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마동 부여장 8
그로부터 두세 달이 넘도록 장이 대가의 집에 나타나지 아니하자
대가는 미리 말을 꺼낸 죄로 해미갈에게 심하게 부대꼈다.
해미갈이 대가만 보면 장의 소식을 묻고 왜 데려오지 않느냐고 책망하듯 따지니
대가가 언제부턴가 해미갈을 피해 다니면서 수시로 장의 집과 정가네 집으로
사람을 보내곤 하였다.
이럴 즈음 장은 신라에서 선화를 만나 드디어 백년가약을 맺고 백제로 데리고 돌아오니
이를 누구보다 기뻐한 이가 작은외숙 정가였다.
정가가 얼굴에 희색이 만면하여 두 사람을 보고 또 보고 신통해하면서,
“너의 재주가 범상치 아니한 것은 진작에 알고 있었다만 일이 여기에 이르고 보니
실로 말문이 막히는구나.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토각귀모인들 어찌 구하지 못하겠느냐?
장하다. 돌아가신 너의 모친이 지하에서 기뻐할 일을 생각하니 나 또한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였고 외질부가 된 선화를 보고는,
“비록 나라와 태생이 다르다고는 하나 지엄한 왕실에서 귀하게 자라신 몸으로 내 조카를 따라
예까지 오셨으니 무슨 말로 그 용기를 치하해야 옳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예우하여 말하니 선화가 나부시 고개를 숙였다가,
“이는 용기 하나만으로 어려운 일이요, 일월성신과 조상의 보살핌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웃으며 응수하였다.
정가는 두 내외와 더불어 오랫동안 담소하다가 문득 대가와 해미갈의 일을 떠올리고,
“형님께서 이 일을 아시면 어떻게 나오실지 궁금하구나.”
하며 그간에 있었던 일을 죄 털어놓았다.
장이 껄껄거리고 한참을 웃다가,
“내일 날이 밝으면 큰외숙댁으로 인사나 가지요.”
하였다.
정가가 사뭇 걱정스럽게,
“글쎄, 인사를 아니 가랄 수도 없다마는 행여 그랬다가 너와 공주께서 무슨 봉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모르겠구나.
네가 선화 공주를 배필로 맞았다는 소문이 나라에 퍼지면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어디 한두 가지겠느냐.
지금 당장은 이로운 일보다도 해되는 일이 한결 많지 싶다.”
하며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가,
“내 아는 사람 중에 불심이 돈독하여 매양 절을 찾아다니는 이가 있으니
이 사람에게 부탁하여 남의 이목이 뜸하고 한적한 곳에 거처를 정하는 것이 어떠하느냐?”
하고 물었다.
장이 잠자코 선화를 보니 선화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므로,
“그렇게 하지요.”
장이 대답을 대신하고서,
“그렇더라도 큰외숙한테야 인사를 아니 갈 수 있겠습니까.”
하며 다시금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내외가 정가네 집 안채에서 정가가 내어준 금침을 깔고 하룻밤을 잤다.
이튿날 정가는 식전부터 부탁할 사람을 만나러 갔고 부여장 내외는 조반을 들고
느지막이 대가의 집을 찾았다.
벼슬길에 다니던 대가가 관복을 입고 막 대문을 나서다가 장을 만나,
“인석아, 너는 대관절 어디를 갔다가 이제야 나타나느냐!”
버럭 호통을 치고 보니 장의 곁에 웬 낯선 여인이 섰는데,
그 자태가 실로 혼이 아찔하고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대가가 망연자실 넋을 잃고 여인을 보고 섰으려니 길에서 여인의 미색에 반하여
쫓아온 듯한 남정네들이 10여 보의 거리를 격하고 선 채 시종 눈을 힐끔거리는데,
그 숫자가 족히 여남은 명은 되었다.
여인이 달처럼 희고 화사한 얼굴로 다소곳이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곧 환히 웃으며,
“저는 마동 왕자를 쫓아 신라 왕실에서 온 선화라고 합니다.
큰외숙 얘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마치 전에부터 알던 사이 같습니다.”
하자 대가가 그제야 난혼을 수습하고,
“뭐라고? 선화 공주라고?”
하며 장을 바라보았다. 장이 빙긋 웃으며,
“길에서 이럴 것이 아니라 어서 안으로 들어가 절부터 받으시오.”
하니 대가가 엉겁결에,
“그러지.”
하고 앞장을 서서 되돌아 들어갔다.
삼자가 방에 들어가서 인사를 마치고 앉았는데 대가가 선화의 외모에
그만 넋을 잃어 한동안 얼굴이 닳도록 훑어본 후에,
“과연 신라에서 온 선화 공주요?”
하고 물어 그렇다는 대답을 듣고 나서도,
“이거야말로 믿기도 어렵지만 그렇다고 저런 인물을 보고 안 믿을 수도 없으니
낭패 중에 상낭팰세.”
연신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대가가 그러구러 생각하니 선화 공주가 맞든 아니든
천하의 해미갈과 사돈지연을 맺지 못하게 된 것은 분명하고,
또한 해미갈에게 무슨 말로 변명을 해야 할지 자못 눈앞이 캄캄하였다.
장과 선화가 밥 한 솥 지어낼 시간만큼 앉았다가 일어나며,
“외숙께서 저희들 때문에 등청 시간을 넘겼으니
저희는 이만 물러갔다가 훗날 한가로울 적에 다시 오겠습니다.”
하고 하직 인사를 올려서 대가가,
“같이 나가자.”
하며 밖으로 나와 헤어졌는데,
두 사람을 보내고 등청을 하면서도 머리에는 앞서 말한 걱정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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