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장왕(璋王) 9
하고서 이내 말하기를,
“길지와 문진은 각각 날쌘 군사 5백씩을 뽑아 금물노군(今勿奴郡:진천)으로 가서
모산성(大母山城)의 남문을 치고, 백기는 날쌘 기병 1천을 거느리고 옛 위례성지를 돌아
모산성의 서문을 공격하라.
만일 적들이 성문을 걸어잠그고 응전하지 않거든 성급히 이를 공략하지 말고
숲에 은거하여 나뭇가지를 말 꼬리에 매달고 흙먼지를 일으키라.
하면 틀림없이 금성의 원군이 당도하여 성문을 열고 양쪽으로 추격할 것이다.
이때 너희는 교전을 피하여 짐짓 달아나서 탕정군 쪽으로 향하라.
해수는 보기병 3만을 거느리고 탕정군에 대기하고 있다가 적들이
우리 군사를 쫓아오거든 함께 힘을 합쳐 역공하라.
과인이 모산성의 지세를 손바닥 보듯이 알고 있거니와 그 지세가 험준하여
이렇게 하지 않고는 성을 수중에 넣기 어려울 것이다.”
마치 그림을 그리듯 명령을 내린 뒤에,
“모산성을 공취하면 만노군(萬弩郡)으로 진격하여 국원에서 한산으로 통하는 길을 막으라.
길지와 문진은 1만의 군사로 만노군을 지키고 해수와 백기는 나머지 군사를 이끌고
당성군을 공략하라.”
하고는 잠깐 사이를 두었다가,
“만일 전세가 불리하거든 천산의 지세를 잘 활용하도록 하라.
천산 서쪽에 능히 2만의 군사를 숨길 수 있는 천연의 요새가 있고,
1만의 적군을 수장시킬 수 있는 큰 못이 있을 것이다.”
하고 일렀다.
군령을 받은 장수들이 즉시 군사를 선발하여 도성을 출발하자
장왕은 황망히 내전으로 가서 갑자기 눈물을 흘리며 울기 시작하였다.
장왕비 선화가 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
“전하께서는 어인 까닭에 생전 아니 흘리던 용루를 다 보이십니까?”
하고 물으니 왕이 가까스로 막힌 음성을 가다듬으며,
“과인이 비에게 차마 하지 못할 짓을 하였소.
대체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단 말이오. 실로 입이 떨어지지 않는구려.”
하고 다시금 소매로 눈시울을 닦았다.
선화가 꼬치꼬치 까닭을 캐고 들자 마침내 왕이 털어놓기를,
“내가 방금 군사를 내어 신라의 모산성을 치라고 명하였소.”
하고서,
“일국의 왕으로 중신들이 한결같이 간하는 바를 아니 좇을 수 없는지라
막상 명은 내렸소만 왕비를 생각하니 참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소.
어디 그뿐이오.
과인이 아직 마동 왕자로 있을 적에도 쾌히 국서라 칭하며 안부를 묻던
금성의 빙부께도 미안하기 그지없는 일이외다.
그저 옛날처럼 마동 왕자로 지냈으면 이런 난처한 일이 없었을 것을
공연히 왕위에 오르는 바람에 사람의 도리를 저버린 것 같아
끓어오르는 비감을 억누를 길이 없소.”
말을 마치자 다시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
왕이 괴로워하는 것을 본 선화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것은 조금도 슬퍼할 일이 아닙니다.”
하며 입을 열었다.
“비록 아녀자의 짧은 소견이나 어찌 나랏일과 사사로운 집안의 일을 구분하지 못하겠습니까.
역지사지로 생각해보아도 이는 당연한 일입니다.
항차 소비는 백제국의 왕비이지 신라의 공주가 아닙니다.
금성의 종작없는 가납사니들에게 있지도 않은 모함을 받고 왕실에서 쫓겨난 그 순간부터
이미 신라와 인연을 끊은 사람입니다.
왕실간에 혼례를 올리고도 여자는 지아비 나라의 법도를 좇고 운명을 함께하는 것이
고금의 통례요 상규이온데 하물며 소비는 처참히 훼가출송(毁家黜送)을 당하여 전하를 만났고,
이제 백제의 왕비가 된 것은 신라 왕실과는 하등 무관한 일로 오직 전하의 그늘일 따름입니다.
어찌 두 마음을 품겠나이까?
소비는 오늘부터 정한수를 떠놓고 백제군의 승전보가 들려오기를 부처님과 천지신명께
두루 발원할 것이오니 전하께서는 이와 같은 일로 두 번 다시 마음을 쓰지 마소서.”
“말씀이라도 그렇게 하시니 과인의 마음이 한결 편안하오.”
“말뿐 아니라 진심이 그렇습니다.
어찌 백제의 아녀자가 신라의 망하고 흥하는 것을 생각하겠습니까.
전하께서 자꾸 그러시면 소비를 백제의 왕비로 보시지 않는 것 같아 서운합니다.
남편이 백제의 제왕이요,
훗날 자식이 또 그 왕위를 이어갈 터이니,
소비 또한 죽어서도 영원히 백제 왕실의 귀신으로 남을 것입니다.”
왕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앉았다가 부드러운 얼굴로 왕비를 바라보았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과인의 마음이 쓰린 것은 어찌할 바 없는 인지상정이외다.
만일 백제와 신라가 예전처럼 다시 화친하여 지낼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소?
전조에 고구려가 강성하였을 때는 양국이 서로 걱정하고 협력하는 것이
마치 형제의 나라와 같았다고 들었는데 그런 시절이 그립기 한량없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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