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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장 장왕(璋王) 12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3:11

제9장 장왕(璋王) 12

 

 

그러나 무리굴과 기삼이 쫓아갔던 서문에서는 약간 사정이 달랐다.

 

모산성 군주 기삼은 병부령 남승이 장수와 군사를 거느리고 친히 구원하러 온 것에

 

심히 흥분한 데다 적장 백기가 별로 싸우지도 않고 도망하자

 

물불을 안 가리고 이들을 추격하여 탕정군 입구에 이르렀다.

 

후미를 맡은 무리굴이 몇 번이나 고함을 질러 기삼을 부르다가 급기야 군령을 내려

 

추격을 멈추었을 때는 기삼을 비롯한 선봉군 5백 명의 모습은 보이지도 않았다.

 

무리굴이 비장 몇 사람에게,



“너희는 군사를 데리고 모두 성으로 돌아가라. 나는 기삼을 찾아서 데리고 가겠다.”

하고 단기로 말을 달려 기삼을 쫓아갔다.

 

이때 기삼은 탕정군 들머리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남승의 말이 떠올랐다.

 

데려갔던 비장에게,

“여기가 대체 어디냐?”

하고 물으니 비장이 대답하기를,

“아마 백제의 땅인 탕정군인 듯싶습니다.”

하고서,

“복병이 있을까 두려우니 이쯤에서 그만 회군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하며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제야 기삼 역시 가슴이 철렁하여,

“큰일났다. 어서 말머리를 돌려라!”

하고 황급히 퇴각하라는 명을 내렸다.

 

그런데 바로 그때였다.

 

마치 기삼의 일거일동을 지켜보기라도 한 듯 별안간 주위가 소란스러워지면서

 

시석과 화살이 사방에서 날아들고 동시에 길 양편의 매복해 있던 복병이 고함을 지르며 나타났다.

 

당황한 기삼이 결사항전을 명하며 퇴로를 열고자 하였으나 그 자신조차 방향을 분간할 수 없어

 

허둥대기 시작했다.

 

말이 놀라 날뛰고 군사들이 비명을 지르며 우왕좌왕하는 통에 저절로 다치고

 

상하는 자가 부지기수였다.

 

기삼을 비롯한 신라군이 미처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도망가던 백기의 군사가

 

말머리를 돌려 역공을 취해왔고,

 

이들과 한동안 사투를 벌이며 가까스로 길을 열자

 

이번에는 눈앞에서 수많은 마군(馬軍)이 함성을 지르며 나타나 단숨에 퇴로를 차단하였다.

“네가 모산성의 군주 기삼이란 자이더냐?”

기삼의 앞에서 한 젊은 장수가 말잔등에 걸터앉은 채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기삼이 보니 그 장수의 우뚝하고 늠름한 모습이 보기만 해도 두려움을 느낄 정도였다.

“그대는 누구인가?”

기삼이 위엄을 잃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며 되묻자 그 장수가 껄껄 목청을 높여 웃으며,

“목을 빼앗아가는 마당에 이름 정도는 가르쳐주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하고서,

“죽어 저승에 가거든 너의 목을 가져간 사람이 백제의 병관좌평 해수라고 일러라.”

말을 마치자 무서운 기세로 칼을 휘두르며 달려들었다.

 

기삼이 사력을 다하여 해수의 칼을 막아냈으나 전의를 상실한 그는 이미 해수의 상대가 아니었다.

 

겨우 삼사 합 만에 싸움을 포기하고 틈을 보아 달아나자

 

해수가 질풍처럼 말을 짓쳐 따라오며 뒤에서 번개같이 장검을 휘둘렀다.

 

일순간 폭포처럼 피를 뿜으며 기삼의 목은 땅에 나뒹굴었고,

 

목 없는 기삼만이 말을 타고 한참을 더 가다가 마상에서 곤두박질을 쳤다.

 

기삼을 따라왔던 선봉군 5백 가운데 목숨을 부지한 이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멀리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신라 장수 무리굴로서는 그야말로 속무책이었다.

 

황급히 말을 돌려 모산성으로 돌아와 남승에게 기삼의 죽음을 알리니

 

남승이 노발대발하여 기삼의 우둔함을 욕하며,

“군령을 어긴 기삼이 이미 죽었으니 그 처자를 끌어내어 당장 참수토록 하라!”

하였는데, 성민들이 한결같이 기삼의 성실함과 자애로움을 말하고

 

또한 장수들이 입을 모아 군졸의 사기를 거론하므로,

“차후 기삼과 같은 이가 다시 있으면 지위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삼족을 멸하리라.”

말로 벌을 대신하고 기삼의 처자를 용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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