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8장 마동 부여장 10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0:35

제8장 마동 부여장 10

백제 조정이 발칵 뒤집힌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었다.
 
대가가 고변한 그날로 어전에 불려갔더니 왕이 친히 대가를 보고 묻기를,

“신라의 왕녀가 경사에 나타났다는 말이 사실이냐?”

하여 대가가 머리를 땅에 박고서,

“신의 질자놈이 데려온 처자가 그리 말하는 것을 들었사온대

그 미색이 출중하여 보는 이의 넋을 빼앗을 정도요,

이를 구경하러 모여든 자들로 신의 집 대문 앞이 한때 장사진을 이루었습니다.”

하고는,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신라왕의 딸 선화가 분명한 듯하였나이다.”

하고 진언하였다.

왕이 대가를 상대로,

“너의 조카가 무엇을 하는 자이냐?”

“신라의 왕녀가 무슨 일로 너의 조카를 찾아왔더란 말인고?”

꼬치꼬치 여러 말을 하문하여 대가의 대답을 듣고 나자

곧 좌우에 명하여 두 남녀를 잡아들이라 하였다.

그러나 왕명을 받은 군사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어 도성을 이잡듯이 뒤졌음에도

끝내 대가가 말한 두 사람을 찾지 못하자 고변한 사람의 꼴만 우습게 되었는데,

그러잖아도 서녀의 일로 이미 심기가 잔뜩 뒤틀렸던 해미갈이 허위로 고변한

대가의 죄를 어전에서 거론하고 드디어는 왕의 윤허를 얻으니

대가가 하루아침에 그만 벼슬을 잃고 관직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한편 장과 선화는 정가의 주선으로 경사 사비에서 몸을 빼내어 용화산(龍華山:익산 미륵산)의

사자사(師子寺)란 절로 들어갔다.

이곳을 소개한 연매우(燕梅雨)라는 이는 정가와 오랜 친분이 있던 중의 아들로

경사에서 학동들을 가르쳤는데, 절개가 곧고 의리가 있었다.

본래는 매우의 아비인 선암이란 중이 진각수와 같은 녹사 벼슬을 지내며

서로 허교하던 사이였으나 한 해 국답(國畓)에서 수확한 곡식의 양을 문서로

잘못 처리하는 바람에 죄를 짓고 쫓겨다니는 신세가 되었다.

이때 진각수가 뒤를 봐주고 함께 다니면서 몸을 숨길 거처까지 알선해주었는데,

그곳이 절이었다.

선암이 절에서 한동안 은둔하며 지내다가 차차 불법의 오묘함에 심취하여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선암에게는 아들 3형제가 있었으며 매우가 둘째였다.

장자인 연남화는 손재주가 뛰어나 어려서부터 손에 연장만 쥐어주면

돌과 나무를 떡 주무르듯 하였다.

선암이 자신의 거처하던 절 문을 흉하게 생긴 바위 하나가 가로막고 있는 것을

늘 못마땅해하다가 하루는 남화가 문안을 여쭈러 산에 온 것을 보고,

“저놈의 바위가 생긴 것이 꼭 구렁이 대가리와 같고 사람과 짐승이 지나다니는 데도

거추장스럽기 한량없으니 네가 다음에 올 적에는 날품을 파는 장정들을 데려오너라.

굴리든지 옮기든지 좌우간에 좀 치워야겠다.”

하자 남화가 그 바위를 서너 번 치바라보고 나서,

“흉한 것은 깎아내어 보기 좋게 만들면 되지요.”

하고는 하룻밤새 달빛을 빌려 바위를 깎고 불상을 만들었는데,

이튿날 보니 바위에 새긴 석불의 생김새가 본당 부처보다 낫고

그 자태에서 사뭇 비기마저 감돌았다.

남화의 이런 재주가 사문의 중들 사이에 널리 알려져서 불사가 있는 절에서는

반드시 그를 청하여 데려가기를 소원하므로 남화가 여러 곳을 바쁘게 불려다니고

심지어는 배를 타고 잔국에 다녀온 일까지 있었다.

매우의 아랫동생은 이름이 문진(燕文進)으로 담력이 뛰어나고 기운이 장사였다.

일찍이 백병을 거느리는 장수가 되기를 소원하여 힘써 무예를 갈고 닦았는데

한 해 나라에서 무장을 뽑는 행사가 있어 나갔다가 백기(룰奇)라는 이와 더불어

마지막까지 남게 되었다.

두 청년이 말잔등에 올라 검술로 1백여 합을 겨루도록 승부가 나지 않자

판관으로 나온 자가 봉술과 궁술을 제안하여 차례로 자웅을 겨루었다.

그러나 봉술에서는 문진이 우세하고 궁술에서는 백기가 과녁을 정통으로 맞추어서

양자가 공히 왕을 봉견하는 기회를 얻고 장수로 삼을 것을 약속받았는데,

뒷날 백기가 전날 동성대왕을 시해하고 가림성에서 모반한 백가(룰加)의 후손임이 밝혀져

조정이 발칵 뒤집혔다.

이에 덩달아 문진의 가계도 조사를 벌여 그 아비 선암의 전죄가 거론되기에 이르렀고,

결국은 문진도 백기와 더불어 관직에 나가지 못하니

그 길로 머리를 깎고 들어간 곳이 전날 선암이 입적했던 용화산의 사자사였다.

매우가 장과 선화의 은둔처를 구해달라는 정가의 부탁을 받자

사자사가 인적이 드물고 절이 깊어서 안성맞춤이라 하며,

“그러나 일전에 저의 아우가 말하기를 지난날 기근이 심했을 적에 창궐했던 도적패가

근자에 사냥꾼을 가장하여 용화산에서 자주 출몰한다 하니

두 내외만 보냈다가 행여 무슨 봉변이라도 당할까봐 걱정이올시다.”

하고는 직접 이들을 인도하여 용화산으로 갔다.

세 사람이 사비에서 한나절을 남향하여 가는데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한결같이

선화의 절륜한 미색에 반하여 여자들은 쑥덕거리고 남자들은 따라오므로 매우가 웃으며,

“공주님은 아무래도 무엇으로 얼굴을 가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하여 선화가 급한 대로 장의 겉옷을 뒤집어쓰고 구멍을 뚫어 눈만 내놓았다.

그러고 나자 사람들이 해괴한 복장 때문에 쳐다보긴 해도 따라오는 자는 생기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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