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9장 장왕(璋王) 10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1:36

제9장 장왕(璋王) 10  

 

왕이 깊이 탄식하고 나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군사를 낸 곳은 국원 북방의 모산성으로

이 일대는 예로부터 백제의 땅이었소.

그것을 저 극악한 고구려가 노략질로 빼앗아가고 이제 다시 신라가 취하였으니

화친을 하자면 마땅히 본래 주인을 찾아 되돌려주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소?

이제 백제와 신라는 남이 아닌 옹서(翁壻)의 나라요,

고구려왕 대원은 그 포악하고 탐욕스러운 것이

전날 담덕(광개토왕)과 거련(장수왕)을 능가한다고 들었거니와,

빙부와 과인이 서로 힘을 합치고 정을 나누며 영구토록 화친하여 지낸다면

양국의 앞날에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전하의 말씀은 구구절절이 이치에 닿는 것이지만 소비의 일을 놓고 보듯이

금성에는 종작없는 중신들이 한둘이 아닙니다.

비록 아바마마의 뜻이 거기에 있다 하여도 중신이란 것들이

고분고분 어의를 따를 턱이 없습니다.

항차 국원 북방에서 당성군에 이르는 육로는 중화로 통하는 유일한 길이요,

신라에서는 천금 같은 요지 중의 요지이올시다.

힘으로 쳐서 빼앗지 않은 다음에야 호락호락 내놓을 까닭이 없습니다.”

“내 어찌 그것을 모르겠소. 무턱대고 내놓으라고 한다면야 예가 아니지요.”

“하면 무슨 좋은 방도라도 있습니까?”

“신라가 국원에 소경을 설치하면서까지

그 일대를 중히 여기는 까닭은 오직 당성군 때문이며,

당성군이 중한 까닭은 그곳에서야 비로소 수나라로 가는 뱃길을 얻기 때문이오.

그러므로 국원 북방의 옛 백제땅을 다시 넘겨준다면 신라가 지금처럼 당성군을

왕래하는 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도록 과인이 언제든지 길을 열어줄 뿐만 아니라

원한다면 신라군만이 왕래할 수 있는 크고 넓은 도로를 닦고 요처에 신라관을 설치하여

사람과 우마의 피곤한 것을 쉬도록 해줄 용의가 있소.

아울러 당성항을 양국의 공동 소유로 명기하여 이곳을 통해 서로 문물을 교환한다면

왕실의 우애가 깊어지는 것은 물론이요,

양국 백성들간에도 형제와 같은 정이 새록새록 생겨나지 않겠소?”

왕의 말을 들은 선화가 돌연 안색이 환하게 밝아졌다.

“참으로 훌륭한 생각이십니다! 군사를 내기 이전에 말 잘하는 사신을 금성으로 보내어

의논을 해보시지 그러셨습니까?

도둑놈의 심보가 아닌 다음에야 전하께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군사를 낸 것은 백관들의 뜻이요,

방금 말한 것은 나중에야 떠오른 과인의 생각입니다.

양국이 서로 지금처럼 지낸다면 앞으로 군사를 내어 피를 흘리며 싸울 일이 어디 한두 번이겠소?

그리고 그때마다 번번이 괴로워해야 할 우리 두 사람의 딱하디딱한 처지를 생각하다가

자연히 화친할 방법을 도모하게 된 것이지요.”

“지금이라도 사신을 보내어 전하의 뜻을 전하십시오.

사위도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사위와 딸이 일국의 왕과 왕비가 되었사온데

이를 반가워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나이까.

금성에서도 소문을 들어 모다 알고는 있겠지만 전하께서 보위에 오른 뒤

이렇다 할 왕래가 없었으니 차제에 안부도 물으시고,

금번에 군사를 낸 것도 전하의 본심이 아니었음을

소상히 밝히시는 것이 좋겠나이다.”

“그것도 과히 나쁘지는 않겠지만 그보다는 왕비께서 직접 사람을 보내는 것이 어떻소?”

“제가요?”

“아마 그 편이 사사로운 정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데는 제격일 듯하오.”

선화는 오래 생각하지 아니하고 쾌히 장왕의 뜻을 수락하였다.

즉시 후궁부의 나이 지긋하고 언변 좋은 궁녀 한 사람을 내전으로 불러

자신이 쓴 서신을 주고 아울러 백제의 토산물이며 자기(瓷器) 등속으로

마차 두 대 분량의 선물을 마련하여 금성으로 보내니

왕이 따로 서신과 선물을 보태고 병사들로 하여금 접경까지 호위하도록 하였다.

일방으로 군사를 내어 신라의 변방을 치고 다른 일방으로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도모한 것은 신라 조정을 혼란에 빠뜨리려는 장왕의 치밀한 계략이었다.

그는 마동 왕자 시절 신라의 산곡간을 몸소 잠행하며 백정왕의 성품이 단호하지 못한 것과

왕제 백반(伯飯)의 세도가 지나친 것을 알았고, 이 때문에 왕실에 갈등이 빈번하고

조정의 중론 또한 분분하다는 점도 풍문을 들어 알고 있었다.

세간에서는 진지왕의 외아들인 용춘의 기상과 됨됨이를 높여 말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 후 장왕이 금성에 있을 때 용춘이 공주 천명과 결혼하여 요직에 오르니

 

장왕으로서는 백제의 앞날을 생각하고 이를 걱정하였는데,

얼마 지나지 아니하여 용춘이 관직에서 쫓겨났다는 소문을 듣고는 내심 매우 다행스러워하였다.

비록 용춘을 직접 면대한 일은 없었지만 예로부터 가장 무서운 이는

민심을 얻은 자라 하지 않았던가.

 

장왕의 생각에는 신라에 오직 용춘이 있을 뿐이요,

백반이나 신라왕 백정 따위는 얼마든지 농락할 자신이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우선 강온의 두 가지 책략으로 신라 조정의 대응 능력을 시험해 보기로 하였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9장 장왕(璋王) 12 회  (0) 2014.07.19
제9장 장왕(璋王) 11 회  (0) 2014.07.19
제9장 장왕(璋王) 9 회  (0) 2014.07.19
제9장 장왕(璋王) 8 회  (0) 2014.07.19
제9장 장왕(璋王) 7 회  (0) 2014.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