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마동 부여장 3
두 철 정도 이런 세월이 흘렀을 때 선에게 담로국으로 가라는 왕명이 떨어졌다.
선이 왕명을 받은 즉시 백사를 제하고 안향의 집으로 달려가서 같이 배를 타고
서역으로 갈 것을 권하자 안향이 한동안 눈물을 흘리며 대답이 없다가,
“소첩은 본시 박복한 여자이올시다.
서방님께서는 그저 소첩 같은 것은 한때 잠깐 쉬어가는 길섶의 정자쯤으로 여기시고
부디 명문대가의 반듯한 규수와 격에 맞는 혼인을 하십시오.
그렇게 하시는 것이 여러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일입니다.”
하고서,
“다행히 저의 몸에 태기가 돈 지 이미 서너 달을 넘긴 터이니
이 아이를 낳아 둘이서 의지하며 살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청할 것은 훗날 공무를 무사히 마치시고 나라에 공을 세운 뒤 돌아오시거든
그때 지나치는 걸음에라도 소첩의 집에 들러 지금까지 나눈 정이 헛되지 않음을 보여주십시오.
소첩이 바라는 것은 그것이 전부이올시다.”
하였다.
선이 이때서야 안향이 홀몸이 아님을 알고 더욱 동행할 것을 간청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날짜가 되어 혼자 떠났는데,
서역에 가서도 늘 안향을 생각하고 둘이서 지냈던 시절을 그리워하였다.
선은 서역에서 본국 명가의 규수와 매작으로 혼인하고 아들 셋과 딸 둘을 낳았지만
마음은 항상 본국에 두고 온 안향과 얼굴도 모르는 아이에게 있었다.
한편 안향은 선이 떠나고 나서 사내아이를 낳았다.
혼자 살던 과수가 아이를 낳자 남의 말 하기 좋아하는 가납사니들의 입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다.
곧 천 가지 추측과 만 가지 가설이 횡행하니
소문을 들은 진각수가 허겁지겁 달려와서 아이 낳은 딸에게 사단을 물었다.
안향이 그 아버지에게 일의 전말을 밝혀 고변하자 진각수가 깜짝 놀라며,
“하면 이 아이의 아버지가 정말 부여선이란 말이냐?”
하고는 그 후로 더 이상 나무라지 아니할 뿐더러 은근히 좋아하는 기색마저 엿보였다.
진각수가 당석에서 아이의 이름을 임금왕(王)자에 아이동(童)자와 비슷한 장(章)자를 더하여
부여장(扶餘璋)이라 짓고서 주위에 궁금해하는 자들을 만나면,
“내 딸이 낳은 아이는 왕실의 자손일세.”
하고 자랑삼아 떠벌리곤 하였다.
그러나 듣는 이들이 다들 코방귀만 뀌며 믿지 아니하고,
“왕실의 누구 자식이란 말이오?”
“그것은 지금 말할 수 없지만 아무튼 왕실의 씨가 분명하다네.”
“나한테야 그래도 저래도 그뿐이지만 다른 데 가설랑은 그런 소리 마시오.
나라에서 알면 공연히 죄 받을까 겁나오.”
이런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라 더러는,
“그럼 그대로 있지 말고 애를 들쳐 업고 왕실로 들어가시오.
설마하니 왕손을 낳았는데 대궐에서 아주 모른 척이야 하겠소?”
하고 권하는 이도 있고 또,
“허허, 알았소. 왕실 자식이면 어떻고 용의 자식이면 어떻소.
기왕 낳았으니 잘 키우라고 하시오.”
하는 얘기도 나왔는데, 이런 말들은 모두 진심에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하나같이 의심하고 빈정거리는 소리였다.
진각수는 자신의 말이 세간에 통하지 아니하자 가슴을 치며 답답해하였으나
차차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러구러 말하는 재미도 없어져서 나중에는
누가 아이의 일을 물으면,
“응. 그 아이는 말이지, 내 딸이 남지 못에 사는 용과 교통하여 낳은 아일세.”
스스로 흰소리를 늘어놓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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