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장 장왕(璋王) 3
“전하, 해속 형제가 비록 지은 죄가 크다 하오나 그것으로 참수형을 내리신다면
이는 지나친 처사입니다. 부디 거두어주소서.”
해속을 두남두어 말하던 내신좌평 우노가 읍하여 아뢰자
왕은 이내 우노를 뚫어지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또한 내신좌평 우노는 선납사의 일을 맡아 보면서 짐을 제대로 보필하지 아니하고
사감에 치우쳐 해속을 두둔하므로 이 역시 짐으로선 용납할 수 없다.
조정좌평은 들으라. 내신좌평 우노 또한 관직을 삭탈하고 그 죄를 물어 효수형에 처하라!”
“마마, 지나치십니다!”
왕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이번에는 조정좌평 순차가 읍하여 아뢰었다.
“조정의 늙은 중신들을 이런 일로 둘씩이나 사사한 일은 전고에 그 예가 없습니다.
부디 통촉합시오!”
순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다시 추상과 같은 왕명이 떨어졌다.
“병관좌평 태기는 들으라.
그대는 금일부로 조정좌평을 겸직하고 조정좌평 순차는
삭탈관직한 뒤 왕명에 불복한 죄로 효수하라.”
그리고 태기를 향하여,
“너도 짐의 뜻을 거역하겠는가?”
하자 이미 안색이 백변한 노신 태기가,
“아, 아니옵니다. 시급히 왕명을 받들어 그대로 행하겠나이다.”
하며 부복하였다.
좌평 세 사람과 덕솔 해수가 대기하고 있던 도부의 병사들에게 이끌려 밖으로 나가고 나자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아니하던 어전의 정적을 깨고 문득 말석의 한 신하가 반보 앞으로 나와
진언하기를,
“전하께 아뢰오.
덕솔 해수는 그 무예가 절륜한 것이 당대에서는 아무도 견줄 이가 없고
그의 나이 고작 스물일곱에 불과한지라 이렇게 죽인다면 실로 아까운 일입니다.
비록 해수의 죄가 크다고는 하지만 장차 전하의 왕업을 일으키고
백제의 옛 영화를 되찾는 일에 해수만큼 중히 쓸 인물이
신이 알기로는 아직 나라 안에 없습니다.
그에게 성은을 내리고 공을 세워 죄를 갚는 장공속죄(將功贖罪)의 길을 열어주신다면
이는 작은 것으로 큰 것을 얻는 길이요,
만일 이렇게 해수를 죽인다면 이득을 볼 곳은 고구려와 신라밖에 없을 것이옵니다.”
하였다.
왕이 보니 그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서랑 개보였다.
“감히 왕명에 토를 달다니 너도 목숨이 아깝지 아니한 게로구나?”
왕이 짐짓 근엄한 얼굴로 묻자 개보가 부복한 채 답하기를,
“신인들 어찌 하나뿐인 목숨이 아깝지 않겠나이까마는 전하께서
지금 하시는 일은 인명을 해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궁극에는 병든 소의 가죽을 팔아 송아지를 사는 거피입본(去皮立本)의 계가 아니오리까?”
하고서,
“신은 죽어도 좋으나 해수는 나라에 꼭 필요한 인재요,
뒤에 반드시 크게 쓸 일이 있을 것입니다. 부디 살펴 행하옵소서.”
간곡한 어조로 말하였다.
왕이 개보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개보는 들으라.
그대를 금일부로 내신좌평에 봉하니
앞으로 짐의 왕업을 도와 견마지로를 다하라.”
일개 내솔에 서랑을 나라의 제일 상신으로 발탁하고서 연하여 노신 태기에게 명하기를,
“형벌을 잠시 멈추라.
내 개보의 뜻을 받아들여 해수의 무예를 친히 볼 것이다.
만일 해수가 과인이 말하는 자들과 무예를 겨루어 이긴다면 당자는 물론이려니와
그 형을 비롯한 나머지 세 사람도 모두 방면하여 집에서 늙은 몸을 편히 쉬게 하리라.”
말을 마치자 중신들을 쭉 둘러보고서,
“경들에게는 다시 사흘간 말미를 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여 진퇴와 치신을 명백히하라.”
하고 엄히 잡도리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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