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8장 마동 부여장 4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10:15

제8장 마동 부여장 4

이렇게 태어난 부여장이 무럭무럭 자라 나이 10여 세가 되도록

 

그 어머니와 둘이서 마농사를 짓고 살았다.
 
안향은 마를 팔아 번 돈으로 훌륭한 스승을 구해 아들을 가르쳤는데,

 

그 열의가 얼마나 대단한지 손끝에 맺힌 피고름이 하루도 마를 날이 없었다.

 

한번은 안향이 사람들에게서 병술과 도학을 가르친다는 한 파계승에 관한 소문을 듣고

 

그 길로 걸어 50리허인 칠악(칠갑산)까지 단숨에 달려갔다.

 

조불(祖佛)이라는 그 파계승은 일찍이 중국 청량산(종남산)에서 유학하고 귀국한 사람인데

 

유불선 삼교에 달통했을 뿐 아니라 풍우를 자유자재로 부리는 도인이라는 소문까지 돌아

 

경사에 사는 광문거족의 자제들로 문하가 장터처럼 북적거렸다.

 

멋모르고 달려갔던 안향이 칠갑산 인근에 사는 사람들에게 알아보니

 

조불의 문하생이 되자면 미리 물어야 하는 공부값이 한두 푼이 아니었다.

 

안향은 눈앞이 다 캄캄했지만 기왕 내친 걸음이었다.

 

그는 크게 용기를 내어 조불을 만났다.

 

그리고 자식을 맡아 가르쳐달라고 정중히 청하였다.

“글쎄 가르치는 거야 어렵지 않으나 부인의 행색을 보아하니

 

그만한 값을 물 수 있을지 의문이오.”

머리가 크고 우락부락하게 생긴 조불이 안향을 찬찬히 뜯어보며 말했다.

“제가 가진 거라곤 마밭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부지런히 마농사를 지어 팔면 철마다 나리께서 지어입는 베필 정도는

 

마련해 바칠 수가 있겠습니다.

 

저는 일찍 과부가 되었으나 다행히 아들 하나를 두었고 그 아이가 제겐 전부입니다.

 

엎드려 간청하거니와 부디 이년의 처지를 가련히 여겨 제 자식놈을 가르쳐주세요.

 

제발 부탁입니다.”

안향의 말에 조불이 문득 야릇한 웃음을 지었다.

“베필 정도로는 집의 아이를 맡아 가르칠 수가 없으나 이제 보니

 

글값으로 받을 만한 게 아주 없는 건 아니오.”

“그게 무엇입니까?”

안향이 깊고 아름다운 눈빛을 빛내며 조불의 앞으로 무릎을 당겨 앉자

조불이 여전히 웃으며,

“부인의 미색이외다.”

하였다.

난데없는 조불의 수작에 안향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여인의 본능으로 다급히 몸을 사렸던 안향은 잠깐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조불을 내려다보며 말없이 옷을 벗었다.

당황한 쪽은 오히려 조불이었다.

“수절하는 여자에게는 정절을 지키는 일이 비록 태산같이 중한 것이지만

자식놈을 나라에 보탬이 되는 큰 인물로 가르칠 수만 있다면 무엇을 아끼고 주저하오리까.

듣자건대 나리는 천하의 기재를 기를 만큼 훌륭한 분이라 하였고,

저는 죽고 나면 썩어갈 허무한 몸뚱이밖에 가진 게 없습니다.

나리께서 저를 곱게 보시니 오히려 다행입니다.”

말을 마치자 안향은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조불의 앞에 다소곳이 앉았는데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 깊고 투명한 눈망울에 의미를 알기 힘든 물기가 스몄다.

비록 안향의 미색에 반해 잠시 흑심을 품기는 했지만 조불도 양식이 있는 사람이었다.

곧 얼굴을 붉히고 정색하며 이르되,

“내가 그만 부인의 아름다움에 잠시 넋을 잃었습니다.

 

무례함을 용서해주시오.”

하고서,

“글값은 필요없으니 아드님을 내게루 보내오.

 

정성껏 가르쳐보리다.”

하였다.

이리하여 부여장이 조불의 문하에서 서너 해 특별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는데,

 

나중에 조불이 주위에다 대고 입버릇처럼 말하기를,

“내가 가르친 아이 중에 부여장만한 이가 없다. 과연 그 어머니에 그 아들이다.”

하고 찬탄을 금치 못하였다.

그 뒤에 장이 여러 스승에게 다양한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조불이 힘써 주선한 덕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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