연히 백제의 땅인데 과연 저들이 가만히 있을지 의문입니다.”
장수들이 묻자 남승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이미 이곳에 와 있는데 무엇이 걱정인가?
네 군데 성곽을 쌓을 동안 백제군이 쳐들어온다면 이보다 더 반가운 일도 없을 것이다.”
그는 즉시 관내에 영을 내려 군사들과 성민들로 하여금 네 군데 성곽을 쌓도록 하는 한편
금성으로 사람을 보내어 이런 사실들을 글로써 고하였다.
남승이 노역을 동원하여 성을 쌓는다는 소문은 곧 사비성 장왕의 귀에 들어갔다.
장왕은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내신좌평 개보에게 이르기를,
“경은 지금 곧 탕정군의 해수에게 가서 군사를 나누어 신라가 성곽을 쌓는
네 곳을 동시에 공격하도록 하라.”
하고 또,
“경도 그곳에 머물며 해수와 더불어 지략을 다하라.”
하고 1만의 군사를 더 내어주었다.
개보가 탕정군의 해수를 찾아가서 왕명을 전하자
해수 역시 크게 노하여 당장 군사를 정비하고 이르기를,
“전에 전하께서 말씀하신 천산의 지세를 활용할 때가 왔다.”
하고서,
“길지와 문진은 각각 1천의 군사로 소타성과 외석성을 공략하다가 적이 쫓아오면
싸우지 말고 몸을 피해 천산으로 오라.
백기 또한 1천의 군사로 옹잠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적이 응전하면 싸우지 말고
천산으로 유인하라.
아무리 시일이 걸려도 좋다.
일부러 진을 어지럽게 치고 병사들은 한가로이 지내며 적으로 하여금
무시하는 마음이 일도록 하라.
천산에는 전하께서 말씀하신 큰 못이 있으니
나는 여기에 복병을 설치하고 기다렸다가 신라군을 모조리 수장시켜
나라와 대왕 폐하의 만 가지 시름을 없이 하리라!”
하고 매섭게 군령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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