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장 마동 부여장 2
당시 왕의 조카였던 부여선이 안향을 처음 본 것도 바로 이 남지의 저자에서였다.
그는 사냥을 갔다가 돌아오던 길에 유독 남정네들이 무리를 지어 모여선 것을 보고
발걸음을 멈추었다.
잔뜩 호기심을 느낀 선이 사내들의 뒷전에 붙어서 보니 아리따운 여인이 좌판에
마를 모닥모닥 올려놓고 다소곳이 시선을 아래로 향하며 앉았는데,
그 모습이 마치 하늘에서 방금 내려온 선녀와 같았다.
마 파는 여인에게 첫눈에 반한 선은 여인이 마를 다 팔기를 기다렸다가 살금살금
뒤를 밟아 집을 알아내고 부러 그 집 앞에서 고함을 지르며 복통을 앓는 체하여
여인의 보살핌을 받기에 이르렀다.
선이 거짓으로 혼절한 척 눈을 감고서 여인의 하는 양을 가만히 구경하니
여인이 별로 당황하지 아니하고 대바늘로 선의 손가락을 찔러 피를 낸 다음
입으로 소리가 나도록 빨아내는데, 그 모습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지경이었다.
여인이 밖으로 나갔다가 뜨거운 물을 가져와 선의 입속에 흘려 넣자 선이 눈을 떴다.
여인이 선을 지그시 내려다보고 처음으로 시선을 맞추며,
“어떻습니까? 정신이 좀 드세요?”
하고 물었다.
여인의 맑고 깊은 눈빛을 대한 선은 그만 정신이 아찔하여 한동안 대답을 못하다가,
“초면에 실로 대은을 입었습니다.
하마터면 객사할 뻔한 몸을 구해주셨으니
이 보답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며 수작을 걸었다.
이때 안향은 벌써 서른이 가까운 나이였고 선은 스물을 갓 지난 청년이었다.
선의 계교로 두 남녀가 밤을 지새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중에 선은
여인의 이름이 안향인 것과 못가에 홀로 살게 된 내력을 듣게 되었다.
이에 선이 자신의 신분은 감춘 채 가까스로 이름만을 밝히고서,
“나의 지어미가 되어주시오.”
손을 덥석 거머쥐며 청혼하자 선을 아직 어린아이로만 여기던 안향이
돌연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어린 청년이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내 막내동생보다 어리겠다.”
대뜸 반말로 이르고 상대하지 않았다.
선이 울컥 욱기가 동하여,
“남녀가 서로 마음만 합하면 됐지 나이가 무슨 상관이오?
나의 어머니도 아버지보다 나이가 다섯 살이나 위요.”
하자 안향이 더욱 얕잡아보는 얼굴로,
“다섯 살만 어리면 무슨 걱정이야. 너는 나보다 열 살도 더 어리겠다.”
하고 응수하였다.
이 뒤로 둘이서,
“그래 어리다고 내가 청혼하는 것을 기어코 받아주지 않겠소?”
“이르다뿐이야. 공연히 쓸데없는 생각 말고 얌전히 몸이나 추스렸다가 날이 밝거든 집으로 가라.”
“허참, 대관절 어린 것이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시오?
어리다고 서방 구실을 못할까봐 걱정이오?”
“구실을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은걸?”
“좋소.”
“좋다니?”
“그럼 제대로 하는지 마는지 내가 직접 보여드리리다.”
“그것을 어떻게 보여준단 말이니?”
주거니받거니 한참을 토닥거린 끝에 선이 벌떡 일어나 다짜고짜 안향을 붙잡고
쓰러져서 야합하게 되었는데,
오랫동안 혼자 살던 안향 또한 내심으론 선의 수작이 싫지 아니하여 나중에는
순순히 이를 허락하고 통정한 후에는 한이불을 덮고 잠을 잤다.
이튿날 선이 안향을 향하여,
“어떻소? 그래도 서방 구실을 제대로 못합디까?”
하며 잰척 물으니 안향이 수줍게 얼굴을 붉히며,
“그런대로 구실은 하는 것 같습디다.”
하고 전날과 달리 공대로 대답한 뒤에 조반상까지 지어 바쳤다.
선이 안향과 겸상으로 조반상을 물린 뒤에 비로소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재차 청혼을 했다.
선의 말에 안향이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잦바듬히 앉았다가,
“그렇게 귀하신 분이면 도리어 일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하고서 자신이 과부의 몸인 것을 들어 허락하지 아니하였다.
이미 안향에게 몸과 마음을 두루 빼앗긴 선이 그 후로도 안향의 집 문턱이 닳도록
수시로 통섭하며 정분을 쌓았고, 또한 그럴 때마다 간곡한 말로 청혼을 거듭하였으나
번번이 안향의 대답이 신통치 아니하고,
“부디 그 마음이나 변하지 마십시오.
마음만 변치 않는다면 훗날 반드시 좋은 때가 있을 것입니다.”
하며 막연히 후일을 기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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