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장 유신을 얻다 6
대왕이 그 큰 체구에 어금니를 꽉 깨물고 중석의 아뢰는 소리를 낱낱이 듣고 나서
문득 고개를 돌려보니 태후의 옆자리에 아우 백반이 있는지라,
“네가 여기는 어인 일이냐?”
하고 물었다. 백반이,
“신이 중석의 고변을 먼저 듣고 태후께 데려왔소.
중석이 저의 집으로 찾아와 처음 이 소리를 하더이다.”
하고서,
“용춘이놈을 절대로 시쁘게 보지 마시오.
용춘이 비록 천명과 결혼하여 전하의 사위가 됐다고는 하나 이는 사위를 얻은 것이 아니라
딸을 잃은 것이오.
용춘은 본래가 원한으로 똘똘 뭉친 놈이라 언제 해도 반드시 마음에 든 앙갚음을 하고 말 것입니다. 전하의 곁에는 예전부터도 그랬지만 우리밖에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전하의 곁에서 오로지 전하를 위해 목숨을 바쳐 일할 사람은 핏줄로 맺어진
우리 형제들뿐이오.”
하니 만호 태후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아무렴. 한배에서 난 동복 형제만큼 서로를 알아주고 살뜰히 위해주는 사람이
과연 어디에 있을라구.”
하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는,
“이번 일도 백반이 아니면 모르고 그냥 넘어갈 뻔하지 않았소.
당장 용춘의 관작을 빼앗아 금성에서 멀리 쫓아 보내시오.
죄의 위중함으로 논하자면 극형으로 다스려 후환을 없애야 하겠지만 천명의 일도 있고
또한 사도 태후가 워낙이 용춘을 싸고 도니 지금 죽이기는 어려울 것이오.”
하며 처방까지 내렸다.
중석의 고변에 이어 모후와 아우의 말을 차례로 듣고 나자 대왕의 심지가 몹시 흔들렸다.
이를 눈치챈 백반이 진심 어린 표정으로 눈에 눈물까지 머금으며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전하께서 보위에 오르실 때를 돌아보소서.
저와 용춘 가운데 대체 누가 전하를 더 위할 것이며 전하의 왕업에 더 애틋한 정을 가지오리까.
전하와 저는 처음 시작할 때부터 한배를 타서 오늘날 여기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전하께서 성군이 되시는 일은 곧 저의 일이지만 아마도 용춘이 노리는 것은 보위에 대한 욕심이요, 전왕의 원수를 갚겠다는 일념밖에 없지 않겠나이까?
바로 이 점이 용춘과 저의 다른 점이올시다. 부디 통촉합시오.”
사람이 모질지 못하고 성품이 너그러운 데다 본래 타고나기를 효심과 우애가 지극한
백정왕으로선 백반의 이 말 한 마디에 묵은 감정이 그만 봄눈 녹듯이 사그라졌다.
눈물까지 글썽이면서 말하는 백반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그의 말이 모두 맞지 싶었고,
그동안 왜 자신의 동복 아우를 경원해왔는지 일변으론 후회가 되기도 했다.
숙흘종의 말대로 그가 비록 다음의 왕통을 노린다 하더라도,
적어도 자신이 보위에 있을 동안에는 충절을 다할 사람이 백반 위에 또 누가 있으랴 싶었다.
이에 대왕이 백반의 손을 덥석 거머쥐며 말하기를,
“내가 너의 마음을 모를 턱이 있느냐.
새삼스럽게 그와 같이 말하니 도리어 이상하구나.”
하고 손등을 부드럽게 어루만졌다.
만호 태후가 다시금 용춘의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다그쳐 물으니
대왕이 잠시 고민에 빠졌다가,
“아무래도 벼슬길에서 물러나게 하는 이상의 죄는 주기가 어렵겠습니다.”
하고서,
“우선 그리 해두고 차차 거동을 관찰하여 만일 불충한 움직임이 있으면
그때에 중벌로 다스리겠습니다.”
하였다.
대왕의 말에 백반은 아무 대꾸가 없는데 만호 태후가,
“그러기에 뭣하러 천명과 혼인은 시켰소?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라 하지 않더이까?
내가 다 생각이 있어 반대를 하였지 공연히 반대를 한 줄 아시오?”
하며 마뜩찮은 낯으로 혀를 찼다.
대왕이 태후궁을 물러나려 할 적에 백반이 중석의 일을 거론하며,
“저 자가 본시 골화성 사람이고 그곳에 가솔들이 살고 있다 하니
고향의 현령 자리나 하나 주어 보내는 것이 어떨는지요?”
하여서 대왕이 그리하겠다고 당석에서 백반의 청을 수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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