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8장 마동 부여장 14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0:46

제8장 마동 부여장 14

그로부터 불과 한 식경이 아니 되어 무량이 장정 하나를 대동하고 다시 화적촌에 나타났다.
 
무량이 달고 온 장정은 키가 8척에 허우대가 곰과 같았으며 얼굴은 우락부락하여 보기만 해도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그가 곧 길지였다.

길지가 나타나자 단고를 비롯한 화적촌의 사람들이 모두 땅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단고 어딨느냐?”

길지가 성난 목소리로 단고를 찾았다.

단고가 일어나서,

“네, 두령님.”

하고 대답하니 길지가 눈알을 부라리며 꾸짖기를,

“너는 어떻게 된 놈이 일을 이따위로 하느냐?

내 떠나기 전에 절에 가는 사람을 상대로는 화적질을 하지 말라고 그토록 누누이 당부하였거늘

이젠 법복 입은 스님의 바랑까지도 노렸더란 말이냐?”

하고서,

“다른 것은 다 그만두고 너는 내가 사자사의 문진과 호형호제하며 지내는 것을 그새 잊었느냐?”

하고 다그쳤다.

단고가 무참한 낯으로 처음에는 절에 가는 신도인 줄을 모르고 잡아왔으나

그냥 되돌려보내면 후환이 있을까 께름칙하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다며

무참한 낯으로 발명하고서,

“두령님이 떠나고 시일이 워낙 오래되어 저희가 잘 먹어야 하루에 한 끼요,

그마저도 근자에는 어린것들과 여자들만 먹이고

우리 남자들은 초근목피로 명줄을 이어가던 판이오.

하니 눈이 어두워서라도 무엇인들 가리겠소?

그래도 인명을 해치지 아니하고 한 말이나 되는 금붙이도 팔아먹지 아니한 것은

모다 내가 부하들을 다독거리고 설득한 때문입니다.”

은근히 자신에게도 공이 없지 않음을 주장하였다.

길지가 앞으로 문진을 무슨 낯으로 보느냐며 길게 탄식한 뒤에

대사를 향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

그리고 먼저 잡혀와 있던 세 사람에게도 차례로 용서를 구하고

특히 문진의 형인 매우를 보고는,

“아우님께 잘 말씀을 드려주십시오.

만일에 문진 스님이 이번 일로 화를 내면

저희가 더 이상 용화산 신세를 질 수가 없습니다.”

간곡히 부탁하여 매우가 그렇게 하겠노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길지가 단고한테 명하여 빼앗아놓은 금 한 말을 도로 가져오라 하여 일행에게 건네주니

선화는 어서 가자며 길을 재촉하는데 장이 한참을 묵묵히 앉았다가,

“이보시게, 길지 두령.”

하며 말문을 열고는,

“남령으로는 아니 가시는가?”

하고 물었다.

길지가 남령의 백제촌이란 곳을 다녀왔으나

기후가 맞지 않아 살기가 어려울 뿐만 아니라

가진 재화도 부족하여 당장 움직이기는 어렵겠더라 말하고,

“해남통의 아는 사람에게 훗날 부남으로 가는 배편이 있으면 알아봐달라고 부탁하고 왔소.”

하였다.

이에 장이 길지에게 말하기를,

“나는 근본이 백제 왕실의 자손인데 그대들이 이처럼 고초를 겪는 것을 보니

말할 수 없이 마음이 아프네.

오죽하면 살던 고향을 버리고 낯설고 물 선 남의 땅으로 가려고 하겠는가?

없는 사람 사정이야 없는 사람밖에 모르지.

나 또한 말은 왕손이라고는 하지만 운명이 기험하여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사의 남지에서 마농사를 짓고 살았다네.

그러다가 지금은 세간의 이목을 피해 용화산에까지 왔으니

그대들의 처지와 내 처지가 게서 겔세.”

하고서,

“어떤가? 이처럼 만나 서로가 면을 익힌 것도 전고의 인연이 없이는 어려운 일이요,

이곳은 지세가 묘해 굳이 찾자고 들지 않으면 알기 어려우니

자네가 만약 우리 내외의 머물 곳을 허락한다면 내 굳이 사자사까지 올라갈 까닭이 없네.

그 금을 팔아 양식과 옷을 사서 여기 사람들을 골고루 먹이고 몸을 데운다면 한동안은

어떤 부자도 부럽지 않을 만큼 풍족히 지낼 뿐더러 원하는 사람은 밭뙈기를 마련하여

농사도 지을 수 있을 것임세.

이는 또한 작금의 왕실이 하지 못한 일을 내가 하는 것이니

가히 일석삼조가 아니겠는가?”

돌연한 제안을 하고 나왔다.

길지가 깜짝 놀라며,

“저희로서야 마다할 까닭이 없으나 귀하신 분들께서

어찌 이처럼 누추하고 험악한 데서 지낼 수 있겠나이까?

하룻밤도 안 지나서 공연히 후회하실 터이니 그냥 가십시오.”

하자 장이 껄껄 웃으며,

“이 사람아, 예서 지낸 지가 벌써 열흘이 가까웠네.”

하였다.

매우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화적 떼들 속에서 어찌 지내시겠소?”

하며 묻고 선화 또한 장의 뜻이 마음에 들지 아니하여,

“기껏 화적 떼 속에서 지내자고 나를 백제로 데려왔소?”

하고 눈빛을 살천스럽게 흘겼으나 오직 대사 무량만이

빙그레 뜻 모를 웃음을 머금은 채 말이 없었다.

장이 선화와 매우를 보고,

“화적 떼가 본시부터 화적 떼가 아니니 걱정할 것이 없소.

자고로 백성들이란 어린애와 같아서 먹고 입을 것이 풍족해지면

그 마음도 절로 유순해진다 하였으니 차차 두고 보시오.”

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이때까지 잠자코 있던 무량이,

“낭군님이 하자는 대로 따르십시오.”

하고 장의 뜻을 두호하여 선화에게 권하였다.

장이 길지를 향하여,

“장리가 허락하겠는가?”

웃으며 물으니 길지가 장리라는 소리에 겸연쩍어

그 험상궂은 얼굴을 붉게 물들이며,

“뜻대로 합시오.”

하고 공손히 대답하였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8장 마동 부여장 16 회  (0) 2014.07.19
제8장 마동 부여장 15 회  (0) 2014.07.19
제8장 마동 부여장 13 회  (0) 2014.07.19
제8장 마동 부여장 12 회  (0) 2014.07.19
제8장 마동 부여장 11 회  (0) 2014.0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