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마동 부여장 11
해거름에 일행이 용화산 남면의 한적한 산길로 접어들어 막 이삼십 보를 걸어갔을 때다.
맞은편 산길에서 웬 비쩍 마른 사내 하나가 배를 싸쥐고 고함을 질러대며 일행을 향해
애타게 손을 흔들었다.
매우가 그 모습을 보고,
“그냥 갑시다.”
하고 내처 걸어가자 장과 선화가 동시에 말하기를,
“저렇게 아픈 사람을 보고 어찌하여 그냥 간단 말씀이오?”
하고는 장이 산길을 미끄러지듯이 내려가서 그 사람의 가까이로 다가갔다.
매우가 걸음을 멈추고 잔뜩 걱정스러운 낯으로 선화를 돌아보며,
“화적패들이 더러 저러는 수가 있는데 혹시 흉악한 자가 아닐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였는데, 미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사방의 돌틈과 나무 숲에서 험상궂게 생긴
사내들이 고함을 지르며 와르르 몰려나와 장의 주변을 에워쌌다.
선화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유, 저걸 어째! 저걸 어째!”
하고 어쩔 줄을 몰라하는 사이에 여럿이서 한꺼번에 달려들어 장을 간단히 묶어버리고는,
“저기도 사람이 있다!”
하는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몇 놈이 부리나케 비탈길을 기어올랐다.
매우가 선화의 손을 잡아채며,
“공주님께서는 어서 몸을 피하십시오!
이 길로만 곧장 올라가시면 절이 나타날 것이니
그곳에 가서 문진이란 중에게 이 사실을 알리십시오!”
말을 마치자 황급히 나뭇가지를 꺾어 올라오는 무리를 향해 휘둘러대니
선화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다가,
“어서 가세요!”
하는 매우의 고함소리를 듣고야 바삐 걸음을 옮겨놓았다.
그러나 매우가 화적패들이 던진 시석에 이마를 맞고 쓰러지고,
선화 또한 채 산모롱이 하나도 돌아가기 전에 쫓아온 무리들에게 붙들려서
세 사람이 모두 어딘지도 알 길 없는 화적패들의 소굴로 잡혀 가게 되었다.
화적패들이 어림잡아 30여 명은 되지 싶은데 용화산 계곡 사이에 움막을 여러 채 지어놓고
그곳에서 밥도 지어 먹고 아이도 낳아 기르며 화적질을 일삼고 있었다.
움막에 이르니 아랫도리를 벗고 기어다니는 어린것들도 보이고 젖먹이를 안고 앉았거나
밥을 짓는 여자들도 더러 눈에 띄는데, 하나같이 먹지 못하여 눈이 움푹 꺼지고 볼이 홀쭉하여
성한 사람의 몰골이 아니었다.
일행을 잡아간 화적들이 두령을 찾자 범의 가죽으로 옷을 지어 입은 사내 하나가
움막에서 나와 세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히야, 어디서 저런 미인을 다 잡아왔느냐?”
특히 선화를 보고는 벌린 입을 다물 줄 모르고 좋아하였다.
이에 장이 큰 소리로 수괴를 나무라며,
“나는 백제국 왕실의 후손인 부여장이고 여기 이 사람은 나의 지어미이자
신라국의 왕녀인 선화 공주시다.
너희가 아무리 사람의 귀천과 고하를 알아보지 못하는 무지렁이들이라고는 하나
만일에 허튼수작을 부렸다가는 구족2)이 살아남지 못할 것이니 그리 알라!”
준절히 꾸짖고서,
“그러나 만일 지금이라도 우리를 풀어주고 잘못을 빈다면 이 일은 기꺼이 용서해주겠다.”
하였더니 여기저기서 낄낄거리는 웃음 소리가 들리고 개중에 어떤 놈은,
“차라리 왕이고 왕비라고 하지, 미친놈!”
하며 욕까지 하였다.
수괴가 장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거 참 고얀 놈이로세.”
하고서 이내 말하기를,
“네가 무엇이든 우리는 상관도 없지만 왕실의 후손이라니 더 잘되었다.
이놈아, 우리가 먹을 것이 없어 이토록 고생하고 지내는 것이 다 누구 때문인지 아느냐?
바로 너희놈들같이 대궐에 저지르고 앉아서 매일 호의호식이나 일삼고 주지육림에나 파묻혀
지내는 것들 때문이요,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왕 같잖은 왕과 백성들의 피나 빨아먹는
중신이란 것들 때문이다.”
하며 거꾸로 호통을 쳤다.
왕실의 위엄이 통하지 않는 데다 몸마저 묶여 있으니 장으로서는 다시 어째 볼 도리가 없었다.
수괴가 좌우에 대고 노기 띤 어조로 명하기를,
“저것들의 몸을 샅샅이 뒤져서 재물이 될 만한 것들은 모다 빼앗아라!”
하니 화적패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세 사람의 품과 봇짐을 뒤졌는데,
장이 지고 있던 봇짐 안에서 금이 한 말이나 쏟아져나왔다.
이것은 선화의 어머니인 마야 왕비가 노자로 주었던 순금이었다.
금을 본 화적패들이 길길이 날뛰고 기뻐하며 탄성을 질렀다.
수괴로 보이는 자가,
“왕실을 팔더니 제법 재화깨나 있는 집안의 자손임은 분명한 성싶구나.”
하고서,
“사내 두 놈은 죽여 후환을 없이 하고 여자는 엉덩이를 씻겨 내게로 데려오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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