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장왕(璋王) 15
전령병이 겨우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다시 모산성으로 말을 달려 남승에게 왕명을 전하니
이때는 남승이 이미 주변에서 징발한 역부들로 네 군데 성의 역사를 시작한 뒤였다.
금성의 일을 알 길 없는 남승이 제 예상과는 판이한 왕명을 받자
혼란에 빠져 어쩔 줄을 몰라하였는데, 별안간 백제군이 네 군데 성으로 몰려들어
시석과 화살을 어지럽게 퍼부으니 진중이 크게 혼란스러웠다.
금성을 다녀온 전령병을 불러다 거듭 묻기를,
“너는 이곳의 긴박하고 위태로운 사정을 전하께 낱낱이 고하였더냐?”
“물론이옵니다.”
“그런데도 어찌하여 철군하라는 왕명을 얻어온단 말이냐?”
“그것은 소인이 알 도리가 없습니다.
어쨌거나 시급히 철군하라는 하명이 있었을 뿐입니다.”
“암만 생각해도 알지 못할 일이로다……”
혼자 백 가지 짐작과 천 갈래 추측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장수들을 불러 말하기를,
“지금 이곳을 버려두고 철군하는 것은 모산성을 포기하는 것과 같고,
모산성을 포기하면 국원이 망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내가 이곳에서 금성의 일을 알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금성에서 역시
이곳의 세세한 사정은 모르지 않겠는가?
비록 훗날 왕명을 어긴 죄로 참수를 당할지언정 이 꼴을 보고도 군사를 돌리는 것은
신하의 도리가 아니다.”
하고서,
“건품과 비리야는 각각 1천의 군사로 소타성과 외석성을 사수하고
무리굴은 군사 2천을 거느리고 천산성으로 진격하라.
나 또한 나머지 군사로 옹잠성을 지킬 것이다.
성에 이르거든 군막을 치고 섣불리 나가서 교전하지 말라.
시일을 끌며 저쪽의 움직임을 파악한 뒤 군령을 다시 내리리라.”
하였다.
그러나 남승은 왕명에 따르지 아니하는 것이 아무래도 께름칙하였다.
군사를 움직이기 전에 문득 한 꾀를 내어 전령병을 부르고,
“너는 다시 대궐로 가서 이곳의 위급한 사정을 전하께 소상히 아뢰고 구원병을 청하라.
그래도 철군하라는 왕명이 내리는지 어디 두고 보자꾸나.”
하고 금성으로 급파하였다.
남승이 옹잠성에 이르러 백제군의 움직임을 살펴보니
그 숫자가 다 해야 1천에 불과한 듯하고 진을 쳐놓은 것에 짜임새가 없을 뿐더러
이쪽에서 고함만 질러도 우왕좌왕하는 꼴이 도무지 오합지졸을 모아놓은 것과 같아
웃음이 절로 나왔다.
“대체 저쪽의 장수가 누구라더냐?”
비장에게 한심한 듯이 물어서,
“백기라는 애송이라 합니다.”
하는 대답을 듣자 더욱 시쁘게 여기는 마음이 앞섰다.
그는 섣불리 교전하지 말라는 자신의 군령을 스스로 어기고 군사를 내어 적을 공략했다.
그런데 과연 적진이 쑥밭이 되고 장수와 군졸이 뿔뿔이 달아나므로 딱하다 못해 어이없는
느낌마저 일었다.
하지만 이때만 해도 뒤에 복병이 있을 것을 두려워하여 곧 징을 쳐서 추격하는 것을
멈추게 하였는데, 이튿날 또 10리쯤 물려 세운 적진을 공략하자 역시 똑같은 일이 벌어지니
그만 경계심이 사라지고 시식잖은 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아무리 애송이를 장수로 세웠다지만 참으로 한심하구나.
어찌 저런 것을 두려워하여 성에만 웅크리고 있겠는가!
내일은 30리쯤 추격하여보고 그래도 복병이 없으면 차후로는 더 이상 의심할 것이 없다.”
그리고 뒷날 사흘째 군사를 내었으나 사정은 또 마찬가지였다.
“저것들이 저러다가 사비까지 도망가겠구나.”
벌써 사오십 리 땅을 얻었다고 생각한 남승은 자신감에 도취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우쭐거리기 시작했다.
한편 금성에서는 전세의 위급함과 원군을 청하는 전령의 보고를 받자
중신들간에 서로 뜻이 다르고 의견이 분분하였다.
어떤 이는 기왕 백제와 화친할 것을 결정한 마당이요,
전세의 위급함은 남승이 공연히 네 성을 구축하여 비롯된 일이므로
그대로 철군할 것을 주장하였고, 우선 남승의 위급함만은 구해놓고 보자는
신하들의 숫자도 만만치 않았다.
백정왕이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을 때 백반이 말하기를,
“이번에 이 일은 백제가 먼저 시작한 일이므로 그 책임이 백제에 있고,
내막을 알고 보면 어차피 장왕의 뜻도 아니므로 원군을 보낸다고 해서
양국의 앞날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도 아니할 것입니다.
항차 우리 군사가 위급함에 빠져 구원을 요청하는데 어찌 이를 거절할 수 있겠나이까.
마땅히 원군을 보내야 할 줄로 압니다.”
하여 조정의 분분하던 이견이 백반의 한마디로 금세 원군을 보내자는 쪽으로 선회하였다.
용춘이 물러난 이후 이와 같은 일이 다반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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