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9장 장왕(璋王) 2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1:15

제9장 장왕(璋王) 2  

 

“아, 이 사비성에 누구의 혼백이 깃들었던가!”

왕이 깊이 탄식하며 싸늘하고 차가운 눈빛으로 좌중을 둘러보았다.

“나는 왕실의 자손임을 안 이후로 무령대왕의 아드님이시자

나의 증조부이신 성왕 폐하의 일을 단 하루도 잊은 일이 없다.

그리하여 한낱 마동 왕자로 지낼 적에도 위험을 무릅써가며 신라국을 잠행하여

그 지세와 성곽을 샅샅이 둘러보았고,

그 나라의 문물과 민심을 알기 위하여 걸식과 한뎃잠을 마다하지 아니하며

험난한 산곡간을 헤매고 다녔다.

하물며 경사의 조롱거리였던 마동 왕자도 그러하였거늘,

경들은 나라의 녹봉을 받는 자들이 아닌가?

나라의 녹봉으로 밥을 먹고 식구들의 배를 불리며 마소와 종을 부리고

세도와 권세를 누리는 중신들이 아니던가?”

왕의 옥음은 점점 높아지고 중신들은 모두 숨소리를 죽였다.

좌중에서는 그 흔하던 잔기침 소리 하나 들리지 않았다.

“돌이켜보매 성왕 폐하께서 원통하게 붕어하신 지가 올해로 마흔여섯 해가 되었다.

그런데 성왕께서 닦으신 왕도에 살며 성왕께서 지으신 대궐에 모여 국사를 돌보는 자들이

그토록 장구한 세월이 흐르도록 아직도 그 원한을 풀어드리지 못하니

백제에 사람이 이다지도 없단 말이냐?

원한을 풀기는 고사하고 이제는 누구 하나 나서서 그 일을 거론하는 신하마저 없구나.

아, 이처럼 통탄할 노릇이 어느 나라, 어느 조정에 다시 있으랴!

그러고도 경들이 과연 백제의 신하들인가!”

왕은 눈물을 글썽이며 주먹 쥔 손을 부르르 떨었다.

용안은 이미 노여움으로 가득 찼고 왕의 눈에서는 불빛이 이글거렸다.

“황공하여이다.”

좌중이 찬물을 끼얹은 듯 잠잠한 가운데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한 몇몇 신하들이

기어드는 소리로 말하였다.

왕이 한참 만에 옥음을 가다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증조부님의 맺힌 한은 풀지도 못한 채 그 뒤로 전날의 영명하신 대왕들이 닦아놓은 왕업은

나날이 괴손되고 나라 밖의 광활한 영토는 물살에 쓸려가는 갯가의 모래처럼 잃어버렸으며

그 땅에 살던 백성들은 어디로 갔는지 생사조차 모르게 되었다.

좀 전에 병관좌평의 말처럼 국력이 성하고 쇠하는 것은 일국의 역사에 매양 있는 일임을

낸들 어찌 모르겠는가.

영토를 얻고 잃는 것 또한 매한가지다.

그러나 성대왕께서는 신라의 이름 모를 장수에게 죽임을 당하셨고,

그보다 앞서 개로대왕께서는 고구려 거련의 군사가 휘두른 미친 칼에 살해되셨다.

대관절 어떤 나라의 제왕이 이처럼 매번 이웃 나라의 노략질에 번갈아가며

목숨을 잃었더란 말인가?

이것이 어디 국력의 성쇠와 영토의 득실 따위에 견줄 일이던가?

나는 우리 백제와 같은 처절하고 비통한 역사를 전고에 들은 바가 없다.

이는 오호가 날뛰던 중국에서조차 없었던 일로,

그렇게 제왕들을 잃고도 후사와 보복조차 거론하지 않는 한심한 백관과 장수들의

예를 짐은 더더욱 알지 못하겠노라.”

이제 갓 즉위한 젊은 군주를 일변 시쁘게 여겼던 늙은 중신들로선 한결같이

오금이 저리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채였다.

비록 보위에는 올랐으나 근본이 마나 캐어 팔던 자라고 하찮게 여기던 마음은

순식간에 달아나고 통렬한 질책과 무서운 위엄에 눌려 저마다 몸을 떨고 가슴을 졸였다.

