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8장 마동 부여장 6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0:22

제8장 마동 부여장 6

그는 양국의 지경을 넘어 여러 차례 신라를 잠행하고 경향 각지를

 

속속들이 살피고 다니면서 선화 공주의 얘기를 귀가 따갑도록 듣게 되었다.
 
선화 공주의 미색 절륜한 것이야 사비에서도 더러 말하는 사람이 없지 않았지만

 

신라에서는 경향을 불문하고 남자 셋만 모이면 선화 얘기라,

 

한창 혈기방장하던 장으로서는 선화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이 불처럼 일었다.

그럴 무렵 장의 큰외숙인 대가가 극진히 섬기던 사람 가운데 달솔 해미갈(解彌曷)이란 이가 있었다.

 

본래 해씨(解氏)는 백제의 8대 성씨1) 가운데 하나로 전날 비류와 온조를 따라와

 

마한땅에 정착한 자들의 후손들이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시조대왕 온조의 아버지

 

주몽의 고향인 북부여에서 비롯된 무리였다.

 

이들은 그후 백제와 십제의 영토에 나뉘어 살며 꾸준히 세력을 키워왔는데,

 

특히 자손이 번성하고 땅부자가 많이 나서 대를 이어가며 나라에 큰 세도를 누리게 되었다.

 

해미갈도 역시 그런 세도가의 자손으로, 동성대왕 때 무공을 세워

 

무위 장군 불중후(弗中侯)로 봉해진 해례곤은 그의 종조부였고,

 

무령대왕이 붕어하여 능을 지을 때 능지대금으로

 

전(錢) 1만문(一萬文)을 받고도 무려 3년 동안이나 왕실을 상대로

 

송사를 벌여 기어코 곡식 2천 석을 추가로 받아냈던 해이만은 그의 백부였다.

 

이 바람에 무령대왕의 능은 송사가 해결될 때까지 가묘와 토감의 신세를 면치 못하였다.

해미갈이 그와 같은 일문의 권세를 등에 업고 달솔 벼슬을 지내며

 

내경부의 일을 맡아보고 있었는데,

 

대가가 벼슬을 높이려고 틈만 나면 찾아가 시종 허리를 굽실대며 면전에서 알랑거렸다.

 

이때 해미갈에게는 첩의 몸에서 낳은 서녀가 있었으나 인물이 추하여

 

늦도록 혼처를 구하지 못하자 첩이 모든 것을 해미갈의 탓으로 돌리고

 

걸핏하면 영감의 수염을 흔들며 강짜를 부렸다.

 

해미갈이 첩의 소행을 귀찮게 여기면서도 마음이 온통 첩에게 가 있어서 하루는 대가를 보고,

“어디 쓸 만한 총각이 없는가? 신도 짝이 있고 소도 짝이 있고 하물며 흉측하게 생겨먹은

 

구렁이 같은 것들도 세상에 난 것은 모다 짝이 있는데 사람의 추물이라고 어찌 짝이 없겠는가?”

하며 그즈음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대가는 해미갈의 집에 들락거리며 이미 서녀의 인물을 본 적이 있는 터라

 

내심 어렵겠다는 짐작은 하면서도,

“짝이야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다만 아직 연분 닿는 사람을 만나지 못한 탓이지요.”

하고서,

“어떤 총각을 원하십니까?”

하고 해미갈의 의향을 물었다.

“글세……”

해미갈이 여운을 길게 늘어뜨리다가 한참 만에 대답하기를,

“내 집 딸년이 추물이니 역질 학질 걸린 놈과 사람 때려 죽인 놈과

 

게걸음 걷는 놈만 아니면 나야 아무라도 상관이 없네마는

 

그것도 자식이라고 저희 어미 마음은 또 그게 아닌 모양이야.

 

기왕이면 집안도 번듯하고 인물도 헌칠해서 한쪽 못난 것을

 

덮을 수 있는 총각이면 하더라구.”

하고는,

“그 소리도 과히 틀린 것은 아니지.

 

집안이야 아무래도 좋지만 허우대와 인물은 중치라도 되었으면 싶네.

 

그래야 뒤에 자손을 보더라도 한결 덜한 추물이 나올 것 아닌가?”

하며 은근히 제 뜻도 거기에 있음을 말하였다.

 

대가는 해미갈의 말을 들으며 문득 외조카인 장을 머리에 떠올리고,

“저에게 누이가 남긴 아들이 하나 있긴 합니다.”

하며 말문을 열었다.

“아이가 다소 황당무계하여 언행이 별쭝맞고 동네에서는

 

구경가마리로 조명이 자자할 뿐 아니라 어떤 때 보면

 

본정신 있는 놈 같지를 않아 감히 말씀드리기가 송구하지만

 

인물과 허우대만큼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습니다.”

“자네 누이의 아들이라고?”

대가의 말에 해미갈이 즉각 관심을 보이며 되물었다.

“그렇습니다. 누이가 일찍 과부가 되어 그 아이 하나만을 낳아 길렀더니

 

아비가 없이 자라서 그런가 좌우간에 좀 별종입니다.”

“어떻게 별종인가?”

“일일이 다 말씀드리기는 어려우나 제놈이 남지 못가에서 마농사나 짓고

 

연명하는 처지로 매양 나랏일을 걱정하기도 하고,

 

얼마 전에는 지피지기면 백전필승이라면서 지경을 넘어

 

신라땅 구경도 하고 돌아왔습니다.”

“허허, 거 되우 별쭝맞은 자일세!”

해미갈이 시쁜 표정으로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밖에 또 수상한 점은 없는가?”

“아이는 착실하고 그 어미가 살았을 때는 효심도 지극했던가 봅디다.”

“잘생겼다고?”

“키가 칠척에 외양만 놓고 봐서는 자못 제왕의 기품마저 갖추었습지요.”

“그럼 되었네. 세상에 한 가지 흉허물 없는 이가 몇이나 있을라고.

 

내 일간 그 아이를 한번 만나볼 수 있겠는가?”

“보는 것은 어렵잖으나 그 녀석이 나리의 안전에서 또 무슨 해괴하고

 

종작없는 소리를 지껄일는지 소인은 벌써부터 그것이 걱정이올시다.”

“그런 줄 알고 한풀 접고 보지 뭐.”

해미갈이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덧붙이기를,

“내 딸년에게 마농사를 짓게 할 수는 없고,

 

혼사가 성사되면 어디 적당한 향리의 미관말직이나 맡겨서

 

녹봉으로 살도록 하면 되지 않겠나.”

혼사가 이루어진 뒷걱정까지 앞질러 말한 뒤에 대가를 돌아보며,

“그렇게 되면 자네와 나도 사돈지연을 맺는 거로구만?”

하고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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