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마동 부여장 18
그로부터 얼마 아니 있어 화적촌에 반가운 손이 찾아왔다.
마삼(馬杉)이라는 그 손은 전날 거짓으로 복통을 앓는 체하여 장과 선화가
화적촌과 인연을 맺는 데 첫째 공을 세운 자인데,
그 후 난혼의 악습을 바로잡을 때 짝을 구하라고 준 금푼을 씨알돈으로 장사를 벌여서
제법 재미도 보고 저자에서 부자 소리까지 듣게 되었다.
전날 비쩍 말랐던 마삼이 몰라볼 정도로 신수도 좋았지만
곱상한 각시와 갓난쟁이를 달고 선화에게 줄 노리개며 화적촌 사람들이
모두 먹고도 남을 떡까지 마련하여 찾아오니
장이 마삼의 성공을 크게 기뻐하여 개와 돼지를 잡고 동네 잔치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장이 술에 취하여 장인인 신라 국왕한테서 서신 받은 것을
여러 차례 자랑하였는데,
마삼이 다시 저자로 내려간 뒤에
그만 이 소문이 나돌아 장의 큰외숙 대가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장의 일로 관직에서 쫓겨나 집에서 분통만 터뜨리고 살던 대가가
소문의 진원지를 따라 마삼을 찾아왔다.
마삼이 대가를 만나니 대가가 말하기를,
“나는 장의 외숙으로 조카의 안부가 늘 궁금하였는데
자네가 내 조카 사는 곳을 안다고 하여 특별히 찾아왔네.”
하고서,
“조카네가 아무 탈 없이 잘 지내고 있는가?”
“선화 공주는 아직 신라로 돌아가지 아니했는가?”
“두 사람 사이에 자식도 있던가?”
진심으로 조카의 안부를 걱정하는 사람처럼 꼬치꼬치 캐묻고 나서,
“명색이 아재비로 조카네 사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으니
어디에 사는지만 일러주게나. 누이가 남긴 핏줄이 그 아이 하날세.
숙질간에 사는 곳을 모른대서야 말이나 되는가?”
자못 다감한 표정으로 청하여 마삼이 별다른 의심 없이,
“용화산으로 가봅시오.”
하고 화적촌으로 들어가는 찾기 힘든 길까지 소상히 그림을 그려가며 일러주었다.
대가가 장의 거처를 알아내자
그 길로 관아에 고하여 군신이 모두 알게 되었는데,
이때는 신라왕이 은밀히 서신까지 보내왔다는 혐의가 덧붙어서
장의 죄가 첩자에 버금갈 만큼 막중하였다.
창왕이 병관좌평 태기(台奇)에게 명하여 당장 장과 선화를 붙잡아들이라 하니
태기가 무려 1천여 명이나 되는 군사를 이끌고 용화산을 덮쳐 장과 선화뿐 아니라
화적촌 주민 전부를 생포하였다.
이때가 바로 무오년 시월 하순으로, 수나라에 향도를 자청하여 갔던
사신 왕변나(王辯那)가 양견의 서신을 지니고 귀국한 직후였다.
도성으로 붙잡혀온 장이 화적촌 주민들과 왕성 옆의 궐옥에 갇혀 문초당할 때를 대기하던 중에
고구려가 수군을 내어 백제의 서안을 공격하므로 나라의 관심이 모두 그쪽으로 쏠렸고,
그 전쟁이 채 끝나지 아니하여 창왕이 돌연 붕어하니
장의 일 따위는 그만 관심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국상을 치르고 즉위한 창왕의 아우 계왕은 보위에 오르자마자
제일 먼저 서역에 나가 있던 장자 선을 불러들여 태자로 삼았다.
오랫동안 곤륜 지방에 나가 살던 부여선이 스물여섯 해 만에
가족들을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왔는데,
떠날 적에 약관의 미청년이 피부는 볕에 그을려 소나무 껍질과 같고,
흰 이는 죄 검은 빛을 띠었으며, 머리털은 어느덧 희끗희끗 백발이 뒤덮어
전날 그를 기억하던 사람 치고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이 없었다.
늙은 계왕이 부여선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고생한 것을 위로한 뒤에,
“너의 소원이 무엇이냐? 네가 소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 들어줄 테니
어디 망설이지 말고 말을 해보라.”
하였더니
선이 기다렸다는 듯이 꺼낸 얘기가 전날 애틋한 정분을 주고받았던 안향의 일이었다.
부여선이 곤륜에서 부인을 얻고 슬하에 이미 다섯 남매를 두었으나 마음은 늘상
본국에 두고 온 안향과 얼굴도 보지 못한 자식에게 있었다.
부여선의 얘기를 들은 계왕이 크게 탄식하며,
“내가 미리 그런 애달픈 사연이 있는 줄을 알았더라면
어떻게 해서든 그들을 거두었을 것이다.”
하고서,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너는 어서 가서 그들을 찾아 대궐로 데려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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