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마동 부여장 9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따라 대궐 앞에서 해미갈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해미갈이 대가를 보자,
“진시덕, 나 좀 보게나!”
팔을 휘두르며 큰 소리로 불렀다.
고개를 외로 꼬고 못 본 척 지나치려던 대가가 하는 수 없이,
“어이쿠, 어르신 나오십니까요.”
하며 부러 반가운 양 달려가서 허리를 굽실거리니 해미갈이 다짜고짜,
“자네가 참으로 싱겁고 우스운 사람이야. 조카의 일은 어찌 되었나?”
퉁명스레 묻고는,
“얼마 전에는 생전 안 들어오던 매작까지 들어온 것을 내가 미리 자네하고
나눈 얘기가 있어 물리치기까지 했는데 어찌 자네는 그토록 무심한가?”
참인지 거짓인지 모를 소리로 오금을 걸었다.
대가가 죄송하다며 연신 대가리질을 하고 나서,
“그런데 나리, 제가 아직도 천탈기백하여 본정신이 아니올습니다.
나리께서 제 앞에 서 계시는 이것이 꿈입니까, 생십니까?”
하며 얼빠진 사람마냥 양눈을 끔뻑였다.
해미갈이 무슨 시망스런 수작을 하느냐는 듯이 실눈을 뜨고 대가를 바라보았다.
이에 대가가 해미갈의 귀에다 입을 가져가서 좀 전에 자칭 선화 공주라는
여자를 보았다고 말하고 그 인물 절륜한 것을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탄한 뒤에,
“저의 질자놈이 과연 그런 여인을 데려와 절을 시키고 갔는데
제가 본 그것이 헛것인지 아닌지 아직도 정신이 몽롱합니다.”
딴에는 진지한 얼굴로 말하였더니 해미갈이 돌연 성을 벌컥 내며,
“웬놈의 망발이 그리도 구구하느냐?
추물이라 싫다고 하면 그만인 것을 네 감히 뉘 앞에서 사람을 기망하려 드는고?”
하고 대가의 말을 조금도 믿지 않았다.
대가가 안색이 흙빛이 되어 극구 그런 것이 아니라며 부인하였음에도
해미갈이 이를 들으려 아니하고,
“감히 너 따위가 나를 희롱하고 능멸하니 내 본때를 보여주리라!”
하고는 붙잡을 겨를도 없이 자리를 떴다.
대가는 해미갈의 노여움 산 것이 생각하면 할수록 걱정이었다.
따지고 보면 누가 그리 시킨 일도 아니요,
순전히 제 입으로 제가 생각하여 저의 멋대로 저지른 일이므로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할 것도 없는 바이지만 대가의 생각에는 이 모든 사단이 죽은 누이
안향과 장의 탓인 것만 같아서,
“그놈의 모자가 일생을 남의 입초시에 오르내리더니
드디어는 진씨 가문을 송두리째 망치는구나!”
하고 새삼 이를 갈았다.
남편이 고민하는 것을 보다못한 대가의 처가,
“그렇게 밤낮없이 고민할 일이 무어요?”
하며 참섭하여 말하기를,
“장이를 따라온 일전의 그 처자가 과연 선화 공주라면 이는 우리 진씨 문중뿐 아니라
나라로 봐서도 보통 일이 아닐 것이오.
대체 남의 나라 왕녀가 무슨 까닭으로
마 뿌리나 캐다 파는 더벅머리 총각한테 시집을 온답디까?
필경은 그 속에 남이 알지 못하는 깊은 사연이 있을 터요.”
하니 대가가,
“깊은 사연이라니?”
하고 반문하였다.
“또 혹시 압니까?
장이란 놈이 워낙 알 길 없는 놈이니
신라 왕실에서 이를 이용하여 무슨 계략을 꾸며 보냈는지.
그렇지 않고서야 공주가 장이를 따라서 예까지 올 까닭이 있소?”
“……거 듣고 보니 그렇네.”
“만일에 이것이 사실이라면 진씨 가문의 영화와 몰락이 순전히 당신의 하기 나름이오.”
“그건 또 무슨 소린가?”
“생각해보시오.
만일에 장이놈이 첩자 노릇을 하다가 걸려든다면 우린들 무사하겠소?”
“무사하기가 다 뭔가, 목이 달아나겠지.”
“그렇지만 당신이 이를 나라에 고변하면 우리는 무사할 뿐더러
십상팔구 공까지 세우는 것이 되니 극락과 지옥이 한순간이오.”
대가가 고개를 끄덕이다가,
“하지만 만일에 공주가 아니면 어찌하나?”
하자 그 처가,
“공주가 아니더라도 그놈의 두 가시버시가 먼저 공주라 외고 다녔으니
허위로 고변한 죄는 면할 수 있을 뿐더러 달솔 어른의 의심과 노여움도 풀릴 것이 아니오?
당신이 지금 밤낮으로 고민하는 것이 모두 달솔 어른의 노여움 때문이니
어느 쪽이 됐건 나라에 알려서 손해볼 일은 없지 싶소.”
하고서,
“장이놈만 해도 그렇지요.
달솔 어른이 만일 장이의 생긴 것을 보고 서녀의 사위로 삼을 뜻만 있다면
그 정도야 얼마든지 구해낼 수 있지 않겠소?”
하였다.
이에 대가가 무릎을 치며,
“임자의 식견이 나보덤 윗길이네.”
하고는 이튿날 관청에 나가는 즉시 위에 신라국 선화 공주가
백제의 경사에 나타났음을 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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