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마동 부여장 1
법왕의 뒤를 이어 즉위한 이가 부여장(扶餘璋), 곧 장왕이다.
그런데 장왕은 법왕인 부여선이 그 아버지 부여계를 따라 서역으로 가기 전,
경사의 남지(南池)에 살던 한 여인과 몰래 잠통하여 낳은 아들이다.
당시 약관의 청년 부여선이 마음을 빼앗긴 여자는 이름이 안향(眼香)으로,
녹사(錄事) 벼슬을 지내던 진각수(眞角首)의 딸이었다.
안향이 그 이름처럼 눈이 맑고 아름다워서 시선을 대하고 있으면
마치 향기가 나는 듯할 정도였는데,
스물셋의 나이에 매작이 들어온 도성의 한 부잣집 아들과 혼례를 올렸다.
그러나 시집을 가서 꼭 석 달 만에 남편을 까닭 모를 급살로 잃고 혼잣몸이 되니
본래 안향의 출중한 미색을 탐내어 며느리로 삼았던 시집에서 이번에는
그 미색을 탓하며 구박이 심하였다.
진각수가 이 소식을 듣고 딸을 찾아와서 말하기를,
“아무래도 네가 인물값을 하는 모양이다.”
푹 한숨을 쉬고서,
“네가 서방도 없이 남의 며느리가 되어 고약한 험담이나 듣고 사느니
차라리 인적이 드문 조용한 못가에 따로 거처를 마련해줄 터이니
혼자 지내는 것이 어떠냐?”
하고 물었다.
안향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자 진각수가,
“너는 인물도 인물이지만 특히 눈빛이 묘한 데가 있으니
앞으로는 사람을 똑바로 쳐다보지 말아라.
혼자 사는 처지로 또다시 구설에 오를까 두렵다.”
하고 당부하였다.
이때부터 안향이 남쪽 못가에 따로 집을 한 채 구하여 여러 해를 혼자 살았다.
진각수가 벼슬을 하던 사람이라 딸의 먹을 것과 입을 것은 철마다 끊이지 않고 조달하여
안향이 비록 혼자 살면서도 궁한 것이 없었으나 친정에서 물자가 올 때마다
안향의 안색이 밝지 못하더니 언제부턴가 집 앞에 땅을 마련하여 마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안향이 마를 심어 팔아 생계를 꾸려간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하루는 진각수가 딸을 찾아와서 그 사유를 물었다.
안향이 대답하기를,
“제 비록 아버님의 보살핌으로 분수에 넘치는 넉넉한 살림을 하고 있으나
사람의 여식으로 어찌 미안한 마음이 없겠습니까.
하물며 농사를 지으면서부터 늘 몸에 더부룩이 쳇기 돌던 것도 사라지고
무엇보다 밤에 잠이 잘 오니 몸과 마음에 두루 좋은 일이 아닌가 합니다.”
하므로 만류하러 왔던 진각수가 혼자 사는 딸의 무료한 것을 생각하고,
“아무렇게나 해라.”
더욱 불쌍히 여기며 되돌아갔다.
안향이 마농사를 지어 일부는 스스로 먹기도 하고 일부는 저자에 나가 팔기도 하였는데,
그러구러 마 파는 여인이 보기 드문 미색이라는 소문이 돌아 남지에 사는 사람치고
안향을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었다.
마를 사러 나온 사람들은 말할 것도 없고 하릴없는 이들까지 공연히 안향이 차고 앉은
좌판 앞을 기웃거리며 곁눈질을 하거나 더러 시시한 수작들을 걸고는 하였다.
그럼에도 여인이 항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깔고 누구에게도 좀체 눈길을 주는 법이 없으니
사내들로선 더욱 애간장이 녹을 수밖에 없었다.
'소설방 > 삼한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8장 마동 부여장 3 회 (0) | 2014.07.19 |
---|---|
제8장 마동 부여장 2 회 (0) | 2014.07.19 |
제7장 유신을 얻다 7 회 (0) | 2014.07.19 |
제7장 유신을 얻다 6 회 (0) | 2014.07.19 |
제7장 유신을 얻다 5 회 (0) | 2014.07.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