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마동 부여장 19
이에 선이 옛 기억을 더듬어 경사 남쪽의 못가를 조심스레 찾아갔다.
마을과 집은 예전 그대로이나 문을 밀치고 들어서니
유독 사람의 종적만 보이지 아니하였다.
선이 퇴락한 집의 먼지 앉은 마루에 엉덩이를 걸치고 눈으로
전날 안향의 자취를 더듬으며 한참을 앉았다가 마침 길가를 지나가는 동네 사람을 불러
안향의 소식을 물어보았다.
선과 얼추 나이가 비슷해 뵈는 그 사람이 평복을 하고 나온 선을 아래위로 훑어보고서,
“안향이란 여자는 세상 뜬 지 벌써 여러 해요.”
하고 그대로 지나치려는 것을 선이 황급히 붙잡아 세우고,
“세상을 떴다니? 아니, 무슨 까닭으로 세상을 그처럼 일찍 떴는가?”
마치 따지듯이 물으니 그 사람이 약간 기막힌 표정으로,
“내가 안향이 세상 뜰 적에 그 까닭을 물어보지 못해 미안하외다.”
조롱하듯이 대꾸하고는 바삐 사라졌다.
선이 안향을 만나 참고 참았던 회포를 풀자고 잔뜩 벼르고 왔다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들으니
억장이 무너져 한동안 넋을 잃고 맨땅에 퍼질러 있었다.
조금 뒤 이번에는 한 노파가 우는 아이를 등에 업고 나타나서
오락가락 선의 앞을 얼쩡거리다가,
“빈 집 앞에 앉아서 무얼 하시오?”
하고 말을 걸어 선이 그제야 문득 정신을 차렸다.
“여기 이 집에 살던 안향이란 여자가 죽었다는 게 사실이오?”
“그렇소. 하마 서너 해 되었지요.
아들과 둘이 마농사를 짓고 꽤나 오순도순 살았는데
그만 병을 얻어 어미가 일찍 갑디다.”
“아들이 있었다구요?”
“암만. 아들이라도 보통 아들이 아니었소.”
“보통 아들이 아니라니요?”
“혼자 사는 과부가 잘난 아들을 보았으니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다 그 아들을 가리켜
마동 왕자니 못에 사는 용의 자식이니 종작없이들 빈정거렸지만
모자가 그런 소리엘랑 내내 안색 한번 변치 안하고 살았소.
아들이야 사람마다 낳아도 그만한 아들 보기가 쉽잖애.
나는 용의 자식은 보지 못해 모르겠지만 왕자 구경은 더러 하였는데,
칠십 평생에 그처럼 우뚝하고 헌칠한 왕자는 본 일이 없소.
하니 일설에는 신라왕이 딸 중에서 젤루 인물이 곱다는 선화 공주를 주어
사위로 삼았다는 소리까지 나돌지.
신라왕이 만일 마동을 보았다면 능히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부여선으로선 노파가 말하는 것을 금방 다 알아들을 수 없었다.
한참 동안 노파에게 자초지종을 캐어물어 그 아이의 이름이 장이라는 것만 가까스로 알아내고는
대궐로 들어와 전에 녹사 벼슬을 하던 진각수와 그 일가를 찾으니
죽은 진각수 대신 입궐한 자가 진대가였다.
태자 선이 진대가를 보고,
“네가 옛날 남지 못가에 살던 안향의 오라비인가?”
하고 묻자 대가가 또 무슨 좋지 않은 일이 있을 줄로 미리 짐작하고,
“그러하오나 안향과 소인은 말이 남매였지 실상은 남보다도 더 못한 사이였습니다.”
하였다.
선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그것은 어째서 그러한가?”
하고 반문하니
대가가 안향의 행실이 좋지 못했던 것과 그로 인해 아비 모르는 자식을 낳아
세간에 조롱거리가 된 것들을 푸념하듯 털어놓고서,
“정체도 모를 남의 군계집으로 일생을 마친 어미가 죽자
이번에는 또 그 자식이란 놈이 나라와 집안에 평지풍파를 일으켜
소인이 차마 고개를 들고 다니기 어렵습니다.”
하였다.
선이 대가의 말을 통해 장과 안향이 그간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가를
통연히 알아차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래 그 장이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선왕 폐하께서 붕어하시기 전에 무리와 더불어 용화산에 웅거하고 있던 것을
잡아들였사온데 궐옥에 갇혀 그대로 지내는 줄로 아옵니다.”
“뭐야? 옥에 갇혀 있다고?”
선이 크게 놀라며 언성을 높이자
대가가 부복하여 고하던 고개를 들어 선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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