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방/삼한지

제7장 유신을 얻다 3 회

오늘의 쉼터 2014. 7. 19. 09:53

제7장 유신을 얻다 3

시번이란 자가 양식을 받아들고 한동안 어리둥절하여 어쩔 줄을 몰라하다가

고맙다는 인사도 없이 그대로 갔다.
 
그런데 서현이 공무를 마치고 내당에 들어오니 만명이 돌연 안색이 백변하여,

“큰일났습니다! 아이가 갑자기 몸이 불덩이와 같고 젖도 빨지 않으니

이를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울먹였다.

서현이 방에 들어가서 유신을 살펴보니 아침까지 멀쩡하던 아이가 과연 신열이 올라

몸이 불덩이와 같았다.

이에 황급히 의원을 청하여 보게 하였더니 의원으로 온 자가 흔한 태열이라 진단하고

처방전을 주고 갔는데, 밤이 되어도 열이 내리지 아니하고 도리어 증세가 악화되어

숨마저 껌뻑껌뻑 넘어갈 듯하였다.

만명은 아이를 안고 훌쩍훌쩍 울고 서현은 뒷짐을 진 채로 방안을 쏘다니다가,

“내 직접 가서 그놈의 돌팔이 의원을 다시 데려와 보여야겠소.”

하고는 집을 나섰다.

서현이 대문을 나서서 몇 발짝을 아니 걸었을 때다.

갑자기 시커먼 물체 하나가 서현의 앞을 가로막으며,

“나리, 어디를 그처럼 급히 가시오?”

하고 물어 서현이 누군가 하고 바라보니

그는 다름이 아니라 낮에 방면했던 백제 사람 시번이었다.

서현이 깜짝 놀라,

“자네가 어인 일인가? 아직 백제로 아니 갔던가?”

하자 시번이 웃으며,

“저를 따라오십시오.”

하고는 다짜고짜 등을 돌려 앞장을 섰다.

서현이 보아하니 시번이 난데없이 나타난 것도 수상하고

어디로 가자는 건지도 모를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의원을 청하는 것이 급선무인지라,

“이보게, 자네의 용무는 이따가 보세. 내가 지금 사정이 급하이.”

하니 시번이 고개를 돌리고,

“저의 용무를 보자는 것이 아니라 나리의 용무를 보러 갑니다.

댁에 우환이 있는 줄을 다 알고 왔으니 저를 따라가시면 그 우환을 없애드리겠소.”

신통한 말을 하였다.

서현이 마음속에 기이한 느낌을 품었지만 이때는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라,

“그게 정말인가?”

하며 시번을 쫓아갔다.

시번이 서현을 데려간 곳은 관아 북편의 고산이었다.

산의 중턱쯤에 이르자 시번이 손으로 땅을 헤치고 무엇인가를 파내는데,

서현이 달빛 밑에서 보니 나무 뿌리는 나무 뿌리이되

그 생김새가 영락없는 사람의 형상이었다.

시번이 땅에서 파낸 나무 뿌리를 서현에게 주면서,

“이것을 가져가서 달여 그 물을 먹이면 갓난쟁이 아드님의 몸에 오른 신열이

거짓말처럼 내릴 것입니다.”

하고서 다시 나무 뿌리 파낸 곳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바로 여기에 아드님의 태를 가져와 묻으면 그 아이의 일생을 산의 신령이 수호해드릴 것이오.

지금 탄생하신 나리댁 아드님은 하늘의 용이 사람으로 변하여 내려온 분으로 짐작컨대

일평생을 말잔등에서 보내게 될 것이오.

하니 천수를 누리기가 어디 쉬운 노릇이겠소?

그러나 이곳에 태를 묻어 고산 신령의 보살핌을 받는다면

타고난 천수를 해치는 일은 없을 것이외다.”

하였다.

서현이 마음이 급한 사람이라 고맙다는 인사도 잊어먹고,

“우선 아이의 목숨부터 건지고 보세!”

하며 돌아서 내려오는데 시번이 뒤에서 껄껄 웃으며,

“나리와 내가 피장파장이오!”

하고 큰소리를 쳤다.

서현의 생각에는 시번이 뒤에 따라오려니 여기고 내처 집으로 달려가서

나무 뿌리를 고아 직접 그 물을 아이의 목구멍으로 흘려 넣었더니

과연 몇 모금을 아니 먹여 불덩이 같던 신열이 싸늘하게 내리고 거짓말처럼

숨이 고르게 변해 이내 새근새근 잠이 들었다.

그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서현이 시번을 만나 산에 갔던 일을 회고하니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이 안 갔는데,

새근거리며 자고 있는 아이를 보니 꿈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므로,

“내가 아무래도 귀신한테 홀린 모양이야.”

하고 연신 머리를 갸우뚱거렸다.

이튿날 서현이 하루 왼종일 시번의 일을 회상하다가 해거름에

아이의 태를 깨끗한 보자기에 싸가지고 혼자 고산으로 갔다.

기억을 더듬어 전날 나무 뿌리를 파낸 자리를 찾아가니

곧 구덩이가 깊게 패인 곳이 나타나므로,

“옳거니, 바로 여기렷다!”

하고는 가져간 태를 묻고 감쪽같이 평토를 하였다.

그날 밤에 서현이 잠을 자는데 꿈속에 다시 시번이 나타났다.

그리고는 이르기를,

“나는 본시 고산의 신령인데 취산에 사는 낭지가 하도

그대의 얘기를 늘어놓아 특별히 그대의 심성을 알아보러 갔었노라.”

하고서,

“귀한 옥동자를 얻었으니 잘 키우라.

다만 삼라만상의 잡귀가 시기하여 어려서는 이번과 같은 병치레가 잦을 것인즉,

성년이 될 때까지 용화(龍華)라고 이름을 지어 부르면 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말을 마치자 곧 연기가 되어 사라져서 서현이 그를 붙잡으려고 팔을 허둥거리다가

잠에서 깨어났다.

이때 만명도 소스라치게 잠을 깨고 하는 말이,

“방금 전에 정말 이상한 꿈을 꾸었습니다.”

하고는 곧 꿈에 본 광경을 말하는데, 서현이 들어보니

제가 꾼 꿈과 판에 박은 듯이 일치하였다.

두 내외가 꿈에 서로 용화라는 이름을 들은 것이 너무도 신통하여

오랫동안 한이불에 누워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다가,

“유신이란 이름은 성년이 되면 쓰기로 하고 지금부터는 용화라고 지어 부릅시다.”

하고 유신의 아명을 용화로 정하여 뒷날부터 그대로 불렀다.

그 뒤로 아이는 과연 병 없이 무럭무럭 자랐다.

이에 만사를 이름 덕이라고 믿게 된 서현이 내당을 들고날 때면,

“용화야! 용화야!”

하며 만고에 부를 일이 없음에도 수시로 무슨 주문을 외듯

갓난아이 이름을 소리 높여 불러대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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