“짐은 보위에 오르며 하늘을 우러러 맹세한 바가 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나라의 썩은 것과 그릇된 것을 없애고 제도와 풍습을 바로잡아

국력을 새롭게 할 것이요,

이를 바탕으로 북으로는 고구려와 동으로는 신라를 쳐서 비명에 가신 두 분 선대왕의

해묵은 원한을 기어코 풀 것이며, 적당한 때를 기다려 지금은 수나라에 복속된 나라 밖의

구토를 반드시 되찾을 것이다.

짐은 이를 위하여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을 것이며, 제왕의 도리를 다할 것이다.

군신을 막론하고 어찌 작금의 나랏일이 한가로이 일신의 영달이나 좇을 때이더냐?

부귀영화를 꾀하고 재물 모을 궁리나 할 정도로 시절이 태평하더냐?”

왕의 표정은 단호하고 음성에는 만승의 위엄이 서려 있었다.

“나이 들고 용기 없는 신하는 자진하여 물러나라.

스스로 생각하여 허물이 많은 자도 그간의 노고를 참작하여

특별히 벌하고 망신시키지 아니할 터이니 자발하여 물러나라.

짐과 함께 왕실의 해묵은 원한을 갚고,

요하에서 장강에 이르는 중원의 광활한 영토를 회복하여 백제의 부흥을 이룰

매서운 각오를 한 자들만 남으라.

그리하면 내 그들과 더불어 강국 백제의 옛 면모를 기필코 되찾을 것이며,

훗날 그들에게는 제후의 권세와 시속에 얽매이지 않을 영화를 보장할 것이다!”

왕은 우선 내관 중신들에게 사흘의 말미를 주고 공 없는 자와 허물 있는 자에게

스스로 물러날 것을 종용하였는데 중신들이 저마다 눈치를 보며 아무도 앞에 나서려는

이가 없었다.

이때 위사좌평을 맡고 있던 해속이라는 자가 사군부의 장수로 나가 있던

자신의 아우 해수(解讐)를 방좌로 삼아 도성으로 불러들인 일이 있었다.

해수가 아직 외근직의 임기가 반이나 남아 있었으나 해속이 이를 무시하고

임의로 일을 처리하여 해수 대신 사군부로 나간 자가 불만이 높았다.

이에 새 왕이 즉위하자 곧바로 진소하여 억울함을 호소하니

왕이 당장 내신좌평 우노(優奴)에게 명하여 해속과 해수 형제를 잡아들이라 하였다.

그런데 우노 역시 해속과는 동갑으로 집마저 담 하나를 격하고 살던 절친한 사이요,

위덕왕 재위 내내 번갈아 좌평 벼슬을 지내며 서로 이런저런 편리를 봐주던 처지라,

“신의 생각에 해속이 해수를 도성으로 불러들인 까닭은 모다 전하를 위해서 행한 충절이지

딴 뜻이 있는 일은 아니옵니다.”

하며 해속을 두호하여 아뢰었다.

장왕이 그 사유를 물은즉 우노가 답하기를,

“비록 해수가 해속의 동생이라고는 하나 지금 백제의 장수 가운데

해수의 무예를 당할 만한 이가 없습니다.

그런 고로 해속이 해수를 도성으로 불러 왕성 주변의 경계를 든든히 한 것이니

만일 이를 책하면 장차 충성으로 임금을 섬기려는 자가 다시 있을는지 모르겠나이다.”

하고 둘러댔다.

대신들의 저항은 녹녹치 아니했으나 왕은 능히 이를 예견하고

도리어 때가 오기를 벼르고 있었다.

우노에게 명하여 즉시 6품 이상의 백관들을 편전으로 입궐하라 이르고

용좌에서 큰 소리로 말하기를,

“위사좌평 해속은 숙위병사의 일을 맡김에 국법의 공평함을 좇지 아니하고

사사로이 처리한 죄가 드러났다.

그런데 그가 오랫동안 좌평으로 복무하며 나랏일에 수고로움을 아끼지 아니한

공덕이 있으므로 만일 자진하여 물러났더라면 짐 또한 그 죄를 불문에 부치려 하였으나

해속이 끝까지 짐의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아직도 물러나겠다는 말이 없으니

짐은 해속의 일을 일벌백계로 삼아 왕명의 지엄함과 짐의 뜻이 견고함을 만천하에 보이려 하노라. 해속은 다소 벌이 무겁더라도 과인을 원망하지 말라.”

하고는 조정좌평 순차(洵且)를 불러 해속과 해수 형제를 참수형에 처하라 명하였다.

왕명이 떨어지는 순간 순차는 물론이요

조정의 백관들이 모두 경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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